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이 방은
짧게 스쳐간 생각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느꼈던 감동이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얻은 깨달음 등...
우리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이 분명하나
자칫하다 보면 놓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한 귀퉁이를 잡아두는 메모장입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도 좋고
자기의 기억 창고에 저장을 하기 위한 암호같은 독백도 좋습니다.
그저 메모를 하듯이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갈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달려만 가고
우리 머릿 속 기억 주머니의 끈은 어느새 느슨해져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제대로 간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하면 오래 잡아둘 수 있을까?.
언뜻 스쳐가는 좋은 생각들과
아주 짧은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 남긴 큰 이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허망하게 잊혀지지 않도록
문득 떠오르는대로 이 메모장에다
스쳐가는 단상들을 꽉 붙잡아 두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 짧게 스쳐간 사람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가 하면
오래도록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슨 조화속일까요?
우리 뇌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신 선생님이 정말 오랜만에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좋은 글 올려주세요.
어화 넘자 어화 넘자
북망 산천 가는 길을 ~
그저께 동네 뒷산으로 호사스럽게 꾸민 상여가 올라갔습니다.
울긋불긋 펄럭이는 만장을 앞세우고 비탈진 산길로 너울 너울 넘어갔습니다.
마을에 초상이 난 걸 안지는 며칠 됐지요.
집 짓는 현장을 오려면 동네 가운데 길을 지나는데 길가에 주차한 차들때문에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혼 났는데 그 차들이 문상객이 타고 온 차였던가 봅니다.
요즘 시골도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루고 화장하는게 보통인갑던데
집에서 차일치고,
누런 삼베옷을 입은 상제들이 상여뒤를 따르고,
보기 드문 행렬이었습니다.
메가폰을 잡은 소리꾼의 상여소리가 동네를 울리고 동네 넓은 들녘길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뒷산으로 갑디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논 물꼬를 한번 보고가자 했는지.
배관 작업을 하던 인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제 할 일을 하고,
나와 남편은 멀찌기서나마 실로 오랫만에 본 상여행렬을 사진찍어서 돌려보고,
건너편에 사는 조선생이 마을길이 복잡해서 좀 늦었다며 빌려간 사다리를 싣고 왔습니다.
택배차가 들어왔다 나가고,
매일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 " 를 외치는 개장수 트럭은 오늘도 다녀가고,
천주교회 수련원 터를 닦는 포크레인은 여전히 땅을 고르고 있고,
다 제 할일에 몰두할 뿐입니다.
길건너 콩밭할머니가 콩을 털러 올라왔다가
얘기하는데
" 복 많은 할배라. 아흔둘 먹도록
앞세운 자식 하나 읎구, 할머니도 아직 짱짱하고, 돈 있제, 자슥들 많제
편찮다고 노인정에 못 나오는지 을매 안됐는데 돌아가신네. 그런 복이 또 어딧것노?
맨날 자식들한테 집에서 죽어 상여해서 뒷산에 묻어달라고 소원했다더만
자식들이 즈그아부지 소원들어줬네.
에그 ~ 상여를 태믄 뭐할끼고. 그렇다고 한븐 간 사램이 살어돌아오길허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잖어"
???찬정아!!!
보기힘든 상여 행렬을 봤구나.
어렸을적에 보고는 못본지가 수십년이다.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치 그랬어.
귀중한 우리의 장례 문화 기록일텐데......
몇년전에 네팔에 갔을 때 장례행렬을 봤는데 참 신기하드라.
그곳에서는 죽은지 24시간안에 장례를 치루는데
우리 나라 같은 상여가 지나가는데 그 뒤를 남자들만 따라가는거야.
여자는 참석 못한댄다.
인도에서 간지스강에서의 장례도 특이했어.
그곳은 화장하는데 화장장 옆에서 간지스 강물로 목욕들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처럼 움직이드라.
장작으로 화장하는데 화장장을 사진 못 찍게해서 멀리서 한컷 찍었단다.
그런데 화장하는데 어떤 나무로 화장하느냐에 따라서 값이 다르단다.
죽어서 무슨 나무를 쓰면 어떻겠느냐 만서두.....
귀족은 귀하고 비싼나무로 화장 한댄다.
그놈의 망할 계급사회.
인도는 아직도 계급이 철저하댄다.
그런데 우리 자본주의는 없는자와 있는자의 계급 사회 이든가?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고 하든데.......
어머!
계속 이어지고 있는 방인지 몰랐네요.
요로코롬 인상적인 글들이 들어있는지 이제사......
통영서 첨 만난 찬정선배님
세계를 누비며 많은 추억을 담아오시는 미스봄날 순영선배님
이 방에서 다시 만나니
새삼 더 반가운 맘이 드네요.
???명자야!!!!
우리 봄날이 참 다양하지?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언제까지 다닐지?
하는 마음이 든다.
여행은 건강, 친구,돈, 집안일 이렇게 4박자가 맞아야 떠날 수 있는거라
떠날 때마다 흥분 상태로 떠나고 여행을 마치고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곤 한단다.
나에게 다음 여행이 계속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빌면서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이방에서 만나니 더 새롭다.
오늘 하루도 기쁨이 충만하기를........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선배님은
영원한 우리의 로망이십니다.
언제 한 번 다시 만나서
여행으로 피곤해지신
발은 만져드려야 할텐데...........
???아!!!!!
봉사할려고 발맛사지 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지?
덕분에 통영에서 우리들이 호강했지.
봉사할려고 배웠다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어.
명자는 복받을꺼야.
마음이 너무 예뻐.
윗층에서 합판 자르는 걸 잡아주고 있는데 아랫층에 걸어둔 가방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 냅둬 다시 걸겠지 ' 했는데 참 질기게도 울려서 받으니 추석지내고 친정엄마 뵈러 온 우리 시누이.
" 언니 ! 엄마가 지금 거기 좀 가 보자고 하셔서 가볼려구 하는데, 엄마도 가보신지 한참 됐다구 "
" 예. 오세요 근데 ~ 어머니 여기 오셨다 가신지 일주일뿐이 안됐는데 그런말씀을 하세요? "
울 엄니는 같이 살자고 하지도 않을 '아들네 집' 이 왜 그렇게 궁금하신지 차편만 있으면 '거기 좀 가보자 ' 고
들쑤시는가보다.
그 동네는 집을 짓는 현장이 여기 저기 있다.
심심찮게 앞으로 집을 지으려는 건축주가 견학을 와서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얻어가기도 한다. 우리도 그랬던 것 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서 방해가 안되도록 눈여겨 보거나 궁금하면 묻거나 하는데
어떤이는 남이 집을 짓는데 ( 제 집도 아니고) 와서는그렇게 하면 되니 안되니, 좋으니 어떠니 참견을 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다사스러운걸까?
남편한테
" 사람들이 집을 한번 지어보면 또 짓고 싶어한다는데, 두번째는 더 잘 지을것 같애서 "
" 어느 미친 놈이 그런 소리를 해. 하나 짓기도 이렇게 힘드는데,
만약에 그런놈이 있다면 그건 ' 요래라 조래라 ' 주둥이만 갖고 집을 짓는 놈일꺼야. "
봄에 상량식때 와 보고 오늘 온 우리 시누이가 지하 창고를 보고 무슨 용도인가 한다.
" 테레비에서 봤는데 어느 부촌(富村)에선 지하 벙커를 만들어서 30일치의 생활이 가능하게 해놨다데.
우린 무슨 일 있으면 얼른 싸짊어지고 다 여기로 모이자구, 우선 물과 불이 확보되어 있고 산에가면 아무거라도
먹을게 있지않겠어 . 그 무슨일이라는게 꼭 전쟁뿐인가 자연재해도 있고,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약에 ~. "
아방궁을 지으시는가요?
그 집은 언제 완성되는지...........
"누가 그래? 주둥이만 갖고 요래라 조래라 집짓는 놈일꺼야"
그 말씀이 정답이네요. ㅎㅎㅎㅎ
예쁜집 얼른 완성해서 알콩다콩 신혼처럼 사세요.
안반같이 둥글납작한 호박 여덟 덩이가 (갈 때마다 세어보니까)
뒹굴 뒹굴 누렇게 늙어갑니다.
내가 우리 아이를 낳은 때가 4월이니까
미리 준비하여 잘 위해두지 않으면 늙은 호박이 흔치 않을 때죠.
우리 시어머니가 거제도 해녀에게 부탁하여 자연산 장미역을 태산같이 보내시고
친정 엄마가 태어날 애기 좁쌀 베개까지 준비하셨으면서
민간요법으로 산모 부기 빼는데 좋다는 늙은 호박은 마련해놓지 않으셨어요.
우리 친정과 막역하게 지내는 아주머니가
친구집에 치장해놓은 걸 우격다짐으로 빼앗다시피 가져왔다는 작은 호박에
꿀을 넣고 중탕하여 주셔서 산후 조리중에 먹었습니다.
그 호박 덕인지 온 정성을 다 해서 해주신 친정엄마의 산구완덕인지
삼칠일 지내고 가뿐하게 집에 돌아왔지요.
뒷터에서 뒹굴 뒹굴 늙어가는 호박을 보며
아기 낳고 조리하는 은초 엄마가 하나 달라고 하면 얼른 따주련만.
지금은 가까운 시장에도 호박이 많은 때니까 괜히 택배비들일 일도 없고,
나의 아득한 옛 기억 한편을 꺼내어 봤습니다
< 마음의 집> 김희경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어.
말이 별로 없는 엄마
구석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밥을 혼자 먹는 아빠에게도 마음이 있어.
엄마 배 속에서 막 태어난 아기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나
대머리 교장 선생님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런데 마음은 잘 알 수가 없어
어느 날 시계를 보면 기쁘다가도
어느 날 시계를 보면 화가 나.
어느 날 고양이를 보면 슬프다가도
어느 날 고양이를 보면 즐거워.
내 마음 나도 모르지.
도대체 마음은 무엇일까?
마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같아.
큰 집에 사는 욕심쟁이
평생 한집에만 사는 고집쟁이
매일매일 집 모양을 바꾸는 변덕쟁이처럼.
마음의 집은 모양도 크기도 다 달라.
백 사람이면 백 개의 집이 생기지.
마음의 집에는 문이 있어.
어떤 사람은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어떤 사람은 활짝 열어 두지.
문을 아예 닫고 사는 사람도 있단다.
마음의 집에는 방도 있어.
어떤 방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어떤 방은 좁아서 겨우 자기만 들어갈 수 있지.
마음의 집에는 창문이 두 개 있어.
한 쪽에서는 매일 비가 내리고
다른 쪽에서는 매일 해가 쨍쨍해.
마음의 집에는 계단도 있어.
친구와 다투면 10계단
엄마한테 혼나면 100계단
더 힘든 일을 만나면 1000계단
아무리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이는 계단도 있지.
마음의 집에는 부엌도 있단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을 멋지게 요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지만
요리가 영 서툰 사람도 있어.
마음의 집에는 화장실이 있어.
친구가 미워질 때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때
잘난 척하고 싶을 때
싸우고 싶을 땐
변기 손잡이를 꾹 누르렴.
그런데,
마음의 집은 가끔 주인이 바뀌곤 한단다.
어떤 날은 불안이
어떤 날은 초조가
어떤 날은 걱정이 내 마음의 집을 다스리지.
또 어떤 날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의 집 주인이 되기도 한단다.
내 마음의 집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스러져 갈 때
마음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창밖으로 비가 올 때라도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언제나 너를 도와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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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힘이 없고 우울하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아무 것에도 의욕이 없고 자신도 없고.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감기에도 걸렸고,
축처져서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해 나가는 일이 힘겹다.
서로 마음이 통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삐걱대며 헛심을 쓴다.
헛심을 쓰고 나면 정말 힘이 빠지고 마음이 후줄근해진다.
부질없는 일에 괜히 신경을 쓰는 것 같아 한심하기도 한데,
툭 자르고 씩씩하게 굴기에는 힘이 좀 모자란다.
이럴 때 있겠지?
늘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
좀 지쳤나 보다.
그래도 이런 마음 전할 수 있는 봄날이 있으니 행복한 건가?
그냥 이대로 일을 하면 계속 힘이 없을 것 같아
잠시 나의 마음을 적어 본다.
죄송합니다~~~
이럴 때 있지요? 봄날님들?
???옥규야!!!!
힘들었구나.
그런데 마음의 집 이라는 시를 쓴걸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는게 눈에 보인다.
나와 다른 마음을 인정 한다는 것이 쉽진 않치만
우리는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꺼야.
힘들면 언제라도 이렇게 이곳에다 다 풀어놔.
그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질테니까.
우린 서로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봄날이 있으니
우리들은 축복 받은거야.
옥규야!!!
힘내!!!!!
우리들은 무조건 옥규편이다.
옥규선배님의 맘이 충분히 헤아려지네요.
내 마음도 내맘대로 조절이 안될 때가 많은데
어찌 남의 맘을 움직일 수가 있겠습니까?
삐그덕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겠죠?
아마도 선배님이 가을에 태어나서
생일아리를 하느라 더 힘든지도.......
통영에서의 열정적이던 모습으로
속히 돌아오시길 기도할께요.
파이팅!!!!!!!!!!!
옥규~!
너무 거기에 빠지지 말아.
시간이 약이란다.
될대로 되라 ~하고
털퍼덕 놔뻐려라.
철봉에서 떨어지지 않을라고 애쓰지 말란말이다.
떨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믄 되니깐.....
순영언니가 다 쓰셔서 난 한마디만 할란다.
이하동문!
근데 말이다.
내 생각은 그래요.
남을 이해한다는 건 참 중요하고 훌륭한 거지만 한계가 있는 거 아니겠니?
그럴 땐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더라구.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될 수는 없어.
나도 주일 날 교회에서 하도 황당한 인간을 만나서 정말 열받쳤단다.
원래 인상도 안좋고 황당한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 나름 조심하고 있고
때로는 미리 알아서 친절하게 하는 비굴함마져 동원하고 있는 인간인데
옆에 앉아서 말시키고 담임목사님 흉보고 깐죽거리는통에 예배를 볼 수가 없길래
말씀도 안들리니 이제 좀 조용히 하자고 한마디 했더니
(지 의견에 토를 단 것도 아니고 예배도중에 자꾸 말시키는데 그정도 말이 뭐 그리 실례가 되냐구?)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더라구.
내목소리가 더 크니 어쩌니~~~~~~~~~~~~~~~~~~~
어찌나 열이 받치던지 성가대가 무슨 노래를 했는지도 전혀 생각이 안나더라구.
그래서 결심했어.
인상 나쁜 것들하고 공연히 잘지내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앞으로는 웃지도 않고 딱딱하게 할 꺼야.
난 웬만하면 친절하게 대하려고 나름 노력을 많이 하거든.
내가 지 친구도 아니고 친한 사람 더욱 아닌데 .......................................................
그저 몇십년 교회다녔다고 그거 하나로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에게 교회 인상만 버리게 하는 것들은 참 교회에서도 축출해야 하는데..........................................
예의도 없고 정서불안인 것들이 있더라.
그런 인간까지 다 헤아리자니 너무 힘들어.
(나 춘식목사님한테 찍히겠다.ㅎㅎㅎㅎㅎㅎ)
아담과 하와이래
우리 모두는 부족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거죠.
너 나 할거없이 말예요.
그래서 인간은 절대 믿음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라고.......
그런데 모나고 뿔난 지기들을 품고 사랑한다는 것이 내 힘으론 불가능하니
어쩐답니까?
.........................................................................................
명옥선배님의 부글거리던 맘에 백 번 공감 합니다.
명자 사모~!
난 절말 사모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사님들도 힘들기야 하지만 그래도 온 교인이 목사님 목사님 하고 받들어 모시는데 비해
참 사모란 존재는 힘만 들고 빛이 안나더라구.
갑자기 나이 먹는 것도 아니고
다 철없는 젊은 시절 거쳐 가는 건데 보통 사람들처럼 했다가는 구설 수에 오르고
아이들도 보통애들처럼 하면 욕먹고~~~~~~~~~~~~~~~~~~~~~~~~~~~~~~~~~~~~
일하면 나댄다고 궁시렁 조용하면 무능하다고 입방아..............................................................
내가 살아 보니 선생마누라도 보통 일이 아니던데
그 때마다 목사 사모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곤 했어.
그 인간 지난 주일에는 알아서 다른 쪽에 앉던데
축복의 시간에도 그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 싫더라.ㅎㅎㅎㅎㅎㅎㅎ
난 속좁고 옹졸하긴 하지만 악의 없는 말실수나 가벼운 경거망동은 곧 잊어먹는 편인데
이상하게 속에서 부터 받치는 형의 사람들이 좀 있더라구.
그 사람 속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인 것 같아.
암튼 명자도 수고가 많아요.
우린 아주 작은 미니처치라
말썽부릴 성도도 없네요.
대형교회들에서 연일 빵빵 사건을 터트리니
오히려 작음에 감사하기도 하지요.
오붓한 울 성도들과의 모임이 참 행복하답니다.
남녘 바닷가 마을에도 가을이 농익어갑니다.
새 집( 새로 짓는 집이기도 하고, 새장만한 집이기도 하고) 그 중 큰 창을 통해 내다 본
들판의 누우런 벼이삭이 바람에 찰랑거렸는데 내가 외유에서 돌아와 보니
에구 ~ 그새에 빈 논이 되어 버렸네.
그 동네 사는 우리 시이모가 이웃에서 거둔 햅찹쌀( 요 발음이 잘 안되믄 입에 풍끼가 있다고
자가진단하시믄 됩니다) 를
" 싸게 판댄다. 되도 좋고(양을 후하게 준다는 얘기) 느그도 필요하믄 사줄끄마."
" 어머니와 반씩 가르게 한 말 사 주세요. "
거실 한뒤퉁이에 놔둔 찹쌀 자루 아직 열어도 안봤는데
나중에 시이모를 통해 들은 말로는 너무 싸게 팔아서 그 냥반이 배를 앓고 있다니, 이런.
달라는 값 다 주고 샀는데도 왠지 미안스럽구.
어제는 클럽에서 야유회를 겸한 산행을 무주 덕유산으로 갔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제가 이래뵈도 ' 다져진 몸' 이라 '그 쯤이야 ' 하고 백련사로 해서 향적봉(1,614m)까지 오르는 코스를 선택
(케이블카 타고 오르는 팀도 있었지만)했는데 끝도없는 나무계단 오르막길.
살자하니 고생이요, 죽자하니 청춘이라더니 어제 나야말로 오르자니 죽을지경이고 도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엄청 힘들었어도 올라가니 그런 절경이 기다리고 있을줄이야.
청명한 가을날씨에 멀고 가까운 산들의 겹겹능선과 만산홍엽
내려올땐 물론 케이블카로.
그렇게 높은 산엘 올라 본 게 스므해도 넘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높은 산에 올라 가본 적은 있지만 중턱까지 차로 갔으니까 실제도 오른건 그 보다 안될거예요..
지금 우리집 뒷산(선자산)이 제겐 딱 맞아요.
갔다 왔다 두시간 반이면 떡을 치고,
좀 가파른 데도 있지만 소나무숲 오솔길도 있고 벤치가 놓여진 편백나무 사잇길로 해서
시간과 힘이 너끈하다 싶으면 정상까지 가고, 딸린다 싶으면 정자가 있는 곳까지만 갔다 와도 되고.
세상에 알려지지않은 동네 뒷산이라도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 보면
옹갖 세상것이 다 보여요.
동네도 보이고, 저수지도 보이고, 앞바다 작은 섬도 보이고,
차도 보이고, 배도 보이고,
앞으로 이십년을 살지, 삼십년을 살지(더 산다면 그건 덤)
그렇게 죽을동 살동 기를 쓰고 오르지 않고
동네 뒷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거맹키로 나 그냥 그렇게 살믄 안되까 ~ 하는 그런 마음과
그래두 숨가쁘게 허둥거리며 대처를 휘젓고 다녀야 사는 폼이 나는거 아닌가 ~ 그런 마음이
번갈아가며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 스멀 기어오릅니다.
지난 일요일 시외가 친척 결혼식이 있어 마산엘 다녀왔지요.
우리는 바쁘단 핑게로 축의금만 인편에 보내고 안 가도될텐데 우리 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시니 팔순 넘은 노인을 남의 차 얻어타고 가시랄 수 없어
우리차가 간다했더니 (11인승이지만 때려실으면 15명도 태운다고 말했던가요) 노인 몇분이 같이가자네.
그런 때나 친척들 만나 회포를 풀고 싶지만 혼자 나서기엔 엄두를 못 내시다가 차편이 있다니까 '잘 됐구나 ' 하고.
오랫동안 떠나 산 남편이나 나는 얼굴도 모르고 아줌니뻘인지 형님뻘인지도 모르는 몇분을
터미날에서 간신히 접선하여 태웠는데 한 냥반이 연락도 안되고 안오시니 이를 어쩌나~.
9시에 떠나야 11시 예식에 맞추어 조금 여유있게 갈 수 있는데.
할 수 없이 10분 더 기다리다 출발하여 한참 가고 있는데 ' 지금 터미날에 와 있다구 ' 전화가 오네.
그러니 워쩌요. 다시 차를 돌려 터미날로 가는데 차안의 모두가 다 한마디씩 하시데요.
' 그 눔의 교회에 미쳐서 ~'
' 하루쯤 안 가믄 어때서 ~ '
' 예수님이 넘들 기다리는데도 붙잡고 안놔주지는 않을낀데 ~ '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셨다는 우리 외당숙모가 젊잖게 한말씀
' 교회가는게 잘못된거는 아닌데 나이 많으면 하루에 이거 저거 하려고 늘어놓으면 안돼.
정신 반짝차리고 그저 한가지나 지대루 해야지. 남들하고 시간 맞추는 일은 더욱이.'
지각생 할머니 타시자 언제 그런 뒷소리를 했던가싶게 고릿적 이바구들을 하며 깔깔.
새댁적 당초같이 매운 시집을 살았다면서 그 설운 시절 얘기에도 웃느라 배꼽을 잡고,
저녁밥을 했는데 곤죽이 되서 혼날까봐 얼른 돼지밥통에 쏟아붓고 어른들 논밭에서 돌아오기전에
부리나케 마음을 졸이며 다시 했는데 그런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네요.
그렇게 엉터리 살림을 살았는데도 자기가 시집온후 해가 갈수록 재산이 느니 허물이 다 묻혀지더라네.
지나고 나면 서럽던 것도 배를 곯던 것도 다 웃을 일이 되고 추억이 되나봅니다.
찬정아~
"때려 실으면 15명~" ㅎㅎㅎ
너땜에 새벽부터 낄낄대고 웃는다.
네 글을 읽으면 가려운데를 긁은듯 아주 시~ 원하다.
' 때려 실으면 15명도 태운다 ' 그 소리는
남편의 기타동호회의 한사람(중년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예요.
그 기타교실이 집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곳인데 가끔은 선생이 자신의 연습실로
(음향이 갖춰져있다나 뭐라나)모이라고 할때가 있고 거기가 좀 멀어요(차로 40분)
그럴때 요 얌체같은 여자들이 우리남편이 즈이들 다 태우고 기타 다 싣고 갔으면 한다네요.
보통때는 가까우니까 스쿠터 타고 갔는데 어느날 그차 타고 온걸 보고는 나름 통박을 굴렸겠죠.
아뭏든 여기 사람들 마음속은 비단결 같은지 몰라도 말뽄새는 영 ~
화림이 언니
언젠가도 시원하게 잘 긁어준다고 그러셨는데
다음엔 더 잘 긁을라고 쇠갈퀴를 들고 넘빌지도 몰라요.
순호 언니
내가 효부는 무슨 ~ 당치도 않게.
요즘 볼 일이 있어서 우리 어머니네 가면 이십분을 못 앉아 있어요.
한 얘기 또 하시구, 또 하시구 하는게 지루해서.
대놓고 울 엄니한테 뭐라 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론 을매나 구박한다구요.
찬정아~
나도 아버님이 한얘기를 자꾸 하셔서 "아버님 그 얘기 벌써 몇번째 하시는 거에요?" 대놓고 그런적도 있거든?
그러면 지지 않으시고 그래도 또 들어보라고 하셨더랬어 ㅎㅎ
근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대로 성의껏 들어드린적이 한번도 없었던것이 너무 맘에 걸리더라.
친구들 얘기는 성의껏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고 맘도 헤아려주고 하면서 말이야.
한번쯤 성의껏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그래야 돌아가심 후희안된단다.
모시지도 않고 이런얘기하는 사람은 무척 얄밉지만 난 오래 모셨으니까 해도 되지? ㅎㅎ
난 네가 쓴 글이 너무 재미있고 감칠맛있어.
자주 글 올려라.
어제밤 이야기~
어제밤에 스마트폰 카톡에 남편 친구가 새로온 친구로 등록됬다.
부인이 치매인데 집에서 계속 돌봐주다가 너무 심해져서 얼마전 요양원으로 보냈다.
내가 반갑다고 인사하고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는데 이젠 좀 쉬시라고 했더니 쓸쓸하던 차 였던지 끄려고 하면 또 띵동~ 계속 문자가 오는거다.
우리 남편은 소주 한병 마시고 잔다니까 옛날처럼 많이 마실까봐 나보다 더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한참 얘기하다가 졸립기도 하고 좀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ㅎㅎ나 이제 자야한다고 하고 껐다.
자려는데 또 띵동~ 내 초등 단짝 친구다.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나랑 정서가 맞아 내가 아주 좋하하는 친구다.
이 친구는 제작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주 열심히 사는 친구다.
한참 문자 주고 받다가 문뜩 두사람 소개시켜줘서 밤에 쓸쓸할때 펜팔처럼 친구하라 하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전 남편이 일어나서 내가 어젯밤 이야기를 했다가 혼만 났다.
아직 부인이 있는데 뭔소리 하는거냐고 화를 내서 무서워서 그것도 좋은 일아닌가 싶어서 그런생각을 해봤다고 아님 말라고 하니까
"이 여자가~ 이상한 소리 하네" 한다.
그럼 당신 친구 혼자된 사람 좋은 사람 있음 내 친구 소개하라고 결혼은 귀찮고 그냥 쓸쓸할때 카톡으로 대화하게 함 된다고 하니까
상처한지 7년 쯤 된 아주 좋은 친구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만간 둘이 소개시켜줄것 같다.
남편 있는 나도 가끔 쓸쓸한데 혼자되면 얼마나 쓸쓸하겠니~
카톡으로 문자 주고 받으면 치매도 안걸리고 말야.
요기 잘 들어오는 춘선아~ 찬정아~ 나 잘한거지?
화림아~
참말로 심란하구나...........
어쩌다가 우리나이가 치매걱정까지 하게 되었다냐
두사람 다 착한사람들인데 말이지
내가 요즈음 오직 열심히 보는 월화드라마 김 수현의 "천일의 약속"의
여주인공인 수애가 삼십대에 치매여서........설정이 김 수현 답구나 했는데
......뇌 속에서 일어나는일이니 뾰족한 수도 없고
특이한 연령의 설정이지만 뻔한 결말일텐데도..........
이 드라마가 있는날이면 자연스럽게 채널을 돌리게 되네
요즈음은 한정된 나이 상관없이 평등하게 병들도 앓게 되니말야
문명이 발전해 나가는 속도와 상관관계가 있는건지 무관한건지
수퍼라는 이름으로 병균도 무장을 다시한다고도하고
우리나이에 치매라고하니........쓸쓸한 생각만 나네그려.
화림이 시아버님은 아주 심한 치매는 아니셨던걸로 아는데 그저 옛날 어른들
말씀대로라면 망령끼가 생기셨던거로 알고있네
우리집도 친정부모님 두분 시아버님 이렇게 세분이 치매셨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가슴아프다.
친정부모님은 친정 문제여서.........내 소관이 아니였지만
가끔 전해듣는 말은 미어질것같은 가슴 아픈 상황이였고 직접 모실 상황도 아니였지만
출가하면 친정부모님한테 불효는 자연스럽게 하게되는구나 했었다.
시아버님 마저도 치매로 고생하시다 가시고..........
다시 회심한 생각이드는구나
자꾸 한소리 되풀이 하는것으로 찬정이 시어머님도 멈추시면 오죽 좋으랴.
이젠 부모님도 부모님이시지만
친구네가 좀 이르긴 했지만..........십여년 세월이 너무 빨리 간걸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그리 먼 문제도 아니겄지싶다.
은희언니~
좀 쉬셨어요?
죽을똥 살똥 김치 에구~ 나까지 괜스리 힘든거 같아요 ㅎㅎ
이젠 꾀좀 부리세요.
언니~ 그 부부 아시죠?
정말 맘이 많이 아파요.
그래도 요양원에 가면 애들은 못알아봐도 남편은 알아본다네요.
병원을 벌써 3번이나 옮겼데요.
여기도 마땅치 않아 옮기고 또 저기도 ~ 그분 정말 애처가였어요.
얼마전 모임에서 봤는데 얼굴이 많이 안됬더라구요.
부인 수발 하느라~ 우리도 요양원으로 보내야지 너무 힘드시겠다 했지요.
언니~
건강 잘 챙기시고 순호번개? 오시나요?
그때 뵐께요.
화림아~
그 친구 6년전만해도 우리집에서 모인 2기모임에 참석해서
지 남편이 나를 잘 알고있노라고 반가워 했었는데 말야.
여흥시간에 노래방 열어놓고 그 친구가 아주 고운모습으로 노래하던 모습의 사진이(아래 26번 페이지 30번)
독사진으로 올려져 있단다.
불과 6년전인데.........그 모습이 간데 없이 사라졌을테니.........
어제 글을 올려놓고 몇번이고 들여다보면서 저절로 ....에고 하느님" 해지데.
그 사진속에 친구중에도 힘든 암수술한 친구 얼굴도 보이고
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
모든 주위에 친지들이 어려움을 떨쳐내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오늘 형옥이 합창제엔 못오니?
풀륫팀 모이는거로 아는데말야
언니~
네~ 약속이 있어서 못가게 됬어요.
그 언니 사진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올 초까지도 모임에 집에 둘수 없어서 남편이 데리고 나왔는데 오면 화장실은 제가 데리고 갔거든요.
손닦아주는데 거울을 보고 "야~ 저기 많이 보던 여자가 있네~" 자기 얼굴보고 그러더라구요.
언니~ 우린 봄날 동생들 기를 많이 받아 치매는 안걸릴것 같은데~
몸좀 아끼시고 건강히 잘 지내세요.
치매만큼 잔인한 병이 없다는 생각이예요.
우리 친정 큰어머니가 치매로 10년을 넘게 앓다가 아흔이 다 되서 돌아가셨는데
그 옛날에 경기여고를 나오시고 욕은 커녕 말 소리 조차도 조용조용하시고 자애가 끔직하셨던 우리 큰어머니가
상상할 수도 없이 피폐되고 인격도 없고 염치도 없고 끝없는 의심으로 간병인이 못 견딜 지경,
그전에 우리엄마에게 2백만원 들어있는 통장을 살짝 보여주며
" 이 통장은 나 죽을 때 지저분한 일 해줄 사람 주려고 따로 해 둔거야. 난 자식들에게라도 그런 일은 안시키고싶어.
싸고 누워 석달이면 죽어지겠지 " 하셨다며 우리 친정 엄마가 ' 나도 큰어머니 처럼 그런 통장하나 해둘란다 ' 하셨는데
우리 큰어머니 10년 넘은 치매에 그 100배쯤 쓰고 돌아가시고
우리 엄마는 200만원짜리 통장을 마련해뒀는지 어쨌는지 병원에 입원한지 89일만에 돌아가셨지요.
큰아버지 돌아가시고 몇년간 혼자 사시고 치매 진단을 받아 연변 조선족아줌마가 돌보다가 (몇명이 바뀌며)
아들네로 가셨다가, 딸네도 좀 가 계셨다가 (가시는 곳마다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나중엔 요양원에 입원하셔서 돌아가셨지요.
내일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너무 졸려서.
천정아~
정말 잔인한 병이란 말이 맞다.
집에 둘수 없어 남편이 부부모임때 데리고 나오면 이 언니가 화장실을 가면 안와.
나오는걸 잊어버려 화장실에서 그냥 앉아있는거야.
우리 안에 잠재되있는 이기심, 욕망, 질투 이런 안좋은 감정들을 이성으로 절제하고 사는건데 치매 걸리면 그런 감정들이 어김없이 노출되니 큰일이지.
우리 남편 친구도 몇년 고생하다가 간병인에게 욕하고 난리라 할 수없이 요양원에 보냈어.
암이 무섭다 해도 몇달 못사는걸 미리 아니까 뒷처리를 깔끔하게 하고 갈 수 있더라.
우리 친정엄마도 두달 남았다고 하니까 얼마나 뒷처리를 잘하고 가셨는지~
절대로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고 갈 수 없다는 점에서도 치매는 정말 잔인한 병이야.
지금은 요양병원이 많아져서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십오륙년전엔 재택 치매환자 간병인으로 연변 조선족 아줌마를 많이 썼잖아요.
정신 들고 나고 하는 노인네 수발만 잘 하면 먹는 것, 자는 곳, 왠만한 입는 것도 해결되고
월급 100만원(그때는 그랬습니다)은 알토란같이 모을 수 있어서 서로 하려고 했다는데
치매 환자 간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생사람을 잡는 일인지 진득하게 있지 못하고 박차고 나가더랍니다.
다른병 보다도 치매 환자 돌보기는 전문 요양병원에 의탁하는 것이 서로가 사는 길 아닌가 싶습니다.
저 역시도 울엄니가 지금이야 노인성 정도로 보이지만 진짜로 치매다 싶으면 누구 눈치 보고 말고 할거없이
요양 병원에 모시려고 합니다. (이미 가족간에 합의된)
근데 미리부터 이렇게 선언을 할 필요는 없는데. 자랑도 아니고.
그렇게 십년을 넘게 치매를 앓던 우리 큰어머니
둘째아버지(시동생이지요) 돌아가시고 열흘만에 돌아가셨어요.
나는 일본에 있을때라 초상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내 동생이 갔다와서 전하는 말이
둘째아버지가 ' 먼저 가 계신 형님곁으로 내가 잘 모셔다 드릴테니 형수님도 애들 고생 그만 시키고 가십시다
얼른 내 뒤 따라 나서슈 ' 했는갑다고.
박찬정 글은 알아서 따로 파일로 맹글어 놓고 낭중에 하나로 묶어 책 한 권 만듭시다.
제목은 뭘로 하면 좋을까나.......
책 만들 것 많네.
은범이 일기, 캐나다 통신, 김포 길, 미선이 언니 사랑방 이야기, 대전댁 이야기.............
그러지 말고 한 일 년 후에 책 한 권 만들자구요~
동감이유.
스쳐가는 일상 중에서 잡아두고픈 귀한 단상을 부지런히들 잡아내셔유.
우리 삶이 남길 수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이 될테니 말유.
글만 많이 모아 놓으면 책 내는 건 시간 문제 아뉴?
오늘 홈프러스에 갔는데 글쎄
하나 들었다면 빅 싸이즈, 두개 들었다면 보통 싸이즈로 보이는
신상품 생리대 쌤플을 나누어 주고 있는거야.
안 보는것 처럼 얼굴을 힐끗 보더니 난 안 주네. 뭔가 손해 본 느낌이 확.
다시 한번 카터를 천천히 밀며 그 앞을 지나 왔다.
또 안 준다. 섭섭
실은 쓸 데 없기는혀도 ~
공짜로 주는 것 못 받은 상실감에 골똘하여
정작 사야 할 것은 깜박 잊고 카운터까지 왔다가
다시 그 앞을 지나가려니 좀 쪽 팔리는 것 같아서
다른데로 돌아서 갔다.
그 상실감 진짜로 꽁짜를 못 받은데서 오는 상실감인가 ~
아파트 8층인 우리 시가에 갔다가 엄니와 같이 나왔다
울 엄니가 문을 잠그시는 동안 에레베이터 ' 내려감 ' 표시인 역삼각형을 먼저 눌러 두었는데
울엄니가 또 누르려고 하신다.
" 제가 눌러 놨어요. " 했는데도 ' 올라감 ' 표시를 다시 누르시며
"아이다 ' 올라감 ' 을 눌러야 에레베이터가 올라올거 아이가"
" 그런가 ~ ~ "
나도 순간 착각 치매끼도 전염?
우리 남편이 해준 웃기는 얘기
하루에 집에서 한끼도 안 먹는 사람을 영식님
하루에 집에서 한끼 먹는 사람을 일식씨
하루에 집에서 두끼 먹는 사람을 두식이
하루에 집에서 세끼 다 먹는 사람을 삼식이 쉐끼
여기까지는 나도 들어서 알고있었고.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 먹는 사람을 간나 쉐끼
하루 세끼에 간식에 밤참까지 챙겨 먹으려드는 사람을 종간나 쉐끼
또 한 '쉐끼' 있는데 그만 할라요.
난 1층에서 13층에 가려고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 내려오라는 표시의 버튼을 누른적이 있는디....
마침 곁에 함께 서 있던 야무져 보이는 아줌마가
핀잔을 주듯 신경질적으로 오름 표시를 누르더구먼.
순간 헷갈리고 무안하드만.
언니는 그런적 없쥬?
저는 오늘 아침에 학교 간다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보니
손에 성경책이 떡하니 들려 있더라고요.
오메 이게 뭔일 ~
부랴부랴 다시 아파트 문 열고 성경책을 현관에 던져 놓고 갔슈.
아니 시간을 보니 세여자가 모두 자정이 가까운 시간대에 글을 올렸구만
난 다시 감기 재발혔는지 콧물에 기침꺼정
정말 .........건강 조심하라고 삼지사방에서 인사를 해주더니
일년에 한두번 감기인가 하다가 지나가는 그것이
자리를 잡는거여 뭐여........이 내몸 정말 한물갔나보네그려
아침녘에 우리 보리녀석 제집으로 끌여드리려 하다 요 녀석이 쥐새끼 잡으려고
집중하느라 듣는척 마는척해서리 시간끄는데
손주는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가오지요....춥기는 하지요
그저 울안에 가두어 두는것이 애처롭기도하고 집도 지킬겸 저녁에 대문닫고
항상 풀어놔주긴 하는데.......이젠 이일도 일처럼 느껴지네
글고보니....... 찬정이가 열거한 ......쉐끼 중..........ㅎㅎㅎ
마지막 고거시가 우리집에 상주하고 계시니
그래서 가끔 새벽 한 두시까지 있기도 하지요~오~
오늘은 신세가 바뀌여서 약달여 주는것 받아마시느라 한시에 약마시고
자려니 잠이 천만리 달아나네..........
컴을 안꺼났길래 끄려다 들어와 이 새벽에 찬정이 글에 웃다가 나도 몇자 적고나서 자야겄네.
그래도 ........
난 그 ....뭐뭐뭐한 쉐끼가 징그럽게 귀찮을망정.....
혼자서는 더 사는게 징그러울것같아서 웬수라고 욕을 욕을 하더라도
오래도록 나로하여금 욕을 바리바리 하게 해 주었음 한다오
은희 언니
감기는 다 나으셨어요?
일찌감치 해넣으신 언니네 김장은 새곰새곰 익어갈텐데
여기는 아직 김장할 생각들을 안하네요.
내가 오늘 들은 기가 찬 일.
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건강 검진을 여태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하려고
병원에 예약 전화를 했네.
" 건강 검진 예약 좀 하려고 합니다. "
" 무슨 과목 받으시려고요? "
"저는 ㅇㅇ세 이니까 기본검사하고 암검사합니다. "
"위 내시경 검사는 예약해야하고 다른 검사는 예약 안 하고 8시간 공복으로 오시면 됩니다.
" 대장암 검사 하려고 하는데 변검사 용기나 뭐 그런거 안 보내줍니까?
" 보내주진 않고요 그냥 담아오시면 되요. " 여기서부터 기가 차기 시작했다.
" 어디다가요? "
" 적당한 데다 담아오시면 되요. 원래는 병원에 오셔서 하시는 건데
집에서 준비해 오실땐 깨끗한 데다 담아 오시면되요. 다들 그렇게 하세요. "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낙후된 대국민 의료 서비스인가.
일본을 비교하는게 국민감정 상하는 비교지만 내가 아는게 거기뿐이 없으니까
일본은 건강검진 안내서와 함께 두번에 걸쳐서 채변을 할 용기가 두개 같이 들어 있어있다.
아니 그게 큰 경제적 부담이 간다면 옛날에 기생충 검사 할때 쓰던 변봉투라도 하나씩
동봉해 주면 되지않냐 말이지.
지극히 보통인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서
서울 건강보험 공단에 전화로 ' 적당한 데다 담아가는게 맞는가? ' 하고 문의를 해봤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다며 병원에 가서 용기를 받아오든가 적당한데다 담아 오든가 라네.
아이구 참 ~국민을 개떡같이 아는 이 나라는 뭐고
그리고 그런 하류 국민 대접을 받아도 묵묵히 시키는대로 하는 국민은 뭐야.
???어!!!!!! 그래???????????
나는 삼성 병원에서 했는데 채변해 오라고
프라스틱으로된 채변 변기를 보내오든데...................
병원마다 다른가?
내가 어제 제너럴 냉장고를 지펠로 바꾸면서
저 큰 냉장고를 어쩌나? 하고 고민 했었어. 내가 딱지 붙여서 내 놓고
자리를 비워놔야 새 냉장고를 들여 놓을텐데 하고.............
근데 삼성전자 써비스 팀에서 깨끗이 처리해서 내놓는 것도 아니고
가져가고, 새 냉장고를 들여 놓아 주는데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르겠더라.
속으로 신나했지. 폐기물 딱지 값 굳었다고.............ㅋ
자기네 냉장고가 아니고 외제 냉장고인데도 가져 가니까 좋았던거야.
누군가가 재활용 쎈타에 전화하면 가져 간다고해서 전화했더니 외제는 안가져 간댄다.
아~처량한 외제 냉장고 신세여~~~~~~~~~~~~~~
고장 한번 안나고 씽씽 잘 돌아 가는데 아마도 전기세 싼 나라에 가면 대접 받을꺼야.
사람 팔자 시간 문제가 아니라
냉장고 팔자 시간 문제가 되었다.ㅋ
?찬정아~
그려........감기도 염체가 있는지 요번참엔 쉬 물러나네그려
그러나저러나 니들보곤 자정이 가까운데 안자고들 뭐해여 하면서리
난 이 시간에도 잠을 못이루고 신나서 살아있단다
이 노친네가......오후내내 사진작가 이름 생각해 내느라 고민고민하다가 서리
안자던 낮잠도 설픗 들기도 하고......꿈인가 생시인가 그 이름 생각해내서리
어이구....그래도 아직 내머리 기억력세포가 단체로 죽진 않았네그려....
신퉁해서리 스스로에게 박수꺼정 쳐 주었다는거 아니니......ㅎㅎㅎ
그리고는 우리기수방에 기념으로다가 다 올려놓고 희희낙낙이다
종종 적재적소에서 필요할때마다 떠 오르지않는 낱말들 때문에
말 하다가도 글 좀 쓰려다가도 ........끙 끙 매니 말이지
에잉~!.......때려치자 하기가 일수였는데...오늘은 기억력지수가 맑음이다.....ㅎㅎㅎ
낮잠도 한소큼 잤으니 아직 씽씽하고 수면제 대신 책이나 한줄 읽고 자면쓰겄네
근데.........그 동네는 아직도 채변을 한다냐
난 오년전인가 더 오래되었는가 대장 내시경으로 암검사를 했는데말이지
허긴 그 하초에 내시경 넣고 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그 방법으로 하기도 하나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멀었다
정치 돌아가는걸 보렴..........
우리가 이 정도로 사는걸 보면 신기할 정도지뭐
그래도 우리 하나 하나가 열심히 생각하다보면 빛이 보일 날이 오겄지 한다.
언니
병원은 모르겠는데 건강검진센터에서는 대장 내시경 하기 전에 변검사를 미리 하더라구요.
우리 동네는 플라스틱 용기를 주던데 거긴 전화로 물어서 그랬나?
삼성병원이야 비싼 돈 받으니까 서비스가 보통수준을 넘겠지요.
이러다보니 FTA걱정들을 안할 수가 없겠어요.
비싸더라도 서비스 좋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테고(특히 건강에 관계되는 건 더 민감하쟎아요?)
아닌 사람들은 반대로 상실감이 클테고........................................
그래도 너무 비관만 할 건 아니에요.
신혼 초에 남편이 큰 병을 앓았거든요.
그 때와 지난 2007년 제 수술할 때 비교해보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변했어요.
낙제생이 공부 열심히 해서 80점까지 왔는데 우등 못했다고 야단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는데 정치나 사회문제가 거기에 못미치니까 자연히 나오는 불만인데
앞으로는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요?
요즘은 국민들이 깨어 있어서 위정자들도 함부로 못하니까요.
믿음대로 된다는데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요.
찬정아 ~
우리 동네 병원에서도 건강검진 신청하면 채변 봉투를 주거든.
삼성 병원 아니어도 준다고..
잘 퍼담으라고 나무 막대기도 같이 주고. 말야. ㅋ
그러니 한국이 멀었네 어쩌네 하는 속단은 좀 거시기허다.
굳이 일본에다 비교해서 열받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생각이 드네.
그냥 니네 동네 병원이 좀 후져서 그렇다고만 혀.
그럼 맞장구 같이 쎄게 쳐 줄테니께.
오늘 같이 뛰고 노는 여자들 클럽 총회가 있어서 갔다가 거기서
복분자주 몇잔, 그 비슷한 맛의 머루주 몇잔마시고 왔더니 알딸딸.
유자 썰어야 하는데 미뤄두고 PC를 끌어 안고 앉았습니다.
개선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갈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건강 관리 공단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소소한 그런 것부터 개선되어 나가는 것이 ' 국민을 위한 국가 ' 아니겠냐고,
이젠 내터로 삼으려고 하는 거제도
자연 그 자체로는 어디 빠지지 않게 좋지마는 1년여 살아보니 한심스런 것도 참 많아요.근 이십년 조선경기가
좋아 7, 8만명 조선소 근로자에게 고임금(30대초반 연봉 6000천만)주었습니다
거기다 부모가 농사짓던 땅값이 올라 돈 버는 자식들에게 비빌 언덕까지 만들어 주어
좀 안된말이지만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돈만 듬뿍 쥐어준 꼴이라
큰 차 사고, 큰 집 사고, 배 불리 먹고, 쉽게 샀다 휘닥 버리고,
남 따라서 자식 가르친다고(거가대교 생기기전에 토요일이면 사천공항이 서울로 레슨가는 거제도 아이들로
바글 바글했다고 합니다) 애나 어른이나 바람이 잔뜩 들었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요마는 .
우째거나
우리가 이런 거제도에 와서 사는데 크게 고민할 꺼리는 없습니다.
아이 교육이야 이제 손을 떠났고,
남은 생애 생계는 걱정하지 않은 만큼 꿍쳐놓고 있으니 아껴쓰면 되는데
걱정은 병이 났거나 병을 키우고 있는게 아닐까 의심될 때이지요.
거제도내 의원수는 포화상태라고 합니다만 내 몸에 칼을 대게 맡길 곳은
의문입니다.
하긴 얼마 전에 택시 기사에게 들은 바로는 거제도 GNP가 한국 제일이라더라.
강남보다 높대.
근데 요즘 레슨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란다.
아예 재벌이라면 모를까 요즘에는 엄마들이 알아서 미리부터 그런 거는 피해간다구.
섯부른 예술이란 게 얼마나 가정을 파괴하는지 모르는 시골분들이(실례) 멋모르고 하다가 결국에는 손들지
갑자기 돈 생긴집과 처음부터 잘사는 집은 정서가 다르쟎아?
그냥 남아도는 돈으로 멋진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목적으로 하는 집은 거의 없고
외국이라도 좀 다녀 오면 명예와 부가 저절로 생기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 우리교회에도 좀 있어.
그런 사람들에게는 충고도 안통하기때문에 우리도 절대 말 안하지.
자기애 엄청 잘한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나중에 보면 외국에 가서 입학시험 다 떨어지고 다시 오고 그래.
근데 찬정아.
요즘 마음이 좀 허한 겨?
인명은 재천이라고 미리 걱정할 게 뭐 있냐?
이번에 가서 보니까 연초 우리 시댁 옛날 고향집을 먼발치로 보고 거가대교 건너오니 30분이더라
부산도 의료시설이 최고라고 말하기는 좀 거시기 하지만 그래도 좀 낫지않겠니?
난 요즈음 일본에 가면 오히려 숨이 막히는 부분이 있던데. ....
찬정이야 완전 그나라 사람들처럼 살았으니 지금 불편한 게 많을꺼야.
답답할 땐 거가대교 건너서 우리집이라도 오려므나.
생전 해보지 않던 일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일년간 매달려 있느라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던 한 해도 이제 끄트머리에 섰습니다.
어제 일본에서 아이가 와서 오늘 새 집 뵈주러 갑니다.
그러는김에 새 집에서 점심때 찰떡 한되 맞추고 식혜 좀 하고(노인들을 위해)
아이와 젊은 세대를 위해서는 피자와 치킨을 시키고 ,
바깥 화덕에 큰 냄비를 걸고 요즘 남해에서 많이나는 대구를 넣고
대구 떡국을 끓일려고 합니다
해안가 사람들은 싱싱하고 맑은 맛이 나는 생선을 넣고 떡국을 끓이기도 하는데
그거야 선수들이 몇명이나 있으니 커다란 대구와 떡국꺼리만 사다 놓으면 누가 끓여도 끓이겠지요.
여기는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 생선회 빠지면 안되는 줄 아니까 회도 좀 사고,
우리 시어머니와 장승포 시고모, 그동네 사시는 시이모
부산에서 시누이네 네식구가 오고,
시조카들이 오고,
모두가 시가 식구들뿐
아 ~ 역시 여기 거제도는 시가고을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엊그제 시집온 새댁도 아니고,
혼자 외톨이라고 홀짝거릴 나이도 아니니 떨거야 없습니다.
제가 연말 인사겸 뚱쳐온 글이 하나 있어서 그거 올리러 왔다가 딴 소리만.
요즘 이 PC가 기껏 친 글을 싹 집어삼키는 배반을 때릴 때가 있어서 일단 여기서 끊고,
시시시시시로 이어지는 얘기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맞아요~ 홀짝거릴 나이가 아닌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찬정이가 해 놓은 게 어딘데.....
외려 그분들이 며느리 곁불 쬐러 다가오시겠지.
얼마나 맘 부풀고 신나시겠어.
은희 언니네 이야기며 찬정이네 이야기며 이게 진짜 살아가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
방학하자마자 완전 흩뜨려놓고 난장을 치고 있으니 어디부터 치워야 할지 모르겠네.
창문도 닦고 싶고, 책장도 정리하고 싶고, 옷장도 정리하고 싶고 한데......
어제 마신 포도주가 잘 안 깨네 그려...........
내가 이래서 포도주 안 먹는다니까~~~
암튼 해피 뉴 이어여!!~~~
세월이 가면서 여러 가지 추억과 기억이 쌓이고 또 잊혀지곤 합니다.
때로는 옛 생각을 하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위험했던 순간에 다시 한번 섬찟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문득 옛날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 때 그 사람.
20여년 전 제가 종합병원에서 내과과장으로 있을 때 모 과장이 영어회화를 배우자고
제의했습니다.
의사와 사무직원등 8명이 모여서 1주에 한번씩 강의를 받았습니다.
강사는 충남대에서 교수로 있던 미국인이었는데 처음 만나자 무척 놀랐습니다.
뜻밖에도 나이가 70이 넘은 노인네였고 기력도 썩 좋지 않은듯한 모습이여서 이런 사
람에게서 뭘 배우겠다는 것인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하지만 강의를 들어보니 상당히 잘했습니다.
과연 프로다운 느낌이 들었고.
이 양반은 언어학과를 졸업후 주로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필리핀 ,일본, 그리고 마지막 기착지가 한국이었고.
한국에 온 지도 꽤 되어서 한국말을 왠만큼 할텐데도 수업시간에는 일체 영어로만 진
행.
주로 디스커션식으로 되던 안되던 영어로 회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개인적인 대화도 하고.
이 사람이 저보고 "당신 부인이 몇 살이냐"고 물었고 내가 대답을 했더니 자기 부인은
훨씬 어리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자기 부인은 20대의 한국여자라는 것.
자기 장인이 자기보다 어리고 자기와의 결혼을 반대해서 딸을 때려서 쇄골을 부러뜨
리고 부녀의 인연을 끊었다는 것, 부인은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여 LA에서 혼자 사는데
자기가 생활비를 보낸다는 것(자기는 미국에 가면 할 일이 없어서 한국에서 돈을 벌어
야 한다고)등을 애기 했습니다.
순간 이 사람이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날 수업하는 날인데 이 양반이 시간도 조금 늦게 들어오더니 꺼이꺼이 울면서 횡
설수설하기 시작.
진정시켜서 들어본 애긴즉 자기 부인이 미국에서 전화를 해서 죽고 싶다고 했다는 것.
그 여자는 이미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났다 하고 LA에서는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안하고 집에만 들어박혀있다고.
혼자 살면서 왜 직장을 가지지 않느냐고 하자 여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많은 여자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이 선생은 자기는 지금 자살을 해야겠으니 권총을 구해달라고 했고.
한국에서 총을 구할 수 없는 이유를 한참 설명하니(자기도 알텐데) 이제는 자기는 술
을 마시다 죽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한번 다른 여자를 사귀어 보지 그러느냐?" 고 했더니 이 양반은 정색을 하더니 "Don't you love your wife?"하면서 화를 내고 내가 그 기세에 놀라서 농담이라고 사과하고.
그렇게 한 시간을 신세타령과 위로, 설득등으로 보냈습니다.
시간을 마치고 나가면서 자기를 상대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강의를 안했으니 이 시간 강
의료는 받지 않겠다고 해서 이것도 영어회화 실습이라고 애기하고 강의료를 건넸습니
다.
그런데 결국 그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그 양반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얼마 있다가 나도 개업을 위해 그 병원을 떠나고 강의도 자연스럽게 폐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았으면 아흔이 훨씬 넘었으니 이제는 강의를 못하겠고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많겠지요.
그 여자는 아직도 자살을 안하고 살고 있는지
비교적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때나마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생각하며 그분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