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인지 몰라봐도 괜찮아 내 음악의 힘을 믿으니까
  •                                                           2009.04.20 03:38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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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그나마 화장하면 달라 보인대요. 평소엔 화장을 안 해서 못 알아보나….”가수 겸 작곡가 김광진은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로 소심한 농담을 건넸다./프라이빗커브 제공

                            단독 콘서트 갖는 김광진

청명(淸明·4월 5일)이 지나긴 했나 보다. 얼어붙은 듯 조용했던 가수 겸 작곡가 김광진(45)이 기지개라도 켜듯 공연을 계속 여는 걸 보면.

작년 새 앨범 '라스트 디케이드(Last Decade)'를 냈던 그가 오는 25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한다. 자산운용회사 투자전략팀장으로 바쁘게 일하면서 문화면보단 경제면에 얼굴을 더 자주 드러냈던 김씨였던 만큼 반가운 소식이다.

김광진을 14일 여의도 근처에서 오전 11시45분에 만났다. 12시도 아니고 11시30분도 아닌 칼 같은 약속시간. 김씨는 정확히 11시44분에 약속장소에 나왔다. 그는 "이렇게 약속을 잡아야 점심시간에 좀 더 '땡땡이'를 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진이 4집 '솔베이지'를 낸 건 2002년 7월이다. 평단은 환호했지만 관객 반응은 썰렁했다.

그 후 무려 6년 만에 김씨가 내놓은 음반은 새 노래를 딱 세 곡 실은 베스트 음반 형식. 오랜 팬들 입장에선 아쉬운 선택일 수도 있다. 김씨는 "고심 끝에 내놓은 4집이 외면당하는 걸 보고 상처를 받아 6년이나 활동을 쉬었다"며 "싱글 음반을 낼까 고민도 했지만 나처럼 나이 먹은 가수가 내놓는 싱글 음반은 안 팔린다는 얘기를 듣고 베스트 음반 형식으로 '라스트 디케이드'를 냈다"고 설명했다.

직접 작사·작곡해서 부른 노래 '마법의 성' 외에도 '덩크슛'(이승환), '사랑의 서약'(한동준), '처음 느낌 그대로'(이소라)처럼 숱한 히트곡을 썼던 그다. '마법의 성'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화제가 됐다.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낡지 않은 노래를 만드는 능력은 김광진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데 김씨는 "쉬는 동안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참 많이 했다"고 말했다.

"손담비씨 같은 가수가 TV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뭐 나도 저런 노래 쓸 수야 있지…' 했어요. 사실 그동안 빠르고 화려한 노래부터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래까지 다양하게 써왔거든요. 문제는 나다운 노래, 저건 김광진 노래다…, 하는 걸 써야 하는데 요즘 같은 환경에서 그게 쉽지 않아 고민했죠."

회사에 다니면서 음반을 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공백이 길어진 점도 있다. "매번 고비를 넘는 심정으로" 음반을 내왔다. 김씨는 "원래 난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할 때 곡을 쓰는 편"이라며 "그럴 때일수록 부드럽고 편안한 노래를 쓰게 되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선 기타리스트 함춘호·이성렬, 드러머 신석철, 키보디스트 박용준, 베이시스트 이경남 등과 보다 화려한 밴드 음악을 들려줄 예정. 한층 가창력이 향상된 김광진의 노래실력을 엿볼 수도 있다. 김씨는 "솔직히 예전 공연 실황을 다시 들어보면 '노래 진짜 못했구나' 싶어서 부끄럽다"며 "요즘엔 확실히 안정된 음으로 노래를 부르게 됐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데뷔한 지 15년. 회사를 다니며 출근 도장을 찍듯, 또는 공무원 시험을 1, 2, 3차까지 보듯이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앨범을 내고 활동했던 그다. 김광진은 "솔직히 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거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진 않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다가도 "그야말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노래하고 공연할 수 있기에 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가수라고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고, 뮤직비디오 찍기 위해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가면 회사원인 줄 알고 아저씨처럼 다듬어놓곤 해서 상처받지만…. 괜찮아요. 난 내 음악을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