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동정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이기사가..
1973년 인일여고 졸업.. 10기 선배님이신가 봅니다. (본명 : 박명옥)
:"54세에 신춘문예를 통해 재등단한 시인 박미산"
방송대에서 학교를 빛낸 대표적인 일곱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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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내용은 인터넷 뉴스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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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시인의 문학적 갈망, 별처럼 소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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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 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올 정월 초하루 아침, 읽는 이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쓸어 만졌던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너와집’은 이렇게 흐르기 시작한다. 심사위원들은 “‘너와집’은 실제의 너와집이기보다 ‘당신’과 ‘내’가 만든 사랑의 집일 터, 그 비유가 호소력이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상찬했다.
‘너와집’의 주인공 박미산씨(사진)는 뒤늦게 시업의 길로 들어선 5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대학에 가지 못했던 그는 뒤늦게 방송통신대학 국문과를 졸업했고, 다시 고려대 대학원에 들어가 딸과 함께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하면서 국문과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그가 늦게 시작한 시업을 벌충이라도 하듯 신춘문예 당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첫 시집 ‘루낭의 지도’(서정시학)를 상재했다. 이미 수필로 문단에서 이름을 알려온 데다 2006년 ‘유심’ 신인상을 받아 시인의 길을 걸어오던 터였다. 인생의 연륜을 충분히 확보한 여성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시편들이 첫 시집에서도 각별히 눈길을 끈다.“장님이 되고 싶다고요? 배롱나무 꽃물이 붉게 물들었던 당신, 우주가 몸 풀고 떠난 자리, 꽃이 빠져버린 배롱나무라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누군가 건드리면 내려앉을 것 같아요, 백일씩이나 휘어지게 꽃을 피우는 여름보다 맨몸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한겨울이 더 멋져요, 당신은 마흔여섯 해를 그렇게 견뎠지요.”(‘셀프 누드 포트레이트’에서)
이제 폐경기에 다다른 여인은 ‘우주’를 생산하던 자궁도 그 기능을 마감하고 꽃도 더 이상 피지 않는 늙은 나무라지만, ‘늙지도 젊지도 않은 당신’은 한겨울의 맨몸이 더 멋지다고 시인은 넉넉하게 위로한다. 시인 자신으로도 읽히는 그 ‘당신’은 오랜 침묵 속에서 늘 허기진 세월을 살아왔다. 가을 산과 여름 해와 봄 달까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그녀였다(‘늙은 호수’). 이제 ‘뱃가죽이 꺼진 그녀의 소원’은 ‘말없이 흐르는 일’뿐이다. 유산의 기억을 형상화한 ‘부서진 등뼈’는 뱃가죽 안에 생명을 품어보지 않은 자가 흉내 낼 수 없는 절창이다.
“익지 않은 별들,/ 덜 자란 등뼈가 둥글게 빛난다//… 두 손으로 두 귀를 막고/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는다/ 발가벗은 아기들이 내 몸에 쏟아진다/ 하늘이 뾰족하다.”
글 조용호, 사진 허정호 기자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너와집 / 박미산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화티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당선소감]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라든가 막막한 나날이 계속될 때마다 산을 탔다. 바싹 마른 말이 먼지를 피우며 스르르 무너지려 할 때 지리산을 완주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설악과 북한산에 다니면서 내 몸을 다져 밟았다.
잘근잘근 밟혀 돌아오면 후줄근한 내 몸에서 말들이 피어나왔다. 허기진 가슴에서 바람이, 구름이, 안개가 시로 피어났고 때로는 미처 피어나지 못한 말들은 나도 모르게 곳곳에 쌓여 갔다.
찰랑찰랑 의심하던 사랑을, 요절을, 시를 여름 계곡에 떠나보내고 푸른빛이 사라져 이슥해진 나의 겨울 계곡은 은빛의 물 뿌리가 드러났다. 바닥이 다 드러난 나는 솔솔 내리는 눈발에 목을 축이고 사모하는 긴 혀를 따라 구불구불 의심했던 길을 다시 갔다.
피어나지 못했던 말은 부패되지 않은 채 골짜기로 흐르고 있었으며 이리저리 부딪치며 새 물길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밤 나는 가장 예쁜 꿈을 꾸었다. 눈 쌓인 계곡에 차가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면서도 지천으로 피어나던 꽃살문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내가 존경했던 선생님께서 철없는 나에게 ‘늦게 피는 꽃’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지진아처럼 느리게 공부하는 나에게 격려와 질책을 아낌없이 해주신 최동호 선생님과 시 합평회를 할 때마다 묵사발을 만들어준 수요시창작팀, 유안진 선생님, 장만호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님과 구십이 넘도록 식당일을 하시는 친정어머니, 묵묵히 나를 지켜준 남편과 사랑하는 두 딸 단비와 차래에게도 고마움을 보낸다. 십년을 함께 땀 흘린 택견패들에게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고, 무엇보다도 유종호 선생님과 신경림 선생님 두 분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오랜 세월 흐르는 동안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진 말로 살냄새 나는 시를 쓰고 싶다. 나는 우리들의 삶을 감싸 안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시를 씀으로써 두 분 심사위원께 두고두고 은혜를 갚을 참이다.
박미산 시인 (본명: 박명옥)
1954년 인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방송대 강사
[심사평] 신경림 · 유종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 수준이나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특별히 개성 있는 시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이재근), ‘나비의 꿈’(문계현), ‘너와집’(박미산) 같은 작품들은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준은 넉넉히 되었다.
먼저 ‘실직’은 삶에 뿌리박은 정서의 시로서 호소력을 갖는다. 한데 무언가 신선한 맛이 덜하고, 죽음의 이미지가 시를 무겁게 만든다. 게다가 너무 건조하다.
같은 작자의 ‘얼굴’은 읽는 재미는 ‘실직’보다 낫겠는데, 산만하고 장황한 것이 흠이다.
‘나비의 꿈’은 장애인 부부의 외식 나들이가 소재가 된 시로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비유가 좀 억지스럽고 관념적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화자가 되고 있는 ‘붉고 둥그스름한 다라이’는 정리가 더 돼야 할 소재 같다.
하지만 남과 같지 않은 상상력은 그의 앞날에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너와집’은 아주 따듯한 시여서 일단 호감이 간다.
물론 ‘너와집’은 실제의 너와집이기보다 ‘당신’과 ‘내’가 만든 사랑의 집일 터, 그 비유가 호소력이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말이나 감각도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문둥이가 사는 마을, 이랑진 무덤들 사이에도’는 열두 살 여름의 추억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로서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해서 우리 두 심사위원은 최종적으로 박미산의 ‘너와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미산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저도 선배님의 글을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다시 찾아 봤었습니다.
모습도 아름다우시네요.
선배님의 모습과 윗 글(강신영이 퍼온 글)과 비슷한 내용의 글 주소를 올려 봅니다.
홈페이지를 알게 되셨으니 자주 놀러 오셔서 동문들의 모습들도 즐겨 주세요.^^

http://blog.chosun.com/article.log.view.screen?blogId=166&logId=3634882 - 이 곳을 클릭하세요.
조선일보에 실린 내용입니다.
[Why][Welcome to Why?] 詩 쉰 넷, 그녀의 눈물이 피어난다
54세에 신춘문예 통해 再등단한 詩人 박미산
시인의 이름은 박미산이다. '渼山', 물결무늬 미에 메 산이다. "여자 이름에 山은 너무 세다"고 하자 이름을 지어준 스승은 "물에 비친 산 그림자라는 뜻이니 그대로 쓰라"고 했다. 2008년 나이 쉰 넷에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50년 넘도록 박미산은 그림자로 살았다. 본명 명옥(明玉)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이름에 한(恨)이 너무 많았다.
인천 도화동에 살던 시절, 아버지는 정치판을 맴돌았다. 엄마가 8남매 먹여 살리려 뜨개질에 남의 밭 가꿔주며 살았다. 다섯째 명옥에게 공부는 사치였다. 초등학교 시절 두 살 위인 작은 오빠는 "너 공부 잘하니 내 몫까지 공부해라"며 구두닦이가 됐다.
명옥은 인천 명문 인일여고에 입학했다. 밤이면 중학생들 가르쳐 번 돈으로 손아래 두 남동생과 여동생을 먹여 살렸다. 곧잘 쓴 글로 백일장에 뽑힌 적도 많았다. 대학은 일찌감치 잊었다.
1973년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갔다. 경인선 열차 속에서 마주친 대학 간 고교 동창들이 미팅이며 스터디 이야기를 하면 주눅이 들었다. 그걸 잊으려 악착같이 일했지만 가끔 울컥, "내 인생 이렇게 살다 끝나면 어떡하지"하고 겁이 났지만, 오래 고민하기엔 세상은 모질고 금방 포기하기는 쉬웠다.
부잣집 착한 남자 만나서 결혼을 했다. 1977년 6월이었다. 부잣집에 시집가서 마당 깊은 서울 성북동 대저택에 살았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남편이 주는 월급봉투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 딱 넉 달 그렇게 살았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크게 세 번, 작게는 셀 수 없이 망했다. 시댁이 워낙 부자여서 10년은 갔다. 딸 둘 낳고 살면서 결국 1986년 2년 동안 카페를 운영하며 남편 빚을 다 갚았다. 그래도 모자라 1995년 마침내 집을 팔고 아랫동네 작은 빌라로 내려왔다. 두 딸이 물었다. "왜?" "응, 아빠 사업이 잘 안 돼서 그래. 반드시 다시 올라갈 거야." 그사이 너그러운 시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착하고 지성적이던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게 됐다.
큰딸이 고3이던 1996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나는 없다." 집안일에 아이들과 시어머니 병 수발로 살아온 세월, 까맣게 잊고 있던 공부가 떠올랐고 문학이 떠올랐다. 1997년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골동품 관련 사업을 하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집안일을 끝내면 하루 이용료 100원인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졸업이 다가오자 점점 욕심이 커졌다. 그래, 이제 글을 쓴다.
갠지스가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박미산은 시(詩)를 보았다. "활활 타는 시체 옆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서는 명상을 하고 옆에서는 구걸을 했다. 돈 없어서 장작 모자란 시체는 타다 말고 강물에 버려졌다. 아, 이게 바로 시(詩)구나! 정말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다시 살아나는 거 같았다." 새벽 강변에서 그녀가 부활했다.
2002년, 박미산은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 합격했다. 나이 48세로, 웬만한 교수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입학 첫날, 대학원 지도교수인 최동호 선생이 학생들에게 지시했다. "자작시 10편씩 가져와라." 박명옥이 말했다. "저는 시를 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수필을 제출했더니 교수가 세 번을 거듭 물었다. "열심히 할 것인가." 세 번을 똑같이 대답했다. "이 나이에 공부하러 온 사람이에요. 끝까지 하겠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시 합평회(合評會). 자기 시 한편씩 낭독하고 박 터지게 비판당하는 자리다. "남들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나도록 깨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듬해에 시어머니까지 병세가 악화됐다. 100원짜리 도서관도 갈 수 없을 정도로 병 수발에 매달렸고 논문은 결국 제때에 쓰지 못했다. 최동호 교수가 그녀를 불렀다. "열심히 한대서 붙여줬더니 뭔가.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끝나는 거다." 남편에게 말했다. "반드시 다시 모실 테니 6개월만 형님 댁에 어머니를 모시게 해주시라." 이듬해에 박명옥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제는 월북 시인 백석의 동화시 연구였다.
박명옥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 도전해 합격했다. 2006년 어느 합평회 날 발표한 시에 대해 아무도 박 터지게 비난을 하지 않았다. 시 공부 4년 만의 일이었다. 박명옥은 '유심'이라는 문예지에 시를 보냈고 첫 등단의 꿈을 이뤘다. 제목은 '늙은 호수'. 소식을 들은 지도교수가 불같이 화를 냈다. "일간지 신춘문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왜 딴 길로!" 박명옥이 대답했다. "재(再) 등단하겠어요, 선생님."
그리고 지난해 마침내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너와집'이라는 시로 당선됐다. 오십 년을 에둘러 도착한 세월이다. 첫 시집도 냈다. 제목은 '루낭(淚囊·눈물 주머니)의 지도'. 가난한 여인 박명옥, 시인 박미산은 모교인 방송대와 안양대에서 강의를 하며 눈물의 세월을 들려주고 있다. 방송대에서는 학교를 빛낸 대표적인 일곱 인물 가운데 박미산을 선정했다.
입력 : 2009.01.10 03:19 / 수정 : 2009.01.11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