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 후 성당 옆 공터에 배 깔던 냉이가 제법 자라 귀를 쫑긋 세우고 성 너머 보리밭 사이의 달래는 살랑거리는 실바람에도 허리가 꺾일까 사뭇 염려되었지요. 보리밭 이랑을 깡충깡충 뛰어 다니며 꼬리를 아래위로 흔들어 노래하는 종달새... 웃자란 대파에 꽃이 둥글게 피어 꿀벌은 윙윙거리며 꽃봉오리를 이리저리 헤집을 때 꿀벌의 꽁무니 꿀을 훔치려는 시갑이의 검정고무신은 영문을 모른 채 공중을 솟구치더니 한바탕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요. 뇌진탕으로 벌벌 떨며 냄새나는 고무신짝에서 기어 나오는 불쌍한 꿀벌... 하얀 나비 나른한 날개 짓에 새순은 파릇파릇 돋아나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며 시야를 수놓으면 양지산 이름 모르는 새들은 정답게 노래했죠. 밭둑에 매여진 송아지 “음매!” 하고 어미 소를 부르고 간간이 들리는 춘정에 겨운 영각은 저음의 파고를 타고 막음대미산을 넘어갔어요.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무당개구리 빨간 넥타이를 매고 어설프게 짝짓기 하면 샘 많은 맹꽁이 아드득 볼을 부풀려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었지요. 맑은 도래샘 너설에 부딪쳐 멍들고 앙증맞은 털 복숭이 버들강아지 물길 따라 춤을 추었어요. 그 물오른 가지를 꺾어 비틀어 무반주 호대기를 불어대면 집안에 뱀 들어온다고 어른들은 겁을 잔뜩 주었지요. 작년에 보아둔 비밀장소 돌 틈 사이의 하얀 은싱아를 혼자 몰래 캐러 갔어요. 큰 돌을 낑낑대며 밀어내고 손을 디밀어 야들야들한 그놈을 꺾었지요. 다른 애들이 볼까 두리번거리며...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날 학교에 갔어요. 옆 반에 선영이라는 여학생이 서울에서 전학을 왔어요. 호기심이 많은 남학생들은 궁금해 죽으려했어요. 창문을 통해 엿보고... 정말 뽀얀 살결에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공주 같은 애가 사박스러운 여자애들 사이에서 보조개를 키우며 앉아있는데 눈에 확연히 들어왔어요. 하얀 안개꽃을 닮은...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저렇게 고운 애가 이 시골구석에 무얼 찾아 먹으려 왔으니이꺄?” 누구한테 물어 볼 수도 없고 혼자 중얼 거렸어요. 하교 길에도... 집에 와서도... 잠자리에서도... 생각나고... 방긋 웃는 모습에 가슴은 터져나갈 것 같았어요. 더구나 칡뿌리나 캐먹는 주제에 “선영아, 사랑해!” 는 입 밖에도... 꿈에라도... 만약에 좋아하는 눈치라도 보이면 짓궂은 애들한테 놀림감이 되었지요. 그리고 학교 화장실벽에 이렇게 쓰여 있겠지요. “용대는 선영이를 사랑한데요. 얼레리 꼴레리!” 실제 그렇게 놀림을 당할 것이기에 근처에 갈 엄두도 못 냈지요. 동아전과의 표지모델 같은 그 여자아이...학교 뒤 성태네가 그 애 외가댁이라던데... 기적이라 할까요? 글쎄 그 여자애가 미술반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잘 보이려 무단히 애를 썼지요. 도화지도 주고 크레용도 빌려주고... 학예회발표를 위해 초록빛바다 노래도 같이 불렀어요. “초록빛바다 물에 두 손을 담그면~~~” 실제 그 애랑 같이 두 손을 포개어 담그고 싶었어요. 초록빛 바닷물에... 목소리를 가다듬어 잘 보이려는 열망은 동물의 왕국 수놈들의 생리겠지요? 그림을 잘 그린다고 그 여자애랑 같이 전 강화 학생 사생대회에도 나가면서 아주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은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둘은 꼭 오누이 같구나?” 그러시면서 제 뒤 머리통을 쓰다듬으시며 “왜 이리도 머리통이 납작하냐? 대고 글씨를 써도 되겠구나?” 솔직히 그 여자애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창피하였어요. 아니 속상하였죠. 잘 보이려는 터에... 어머니 말씀이 젖먹이시절 워낙 순해 뒤로 눕혀 놓으면 꼼짝 않고 그대로 있어 뒤통수가 납작하다고 그랬어요. 학교가 파하면 둘이서 들로 산으로 놀러 쏘다녔어요. 이제 남자애들의 놀림정도는 무시하기로 했지요. 풀밭에서 누워 흘러가는 구름도 쳐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지나간 그 애의 도시생활도 듣고... 토끼풀꽃을 뜯어 손목시계도 만들어 양 손목에 차주었어요. 둥지산 뻐꾸기도 흥겨워 노래 부르더군요. 남자다움을 보이려 앉아 되새김질하는 소잔등에 객기를 부리며 올라탔다가 소가 놀라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거꾸로 떨어지며 소의 거시기에 코 박아 얼굴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냄새로 치를 떨었지요. 그 애는 마냥 즐겁다고 깔깔 거렸지만...“아휴!” 싱아도 꺾어다주고 칡뿌리도 캐다 주고... 같이 지내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어요. 어린 가슴에 알 수 없는 무엇이 움트고... 뭐라 말할 수 없는...그런... 벅차고 풋풋한 감정이 샘솟아 났지요. 송아지 사랑?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여자애가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간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가슴이 철렁했지요. 왜 가야만 하는지의 속사정은 몰랐어요. 드디어 헤어지는 날 속절없이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정류장에 섰어요.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온 그 애의 표정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어요. “안가면 안 되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애의 눈가에 이미 눈물이 맺혔어요. “서울 가면 편지해. 알았지?” “응!” 그러면서 곱게 접은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어요. 그 애의 손이 가볍게 떨렸어요. 저도 모르게 그 애의 두 손을 와락 움켜잡았어요. 창피함도 없고 이제 그 애와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죠. 제 손등에 그 애의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더군요. “잘 가!” “잘 있어!” 차에 올라 가녀린 손을 흔들다 돌아선 그 애의 어깨가 들썩이더군요. 저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어요.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 갈 때 까지 무작정 서서 손을 흔들었어요.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은 무너져 내렸지요. 어디선가 산비둘기도 구슬피 구구대며 울어대더군요. “선영아, 잘 가~~~” |
이곳도 봄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저는 출근길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봄이 왔음을 실감하지요.
화려하고 밝아진 모습...
어릴 적 서울에서 내려온 여자애는
시골에 전혀 안 어울릴 듯한 모습이었으나
명랑하고 예쁘며 마음씨도 곱더군요.
시골생활에 적응도 잘했구요.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버지로 인해
잠시 외가에 맡겨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해병대 중령이라는 사실과 함께...
제가 너무 이성에 일찍 눈이 뜬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쬐그만한게요. ㅎㅎㅎ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답니다.
행복하세요.
마치 작가 황순원의 "소나기"를 다시 한번 읽은 느낌입니다.
여산 선생 그런 청순한 추억이 있었군요.
싱아도 꺽어다 주고 칡뿌리도 캐다 주고 나보다 났습니다.
나는 어릴적 "남녀칠세 부동석"이라고 누가 그래서 여자애들하고 잘 어울리지를 못했어요.
참 촌스러웠어요.
누가 "여자애들하고 어울리면 애기가 만들어 진다."고 해서....
ㅋㅋ ㅎㅎㅎ
그저 기억나는 것은 여자애들 공기 놀이나 고무줄 놀이 하는 것 괴롭힌 것 뿐이에요.
관심이 많다는 의사 표시였겠지요.
그 고왔던 서울에서 온 소녀 저도 어렴풋이 기억 날 것도 같아요.
방학 때 우리 교회 나왔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요.
칡뿌리 캐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 많았던 덕정산 싱아도.......
새 봄에 칡뿌리나 같이 케러 갈래요?
글구 덕바위 사랑방에도 좀 들러 주세요.
덕바위 사랑방 클릭
이제 완전히 망해 문닫게 생겼어요.
ㅋㅋㅋ ㅎㅎㅎ
이인선 선배님,
피닉스에도 봄은 오고 있겠지요?
양곡에도 싱싱한 봄내음이 움트겠지요.
저는 봄과 함께 여여한데
제 형은 장미가시에 한두번 찔리더니
들장미 노래만 부르고 블로그를 만들어
아주 열심인데 장사가 잘 안되나봐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고향 강화 살무니 굴청에
좌판을 벌이니 곧 망할 듯 합니다. ㅎㅎㅎ
선배님께서 노하우를 전수시켜 주시고
한수 배우면 사랑방에 동치미 국물과
고구마를 쪄 손님들에게 대접할 듯 합니다.
생음악으로 노래도 불러주고요.
사랑방 아궁이에 군불도 잘 땔것 같구요.
오는 봄을 아름답게 맞이하세요.
윤용혁님 글 보고 저도 옛생각이 나네요.
혜옥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최혜옥이었을까요, 아니, 혜옥이라는 이름 자체도 틀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간 애인데
떠나가 전날 마주보며 헤어지기 아쉬워 했었던 장면이 기억나요.
그 애는 자기 집 창가에서 밖을 보고 있었고 나는 밖에서 그 창을 올려보고 있는.
가끔 그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하듯이 뚜렷이 그려진답니다.
이름보다 그 애의 웃는 얼굴이 더 정확히 기억나는 게 신기해요.
정말 찾아보고 싶은 친군데..... 그립네요.
누구나 그런 친구 하나씩은 다 있겠지요?
손에 잡힐 듯 자세한 묘사로 봄의 모습을 그려 주셨군요.
하나하나 따뜻한 봄날의 정경이 정겹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쬐끄만 것들이--하지만
어릴때도 이성에 대한 감정이 드는 건,다들 겪는 과정일거예요.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