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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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
엄마한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어린 시절은 나의 일생 중 완벽하게 행복한 시절이었다.
무서운 얘기도 많았지만 결국은 착한 사람이 이기고 못된 인간은 멸하거나 개과천선하게 돼 있었고,
동물이나 식물하고도 교감할 수 있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그래서 엄마의 옛날이야기는 엄마처럼 안전했지만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아니 내쫓겨야 할 세계이기도 했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폴라북스)의 주인공 데이빗도 엄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만 엄마는 병들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
소년은 엄마를 안 죽게 하려고 어린이다운 온갖 짓을 다한다. 소년에게 엄마는 곧 이야기였다.
소년이 잃을까 봐 전전긍긍해 한 건 엄마가 아니라 이야기였고 이 세상의 의미였던 것이다.
병들기 전 엄마는 소년에게 말하곤 했다. 이야기는 누군가가 읽어줄 때 살아나는 특이한 생명체라고, 읽어주지 않으면 이야기 속의 세상이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건너올 수 없다고 속삭이던 엄마가 결국은 죽는다.
소년은 엄마와 공유하던 이야기의 세계로부터 쫓겨나 추운 밤 담요를 뒤집어쓰고 홀로 책을 읽는 고독한 독서의 세계로 넘어간다
``그 책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책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이야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오랫동안 이야기로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그 이야기들은 현실도피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현실이기도 하다.
데이빗의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된 이야기의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분리되어 그 나름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세계를 구분하는 벽은 너무도 얇고 약했고 언젠가부터 그 두 세계가 섞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 나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꼬부라진 남자가 데이빗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꼬부라진 남자는 이름은 없지만 모든 동화 속에 나오는 악역 심술쟁이의 총칭이다.
그러나 그 남자를 거쳐 소년은 엄마를 잃은 후 새롭게 맞이한 의붓엄마, 의붓동생과의 화해에 이르고 동생에게 책임감을 느낄 줄도 아는 어른이 된다.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냉정한 리얼리즘과 따뜻한 해피엔딩을 함께 만날 수 있고 까마득하게 잊은 줄 안 옛날이야기, 아름답고 황홀한 온갖 동화의 세계로 초대받는 판타지도 맛볼 수 있다.
요새 들리는 정치 경제 이야기가 하도 어렵고 답답해서였을까,
꽤 두꺼운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재미를 처음에는 현실도피적인 쾌감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책을 덮은 후에도 살아나는 온갖 동화들의 메아리를 통해 이 난국을 극복할 해답은 아닐지라도
이 세상이 이다지도 답답한 까닭을 알아낸 것처럼 느꼈으니,
그건 이야기의 부재, 즉 상상력 결핍으로 인한 비전의 실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2008.12.28 07:27:00 (*.172.216.33)
박완서님에게는
그 연세에도 글을 쓰시고, 읽는
신선함이, 총명함이, 활달함이 있으시구나.
비젼 또 꿈이 없는 인생은
세상 뿐아니라 나 자신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니?
글 첫머리를 읽다가
우리의 유년시절인 50년대 후반에 매주 전깃불이 나가는 날마다
엄마에게 얘기를 듣는 밤이 생각났어.
그때 30대 이던 엄마는 옛날 얘기 뿐 아니라
소공자, 소공녀, 등을 생생하게 기억 해 내어 얘기 해 주시곤 했지.
그 시절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행복하진 않았고
나름대로 슬프기도 괴롭기도 한 것 같다.
몸이 많이 약해서, 자주 앓아서 였을까.......
작가 박완서선생님이 존 코널리 作 <잃어버린 것들의 책>을 읽고 쓰신 독후감이다.
며칠 후면 육십이 되는 늙음에 들어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아직 80에 육박한 분의 총기가 하늘을 찌르면 놀라워하는 편견이 있나보다.
독후감 말미에 쓴
`그러나 책을 덮은 후에도 살아나는 온갖 동화들의 메아리를 통해 이 난국을 극복할 해답은 아닐지라도
이 세상이 이다지도 답답한 까닭을 알아낸 것처럼 느꼈으니,
그건 이야기의 부재, 즉 상상력 결핍으로 인한 비전의 실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에 이르러 작가에 대한 존경심에 저절로 크게 박수치고 싶어졌다.
맛난 음식은 나눠 먹고 싶듯이 이렇게 좋은 글도 더불어 읽어야 된다는 생각도 인지상정.
앞으로 우리보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