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의 공항은 비행기가 착륙하려 하강을 시작할 즈음에 비행기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시야속의 바다 가까이 내려가는 비행기 차창 밖의 경치는 참으로 매력이 있다.

오래전에 지어져 낡은 건축물이 대 부분을 이루는 주택들이 낡았다는 충충함 보다는 정감을 더 해준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주위로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집들이 그곳의 땅값에 비해 너무 수수한 모습들로 비행객들을 맞이해준다.


복잡한 공항을 빠져나가서 다운타운과 연결이 되어있는 긴 지하 터널을 반대 노선으로 빠져 나가면 그곳부터는 보스톤의 명문들이 모두 위치해 있는 켐부리지라는 동네가 시작된다.
차를 타고 터널을 빠지면서 보스톤대학 엠아이티 그리고 찰스강을 따라 내려가면 하바드대가 나온다.


여름이면 찰스강 위에는 각 대학에서 띄어놓은 경기용 보트들이 물결을 이루고 시합이라도 있는 날에는 보트에 질서 있게 탄 선수들이 호흡을 맞춰 노를 지으며 시합에 임한다.

찰스강 주위에는 독립기념일이 되면 대 규모의 콘서트가 열리고 미국전역에 방송이 된다.
그런 날은 무료 입장으로 접이식 의자만 지참하면 그날 밤은 강변에서 새로운 추억거리도 엄청난 규모의 불꽃놀이와 함께 만들어진다.


가을이 시작 되면서 찰스강 주변의 고목들은 또 다른 미의 세상을 창출해 내고 대학가의 분위기를 사색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겨울의 보스톤은 있는 자에게는 휴식을 없는자 에게는 비애를 느끼게 해준다.
눈이 많이 올 때는 사람 키 만큼씩 내리기에 모두 집안에 묶여 있어야 한다.

눈 오는 날 주차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눈을 치워놓은 사람이 그날 하루 종일 그 주차칸을 쓸수 있다는 것이다. 해서 그들은 눈을 치워놓은 주차칸에 무엇이든 갖다 표시를해 놓는다.

만일 그런 사실을 모르고 신이나서 다른 사람이 차를 갖다 댄다면 그 즉시 누군가가 나와서 욕설과 함께 멱살을 잡힐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법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보스톤에 살고 있다면 당연한 생활의 법칙인 것이었다.


그런 최고의 학문과 두뇌와 부의 상징인 켐부리지에 세상에서 가장 없는 자의 일부가 섞여 산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켐부리지에는 부로드웨이라는 길이있다. 그 길은 하바드와 엠아이티를 연결 해주는 켐부리지의 노른자위 동네 길이다. 방 하나 부엌 그리고 리빙룸이 달린 13평 정도 작은 아파트가 50만불은 주어야 살수 있다고 한다.

헌데 정부에서 부유한 사람들 옆에다 홈 레스들이 살 빌딩을 아주 값있게 고쳐서 거의 무료로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자들 사이사이에다 저 소득자와 극빈자를 섞여서 살게 만들어 놓았다.
또한 하이티같은 나라에서 온 난민들도 그곳에 정착을 해서 생활 보조를 받으며 북적거린다.


내가 그곳에서 지내던 일년 동안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남는 가난한 이웃이 있었다.
노년의 그녀 이름은 카멜라라고 했다. 그녀를 내가 만난 것은 조그만 마켓 안에서였다.

켐브리지 동네에는 대형마켓들이 못 들어온다. 그래서 주위에는 소규모의 구멍가게들이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
대학 주변의 땅들은 대부분 대학 소유로 그들은 자잘한 사업체 건물로 건물 투자를 거의 장악하고 있다. 만일 대형 사업체가 들어오면 그들의 투자에 불이익이 될 것 같아 그런 규제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필요한 것을 구입 하려 가게 안을 들어설 때면 그녀는 자주 그곳에서 스크레치 복권을 열심히 긁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헌데 대부분은 돈을 잃고 가는 눈치였다.

어느 날 나는 그런 분위기의 카멜라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우리는 가끔씩 그렇게 마주치며 친해져 갔다. 그녀는 다른 극빈자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항상 정갈한 옷차림과 머리 손질은 그녀를 극빈자로 보이게 하지 않았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은 신앙 쪽으로도 바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가끔씩은 예언 비슷한 미래에 대한 황당한 말들을 잘 쏟아 내곤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주변 신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브로드웨이 길 선상에서 만난 그녀는 나를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몸짓으로 닥아 와서는 내 앞에 불쑥 40불을 내 밀며 가지라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당황을 한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당황하며 물었다.
카멜라 이게 뭔데? 하니까 그녀는 기쁨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레이스 나 오늘 스크레치 복권 긁어서 돈 좀 생겼거든 해서 너에게 좀 주고 싶었다구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매달 정부에서 극빈자 생활비가 나오면 집값 50불 떼고 생활비 떼고 나머지 돈을 모두 투자해서 담배와 복권을 샀다. 그래도 다른 극빈자들 같이 마약이나 술은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신통했다.
그녀의 막막한 미래에 대한 희망은 오로지 복권이 터져주는 것이었다.


내가 후에 들은 그녀의 인생여정은 한번도 해가 떠 보지도 못한 기구한 팔자였다.
17살에 첫 남자와 결혼해서 딸을 둘을 낳았는데 포악한 남편을 만나 늘 두둘겨 맞다가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재혼도 실패를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자라면서 다 뿔뿔이 집을 나가버렸는데 그녀들도 엄마 팔자를 닮아서인지 모두 불행한 삶들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둘째딸은 시집도 안가고 혼자 사는데 암 수술을 2번이나 받고 엄마로서 보살펴줄 경제 능력도 없으니 카멜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늘 거칠고 독설이 가득했다.
그녀의 둘째 딸이 암 수술을 했을 당시에도 의사가 거의 가망이 없다 했는데 자기가 눈물로 밤새 기도하자 그녀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신기한 점은 늘 그녀는 언제나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뜬금없이 황당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남편과 나에게 동남아 말레이시아 쪽에 큰 바닷물 재해가 일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 떠들기에 나는 귀 등으로 흘려들으면서 남편에게 그녀가 못 듣는 한국말로~~무슨 정신없는 소리야~~하며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만난 카멜라는 큰 소리로 우리 앞에 의기양양해서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하이! 그레이스 너 내말 기억하니? 쓰나미란 이름도 내가 비슷하게 말 했잖아~ 그녀의 흥분해서 서두르는 행동 속에 가만히 지난 얘기를 더듬어보니 분명 그녀가 그리 말했음이 기억났다.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신임 하지는 않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카멜라는 구약성경을 머릿속에 일일이 꾀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예언서를 풀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무 앞에서나 설교식으로 떠들어 대니 그녀의 강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 다녔다.


어느 날 오후에 나를 만난 그녀는 나를 그녀의 극빈자 아파트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늘 외관상 적색의 벽돌로 멋있게 관공서 분위기를 풍기는 그 건물 안의 실태가 엄청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는 브로드웨이 큰 길가 사거리에 위치해있는 그녀의 거처를 혼자 따라갔다.
건물 앞에 서니 큰 유리정문이 그곳에 사는 사람만 드나 들 수 있게 코드를 집어넣어야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운치 있게 꺽어서 만든 나선형의 철제 계단이 전혀 극빈자 아파트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복도에서 나는 궤궤한 냄새 때문에 특유의 홈레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의 방은 복도 끝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스튜디오식의 방안에는 규모는 작아도 부엌이며 목욕실이며 살림은 충분히 가능한 공간이었다. 단지 추운 날씨에 비해 온기가 부족한 싸늘함이 온 몸으로 전해져왔다.

내가 이리저리 눈길을 주는 동안 카멜라는 느닷없이 사층 방 창문을 위로 올려 여는 것이었다.

갑자기 대찬 바람이 방안으로 싸하게 스치는데 창문 밖으로 목을 빼고 서있던 카멜라가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레이스 이리 빨리 와 봐! 하며 재촉을 하는 것 이었다. 내가 그녀 곁으로 다가가서 창밖을 내다보니 한 가족인 듯한 다람쥐 여러 마리가 카멜라 주위로 주인을 찾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속에는 큰 것부터 새끼까지 옹기종기 카멜라가 뿌려주는 땅콩을 얼마나많이 까먹고 자랐는지 창문 밑의 지붕은 온통 땅콩껍질로 덮여 있는 것이었다.
신기하게 내다보는 나에게 그녀는 한달 예산의 얼마는 땅콩과 식빵을 다람쥐 가족을 위해 쓴다고 했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다람쥐의 성별 그리고 임신여부 어느 것의 새끼인지 까지도 모두 파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도 옆집 지붕위에 떨어지는 땅콩 껍질을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나를 만나 무척 초췌한 모습으로 다가와 절망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딸이 아픈 몸으로 기거할 곳이 필요한데 분명 필요한 돈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냥 예수 믿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지냈었다.
그리고 나도 생활이 어려워 딸집에 부부가 얹혀사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일거라 혼자 생각하고 그리 대해오던 그녀였다. 그래서 어느 때는 친절하게도 우리를 위해 그 동네 저 소득자 아파트를 수소문해 오기도 했었다.

그리 정을 베풀던 그녀가 자신의 깊은 고통의 늪 속에서 허덕이는 환경에 풀이 죽어 한숨 쉬는~~ 그녀의 큰 등치가 외소 해 보여~~ 그날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잡아주며 기도 하자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못 만나는 동안 우리도 안식년을 마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기도 중에 맘이 잡히지 않아 안정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카멜라를 만났다.
정말 오래 만에 내 앞에 나타난 카멜라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화들짝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그리 행복해하는 이유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녀의 아픈 딸이 엄마에게 오면서 선물로 5불짜리 스크레치 복권을 한 장 사 왔다는 것이었다.
헌데 긁는 순간 50000불이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 좋아서 나를 만나려고 계속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같이 기뻐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레이스 내가 말했지? 난 그걸로 우리 딸하고 둘이 살수 있게 이사 갈 거야.
헌데 우리 빌딩 사람들이 알면 안돼 비밀이야 날 해칠지도 몰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녀의 하나님은 그녀의 고달픈 삶 중에도 함께 하심을 보여주고 계셨다. 그날 나와 헤어지면서 돌아가던 그녀가 몸을 돌려 돌아서며 또 한마디 예언을 해주고 떠났다.
야! 그레이스 나 어제 너희 부부가 이사 가는 꿈을 꾸었다~ 한마디 남기고 그녀는 묵묵히 가버렸다.


그녀에게 나는 나의 주변 이야기를 어느 것도 나눈 적이 없었다.
정말 그녀는 앞일을 보는 듯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우리는 갈 곳이 정해져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그녀 말대로 보스톤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