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부재 중

 

남편이 시카고로 떠나고 나홀로 집에 있은지 두주일이 넘어간다.
이런 일은 평생 처음이다.
항상 남편이 홀로 집에 있고 나 혼자 혹은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곤 했으니까..

더구나 이번 남편의 부재는 상당히 오랜 기간으로 거의 두달이나 되는 것이다.

35 년이나 한순간도 얽매이지 않았던 적이 없는 남편이 두달이나 없다!!!

이 이상한 해방감이라니...


남편에게 무얼 먹일까 무얼 마시울까..음식 샤핑도 할 필요가 없고...

(남편이 읽으면 항의할 일이다. 자기가 더 나를 먹였다 할터이니까...

하지만 그 걱정은 평생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입어도 폼 안나지만 또 무얼 입힐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실은 이제는 봐주지도 않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할꺼지만...ㅎㅎㅎ)

 

이제는 기운이 빠져서 싸우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 안듣는 아들 데리고 사는 것같은 기분에서 해방이다.

날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걷기만 3-4시간 하니 지나칠까봐 걱정인데

시카고 가서 하루 대여섯 시간을 걷던지 말던지 보이지 않으니 걱정 끝.

 

교회나 어디에 나가서 남에게 쓸데 없는 소리할까 걱정 하지 않아도 되고...

나혼자 심심한 경기도식 반찬 해먹고...

김치 하나만 달랑 꺼내 물만 말아 먹어도 신경이 하나도 안쓰인다.

그런데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남편이 떠나던 첫날 밤 교회에서 찬양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반이나 되었는데

뒷뜰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잘 여닫기 힘든 문이 그렇게 열려 있으니 마음이 쿵 내려 앉았다.

누군가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를 했나 싶었다.

 

그 문을 끙끙 혼자 닫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항상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던 집이 텅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이 괴괴하기 까지한 큰 방에 가구들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듬어 불을 켜 보니 더욱 조용한 물을 끼얹은 듯...


공연히 외로워져 얼른 유리잔에 물을 가득부어 이층 침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저벅저벅 걷는 것 같고 부스럭 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앗, 누군가 집안에 있는 모양이다!


머리가 쭈빗서고 꼼짝도 못하겠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용히 한참을 그러고 있어도 별 다른 움직임도 없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아무도 없어야만 하였다. 

가끔씩 공연히 이상한 소리가 집안 냉장고인지 파이프인지에서 나던 기억이 났다.
놀란 가슴을 혼자 쓸어 담았다. 

 

잠이 곧 올것 같지 않아 컴퓨터를 켜고 사순절 동안 밀린 한국 드라마 "가문의 영광"을 보았다.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무섬증도 다 이기고  끝을 내니 12시나 되어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 밤 늦게 들어오는 것을 삼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교회 일로 자주 늦어진다.

누군가 나 홀로 집에 있는 줄 알면 물건 도적질하러 들어 올까?

근데 우리집 물건들은 신통한 것이 없으니 가져가도 아까울 것이 없다.

이 고장난 컴퓨터만 남겨 놓고 다 가져가라고 하지 뭐.


아니...그런데 사람을 도적질하러? 
다 늙어빠진 나를 누가 데리고 가랴?
꿈도 야무지지 걱정 할것도 없다.ㅋㅋㅋ


다만 이제 이 귀한 두달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그것이 문제로다.

우선 청소를 쌈빡하게 할 예정이다.

보통때 남편은 물을 발라놓듯 타일을 딱고 카펫을 청소하는 것만 하고 다 한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깨끗한 냄새가 나니 청소한 것 같기도 하여 내가 할 청소부분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남편 없는 틈에 생전 손이 안가는 구석구석을 바로 잡아야 할것이다.
 

운동과 체력관리를 해야 하겠고 드럼도 쳐야하겠고 밀린책도 읽어야 하고..

생전 처음으로 소설을 하나 쓰기 시작하려고 한다. 

잘 되려는지 모르지만 첫 시도여서 가슴이 벅차다.

 

샌프란시스코 두째 딸 집에 다녀오는 일도 계획에 있다.

가게를 정리하여 끝내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인데

어쩔수 없이 어려운 일은 나만 독차지한다. 그래도 불평은 없기로... 

혼자 있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일곱 형제 속에서 자라나서 항상 내 주위에 사람이 많이 같이 살았고

아이 넷을 줄줄이 기를 때, 부모 형제들 미국에 데려 와서 가까이 지낼 때

이렇게 완전히 혼자 있는 날이 내게도 올 줄은 꿈이라도 꾸어 보았을까?

아무도 없는 집에 일찍 조퇴하고 들어와

따뜻한 두유를 만들어 마시며 저녁 뜰을 내다 보는 것..

얼마나 조용한 시간인지!

 

외로운 김에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또 기다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내려고 한다.

아, 이 즐거운 해방감...

 

그런데 남편이 꼭 필요할 때가 없지도 않다.

병마개 열 때, 쓰레기 버릴 때,

밤에 차에 개스 넣어야 할때,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갈 때...혼자가면 공연히 서먹해지니까..

남산에 새벽기도에 같이 갈 때..혼자서는 갈수가 없다.

그리고 바람 부는 무서운 밤...  등등

그러니 두 달 이상이면 곤란하겠지? 

  (2009년 4월) 

 (저의 더 많은 글들은 blog.koreadaily.com/insunrhee 나

tinyurl.com/26ad8n 으로 와서 읽어 주세요, 자주 못들러서 죄송합니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