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이 방은
짧게 스쳐간 생각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느꼈던 감동이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얻은 깨달음 등...
우리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이 분명하나
자칫하다 보면 놓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한 귀퉁이를 잡아두는 메모장입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도 좋고
자기의 기억 창고에 저장을 하기 위한 암호같은 독백도 좋습니다.
그저 메모를 하듯이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갈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달려만 가고
우리 머릿 속 기억 주머니의 끈은 어느새 느슨해져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제대로 간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하면 오래 잡아둘 수 있을까?.
언뜻 스쳐가는 좋은 생각들과
아주 짧은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 남긴 큰 이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허망하게 잊혀지지 않도록
문득 떠오르는대로 이 메모장에다
스쳐가는 단상들을 꽉 붙잡아 두시기 바랍니다.
순영 언니
멀찌감치서 언니 춤 실컷 봤는데 저는 테니스장 풍경을 적나라하게 실황 중계했나요.
남편하고 편만 안 먹으면 그저 즐거운데 편만 먹었다하면 언제나 .
그렇게 잔소리 듣고, 주눅들고, 들이박다가 쌈박질로 끝나는 이상한 취미를
십육년째 줄기차게 하고 있어요.
오늘 삼성 크럽 월례회 날이라 가야 하는데
어제부터 괜히 이가 아파서 볼따구 한쪽이 부어 짝재기가 되어 있어요.
이가 아파도, 걱정꺼리가 있어도 일이 태산같이 있어도 다 잊어 버리게 재미있는 게
이노무 테니스니까 가긴 가야죠.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 춘다는데.....ㅉㅉ
여기다 잘풀어놨다.
속이 씨원하지?
옛날에 우리 큰오빠네하구 작은오빠네 하구
차를 비슷하게 샀단다.
난 그때 차가 없어 두집 따라 번갈아 여행 갈적 마다 낑겨갔지.
큰올케가 운전할때 우리 큰오빠는 있는대로 잔소리를 퍼붓는다 .
작은 올케가 운전할때 우리 작은 오빠는 길게 누워 잔다.
언젠가 설악산 들어가는 산비탈 에서 올케들이 운전을 하다가
똑같은 그자리에서 기어 조작을 잘못해 차가 서버렸다.
큰오빠는 내리라고 소리지르고 자기가 대신 운전하며 계속 투덜댄다.
작은 오빠는 길게 누워 있다가 내려~ 한마디하곤 자기가 대신 운전한다.
여전히 입으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한배에서 나온 형제들이 이렇게 성질이 다르니...
난 그들을 보며 혼자 웃었다.
오늘날 올케들의 운전실력은 어떨까?
큰올케는 운전대를 놔 버렸다.
작은 올케는 승승장구 운전에 도사가 되었다.
난 어느 꽈일까?
아마도 큰오빠 같은 식으로 할것 같다.
울딸도 면허증 따던날 자기 대학교 입학식에 운전대 잡고
내차로 가니 난 옆에서 오징어 구이가 되고
입으론 또 얼마나 시끄러웠겠니?ㅎㅎ
아마도 서방님이 너한테 스텐레스 풀었을거야.
너두 같이 풀어.
이러면서........
옥규 언니
남편과 편을 먹구 게임을 재밌게 하려고 한것 자체가 부질없는 생각인 줄은
진작에 알쥬. 근디 그 잔소리가 그냥 잔소리가 아니구
' 실전의 주옥같은 가르침이요, 애정어린 지도 ' 라자뉴.
더구나 돈 한푼 안드는 꽁짜라서 . 꼽지만 워쩌요 ?
찬정아~~~
이미 이 논네언니는 70년대 80년대에 걸쳐 이미 지나간 경험이었던 것을......
이젠 니떡 내떡하구 소 닭보듯 각자 노니니
그시절 그때가 종 종 그리워 질때가 있고......
꼽지만 꽁짜 좋은것이여!
그나마 팔 다리 기운 빠지면 다 헛것이 되니
지금 머리 터지게 잔소리 들을 때가 좋은 때니라!
막내까지 오십줄에 든 세자매가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갔다.
이남삼녀 다섯이 다 모이기는 고사하고 세자매가 모이기도 수삼년만인갑다.
미국의 시민권자인 언니
일본의 영주권자인 나 그리고 내 동생
물론 운전대는 이나라 도로 사정에 그 중 빠삭한 내 동생이 잡고,
다 커서 객지에 나가 몸에 익힌 문화가 조금씩 달라 ' 그러면 되느니, 안되느니'
서로 잔소리를 했지만 추억 주머니에서 끄집어 낸 저마다의 기억들은 닮아도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내 기억속의 여름방학
내가 3학년때
그때 외가는 정릉이었고
외할아버지 제사에 와서 데려가마 하고 엄마가 나를 외가에 떨궈놓고 가셨다.
요즘 애들 같으면야 혼자서 아무걸 타고라도 제 오고 싶으면 오겠지만
내 나이 열살땐 혼자 버스를 갈아타며 혼자 다닐줄 모르는게 너나없니 당연한 얼빵한 시절이었다
.
우리 외가엔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계셨고, 외숙모는 수도여고 선생을 하는 언니가 시집가
애기를 낳으면서 딸네 살림을 봐주고 계셨다. 좀 떨어져 있긴해도 언니네도 정릉이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있는 내집 살림을 작파하고 어쩔 수 없이 딸네 살림을 봐줘야 하는 외숙모는 하루에 한번은
반찬을 만들어 날랐는데 막간에 외가에 맡겨진 나는 그 배달꾼으로 마춤이었다.
가지나물 접시도 들고 오고,
닭죽이 든 주전자도 들고 오고,
씻은 포도도 담아 주면 들고 오고.
우리 형제들은 어릴 때 외할머니가 다 키워주셔서 외할머니라면 사족을 못 쓰게 좋아하지만
며칠밤 지나고 나니 외할머니와 지내는 것도, 반찬그릇이나 들고 다니는 심부름도 시들하고
집에만 가고 싶어서 시무룩해져갔다.
낼모레면 외할아버지 제삿날이고
그러면 엄마가 올텐데 팔월 땡볕속의 '낼모레'는 왜 그렇게 하염없이 긴지,
네다섯시쯤 대문옆 옹색한 화단에서 분꽃이 피는 시간이면 더욱 집에 가고 싶어져서.
나는 그 '낼모레' 를 기다리지 못하고 분꽃이 마주 보이는 문턱에 앉아 홀짝거리며 울었다.
외할머니가 또 '낼모레' 를 들먹이며 여름 단내나는 과일도 쥐어주고 볼따구니까지 흘러내린
눈물도 손바닥으로 닦아 주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 분꽃 피는 거 보고 집에 가고 싶다고 운 아이 ' 라고 놀리셨었다.
그 앙증맞은 꽃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나를 울렸으랴.
분꽃이 오무린 꽃잎을 펴는 오후의 그 무렵 가만히 집 생각을 해보니
우리 엄마가 저녁밥을 하려고 시장엘 다녀 왔을테고
나가 놀던 형제들이 슬슬 집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삐질 삐질 울었것지.
분꽃도 피고,
태풍도 한차례 다녀갔으니
올 여름도 이제 막바지로 가는가부다.
어제는 히스토리에 지나지 않고
내일은 미스테리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네.
그 선물은
어제의 산물이 아니라
내일로 부터 온 신비한 것이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네.
어제 그리도 바라던 내일이 바로 오늘.
그 오늘이 바로 내 삶에 주어지는 가장 신비한 선물이라네.
그래서 또 한번 설레는 맘으로 아침을 기다릴 수 있고
거친 숨 고르며 아픈 순간도 참아낼 수 있다네.
춘선아
난 어제가 미스테리라고 느낄 때가 많거든.
안 그러냐 너는?
모든 것이 거의 정해진 행로에 어쩌면 미래야 말로 히스토리일 수도 있는데...........
미래가 미스테리이길 바라며 이리저리 찾고 헤매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아이가 보고 싶었는지 어제 꿈을 꿨네.
달려들어 안았는데 어찌나 뚱뚱한지 어! 너 왜 이렇게 살쪘어? 이렇게 물어봤네.
아직도 가슴팍과 단단히 튀어나온 배가 손에 잡히네.........
이럴 땐 그냥 미래가 히스토리였으면 하고 바라지. 진심으로.
어제와 내일과 또 오늘은 모두가 소중하다.
히스토리가 있으니 우린 과거의 추억에 잠기고 미래의 설렘이 있으니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잖니.
지금 이 순간 이 홈피를 통해서 너희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 현재는 더 더욱 소중한것이겠지?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기 바란다.
어제 친정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침에 소파에 앉아서 드라마 보시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소설같은 꿈을 꾸셨댄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어린 조카가 나왔는데 너무나 선명했다고.......................................
"나도 이제 갈 때가~~~~~~~~~~~~~~ 뭐시라 뭐시라~~~~~~~~~~~~~~~~~~"
어릴 적 시험이나 콩쿨이 무서워서 내일이 싫었고
시집와서 힘들 땐 그저 막연한 미래가 그리웠는데
요즘 그저 오늘이 제일 감사하다.
양희녀석 재롱도 좋지만 일신의 편안함은 왜 이렇게 좋은지?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전에는 인천 나들이 한번 하는 게 일이었는데 난 내일 쉬러 간다.
KTX에서 쉬고 엄마집에서 쉬고 미선언니 사랑방에 가서 놀다 올꺼다.
순영언니~~~~~~
명옥이가 홈피에 못들어 올것 같애서 제가 답글 올립니다.
명옥이 오늘 우리 사랑방에 놀러와서
같이 놀다 밤 10시 다 되어 헤어졌어요.
내일 19일은 명옥이 아버님 1주년되는 기일이라 가족들과 보내게 되어
어차피 언니랑은 어긋나게 되었네요.
담에 인천오면 언니도 모시도록 할께요.
명옥이 인천오면 우리 사랑방에 꼭 둘르니까요.
우리 사랑방은 동인천역앞 우리은행 건너편 아디다스매장 옆집입니다.
언니가 동인천 오셔서 우리 사랑방 둘러주시면 영광이구요....
언니~~~
즐거운 여름 개울가에서 시원하게 보내세요.
미선언니~어제 명옥언니랑 재밌었죠?
20일에 가시남요?
이번에도 명옥언니 못 만나네요.
명옥언니 얼굴 잊어지려하는데....
어제 6기 모임을
신도에서
1박2일하고 조금 전에 왔어요.
언니 사랑방에 을메나 가고팠는데요.
제 맘 알랑가 모르실랑가???
무엇이든 처음이 설렌다.
새로 입학을 하여 처음 교실에 들어가던 순간의 설렘과
마음에 드는 친구와 처음 말을 나누던 순간의 설렘.
처음 이성으로 느껴지던 사람과의 첫 데이트에서 가슴이 터질것 같았던 그 느낌.
첫 키스를 하던 그 순간의 설렘은 심장이 멎을 듯했다.
그렇게 설렘은 유년기를 지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청춘의 상징물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 때의 설렘은 대개 사람 때문에 찾아왔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감정의 사은품처럼..
그랬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사람으로 인해 설레는 일이 쉽지가 않다.
대충 어림잡아 지레 짐작하고 .속단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방어하느라
마음 속에 두꺼운 방호벽을 설치해 놓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록과 경륜의 훈장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게 되고
쉽사리 누구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도 속아 넘어가지도 않으려고 자기암시를 건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성숙한 증거라 여기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징조요 소멸해 가는 과정의 일부인 줄도 모르고.....
무심함과 무덤덤함.
너무 기뻐하지도 지나치게 슬퍼하지도 않음이 미덕이라 여기는 것.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따위는 버린지 오래고
지난 날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도 다 내려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늙음의 증거가 아닌가 싶다.
요즘은 그 누구도 늙음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톡스를 맞고 성형을 하고
운동을 하고 건강식품을 먹고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옷을 즐겨 입는다.
뒤늦게 댄스를 배우기도 하고 취미 생활을 시작하기도 하고
무작정 가방을 싸 들고 길을 나서기도 한다.
이번 여름에 나는 우연히 설렘을 다시 만났다.
별다른 기대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해금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 소박하고 작은 악기가 내 마음을 다시 요동치게 만들어 주었다.
내 영혼에 깃들어 있던 멜로디를 형상화 시키는 기쁨이라 표현하면 너무 거창하고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소리가 신기해서 하루 종일 그것을 끼고 살게 되었다.
진작 만났으면 지금쯤 훌륭한 연주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을 애통해 할만치 나는 지금 몰두해 있다.
이것도 역시 처음이라 느끼는 감정일 게다.
설렘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 말이다.
?춘선아!!!!
어쩜 나이 든 사람의 마음을 이리도 잘 썼다니?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성숙의 증거라 여기기도 한다.'
네 말대로 마음이 요동 칠 때는 나 스스로 암시를 걸기도 했거든.
그러면서 실수도 적어지고........
나이를 훈장처럼 이마에 붙이고,
나이 값을 해야 하는 시절이 되고보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만 어느 모임에서나
맨 앞자리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하곤 한다.
허지만 그렇다고 물러 설 수는 없잖니?
이 순간도 한번 뿐인걸.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오늘인걸 .
춘선아!!!!
오팔족이 무언지 아니?
보석이름 오팔이란다.
50대에서부터 80대에 이르는 사람들 중에서
활동을 왕성하게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다이아몬드족은 못되드라도 오팔족도 있으니 위로가 되나?
해금에서 설렘을 찾았다니
얼마나 행복할까.
행복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많이 느낀다.
우리 모두 행복하자. 화이팅!!!!!!
춘선아!
순영언니 말에 동감하면서
춘선이의 새로운 설렘을 축하해.
난 요즘 시에서 운영하는 노인 문화센터에 다니는데
너무 노인들만있으니 좀 더 있다가 가자는 친구들과 반대로
그 곳에선 내가 그중 젊어서 어디에나 다 기웃거려도 대 환영이고
기초부터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있어서 좋아.
늦었다기보다 지금부터 10년후의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좋은 시설에서 의욕있는 사람들과 설렘을 즐기고 있지.
아마도 10년후엔,
춘선이가 무대위에서 우리 봄날 식구들에게 설레임의 기쁨을 줄 것 같구나.
기대하자. 화이팅!
???노인 문화 쎈타를 다닌다고?
그곳에서는 무얼 배운다니?
나이로 보면 노인은 맞는데....
그래도 노인 문화 쎈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가 다닌다고 하니
적응은 덜 되지만 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순영언니!
맞아요.
인천시에서 올해에 새로 노인 문화회관으로 개강을 했는데
주변친구들 모두 관심이 없어요.
시설도 깨끗하고
수영장을 비롯해서 50여개의 반이 있어요.
언니의 박수소리에 신이 나네요.
이래저래 앤돌핀이 쑥쑥...........
춘선아~
맞아~ 무엇이나 처음이 설렌다는 말~
우리 봄날 첨 용문사 은행나무 밑에서 만나던날 얼마나 설렜니?
마치 연애하는 것 처럼~
해금에서 설렘을 다시 찾았다니 축하해.
우리가 풀륫 하는 기분 알겠지?
풀륫을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고 무언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충족감, 그리고 매번 다른 악보에서 느껴지는 첫 만남 ~
거기다 선후배가 어울려 담소하니 즐겁고~
근데 이젠 이왕 하는거 연습을 좀 해서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젠 연습에 시간을 좀 할애하려고~
왜냐면 혼자만 너무 뒤처지면 민폐 같아서 ㅎㅎ
언젠가 우리 소음악회 할때 네가 와서 해금 연주함 넘 좋겠다.
순희야~
너 대단하다.
그렇게 노인짜 붙은데 아직은 가기 싫던데~
난 바로 옆 롯데 백화점 문화쎈터에 "실버 라인댄스" 라고 이름이 붙어서 안가고 한정거장 더가는 그랜드 백화점 문화쎈터 "라인댄스"
일주일에 한번 가는거 등록해서 다닌다.
너무 재미있어. 내멋에 겨워서~ㅋㅋ
암튼 너의 용기에 나도 박수를 보낸다.
화림아!
라인댄스 재미있겠다.
난 벨리댄스로 흔들어준단다. 호호호~~~~
고전무용반에도 들어가는데,
하고싶은 악기는 시간대가 같아서 아쉽단다.
찰랑찰랑 소리때문에 흥이나지만
거울에 비치는 아랫배의 출렁임으로 웃겨서 또 웃고 그렇게 웃어.
???순희야!!!
노인 문화회관은 어디 있는거니?
라인 댄스, 밸리 댄스 그거 참 재미있겠다.
내년 홈피 8주년 트위스트 킹은 맡아논 당상이네.
열심히 연습해서 실력을 보여줘.
그러다 보면 아랫배의 출렁 거림도
36계 할꺼야.( 요건 순전히 희망 사항이다 그치?)
아!!!!
우리에게도 날씬 했던 꽃 같던 시절이 있었는데.......
순영언니는 여전히 날씬하고 예쁘셔요.
엄살 부리시면 이 뚱보 후배 약올라요.
몇년전에 밸리댄스 배운다고 배에다 대는 찰랑이스커프만 사고는 그만 뒀어.
온 삭신이 쑤시고 잘 흔들어지지도 않아서 오히려 스트레스 받아가지구~ㅎㅎ
순희야~ 열심히 해서 우리 기절 시켜줘~~
나도 라인댄스 열심히 배울께.
아 ~~~~~니~~~~!
지금 이냥반들이 뽄대기 앞에서 주름잡으시능겨~~~~~~
아 참~!
여긴 수다방이 아니지? 3=3=3=3=3=3=.......
순영언니!
노인문화회관은 구 마다 있고 내가 가는 곳은 인천시 운영인데?
간석동 신명여고 앞에 있어요.?
시설이 좋아요.
화림아!
뒤에서 재미로 살살 하고있어.
난 허리가 약하거든.??
순호 다이어트해서 5kg뺏다고라?
휴~~~~~`` 난 자신없어.
춘선아우
다음부턴 수다방으로 자리를 옮겨가리다.
순희 언니
순호 언니가 다이어트를 해서 5Kg 뺏다는 말이 어디 있어요?
그 글 찾느라고 괜히 오르락 내리락.
' 아니 ! 순호 언니가 5k 나 뺄 살이 어디 있다고 다이어트를 혔댜 ~ ' 요로코롬 아부성 짙은 말을 하면
이거 진짜로 박찬정이 쓴 글인가 다시 보실테니까 난 안혀.
' 순호 언니 5K 빼서 어디 다이어트한 티나 나겄어요. 15K 쯤 이라면 몰라두. ' 이라면 이름 다시 볼 필요 읎슈.
마저요~~~~~
졸때루 티가 안나요.
나가 고3때 몸무게로 나타날텐께 겨울에 봅세~~~~
하긴 고3때도 웬만한 아줌니 무게였지.
내 친구 야마구치 료코(山口 玲子)의 96세된 친정 어머니가 일주일전부터 입원하여 힘겹게
하루 하루 넘기고 있단 얘기를 일본에 가서야 전화로 들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 자반을 열봉들이 한상자나 사들고 갔는데.
원래는 내가 한국에 갈때마다 사다 드리는 조미김을 좋아했는데 작년 가을에 한봉 사다드린 김자반에
요샛말로 휠이 꽂혀서 잘 잡수셨다길래 부피가 짐은 좀 되지만 사들고 간 것이다.
서로 속내를 잘 터놓지 않는 일본에서 료코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귄 친구고 그의 가족과
친정, 성장기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다.
체구가 한옹큼 뿐이 안되는 아흔여섯살 그녀의 어머니는 7년전 고관절 골절 수술을받은 후 치매가 와서
80년간의 세월은 다 잊어버리고 15살이전 일만을 어렴풋이 기억에 두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결혼한 사실도, 먼저 돌아간 남편도 다 잊었고, 자식을 여섯이나 낳은 일조차 기억에서 없어져 버렸으니
이제 넷 남은 자식과 며느리와 얽힌 관계는 다 어릴 적 친구로만 알고있다.
쓴 맛도 잊어버려 치매약이 엄청 쓰다는데 그걸 찡그리지도 않고 오물 오물 씹어 넘기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혀로 느끼는 쓴 맛뿐아니라 인생의 쓴 맛도 같이 잊어버렸다데.
가난했던 시절 초상집에서 답례품으로 받아 온 오만쥬(속에 앙코가 든 둥근빵)하나를 어린아들에게 주었는데
아이는 아끼느라 안 먹고 두손안에 꼭 쥐고만 있던 일곱살에 죽은 큰아들의 그 모습을 평생 못 잊어하며
가슴에 묻고 살았는데 치매 덕분에 그 일도 잊었다네.
벌써 몇번째 이런 위험한 고비를 넘겼는데 아무래도 이번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며,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곁에 있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마는 마지막일듯 싶어 당번을 정해 여덟시간씩 곁을 지키고 있다고.
당번표를 내게 보여주며 16일까지 짜여진 이 표까지만큼 사실런지 ~ 그러며 글썽 글썽.
장례 준비도 하고 있다면서 또 눈물이 그렁 그렁.
친정 어머니를 보내는 아픔을 겪어 본 내가
막상 어머니를 떠나 보낼 때는 여럿이 같이 닥친 일 같고,
잘 치루어야 할 행사같아서 슬퍼만 하고 있을 겨를이 없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때때로 어머니가 그리울 때가 참 많다고 했네.
좋아하시던 음식을 봐도, 엄마가 입으면 참 어울릴 것 같은 옷을 봐도,
우리 엄마 사드리면 참 좋아 하실 것 같은 편한 신발이 눈에 띄어도,
자랑할 꺼리가 생겨 울 엄마가 아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을 때도,
세상이 야속스러워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 영원한 내편인 친정 어머니' 가 한없이 그립더란 나의 말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그래~ 찬정아~
언제나 어떤 일에서나 내편이었던 친정엄마~
80도 못살고 76세로 너무도 빨리 가셔버린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글이구나.
세월이 가니 많이 잊고 살다가 가끔 사무치게 그리울때가 있더라.
참 재미나네요.
이 방에 오랫만에 왔는데..
우리 막내 영국갔다고 얘기는 많이 했죠?
막내하나 없는데 집이 절간같고 청소할것이 없어요.
장보다 뭘 집으려면 막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살것도 없어요.
우리 식구가 5명이나 되는데 다른 사람 자리는 별로네요.
그런데 , 하루 한번씩 영상통화 나 그냥 인터넷 전화로
하루 일과를 조잘거려요. 그 시간만큼은 밝고 활기차요.
가기전에 스카이프를 깔아놓고 시험통화도 해보고,
엄마 교육도 시키고.. 컴퓨터 전화받는 교육이요...
노래하는걸 좋아하지만 음악선생딸이 조가 바뀌거든요.
그런데 점점 나아지긴 했죠. 그 학교에서 합창시간을 수강한대요.
배운 노래를 해준다면서 '호산나'라는 노래를 했어요.
쬐끔 조가 바뀌었는데 잘했다고 했어요. ㅎㅎ
이번주는 아는 노래라 지루했다고 했어요.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를 느끼며, 이렇게 떨어져 사는게 뭐 좋은가~~~
뭐 그래요. 나중에 옛말 하며 살겠죠.
에구~
명랑한 우리 혜숙이가 막내가 많이 보고 싶어 기분이 좀 다운되나보네.
그래도 매일 영상통화하니 얼마나 다행이니?
많이 배우고 더 성숙해져서 돌아올꺼야.
엄마도 떨어져 있어봐야 고마운것도 알테고 말야.
혜숙이
차떼기 도매장사꾼들이 물건을 부려 놓느라 북새통을 떨고 비켜나면
그 자리에 촌할매들이 조막만하게 꾸려온 보따리들을 풀고 쪼그려 앉는다.
서너되나 될까 싶은 찹쌀 자루에,
검은 콩도 팔고,
조심스런 손으로 홍시를 꺼내 놓는 할머니도 있다.
달리 손 볼게 없는 고구마 파는 할머니도 옆 점포(?)할매의 부추나 쪽파를 다듬어 준다.
나는 검은 콩 자루를 내려다 보고는 꼭 살 맘도 없으면서
" 할머니 이 콩 할머니가 심은 거예요? ㅇㅇ산이 하두 많아서 "
" 무신 소리 하요. 이건 이 할매가 숭궈서 딴기라. " 대답은 옆의 할매가 한다.
매매 상담이 이쯤만 되도 안 살 도리가 없다. 이 할매 손은 또 얼마나 잽싼지
" 을매나 주꼬? " 봉지를 벌리고 내 입을 쳐다 본다.
난 오늘 이 촌 할매한테 걸려든거다.
지난번에 산 콩이 아직 남아 있어 빠져 나갈 요량으로
" 할머니 묵은 콩은 아니지요? " 변죽을 놓는다.
" 안 살라믄 챠라(치워라) . 읎어서 못 파는데 묵힐 게 어딨노. " 벌렸던 봉지를 도로 쑤셔박는다.
그냥 해보는 제스처인지 몰라두 난 금새 마음이 약해져서
" 에이 ~ 할머니는 뭐 그런걸 가주구 삐지고 그러셔. 추운데 빨리 팔고 들어가셔야지. 다 살건데 좀 깎아주시지? "
" 천원 빼주꾸마. 우린 천원도 큰 돈이라 "
" 무슨 ~ 할머니들 콩 심고 푸성귀 심는 땅, 감나무있는 집터 다 돈덩어리란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할머니들이 부자구
오히려 사먹는 우리는 가난뱅이지. " 부자란 소리에 할머니들이 다 배시시 웃는다.
난 이렇게 촌할매들과 물렁한 거래로 사다가 놓은 콩이며 팥이 넘쳐난다.
나 이렇게 촌 할매들과 눙치며 산다우.
비 오는 날 이 방이 썰렁해서 들어와 봤어요.
수퍼마켓에서 빈 보루바꼬 두개를 양손에 들고
' 이만한 크기면 다 넣을 수 있을래나 ' 눈대중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는데
제 생애 절반을 넘게 살고 있는 곳이긴해도
객지에 달랑 혼자 남겨두고 온 아이에게 뭘 좀 넣어보내려니 상자가 필요해서.
내가 만든 유자차도 한병 넣고,
주전부리로 잘 먹는 쥐포하고 김도 넉넉히 사고,
오징어채 볶아 한통 가득 담고도
에미 마음엔 주섬 주섬 더 넣고 싶은 아쉬움에 자꾸 두리번거린다.
저 처럼 혼자 사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도록 넉넉히 보내지만
일본놈이 다 된 아들녀석은 필요이상의 물량공세는 상대에게 부담만 준다고 잘 안 주는 눈치다.
빨리 부쳐야된다고는 하면서 상자를 여미지 못하고 뜸을 들이는 나를 보고
" 보내긴 뭘 보내. 그냥 들고 갔다오지. " 남편이 빈정거렸다.
" 그러게 말야. 진작에 티켓을 샀어야 가지, 방학동안은 표가 있나, 꼼짝 못 하지. "
지금이야 저 혼자니까 엄마가 오면 좋아라하지만 제 식구 있으면 부모가 온다고 반갑기만 하겠어? 택도 없지.
아직 아들이 혼자일 때 자주 가서 재미난 추억꺼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에이 ~ 그 눔의 공사판 노가다에 발목이 잡혀서 .
찬정아.
나 3월에 아들한테 갈 껀데(날짜는 아직 미정)
우리 거기서 만나지 않을래?
우리 친구가 게스트 하우스 있다고 꼭 오라는데
船 橋(이거 후나바시 맞냐?) 역 근처에 있대.
며칠 전에도 전화왔더라구, 왜 안오냐고.
난 가봐야 애기 보러 가는 거라 되도록 고녀석들 옆에 있고 싶고
막상 가도 그 친구는 무지 바쁜데 혼자 뭐하겠어.
미리 맞춰서 가긴하지만 여러사람에게 맞춰야 하니 그 친구 한가할 때 갈지 어떨지는 모르지.
이 옆지기 아저씨가 같이 갈랑가도 모르겠고.
우리 일본에서 한번도 못만났는데 이번에 볼래?
1월에 갈 까 했는데 아들네 전용 게스트 하우스가 꽉 차서 좀 미뤘거든.
방 3개밖에 없으니 왜 안그렇겠어?
사실 고령의 어른이 계셔서 둘이 함께 집을 비우는 게 만만치가 않네.
참 사람 사는게 그래.
이거 해결되면 저거 터지고~~~~~~~~~~~~~~~~~~~~~~~~~~
편할 날이 없어요....................................................
일단 1월에 만나서 의논하자.
명옥 언니
3월에 가시게요?
저는 현재 언제 갈꺼란 예정이 있는건 아닌데 자주 가려고는 하지요.
일정을 맞춰 볼께요.
후나바시는 치바니까 추쿠바에서 쭉 내려오면 되긴하는데 제법 거리는 될거예요.
서울의 코엑스 같은게 막쿠하리에 있어서 그쪽을 여러번 가봤는데.
저도 지난번 갈때 티켓 예약하고 났더니 남편이 자기도 가야한다잖아요.
난 돈 쓰러가는거지만 남편은 돈 벌러가는거니까 할 수 없었지요.
같이 간다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챙겨줘야하는 하는게 쫌 구찮아서.
지도를 봐야겠지만 쯔꾸바 익스프레스가 아키하바라역까지 가고 옛날 지도 보니까 소부센이 후나바시 가네.
친구 말로는 리무진이 있다긴 하더라.
에그 몰라 어찌될 껀지.
우리가 가는 연구소 게스트 룸은 아주 저렴하긴 해도
첫 날이 가격이 두배라(객실용품을 다 넣어줘서 그런 모양이야.) 중간에 자다 안자다 하면 손해거든.
일단 1월 건 부터 해결합시다요.
캐나다 순희가 온다고 지명제가 올렸네.
11월 초에 일이 있어 남도 쪽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나주에 있는 아이와 통화를 했는데(물론 거기에 가는 걸 아는 아이가 나에게 했지요), 훈련이라 만나지 못하니까 들르지 말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강진 마량 수산시장에서 회 먹으며 마신 술도 깨야 하고, 어차피 거쳐 가는 길이니 적당히 시간 때우면 훈련 끝날 시간 되겠지 혹시 연락 안오겠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나주 고분군이며 봄이면 아름다운 벚꽃 길이며 낭창낭창 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역시~ 4시 쯤 되니 대장이 2시간 면회 허락했어 하는 연락이 오더라구요.
커다란 건물에서 나오는 아이가 같이 간 이모(내 친구인데 거의 키우다시피 한 친구라 엄마보다 더 가까운....)를 번쩍 안더니 빙그르르 돌리더니 활짝 웃으며 배고파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애인 만나러 간다고 휴가를 받았다는데........
꺼칠해가지고선 핏기 없는 얼굴이며 사람 초라하게 만드는 유니폼이며 암튼 별로 매력적인 친구의 애인은 아니두만요.
갑자기 초시계가 돌기 시작하고.
뭐 먹을래 했더니 삼겹살 먹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길 알아? 했더니 암 것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냥 시내로 갔지요.
거의 모든 식당이 곰탕집뿐이더라구요.
째깍째깍 시간은 가는데 삼겹살 집이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찾다가 저 구석에 있는 집을 하나 찾아 들어갔지요.
우리는 회에 매운탕에 잔뜩 먹어 전혀 먹을 수가 없었고.
일단 4인분을 시켰는데 그걸 혼자 다 먹더라구요.
그 판에 볶은 밥까정.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까........
거제 아낙도 그러겠지요 뭐~
그래도 후참 하나 왔다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말하두만......
후방의 에미는 방학이네 뭐네 하며 여행갈 계획만 짜고 있고.......
그래야 자기도 좋다고 하지만서두.......
왜 이렇게 추운겨?
<2박3일간 의 팥죽만들기>
몇달전....
냉장고 청소하다가 야채칸에 팥이 한 두어 되 정도는 되게 봉지에 싸여 있었다.
이건 또 뭐시여?
물이 조금씩 흘러 들어갔는지 드문드문 곰팡이가 생겨 색이 퍼런것도 있다.
소쿠리에 쏟아 햇볕에 밀쳐 놓았다.
오며가며 발로 한번씩 뻥뻥찼다.
해먹자니 귀찮고....
버리자니 아깝고....
대체 저건 어디서 갖고 온거여?
석달이 지나며 동짓날이 되었다.
팥죽 쑤어먹는 날인데.....
그때야 생각난다.
사돈댁에서 팥두어됫박 보내줬던 것을....
정신이 퍼득 나 쪼그리고 앉아 상한 놈을 골라낸다 .
먼지도 풀풀난다.
(UC~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믄 어지러운데...)
깨끗이 씻어 한꺼번에 삶는다.
큰 곰솥으로 하나가 된다.
근디.....워쪄?
난 팥죽 만들 줄을 모른다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
삶아서 소쿠리에 으깨어 앙금을 내리라 한다.
주방에 앉아 큰양푼에 몽땅 쏟아놓고 소쿠리를 얹어 놓고 으깬다.
한 30분 비비니까 신경질 난다.
아니~?
이건 뭐 할라고 하는겨?
먹어봐야 몽땅 살인데...
뭉게다 말고 양푼째 다용도실에 쳐박아 놓는다.
담날...
새벽이 되니 정신이 나서 세탁기 돌리면서 헐수없이 또 으깬다.
앙금이 제법 많다.
담은 어쩌능겨?
또 다용도실에 쳐박아둔다.
에고 지겨워....이걸 마저해?말어?
들인 공이 아까워 한번씩 꺼내내어 스적스적 뭉개본다.
찹쌀을 물에 담근다.
오늘......
새벽에 목욕 다녀 와 세탁기를 돌리려고 하니
문 열 적 마다 고놈이 보여 할수없이 팥물과 앙금을 휘휘둘러 반정도만 솥에 쏟는다.
불린 찹쌀을 1대접 정도 붓고 나무주걱으로 죽을 쑨다.
하기싫어 몸이 꼬인다.
도대체 동짓날도 지났는데 어쩌자고 지금 팥죽을 쑤느라고 난리인지....ㅉㅉ
그래두 인천여중 입학시험에 나왔던 찹쌀 익반죽은 알아가지고 김장때
쓰고 남은 찹쌀가루를 조물조물해 쪼꼬맣게 새알심을 맹근다.
ㅎㅎ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우리 은범이 입에 쏙들어가게시리
새알심은 참 예쁘게도 만들었다.
찹쌀이 거의 익었을 즈음 새알심을 넣는다.
옆에 지켜서 자꾸 저어 줘야하는데 증말증말증말루 허기 싫어서
약한불에 휘휘젓고 들어와 게임한판하고...
또 휘휘젓고 들어와 <대물 >한탕 보고 나가니 다끝났다.
이리하야 팥죽만들기 2박3일 여정이 모두 끝나
딸네 한대접 갖다주니 사위가 맛있다고 입맛을 다신다.
또 잘난 척이 발동하여 후루륵 큰스텐통에 반 쯤 쏟아
오늘 사돈댁에 들 간다니 사돈댁에 갖다드리라 하였다.
머릿털나군 첨으로 맹근 팥죽...
내내 맹글면서 명옥이가 제천에 갖고 온 단팥죽 생각하면서 맹글었다.
도대체 얼마나 ........ 정성을 들인 단팥죽이었는지....
도대체 얼마나 ........ 많이 했으믄 그많은 사람이 모두 먹을수 있었는지....
도대체 그렇게 ........ 무거운것을 약식과 함께 어떻게 부산에서 부터 들고 왔는지....
그건 <우리들의 봄날 > 아니믄 졸때루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단팥죽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
무지 간단해.
앙금도 안내리고 찹쌀죽도 안 쑤고
기냥 팥삶아서 소금 설탕 넣고 갈분가루 푼 게 다야.
마지막에 계피가루 조금 넣엇지.
하는 것보다는 가져가는 게 일이더라.
고거야 말로 봄날 아니면 못하지롱!
옥규 언니네 일등병은 동네 출퇴근하는줄 알았는데 나주에 있어요?
허락받은 두시간은 총알같이 지나가고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서서 오는
에미맘이 우째쓰까이. 으미 ~ 짜 - 안한거.
별거 별거 다 할 줄아는 순호 언니가 팥죽을 쒀 본 적 없다니.
나도 할줄 아는 그 쉬운 팥죽을.
지난 동짓날 나도 팥죽을 쒀서 우리 시엄니 갖다 드렸어요.
다섯시까지 집짓는데서 일하고 (요즘은 업자들이 여덟시에 일 시작해서 다섯시되면 딱 끝내요) 집에 와서
아침에 삶아놓은 팥으로 죽 쒀서 일곱시에 가져갔더니 우리 엄니는 대구탕 끓이고 계시데요.
저녁에는 일본 사람들 풍습대로 유자 목욕하고(욕조에 유자를 쪼개녛고 목욕하지요)
나와 남편은 테니스를 취미로 하고, 같은 동호회에 들어 있기도 하지만
어지간하면 같이 시합은 안 한다.
'어지간' 정도가 아니라 남은 여생 절대 같이 안 하기로 작심을 수십번 했다.
일본에서도 우리가 같이 편 안 먹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땐 ' 한일전 한다 ' 고 주목되는 게 싫기도 해서.
근데 그 차돌같이 맘 묵은 금기을 깨고
어제 또 남편과 편을 먹고 말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두 게임 다 졌다.
첫 게임에서 얼떨결에 남편과 편을 먹고 ' 역시나 ' 로 지고,
뿔뿔이 갈려서 세 게임을 하고 그만 할까 하다가
설욕전으로 이기고 기쁜 마음으로 귀가하자는 꼬임에 넘어가 남편과 먹고 쳤다가 또 졌다.
내가 남편 보다 못 치는 건 사실이지만 패인이 나한테만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남편은 상대팀에 여자가 끼면 인정스럽게 치는 버릇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상대팀이 되면 마누라는 여자로 안 보이는지 인정 사정없이 엿을 먹인다.
그뿐이 아니다.
남편은 나하고 편 먹고 칠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내가 어쩌다 잘 쳐서 한 점 먹으면 ' 그거야 기본이지 ' 하는 멀뚱 멀뚱한 얼굴을 하지만
내가 실수를 했다하면 ' 그기 뭐꼬 '하는 핀잔이 가차없이 날라온다.
핀잔을 들은 나는 주눅이 들어서 연거퍼 실수를 하고,
그 쯤 되서 게임이 불리해져가면 남편이 만회 작전에 나서는데
내가 어련히 잘 칠 볼까지 남편이 욕심을 부려 지가 끝내기를 하려다가 실수를 자초한다.
그거 마저도 ' 내가 따 먹기 좋도록 볼을 줘서 역습을 당할까봐 자기가 무리수를 두다가
그렇게 되었노라 ' 고 되레 나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땐 나도 속이 부글 부글 끓어 올라서 ' 그런 볼은 나한테 믿고 맡겨 ' 라고 들이박다 보면
게임은 꼴 좋게 끝나고 있다.
테니스를 친건지, 쌈박질을 한건지, 이거야 원.
그러니 뭔 수로 이기나. 죽을뚱 살뚱 쳐도 이길까 말깐데.
' 내가 남편하고 또 편을 먹고 테니스를 치면 인간도 아니다. '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또 인간이기를 포기할런지.
사는 게 다 그렇다믄 그런거지만
웬수 같을 때도 참 많다
남편도 테니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