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밤마다 일어나 서성인다.

달이 휘여청 밝아서 그런지, 혹 봄 바람이 마음에 스쳐서인지 모르겠다.

아니, 오늘은 아래층 방에 와서 자고 있는 울 막둥이 여자 친구때문일 것이다.

지혜와 총명이 엿보이는 귀한 아가씨를 드디어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몇달 전에 아들이 이 아가씨를 사귀기 시작했을 때 부터 마음이 참으로 좋았다.

사진만 보고도 우리는 단번에 마음을 다 주기로 작정을 했었다.

그것 참 알수 없는 이상한 일이 아닌가?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끌린다는 것...

 

내 남동생은 사촌의 작은 졸업앨범에서 발견한 올캐를 대구까지 죽자고 쫒아다녀

결혼에 꼴인 했었으니 사진의 위력도 대단한 것..

사진으로 꼭 우리 두째 딸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남에게서 나의 조각을 발견하면 왜 좋은 것일까?

코드가 통할 것 같은 그 무엇 때문에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사진을 몇번 보았고 고모를 통해서 간접 본 적이 있었지만

직접 만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아직 고등학생 같고 가늘가늘 어린 아가씨..

남편은 단번에 120점을 주었다는 것이다.

아니 왜 그리 후하냐고 물었더니 이유가 있었다.

한국말을 하는 한국 아가씨인 것이 두 딸을 남의 나라 사람에게 보낸 우리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기쁨이지만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글쎄 그애가 자기 꿈을 이루어 주기로 했다는 것..

"나중에 아기 낳으면 하바드에 보내고 싶어요"했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아이들은 하나같이 적당한 학교 보내면 되었지

뭐하러 하바드씩이나 보내냐는 식이어서 아빠 말에 동조를 안해 주었는데

글쎄 이 꼬맹이 아가씨가 어떻게 울 남편의 못 이룬 꿈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도대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처음 만나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올때 아무리 아들과 운전석 옆에 앉으라고 해도

굳이 울 남편과 함께 뒷좌석에 앉는 마음 씀씀이 부터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내일 아침 새벽!

남산에 같이 올라가자고 하는 바람에 뿅~간 것이다.

어찌 안 그럴 수가 있는가 말이다.

 

이 아이는 한국 말을 읽을 줄 알기 떄문에 내 미씨 칼럼에 들어가 올린 글들을 읽고

한글 잘 모르는 막둥이에게 통역을 해 주어왔다.

그래서 내가 드럼을 사온 것도 아들보다 먼저 알아 버렸고,

남산에서 새벽 기도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산을 새벽에 따라가 준다니...

얼마나 매사에 열심하고 적극적인지 울 아들의 마음을 잠깐사이에 점령해 버렸다.

우리 부부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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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쓴 위의 글에 연하여 아이들을 보낸지 사흘만에 계속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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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할텐데도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남산에 둘이 따라왔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외할아버지께서 한국에서 목사님이시기도 하여

믿음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알고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엔 바쁜 일도 쉬고 아이들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세도나를 들러 호피마을에 가서 일박을 하고

그랜드캐년에 다녀 오는 일정이었다.

 

호피마을의 안드레 선교사님의 아들과 방을 나눠 쓴 적이 있는 막둥이가

불평없이 그 집에 가서 자 주어서 고마웠다.

내가 늘 걱정하는 것은 이제 돈을 벌게 될텐데 낭비하는 버릇이 들까보아서다.

그래서 선교사님들 애쓰시는 것을 보고 잊지 말라는 뜻으로 우겨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선교사님 부부는 큰 정성으로 음식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준비해 간 갈비와 김치를 곁들여 일류 저녁을 먹었다.

 

피닉스에서 두시간 반인데도 아직 얼마나 추운지 밤에는 29도까지 내려 갔다.

집안에서는 추운지 몰랐는데 산책을 하려니 얼마나 추운지 몸이 움추러 들었다.

조금만 덜 추었으면 산에 올라가 먼산도 바라보며 기도를 했을텐데...

 

그랜드캐년도 그렇게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그리 춥지는 않았다.

트레일을 따라 한시간쯤 내려 갔는데 넷 중에서 내가 제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올라 왔다.

너무나 행복하니 깨끗한 목소리로 노래도 절로 나오고 많이 걷는 것이 힘 드는지 몰랐다.

둘이서 너무나 다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니

함께 다니는 시간 내내 우리는 절로 엔돌핀이 마구 나와 덩달아 몹시 행복하였다.

 

볼수록 정들고 이쁜 우리 며느리 후보..무엇을 좀 줘볼까 하다가

우리 가게에서 골라서 하늘색 실크 드레스를 몸에 맞추어 줄여 주었다.

무엇이라도 다 주고 싶은데 몸이 너무 가늘어 맞는 것이 별로 없어서 간신히 하나만 건진 것이다.

같은 색의 모피 털 쇼올을 매치하여 입혀 놓으니 참 좋아 보였다.

 

그 옷을 입혀서 토요일 밤에 그 애가 선물로 예약해 놓은 심포니를 들으러

다운타운 심포니 홀로 다 같이 나갔다.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그애 덕분에 하게 되었다.ㅎㅎㅎ

저녁 식사도 근사한 곳에서 먹고 우리를 잘 대접하려고 둘이서 애를 쓴다.

옛날의 나도 그애 만치 몸이 빨랐을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이 되게 하는 것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아들이 이렇게 커서 마음에 드는 짝을 데리고 오고

또 마음을 합하여 우리에게 잘해 주려고 하는 것이 보통 기분 좋은 일이 아닐수 없다.

 

주일날에는 교회식구 몇 가정을 불러서 잔치를 하며 함께 즐거워 했다.

남편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부라보를 네번이나 소리쳐 외쳤다.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리고 밤을 지나 새벽 세시에 공항에 데려다 주고 왔다.

꼭 꿈을 꾸는 것 처럼 행복한 엿새였다.

 

다만 이놈들이 빨리 결혼 안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아무리 말해도 자기들 계획대로 내년 오월에나 한다니

성질 급한 울 남편이 어떻게 기다리려나 걱정인 것이다. 실은 나도..(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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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계신 음악은 'Dvorak'의 New World Symphony 제 2악장 (Largo)입니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연주, Fritz Reiner지휘,

중앙 블로그 서정님 방에서 살짝해왔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