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자부심으로 가득차고 푼수없이 자기밖에 모르던 못난이가 있었읍니다.
늘 그 잘난 자신을 돌아보며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이만큼이나 나를 키웠다고 뿌듯해하고, 세상은 마땅히 칭찬과 인정을
해 주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읍니다.

    꿈속처럼 아름다움과 행복만을 그리던 소녀가 어른이 되어 예고없이 닥치는 어려운 순간 순간을 메우기 위해 ,
마지 못해서 ,다급하게 그 분께 매달리고 어거지로 찬미와 감사를 드려도 보려고 노력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분과 나와 모두를 속이는 것이기도 했읍니다.
이젠 알 것만 같읍니다. 무엇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인지....
 
   오늘 이 밤은 꼽을 수도 없이 많은 분들의 노력과 성원의 결정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것이기도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에 진정으로 뜨겁게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또 다시 희망과 용기를 주신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82년6월  김용순드림



     이 글은 토론토  라이어슨 극장에서 1200명의 관객을 동원한 제3회 무용발표회 때에 인사의 글로 썼던 것이다.
나의 배움과 정열 그리고 젊음을 마음껏 발산한 29살 절정의 때였으며 내 반생의 전환기였다.
이민생활 속에서, 가정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무용활동을 지속함이 얼마나 힘든 일이였든지 3회의 발표회를 해 내면서
무용을 향한 나의 열정과 젊음이 거진 소모 되었다.
    내가 만드는 나만의 인생이 아닌, 내 안에 주님을 따라 사는 내가 되어  남편과함께 이루는 삶을 살겠다고 무용을 접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얼떨결에 시작한 세탁소였다.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반생에 가까운 25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만큼이면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것 아닌가?   허리 펴 돌아보니 나뿐 아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나보다 더 훌륭히 서 있었다.
나는 우물안 개구리로, 내 인생 자체를 남들의 부러움과 갈채만을 꿈꾸며 착각 속에 살았었다.

   아!  평범한 아낙네의 부끄러움과 초라해진 몸과 마음은 벌써 도움을 호소할 나이에 와 있었다.
자신했던 건강이 무너지며 우울증으로, 위와 장에 이상이 있다해서 한동안 법석을 떨었고 ,다리에 오는 심한 통증으로 걸음을
걷지 못함이 디스크로 인함이라해서  또 다시 충격을 받는다. 
일년 사이로 동갑내기 예쁜 이민친구 둘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인생 오십부터는 인품으로 자신을 가꾸어 간다는데,,,
내게 남겨진 알 수 없는 날들은 얼마?  그 날들을 어떻게 향기롭게 가꾸며 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이런 저런 상황속에서 죽음을 가깝게 떠 올리며 명예나 부가 내 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 곳 카나다에서 결혼과 이민의 뿌리를 내릴 때 내 곁에는 수많은 어머니들이 계셨다. 더러는 지금의 내 나이로,
아니면 조금 더 많으신 연세로 한국에 계신 엄마처럼 언제 어디서나 환하게 웃으시며 팔 벌려 안아 등두드려 주신 그 정겨운
어머니들이 한분 한분 떠나시며  자!  이제는 네 차례다 하시는 것 같다. 작년에 친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꾾임없이 희생과 사랑을 펴주신 어머니요 할머니셨다. 그 어머니의 인품이, 남겨진 많은 자손들이나 우리 마음에 장례일정
내내 훈훈한 느낌으로 꽃피웠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부러워 반만이라도 닮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하셨던 성모님처럼 순종하는 삶을 보여 주셨다.
  이제, 내게 남겨진 날들은 인고와 번뇌를 믿음으로 승화시켜 온유와 겸손함으로 사랑의 덕을 쌓는 그 완덕의 길,
 나의 길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