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타고난 길치이다.
만남의 장소가 인천을 벗어나면 그때부터 초조해진다.

장소가 어디인가는 알아봤자 소용 없는 일,
누구에게 따라붙을까 그것만이 내 관심사다.

내가 한심한 길치 임을 아는 친구들은
이젠 아예 날 데리고 갈 친구까지 알아서 짝지어 준다.

지하철을 환승할 때도 k는 연상 뒤를 보며 날 챙긴다.
물론 나도 죽어라고 친구들을 쫓는다.
몇호선이고 뭐고 그저 내 친구가 내 내비게이션일 뿐이다.

내비게이션!
그거 참 희한하고 요긴한 물건이다.

차에서 들려오는 내비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에구 똘똘한 거, 보지도 않고 어찌 이리 잘 알까? 참 신기하다. 그쵸?"
매번 듣는 멍청한 소리에, 이제 남편은 대답조차 안한다.
근데 들을수록 신통방통해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소린데 어쩌랴.

내가 정말로 기 죽는 일은,
86세의 등 굽은 우리 어머님이 뒷좌석에서 아들에게 서울 길을 가이드 하신다는 거다.

"이 시간엔 올림픽 도로가 막힌다니까."    < ? ? ?>
"여기서부터 1차선으로 들어서거라"    <오메나>
"저기 206동에서 넓게 카보 틀거라."    <맙소사>
그러면 딱 목적지다.    <오메 기죽어>

와 ~~~~~~, 너무나 자신있게 말씀하신다.
그러시는 어머님 앞에서 난 침만 꼴깍꼴깍 삼킬 뿐이다.

그이가 나를 힐끗보며 하는 말,
"어머니, 운전대 잡으셔도 되겠어요."
순간, 자기 어머니의 아들임을 으시대는 것이 확 느껴진다.     <치~~>


그래도 인생의 기로에서 헤맬 때는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는 그분이 계시고,
길치인 나를 귀찮다 않고 데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서
난 오늘도 겁없이 길을 나선다.

나의 친절한 내비게이션만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