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 좋지 않아 좋은 일.


기억을 못 하니 늘 새롭다.

재밌게 봤던 책도 정말 새롭게 재밌고, 떨며 봤던 영화도 새롭게 떨며 본다.

특히 어떤 책이나 영화에서 나온 장면을 묘사한 다른 글들을 보면 맞아! 그런 거 있었지!가 아니고
그런 게 있었어? 야~ 참 좋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거야.

내가 그렇게 좋은 영화를 봤었구나~ 그때 아주 좋았겠네~ 이런.


오늘 아침에 영화에 대해 쓴 어떤 책을 보다가  <나 없는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그 영화 작년에 봤는데..... 참 좋게 봤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간단히 그 영화의 내용을 말하면


앤이라는 여자는 열일곱에 아이를 낳고 이어 또 아이를 낳고 첫 키스를 한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결혼 생활을 한다.

고달프지.

남편은 착하지만 실직 상태,  이 여자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남편은 어린 시절 음악 콘서트에서 열광하여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티셔츠를 벗어 눈물 닦으라고 준 남자지.

친정 엄마 집 뒤뜰에 바퀴 달린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어.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가족끼리는 행복하고 서로 사랑해.

그런데 그녀에게 병이 생긴 거야. 얼마 살지 못할 정도로 깊은.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이 여자도 아이들이 제일 맘에 걸리지.

그리고 자기에 대한 생각도 해.
이건 너무 심해.....

이 여자는 커피와 달콤한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자기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써 보는 거야.


딸들에게 사랑한다고 매일 여러 번 말해주기, 남편에게 조신한 신붓감 구해주기, 애들이 열여덟이 될 때까지 매년 들려줄 생일축하 메시지 녹음하기, 가족 모두 웨일베이 해변으로 놀러가기, 담배와 술을 맘껏 즐겨보기, 내 생각을 말하기, 다른 남자와 사랑을 한 후 기분이 어떤가 알아보기, 날 몸 바쳐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들기, 감옥에 계신 아빠 면회 가기, 인조 손톱 끼워보기.


결론을 말하면 이 여자는 이 모든 일을 해.  
영화잖아~


근데 말이다,  그 영화이야기를 보며 난 다른 생각을 했어.

이 여자가 병원에서 병을 알고 나서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는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에 대해서.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면 난 이런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해.

아픈 것도 이 여자의 일이고 죽는 것도 이 여자의 일이다.
따라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삶의 방식은 자기가 선택하게 해 줘야 한다 이런 생각 말야.


전에 가족이 아픈 적이 있어.

엄마의 치명적 병은 우리 집에서 처음 겪는 절망이라 모두 우두망찰하고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슬퍼했지.  그러느라고 정작 엄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해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무엇이었는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고 하게 해 주지도 않았고 그저 병명을 숨기느라 바빴고, 아픈 사람을 걱정하며 누워만 있어라 이불만 토닥였던 거지.


병문안 오신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머리가 복잡한 적이 많아.

뭐랄까? 아픈 사람을 너무 유아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

마치 자신들은 절대로 아프지도 죽지도 않을 것 같은 말투로 몸조리를 안 하면 큰일이라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는, 심지어는 힘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협조의 이야기들을 하곤 했지.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데 그런 마음이 안 들더라구.

뻔한 사실인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같은 아주 고약한 느낌이었어.


한 가정을 이끌어 왔고, 그 많은 자식을 키운 어른에게, 생의 마무리를 할 인간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엄마가 가시고 슬픔과는 또 다른  찝찝한 기분, 그런 게 늘 있었어.


가능성이 있다면 희망을 갖고 투병을 해야겠지.  가능성이 없다 하더라도 끝까지 애를 써야겠지.
그리고 더 아프지 않게 이부자리에 누워 있어야겠지.

하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감히 원하지 못하더라도, 엄두를 못내더라도, 더 힘 떨어지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말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아직> 건강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가까운 사람들의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한 사람의 존엄성이 정신에서 몸으로 순식간에 전이되는 시기?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는데.
일단 아프다고 하면 너무 빨리 모든 기회를 원천봉쇄 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야.

그런 면에서 보호자의 위치에 자리하는 사람이나 친구의 마음 자세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

슬프지만 일상을 조용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는 거지.

이건 굉장히 힘든 일인 게 분명해.
하지만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보면서도 그 생각을 했어.



지난 번 우리 송년 모임 때 영이가 아팠던 이야기 했었지? 또 경이가 말로 하기 아주 시간 걸릴 일 툭 던지듯 했고(심드렁하게 이야기했지만 난 뭔가 툭 떨어지는 것 같았고 스무살 적 그때의 고통이 아프게 되살아나던걸). 숙이 얘기도 그렇고.
혹은 친구들 앞인데도 웬지 떨려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친구도 있고.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편안히 하고 우리는 울리는 가슴에도 편안한 얼굴로 듣고, 그리고 같이 이야기하고 웃고 그런 거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아.
이런 게 일상을 함께 하는 일인 것 같아.


앞으로 우리의 삶을 함께 할 귀한 친구들~


차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산에도 가고 악기도 배우고(요즘 진짜 하고 싶다) 산책도 하고 그렇게 그렇게 좋은 시간 함께 하자꾸나.


언제나 고마워~~


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안부 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