그동안  추진하던 일을 어제 최종적으로 무사히 마치고 나자 긴장감이 풀렸나 보다.
죽음처럼 깊고 긴 잠에 빠져 늦은 저녁  눈을 뜨자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인터넷을 뒤엎고 있다.

잠시나마 느슨해졌던 마음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김수환추기경님이 떠나셨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운에 떠났다.
이어 마이클 잭슨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안따까워 한다.

천수를 다했건, 비운에 갔건 유명인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다 본다.
죽음이 우리 가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바쁜 일상 중에
누구나 한번쯤 되새김질하는 계기인 것이다.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을 때까지 3대 조상까지 들먹이고 털고 또 털어 숨겨진 이야기들을
꺼집어 내어 이야기한다.
이럴 때 인터넷은 사실이든 루머이든 진위와는 상관없이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한다.

 

잠시 시간 지나면 곧 일상으로 돌아와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떠나는 시간만큼은 동서양을 떠나  애도의 마음을 함께 한다.

삶의 순환구조인지 모르나 죽음은 점점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고,

늘 아침부터 눈감는 시간까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확인하고 깨닫는 셈이다.

 

화려한 조명 뒤에서 희귀의 병마와 싸우며 살다 삶을  마감한 마이클 잭슨. 

 뛰어난 천재성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하며 50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11세에 불러서 인기를 모았던 BEN 은 변성기 전이라 더 애절하고 호소력이  짙었다.
연도로 따지면 내가 대학 초년생 쯤으로  1973, 4년 즐겨들었던 기억이 난다.

기교없이 깔끔하게 불렀던 곡 BEN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은 이러한 빅뉴스들을 가장 빠르게 전달하는 매체이다.

유명인의 죽음을 거의 같은 시간에 접하면서 그 충격의 강도는  실감나게 높다.

미국만의 뉴스가 아니고, 한국만의 뉴스가 아닌 세계의 뉴스인 것이다.

 

유행가 가사 중에 "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최성수 동행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비오고 축축한 어느 여름날,
내 죽어 이름없는 무덤가에 가던  발걸음 멈추고 서럽게 울어줄  길손이 있을까.

꽃한송이 꽃아놓고  알지 못하는 내 이름 석자 불러주며  잠시나마  목놓아 통곡해줄  사람 있을까.

 

결국은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돌고 또 돌아갈 것이고

인일 홈페이지에는 세상 그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넘쳐날 것이고.

무덤 위엔 이름 모를 새 한마리만이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변성기 지나서 그런지 호소력보다는 기교가 더해진 또 다른 BEN을 한곡 더 들어보자.
Goodbye Mic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