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회 - 게시판담당 : 최경옥, 정환복,설인실 - 11회 모임터 가기
이태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전날,로마를 하루만에 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국 사람들 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여러가지 조건이 좋은 여행이었다.
파리에서부터 비가 오락가락 했었지만 우리는 용케 비를 모두 피해 다녔다.
참가인원이 13명,거의 개인투어를 한 셈이었다.
많을 때는 40여명 50여명 이라던데---
작은 버스로 폼페이까지,폼페이에서부터 쏘랜토 까지는 옛날 경인선 정도의 작은 기차로 갔다.
쏘랜토를 두정거장 남겨놓고선로에서 '옛날 폭탄이 발견되었다'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다들 내려서 만원버스로 다음역으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보면 기차로는 볼 수 없는 도시를 둘러 볼 수 있어서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도시가 많이 낙후되어 보였다.60년대 인천정도를연상하면 될래나?
폼페이는 모두 아다시피 화산재로 덮혔던 옛날 도시이다.
76년에 베수비오산이 폭발하면서 묻혀있던 도시가 1600년도 쯤에 윤곽을 나타냈고 화산재를 걷어 내는데만도
120년이 걸렸다고 한다.
20미터의 화산재를 조심조심 걷어낸 도시는 옛날 사람들의 생활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역사의 중심지는 옮겨 다닌다.'라는 것이었는데
'부흥하면 퇴폐되고,퇴폐하면 망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강한 나라'는 없을수 밖에 없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로 시작한 역사의 중심이 이태리로 프랑스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이 역사의 중심에 있는데, 역사의 교훈을 배워서 ,
건전한 나라로 오래 지속 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염원을 가져보기도 했다.
정교한 도로는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면도칼도 안 들어갈 만큼 빈틈이 없다네---
멀리 보이는 비수베오산은 아직도 검은 연기가 나고 있어.
폼페이---고대의무역의 중심지였고 또한 휴양지로써,걷힌 화산재로 미루워보면
고대의 발전된 반면 성적으로 타락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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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부요해지면 인건비는 비싸지고 학력은 높아지는 대신 어려운 일은 안 하게 되고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고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에 자리를 내 주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순환으로 자리매김 되어지지---
성경의 구약은 반복되어지는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서술해 놓은 책인 것 같기도 해.
다들 아는 이야기이지만,인간의 성징이 그 정도 밖에 안 되게 창조된 걸 어쩌겠니?
다시 폼페이 얘기로 돌아 가 볼께---
엘에이에서 오신 손여사는 가이드 '복기'씨에게 미리부터 폼페이에 가면 꼭 보고싶은 곳이 있다고
얘기가 되어진 것 같앴어.(티브이에서 보셨다나)
유곽---좁은 방에 작은 침대들이 놓여있고,방 입구 문위에는 여러 모양의 적나라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에 그냥 넘어가지지 않고 유심히 보게 되는 그림이 그려진 방이 있었어
게이들만 사용하는 방이더라.
그시대에는 공공연히 게이들만 이용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는 거지.
차마 사진기에 담을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간 부분이야.
죽음의 마지막 순간이 그대로 재연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었는데,그 장면도 skip하고 말았어
그런 골목들을 지나면,빵굽던 곳, 목욕탕,수도시설,집들 그런 곳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는데
우리에게 보여진 곳은 아주 부유층이 살던 곳은 아니었나 봐.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아직도 발굴 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곳이 많이 있다네.
<쏘랜토>
아름다운 멜로디로 유명한 그 쏘랜토는 바다와 햇빛이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카프리 섬으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면서 잠시 항구에만 머물렀지만
주위의 산들에 지어진 집들과 바다의 색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찬란한 그 밝은 햇빛
내맘속에 잠시라도 떠날때가 없구나
돌아오라,이곳을 잊지 말고,돌아오라 쏘랜토로,돌아오라----
그 아름다운 멜로디에 숨겨진 가슴 아픈 얘기는 이렇다.
1800년 정도로 기억이 되어지는데.그 당시 이태리 쏘랜토 지방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격고 있었다.
이태리는 20개의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다.(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도'정도)
북부지방이 부요하고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가난하다.
이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나라의 지역갈등은 이나라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만큼 심하단다.
오랜 세월 독립된 정치와 경제, 문화를 지니다보니 지역적인 독특한 특성들이 생겨난 건 어쩜 당연한 일이다.
그당시 쏘랜토의 경제사정으로 그곳의 많은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북쪽으로 일거리를 찾아 가야만 했다.
그 당시에 '돈 벌어서 꼭 다시 쏘랜토로 돌아오라'고 만들어진 곡이 바로 이 노래란다.
어쨌거나 쏘랜토의 경제는 회복이 되었고,이곡은 해피앤딩이 되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곡으로 자리매김도 되었고.
에잇~! 모처럼 재순이랑 경수랑 난주에게 장문의 인사를 썼는데 날려 버렸네.
하여튼 부럽단 얘기야, 경수야.
난 근데 왜 어리석게도 그 '소렌토 지방'을 '소렌토로'로 알고 노래를 흥얼 거렸을까?
아니, 그런 생각 조차 없이 그냥 '돌아 오라 소렌토로 야~~~~ 돌아 오~오~~~~~라~~~' 하면서
'소렌토로'를 의인화 하면서 불렀을까?
' 베싸메 무쵸 야, 그대는 어여쁜(귀여운?) 산타 마리아~~' 하면서 부르듯. ㅋㅋㅋㅋㅋ
사람은 그저 배워야 해. 고마워 경수야.
흙덩이로 변한 동네 개도 보았니?
난 언제나 폼페이 뒷골목을 걸어 볼까?
예전에 폼페이의 모습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충격이 무척 컸었는데.
지중해의 물 빛은 어느 곳이나 모두 푸르르구나....ㅠㅠ
귀연 광희
'소렌토로야 돌아오라'야로 알고 있었다고? ㅋㅋㅋ
너,언니 웃길려고 하는 소리지?
광야 ㅠㅠ는 뭔 소리니? 자주들 쓰는데 아무에게도 물어본 적이 없네.
이럼 피장파장 된거지?
광희도 꼭 한번 가 봐라,사진으로 말로 듣는 거랑은 감흥이 많이 다르더라.
언니가 폼페이 뒷골목도 보여줄께.
2000년전의 목욕탕 천정이야.
자연조명을 이용했으며,천정에 홈을 판 건 수증기들이 모여서 홈을 타고 밑으로 떨어지라고 그렇게 만들었데.
생각이 많지?,하나하나---
광희야 자주 댓글좀 써라
언니가 폼페이 뒷골목도 보여줄께? 언니라고라? ㅋㅋㅋ
난 내 號가 '귀연' 인줄 알았네.
하여튼 고마워. 비행기를 타고 폼페이의 밤거리를 한번 非行해 보자.
이모티콘이 궁금해?
(ㅜ.ㅜ) 흑흑 우는 모습
(ㅠ.ㅠ) 역시, 우는 모습. 아예 통째로 가져왔다. 봐봐.
가끔 써먹어 봐봐. 재밌어. 주루룩 복사해서 붙이면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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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에서, 다시 한 번 가고싶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소렌토!
잔잔하게 빛나던 그 청색의 바다를....
경수 여행기를 읽으면서
지난 나의 사진을 들쳐보니 문득 이 노래와 함께 그립군요.
<카프리섬>
쏘렌토에서 배를 타고 한시간여를 가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섬이 있었다.
육지에서 멀지 않고 바다의 색이 아름답고 기후가 좋아서 옛날 귀족들이 휴양지로 삼았던 섬이란다.
배에서 내려서 버스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데 어떤 일행은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데,난 아름다운 바다에 넋을 잃었다.
인천사람이라 그런지 배를 타도 꼭 갑판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아야 하고 ,바다의 바람이 좋다.
카프리섬 밑으로 보이는 절벽끝
이태리의 어느왕은 그 절벽 밑으로 12살에서 15살 남자 아이들을 산재물로 희생 시켰단다.
그런 전통은 맥시코에서도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이 왕은 그 이유가 더욱 가학적이다.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지르는 아이들의 소리가 그 아름다운 바다와 제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였단다.
그렇게 희생된 남자아이들이 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복기'씨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나의 분통을 더욱 터트리게 한다.
"그런데 그 왕이 정치를 잘 못했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 왕은 경제를 살렸고,국민들을 잘 돌본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랑 비슷하구먼----(이런소리 하면 옛날엔 그냥 잡혀 갔는데)
지중해의 여인!
알프스, 밀라노, 물망초, 다 좋지만, 카프리로 가는 뱃길이 젤로 부럽다.
다음 주말엔 물 보이는 어디라도 다녀 와야겠다. 아!!! 어스틴! 다 좋은 데 바다가 안보여.
광야 흙덩이로 변한 동넷개? ?귀동에미는 역시.
흐흐흐... 그래. 재순아.
그거 내가 지금 열나게 사이트 찾았다가 여기에 올리지는 못했다. 숭어워서.(이상하다.전엔 그런 모습 아니었는데..) ┗(-_-;)┛
광희야
그런 개도 있을거야,그런데 정작 관광객들이 오는 이곳엔 많이 없고 어느 큰 박물관에 다 있덴다.
시 전체가 잿더미에 묻혔으니 당연히 있겠지?
이모콘이 기발하구나.
광희---☜(^^*)☞ ,수호천사
경수---^(oo)~
리프트를 타고 올라 가는 중에 찍은 카프리 섬
산 중턱엔 이렇게 열심히 사는 부부도 있었어
구름과 섬들이 밑으로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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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끝내고 컴퓨터에 있는 사진을 들여다 보는 저녁시간,
어둠이 내려오는 이 시간의, 그곳의 바다는 어떤 모양으로 변하고 있었을까?
아름다운 석양이 바다 빛깔을 조금씩 바꿔 놓으며 변할 그곳을 마음에 그려본다.
벌써 그 여행이 그립네----
카프리섬을 보면서 느낀점은 '섬은 모두 다 아름답다'이다
섬에 도착하는 순간 '어? 울릉도랑 비슷하네---'였다.
물론 섬들 나름대로 조금씩은 다른 특성들이 있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섬들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 수 있겠다.'라는 것이었다.
<나폴리>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단다.
'나폴리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마라'
그만큼 나폴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세계의 3대 미항으로 '시드니 ''니오데 자네이로' '나폴리'가 꼽힌다.
미항을 꼽는 조건으로는 수심이 깊어서 배를 정박하기가 좋아야하고
기후가 좋아야하고,근처에 산이 있어야 하는 여러가지 조건이 있지만
이런 미항의 조건은 순전히 선원들이 내리는 결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잠간만 본 나폴리는 아름답지 않았다.
어수선하고,정리가 되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이면에는 나폴리가 그렇게 변한 이유가 있었다.
이태리의 남부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고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러는 와중에 마피아가 득세를 하고 있다.
쓰레기를 다른 곳에서 돈을 받고 사와서 나폴리에다 풀어 놓는단다.
몇달전 까지만 해도 시내 곳곳에 쓰레기 천지였는데,지금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서
많이 청소가 된 상태라고 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은 나라의 위정자들에 의해 많이 좌우가 되지만,
이곳은 마피아의 득세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까지 놓여진 듯 하다.
북부,알프스를 따라 내려오면서 보아왔던 ,청량하기 까지 하던 이태리는 남부로 오면서 그 모양새를 달리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경수 후배, 오늘 즐거웠어요.
주말을 이렇게 앉아서 경수 후배와 함께 여행을 했으니까요.
주중에 자세히 읽지 못하고 날 잡아서 자세히 읽어야지 하다가
오늘 모두 정독을 했답니다.
글도 자세히, 사진도 자세히 보면서 후배에게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난 아직 이태리 여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갔지요.
백과 사전의 내용까지 자세히.
훗날 여행을 할 때 후배의 글과 사진이 생각날 거에요.
고마워요, 이렇게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나눠줘서.
참, 그 멋진 가이드는 난 이태리 사람인 줄 알았어요.
충청도 사나이였다구요?
김영주 선배님
다정한 댓글 감사합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나이 더 어릴때 다녀 올 걸'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아주 발달된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며 살았구나'하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던 걸요.
여행은 삶에 활력을 주고 사고를 넓혀 주는 것 같아서 아주 유익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저의 두 아들에게도 젊어서 꼭 한번 다녀 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온 모든 국민이 각자 다른 상념을 갖었었지만 참 슬픈 날이었습니다.
각자의 의견은 다르겠지만,조국이 '정직이 최고의 선이 되는 나라'가 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선배님
왜 댓글에 반짝이는 없어졌는지요?
ps;충청도 사람하면 뭔가 느린 느린 하다고 생각 되어지는데,안 그래 보이지요?
예의도 바르고 유머도 있고 무엇보다 누나들 눈이 즐거웠어요,잘 생겨서----
'부흥하면 퇴폐되고, 퇴폐하면 망한다'
그러니까 영원한 것은 없다.
참으로 많은것에 적용되는 진리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