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화창한 토요일에 원정하전도사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은 행복한 환한 웃음으로 하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였고 귀한 시간을 내어 찾아준 천여 명의 하객들은 모두 가슴 찡한 멋진 결혼식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6년 전, 아들을 초빙한 어느 교회의 저녁예배시간에 아들의 설교에 감동하여 저 전도사를  사위로 주십사 3년간 남몰래 기도한 권사님과 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만남을 갖게 된 후 며느리와 아들은 기도와 말씀 묵상, 선교역사를 공부하면서 아름다운 교제와 약혼식, 그리고 축복된 결혼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아들의 결혼식이 다가왔지만 우리가족은 아들의 결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학사장교로 복무하는 휴전선부근 ‘연천’에서도 보증금 오백은 있어야 작은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는데 성전건축의 마무리 과정 중에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들에게 오백만원을 마련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며느리에게는 친정에서 직장 다니며 주말부부로 살 각오를 하라고 하였는데 아들은 결혼 이주 일 전에 전격적으로 본부 상황실에 배치되면서 근무지도 전곡에서 서울과 가까운 동두천으로 옮겨지고 15평 아파트까지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꽂들이 만개한 상쾌한 날씨에 많은 하객들이 찾아와 진심어린 사랑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그날 들어온 축의금으로 십일조와 건축헌금, 감사헌금, 꽃 장식, 현악기앙상블, 출장뷔페값, 신혼여행비, 사진촬영비와 수고한부목사님을 비롯한 직원들 옷 한벌씩을 사주고  성도들에겐  예쁜 떡도시락을  대접하고도 출퇴근 하는 며느리에게 차도 한 대 사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12만 킬로나 뛴 중고차이긴 하지만 며느리는 “제 차를 운전하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진심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그마저 건축헌금으로 드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동두천에서 노원역까지 출퇴근하는 가냘픈 며느리에게 차를 사주는 것은 하나님도 이해하시리라 믿어졌습니다.
이제 일 년6개월의 군복무와 일 년 남은 대학원과정 후에 아들과 며느리는 인도에 선교사로 갑니다. 지각이 생길 때부터 당연히 아버지를 이어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아들은 중학교 때 필리핀 선교지를 돌아보고 원주민선교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었고 대학교 1학년 때 예수전도단훈련[DTS]을 인도에서 받은 후 영적으로 극히 황페한 인도에 선교사가 되기로 서약하고 착실히 준비를 하여 학생신분으로 감리교신학대와 인도의 델리대학에서의 특강을 비롯하여 지금도 휴가때 마다  전국의 교회를 다니면서 선교동력가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오직 선교사로서의 삶만을 준비해 온 아들에게 하나님은 영적으로, 지적으로 딱 맞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배우자를 상급으로 주셔서 이 땅에서 위로자와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혼과 삶을 통하여 선교사지망생들에게 귀감이 되게 해달라는 아들을 위한 일천번제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져 감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주목하시고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신 사랑하는 친구들! 하나님의 은총 철철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