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정월대보름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입으로 딱하고 깨물라시며 밤톨을 나누어 주셨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그놈을 입에 깨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딱하는 소리가 나야 한 해 안 아프고 부스럼도 안 생긴다고 하셨어요. 작은 입속에서 오물거리다 혀만 깨물 뻔 했어요. 아버지가 시범을 보인 후에야 겨우 이빨 자국을 내며 밤 한 귀퉁이를 베어냈어요. 생밤이라 보늬가 떫어 혀를 내둘렀죠.깔깔하기도 하고요.... 아침 밥상을 받고 보니 멥쌀에 찹쌀을 더 많이 넣어 수수, 차조, 팥, 콩들과 함께 시루에 쪄낸 뜨끈뜨끈한 오곡밥이 각자의 놋주발에 한 그릇씩 퍼 올려 있었어요. 늦가을에 어머니가 손수 말려두셨던 호박과 가지에 시래기, 곰취나물을 고루 섞어 무친 반찬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묵은 나물은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많이 먹어야한다고 하였지만 용대가 토끼과인가요?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좋아하던 생선반찬은 온데 간데 말없고 풀 반찬만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죠. 국도 없고 목이 메여 물에 밥을 말아먹으려 했더니 아버지가 극구 말리셨어요. “얘야, 오곡밥을 물에 말아먹으면 우리 집 모낼 때 반드시 비 온단다.” 그래도 아버지 몰래 숭늉에 물 말아 먹었어요. 그해에 모낼 때 비가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래 고모님 댁에 놀러 갔는데도 또 오곡밥을 주셨어요. 그러시면서 “용대야, 오늘 오곡밥을 아홉 번 먹고 나무를 아홉 번 해야 한단다.” “아이고! 아홉 번씩이나요? 배 터져 죽겠어요. 나무는 언제 다 하구요?” 고모님께 올챙이처럼 툭 불거진 배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한 숨을 내 쉬었어요. 해가 떨어질 때까지 오곡밥을 한 여섯 번 먹은 것 같았어요. 도끼를 손에 들고 지게를 등짐 메 양지 산에 올라 등걸 한 짐을 해 가지고 내려왔어요. 며칠 전부터 어머니가 엿을 고아 주신다고 하셨거든요. 땅거미가 살무니 골에 드리우기가 무섭게 깡통에 구멍을 내어 관솔과 나뭇가지를 넣어 불을 붙인 다음 성 너머 양지깨 들판으로 나갔어요. 벌써 동네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쟁반같이 둥근달을 기다리며 불 피운 깡통을 휘휘 돌리고 있었어요. 쥐불놀이가 시작된 것이에요. 어둠에 그려지는 둥근 원은 커다란 도넛처럼 맛있어 보이기도하고 훌라후프 같기도 하였죠. 어른들은 해충을 없앤다고 논두렁을 태우니 겨울밤에 억새풀을 타고 불기둥이 솟을 때면 장관이었어요. 아이들은 “우와!” 소리를 냈지요. 불기둥을 보고 놀라 분명 이부자리에 오줌을 지리는 아이도 있을 거예요. 시간이 흘렀어요. 이제 학교근처에 사는 아랫마을 애들과 밀고 밀리는 전쟁이 벌어질 판이었어요. 평소 텃세가 심한 학교근처 아이들을 이 기회에 혼내줘야만 했어요. 두 손과 호주머니에는 잔뜩 돌들이 들어 있어요. 접전에서 쓸 실탄들이었죠. 왜 싸워야하는지는 몰랐어요. 전에부터 형들이 하던 방식대로 전투에 임해 매년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동네 애들과 숨을 죽이며 논둑에 매복을 하고 있었어요. “와!” 소리와 함께 아랫마을 애들이 벌떼같이 몰려오는데 무서워서 숨이 넘어갈 것 같았어요. 정말 두려워 오줌을 지릴 것 같았어요.심장은 두근거리고.... 침은 바짝 타 들어가고... 육이오 때 중공군의 인해 전술이 이러했겠지요? 호적과 꾕과리만 없을 뿐 아랫마을 애들도 돌멩이라는 무기는 있지 않겠어요? 사격명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돌멩이를 던지기로 윗골 살무니 애들 사이에 암묵이 되어 있었어요. 유효사거리에 들어 왔어요. 목소리가 우렁찬 용대가 사격개시를 알리는 소리를 질러야 했어요. 그런데 너무 두려워 목소리가 안 나오지 뭐예요. “이런 된장!” 아랫마을 애들이 우리보다 서너 살 위인 형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올리오니 제가 사격명령을 감히 내릴 수 있겠어요? “야!, 도망치자!” 애들은 고무신짝을 잃어버리며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지요. 논고랑에 고꾸라지는 아이, 논둑에서 굴러 떨어지는 아이 등 정말 가관들이였지요. 돌들을 던져 머리통을 다친 아이들은 없었냐고요? 모르겠어요. 용대가 안 다쳤으니... 그리고 그걸 따질 경황이 어디 있겠어요? 분한 마음에 마을사랑방에서 화투판을 벌이던 더 큰 형들의 지원을 간곡히 요청했지요. 그 형들이 따라 나섰어요. 용대도 다른 아이들도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시 들판으로 나섰어요. 휘영청 보름달이 응원가를 불러 주었어요. “이놈의 자식들이!!!” 덩치가 큰 형이 아랫마을 아이들에게 소리를 버럭 내 지르니 이번에는 그 애들이 도망치느라 난리법석이었어요. 바지가 벗겨져 허둥거리는 아이, 붙들려 꿀밤을 맞는 아이.... 얼마나 급했는지 돌리던 깡통마저 전리품으로 남겨놓고 달아나더군요. 그렇게 정월 대 보름밤은 승리의 나팔을 불어 주었어요. 대낮같이 밝게 비친 정월대보름달은 한 해 풍년을 기약했어요. |
정월 대보름의 추억을 아름다운 어휘로 그리셨군요.
이곳 엘에이는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때문에,오늘은 달이 안 보일 것 같습니다.
오곡밥,여덟가지 나물,쥐불놀이,부름---잊혀져 가는 우리의 향수가 그립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얘기거리이지요?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용상욱 선배님
왜 용혁후배님께 그런 아호를 붙여 주셨는지 궁금하군요.
여산----
LA의 나이팅게일 후배 님! 오랜만입니다.
후배 님이 다른 곳에 올린 글도 보지만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남세스러워 주로 보고만 있습니다.
부럼을 깨물고 오곡밥을 먹고 나물 먹고 쥐불놀이, 등
과거 어린 시절의 꿈같은 그림이
여기 용혁 님의 글에 오면 선명히 그려지지요?
내게 추억되는 어린 시절의 동네 패싸움은 정말 무서웠어요.
그리고 당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이상한 폭죽 비슷한 것
(=지금 것과 달리 엄청 화력이 세고 그래서 화재위험도 높은 )을
수없이 터트리고 정말 장관이었지요.
아! 참 그 如山이라는 아호는
제가 건방지게 붙인 것이 아니고 원래 용혁 님은 여산
용범 님은 덕바위(=德巖)로 스스로 진작에 지어 사용하던 아호에요.
그들 형제는 고향 山의 그 굳건하고 덕스러운 정기와 모습을
잊지않고 늘 가슴에 담고 싶었던 가봐요.
호들이 참 좋지요?
오늘 대보름달은 못 보게 되어도 이렇게 글로나마
옛 향수를 나누고 공유하는 분들 있으니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시애틀의 송선배님과 3박4일동안 꿈결같은 여행중에
수도국산이야기도 하였는데 보름날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랬나 봅니다.
용혁님의 아름다운 글이 방송을 탄 것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정원 대보름에 맞춘 글 올려주시니 참 좋습니다.
게다가 메스컴까지 탄 글이라니! ^ ^
MBS 여성시대에서 읽혀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리 말씀해주셔서 직접 들었으면 더 좋을 걸 그랬어요.
어젠 아들에게 테니스를 배우라고 전화했어요.
제일 기분 좋은 운동이고 운동량도 많다고 권했더니
그렇게까지 시간을 낼 수는 없다네요.
아들을 멋진 남자로 만들고 싶었는데......
전 테니스 하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되거든요.
제글을 반겨주시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요?
여성시대측에서는 그간 10번을 읽어주었는데 단 한 번도
방송이 몇시에 나간다고 알려 주지 않았어요.ㅎㅎㅎ
어제만 방송작가인지 저와 용대사이를 묻고
제 아명임을 확인하며 지금 방송나간다
말하더군요.
청취자니 당연히 들으리라 하지만 실은 글을 보내놓고
신경도 안쓰지 뭐예요. ㅎㅎㅎ
전국에 사는 친구들이 먼저듣고 전화로 축하해 오더군요.
아마 MBC측에서도 이 사실을 알면 다음부터 채택하지
않을 꺼예요. ㅎㅎㅎ
강석우가 전에 그러더군요.
이분은 인천에서 약국하시는 분인데 글을 자주 보낸다구요.
대본을 자주 읽을텐데 좀 버벅거려요.강석우씨요.
송승환씨나 양희은씨가 읽을 때는 한결 매끄러운데요.
그래도 읽어주니 좋지요.
아드님께 테니스가 정직한 인생살이와 똑같고 좋은 운동이니
틈을 내서라도 자주 하라하세요.
멋진 운동 중에 하나랍니다.
저도 20대부터 했거든요.
물론 벽에 라켓을 걸어 놓은 시간이 더 많지만요.
고운 시간되세요.
신문지국에서는 신문을 몇십부 그냥 주고가던 시절이 있었어요.
라디오 방송이나 TV에 간혹 제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선
방송시간 훨씬 전부터 스탠바이하고 녹화한다, 녹음한다 식구들이 법석을 떨었던 시절도 있었어요.
아마, 제가 유명인이어서 언론노출이 잦았다면 안 그랬겠죠.
모두 지난 이야기이지만 돌이켜 보면 그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었던 것같아요
미리 알려주셨으면 저도 청취했을텐데 아쉬워요
미네소타 주 신문에 윤후배님 사진도 반갑네요
드레스 입으신 모습이 넘 아름답더군요.
제 맘을 십분 이해하시는군요? ㅎㅎㅎ
저도 처음에는 무척 즐거워했어요.
친구들이 먼저 듣고 전화해주고 축하해주고...
나중에는 그렇구나 했답니다.
그간 상품도 많이 받았는데 집사람은 늘 시큰둥해요.
고가의 생선구이 오븐도 받았는데 몇번 쓰다가
갖다버리래요.ㅎㅎㅎ
생선에서 나온 기름이 바닥에 들러붙어 닦아내기에
넘 귀찮테요.
쌀가마니를 세번 탔는데 그건 아무 말 안하더군요.
어학연수간 딸애에게 신형 MP3를 탔다고 보내니
오히려 딸애는 아빠를 멋지다해요.
그러나 상품보다도 제 글이 채택되어 여러사람들과
제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함이 더 좋더군요.
참, 선배님,
다음이든 여성시대를 치시고 클릭 후 imbc에 회원 가입하시고
여성시대 일반사연 다시듣기 코너로 가시면 2월9일 1부
첫머리에서 제 글이 소개된답니다.
짬이 나시는대로 들어주신다면 저로서는 큰 영광이지요.
제 서툰 슬라이드쇼를 보셨군요? ㅎㅎㅎ
좋은 시간되세요.
이런 글이 소개 안 된다면 누구의 글이 읽히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또한 이런 글을 저희에게 들려주시니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감사 말씀
늦었지만 올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많이 들려주십시오.
如山!
반갑습니다. 어쩜 그리 어린 시절의 재미난 이야기가 새록새록 나오는지?
여산의 글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옛 풍속자료로도 그 가치가 충분할 듯합니다.
지금의 어린 이들은 잘 모르는 잊혀져가는 우리의 고유한 풍속이
아주 재미있고 정제된 맑은 시어로 수채화처럼 펼쳐지니까요.
또한 시골에서 많이 쓰는 말인 쟁기 보습, 등의 말도 새로 공부하게 되고...
오늘은 보늬라는 말을 새로 배웠습니다.
나도 어린 시절 딱 한 번 수도국산 윗동네와 쥐불놀이후
돌을 던지면서 극렬하게 싸움하던 그 무섭지만 흥미진진했던 밤이 생각납니다.
우리 들 싸움에선 다쳐서 피를 흘리던 모습도 종종 있었어요.
여산은 오곡밥을 하루에 6번이나 먹었군요.
우리 네는 두 번 먹기도 힘들었는데...(=누가 주질 않으니)
잘 읽었습니다. 늘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