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시,소설 및 기타 문학적인 글을 쓰실 수있는 공간입니다
앨범도 30년 이상 묵으면 그렇게 바스라질 정도로 삭는 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30주년 행사에 쓸 사진이나 편지등을 찾아서 내 놓으라는 준비위원 말에 순종하느라 그 더운걸 무릅쓰고
베란다에 빼곡히 쌓인 앨범들을 다 뒤져서 고등학교 때 정리 해 놓은 앨범을 찾아냈다.
앨범은 손으로 만지기조차 겁이 날 정도로 낡아서 아주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묵은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진들은 하나같이 다 사이즈도 작고 그 속에 찍힌 얼굴들도 작았다.
내 눈이 나빠진 탓인지 얼굴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단체 사진에서는 내 얼굴조차 찾아낼 수가 없다.
대개 수학여행을 가거나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이고 교정에서 선생님과 친구들 틈에 끼어서 찍은 사진
도 있었다. 지금 애들에 비하면 거의 표정이 없다시피한 그 때의 아이들....
근데 희한하게도 희미한 사진들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그 때의 정황이 서서히 되살아 났다.
우리의 기억주머니가 아주 튼실했던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의 뇌 속에 있는 기억 주머니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기억
들은 쉽게 놓치게 되는데, 아직 뇌 기능이 왕성했던 시절의 기억은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들도 현재의 자기는 누구인지 모르면서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은 어제 일처럼 기
억을 해 내는 것이라고 한다.
앨범을 보는데 희한한 사진들이 몇장 눈에 띄었다.
교복도 아니고 평상복도 아닌 아줌마 한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사진이 대여섯장이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아이의 독사진도 있고, 가정집은 아닌데 응접실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전화를
받으며 웃기도 하고, 차려 자세로 서로 손을 잡고 서있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사진마다 아이들이 입은 한복이 서로 바뀌어 있었다.
어떤 애는 치마가 껑충하니 짧아서 운동화가 다 드러나는 것은 물론 거의 정갱이까지 다 보였다.
이게 무슨 사진일까.....
처음엔 그게 뭔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는데 한 20분 정도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 때의 정황이 생생하게
다 재생이 되어 마치 기록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지금처럼 스튜디오 시설이 없던 그 시절에 학교 근처의 어느 사진관에서 그렇게 세트를 갖춰 놓고 한복
까지 빌려주며 사진을 찍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로 큰맘을 먹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책가방
을 든 채로 몰려 갔다.
아직 전화도 흔하지 않았고 양옥집에 응접세트를 갖추고 사는 집이 많지 않을 때라 그랬는지 우리는 거
기 놓인 싸구려 소파와 탁자, 장식용 조화를 보고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별로 구색도 갖추지 못한 몇 벌의 한복중에서 그래도 맘에 드는 것을 골라 교복위에다 걸쳐 입고 저고리
바깥으로 교복이 삐져나올세라 카라를 마구 구겨서 집어넣고는 영화배우라도 된 양 폼을 잡았다.
요즘 애들이야 다들 탈랜트 뺨치게 포즈도 잘 잡고 표정도 다양하게 사진을 찍지만 30년 전의 우리는 그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카메라 앞에 앉아서 어색한 웃음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남의 떡이 커 보였는지 자기가 입은 것보다 친구 것이 더 예뻐 보여서 급기야 사진 한 장 찍고 서로 옷
바꿔 입고 또 한 장 찍고 또 바꾸고....
생각이 많고 조숙했던 나는 사진값이 너무 많이 나오면 부담이 클까봐 독사진을 끝내 찍지 않았다.
우리가 그때 한복을 입고 그리 서대며 사진을 찍은 것은 요즘 애들이 머리에다 분홍 가발, 초록 가발을
쓰고 희한한 복장으로 사진을 찍는 거랑 비슷한 심리였던거 같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인간의 발달심리는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 사진 속의 아이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나같이 내성적이고 남 앞에 좀처럼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무슨 맘을 먹고 그렇게 사진을 찍었
는지... 아마도 혼자서라면 죽어도 못했을 일이지만 친구들과 어울린 바람에 다들 그렇게 야시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린 그렇게 재잘대며 꿈꾸며 여고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보낸 것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내 유년의 모습은 그 몇 조각 기억의 편린 덕분에 조금 더 그림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퍼즐의 한 귀퉁이가 제 조각을 찾아 밑 그림을 맞춰가는 것처럼....
30주년 행사에 쓸 사진이나 편지등을 찾아서 내 놓으라는 준비위원 말에 순종하느라 그 더운걸 무릅쓰고
베란다에 빼곡히 쌓인 앨범들을 다 뒤져서 고등학교 때 정리 해 놓은 앨범을 찾아냈다.
앨범은 손으로 만지기조차 겁이 날 정도로 낡아서 아주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묵은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진들은 하나같이 다 사이즈도 작고 그 속에 찍힌 얼굴들도 작았다.
내 눈이 나빠진 탓인지 얼굴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단체 사진에서는 내 얼굴조차 찾아낼 수가 없다.
대개 수학여행을 가거나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이고 교정에서 선생님과 친구들 틈에 끼어서 찍은 사진
도 있었다. 지금 애들에 비하면 거의 표정이 없다시피한 그 때의 아이들....
근데 희한하게도 희미한 사진들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그 때의 정황이 서서히 되살아 났다.
우리의 기억주머니가 아주 튼실했던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의 뇌 속에 있는 기억 주머니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기억
들은 쉽게 놓치게 되는데, 아직 뇌 기능이 왕성했던 시절의 기억은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들도 현재의 자기는 누구인지 모르면서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은 어제 일처럼 기
억을 해 내는 것이라고 한다.
앨범을 보는데 희한한 사진들이 몇장 눈에 띄었다.
교복도 아니고 평상복도 아닌 아줌마 한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사진이 대여섯장이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아이의 독사진도 있고, 가정집은 아닌데 응접실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전화를
받으며 웃기도 하고, 차려 자세로 서로 손을 잡고 서있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사진마다 아이들이 입은 한복이 서로 바뀌어 있었다.
어떤 애는 치마가 껑충하니 짧아서 운동화가 다 드러나는 것은 물론 거의 정갱이까지 다 보였다.
이게 무슨 사진일까.....
처음엔 그게 뭔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는데 한 20분 정도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 때의 정황이 생생하게
다 재생이 되어 마치 기록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지금처럼 스튜디오 시설이 없던 그 시절에 학교 근처의 어느 사진관에서 그렇게 세트를 갖춰 놓고 한복
까지 빌려주며 사진을 찍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로 큰맘을 먹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책가방
을 든 채로 몰려 갔다.
아직 전화도 흔하지 않았고 양옥집에 응접세트를 갖추고 사는 집이 많지 않을 때라 그랬는지 우리는 거
기 놓인 싸구려 소파와 탁자, 장식용 조화를 보고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별로 구색도 갖추지 못한 몇 벌의 한복중에서 그래도 맘에 드는 것을 골라 교복위에다 걸쳐 입고 저고리
바깥으로 교복이 삐져나올세라 카라를 마구 구겨서 집어넣고는 영화배우라도 된 양 폼을 잡았다.
요즘 애들이야 다들 탈랜트 뺨치게 포즈도 잘 잡고 표정도 다양하게 사진을 찍지만 30년 전의 우리는 그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카메라 앞에 앉아서 어색한 웃음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남의 떡이 커 보였는지 자기가 입은 것보다 친구 것이 더 예뻐 보여서 급기야 사진 한 장 찍고 서로 옷
바꿔 입고 또 한 장 찍고 또 바꾸고....
생각이 많고 조숙했던 나는 사진값이 너무 많이 나오면 부담이 클까봐 독사진을 끝내 찍지 않았다.
우리가 그때 한복을 입고 그리 서대며 사진을 찍은 것은 요즘 애들이 머리에다 분홍 가발, 초록 가발을
쓰고 희한한 복장으로 사진을 찍는 거랑 비슷한 심리였던거 같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인간의 발달심리는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 사진 속의 아이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나같이 내성적이고 남 앞에 좀처럼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무슨 맘을 먹고 그렇게 사진을 찍었
는지... 아마도 혼자서라면 죽어도 못했을 일이지만 친구들과 어울린 바람에 다들 그렇게 야시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린 그렇게 재잘대며 꿈꾸며 여고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보낸 것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내 유년의 모습은 그 몇 조각 기억의 편린 덕분에 조금 더 그림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퍼즐의 한 귀퉁이가 제 조각을 찾아 밑 그림을 맞춰가는 것처럼....
2005.08.06 15:55:21 (*.82.74.104)
지금 문득 찾아 낸 퍼즐 한조각.
이북이 고향인 우리 아버지는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키다리 미스터킴>처럼
싱겁게 키만 크고 잔 정이 별로 없는무뚝뚝하고 우락부락한 분이었어요.
<머이가 어드레 ?>
아버지가 큰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물으시면
나는 아무 죄를 안지었으면서도 쥐구멍을 찾고 싶어 했지요.
태어나면서부터 골골거리며 늘 잔병치레를 일삼았던 나는
유난히도 아버지를 무서워하며 잘 따르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큰소리로 누굴 부르기만해도 그 소리에 내가 놀라서
밤이면 열이 펄펄 끓고 경끼를 했다니
나는 그야말로 애는 내다 버리고 태반을 주워서 기른 허깨비 같은 딸이었지요.
하긴....
우리 엄마는 내가 하도 골골거리니까
열살이나 채우라고 해마다 생일 때면 수수팥떡을 해 놓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대요.
그러고도 부족해서 동네에 유명한 만신을 찾아가서
어찌하면 열살을 넘기겠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테 수양딸로 주면 명줄을 잇겠다고 했다나....
그래서 나는 큰무당의 수양딸이 되어 해마다 정초가 되면
엄마의 손을 잡고 양어머니 만신을 보러 가곤 했지요.
정갈한 한지와 초를 한 곽 준비해 가지고
표정이 자애롭고 목이 쉰 만신어머니를 뵈러 갈 때면
정말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해내야만 했어요.
그래야 두루 칭찬을 받으니까요.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잔망스러웠던 것도
필요 이상으로 생각이 많아 애 늙은이가 되어버린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어릴 적에 잔병치레를 하면서
늘 죽음을 생각한 덕이 아니었나 싶네요.
암튼 그렇게 병약하고 심약한 애가 입까지 짦아서
밥상에 앉으면 숟가락 젓가락이 갈곳을 못찾고 그저 방황만 하곤 했는데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은 따로 있었어요.
아버지가 끓여주는 <죽>.
쇠고기와 밤을 넣고 흰쌀로 끓였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가 끓여주는 죽은 언제 먹어도 맛이 있어서
잔병치레 없이 건강했던 바로 밑의 동생은
내 죽그릇을 넘보느라 언제나 껄떡거리곤 했죠.
<죽>은 아픈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으니까요.
아픈것이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만사가 귀찮다가도
아버지가 그 큰 키를 구부려 부뚜막을 지키며 끓여다 주는
그 죽 한그릇이면 나도 모르게 숟가락질에 힘이 들어가게 되었죠.
정말로 무뚝뚝하고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였는데....
열살도 넘기기 힘들거란 내가 스무살을 넘어 서른, 마흔, 쉰도 넘겼으니
이만큼 살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도
그저 우연히 되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 기억 주머니 속에는 갓 마흔을 넘긴 중년의 아버지가
무뚝뚝한 얼굴로 아무 말도 없이 죽그릇을 내어 밀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었나봐요.
따뜻한 말을 할 줄 모르던 아버지가 이리도 따뜻하게 느껴지니 말예요.
아.... 아버지 보고싶다.....
이북이 고향인 우리 아버지는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키다리 미스터킴>처럼
싱겁게 키만 크고 잔 정이 별로 없는무뚝뚝하고 우락부락한 분이었어요.
<머이가 어드레 ?>
아버지가 큰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물으시면
나는 아무 죄를 안지었으면서도 쥐구멍을 찾고 싶어 했지요.
태어나면서부터 골골거리며 늘 잔병치레를 일삼았던 나는
유난히도 아버지를 무서워하며 잘 따르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큰소리로 누굴 부르기만해도 그 소리에 내가 놀라서
밤이면 열이 펄펄 끓고 경끼를 했다니
나는 그야말로 애는 내다 버리고 태반을 주워서 기른 허깨비 같은 딸이었지요.
하긴....
우리 엄마는 내가 하도 골골거리니까
열살이나 채우라고 해마다 생일 때면 수수팥떡을 해 놓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대요.
그러고도 부족해서 동네에 유명한 만신을 찾아가서
어찌하면 열살을 넘기겠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테 수양딸로 주면 명줄을 잇겠다고 했다나....
그래서 나는 큰무당의 수양딸이 되어 해마다 정초가 되면
엄마의 손을 잡고 양어머니 만신을 보러 가곤 했지요.
정갈한 한지와 초를 한 곽 준비해 가지고
표정이 자애롭고 목이 쉰 만신어머니를 뵈러 갈 때면
정말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해내야만 했어요.
그래야 두루 칭찬을 받으니까요.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잔망스러웠던 것도
필요 이상으로 생각이 많아 애 늙은이가 되어버린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어릴 적에 잔병치레를 하면서
늘 죽음을 생각한 덕이 아니었나 싶네요.
암튼 그렇게 병약하고 심약한 애가 입까지 짦아서
밥상에 앉으면 숟가락 젓가락이 갈곳을 못찾고 그저 방황만 하곤 했는데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은 따로 있었어요.
아버지가 끓여주는 <죽>.
쇠고기와 밤을 넣고 흰쌀로 끓였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가 끓여주는 죽은 언제 먹어도 맛이 있어서
잔병치레 없이 건강했던 바로 밑의 동생은
내 죽그릇을 넘보느라 언제나 껄떡거리곤 했죠.
<죽>은 아픈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으니까요.
아픈것이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만사가 귀찮다가도
아버지가 그 큰 키를 구부려 부뚜막을 지키며 끓여다 주는
그 죽 한그릇이면 나도 모르게 숟가락질에 힘이 들어가게 되었죠.
정말로 무뚝뚝하고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였는데....
열살도 넘기기 힘들거란 내가 스무살을 넘어 서른, 마흔, 쉰도 넘겼으니
이만큼 살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도
그저 우연히 되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 기억 주머니 속에는 갓 마흔을 넘긴 중년의 아버지가
무뚝뚝한 얼굴로 아무 말도 없이 죽그릇을 내어 밀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었나봐요.
따뜻한 말을 할 줄 모르던 아버지가 이리도 따뜻하게 느껴지니 말예요.
아.... 아버지 보고싶다.....
2005.08.06 18:12:02 (*.183.209.237)
춘서나~~~
나 지금 이글을 쓰며 울고 있어....
너무 나의 아버지가 보고파서....
작년 84세에 가셨는데 사실만큼 사셨다고 생각 했거든...?
근데 너무 고통속에 가셔서 가슴아파
돌아가실때 오금을 못펴고 가시드라
몸이 굳어서.....
나의 아버지는 유난히 날 가엾이 여기셨지
어렸을때 형제들이 엄마랑 아버지랑 다투시면
우리 큰오빠가 우릴 모아놓고 엄마 아버지 헤어지믄
느이덜 누구랑 살래 했었어
5명 모두가 엄마랑 산다고 했지만 난 아버지랑 살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울 아버지 불쌍해서 아버지랑 산다 했었어
말대로 됐지만......
어렸을때 내가 몸이 약해 학교를 휴학한적도 있었는데
그옛날에 그귀한 바나나를 먹고싶다고
도시락 나르는 급사 언니한테 편지 써보내면
몰래 몇개 사서 빈 도시락 갖고 올때 보내시곤 하셨었지 .....
난 울아버지가 더 오래 사시길 기도도 했어
엄마보다 더 좋아서.....
5살때 옆집에서 눈깔사탕 1개 훔쳤다가
울엄마한테 죽지 않을만큼 혼날때
울아버지 술이 얼큰하게 취해 오셔서
엄마를 무섭게 야단치고 날 끌어 안으셨지....
당신이 안사줘서 그렇다고..... 아버지....아버지....
그때 그얼굴이 지금도 남아있어
근데 꿈에도 한번 안나타나더라
벽에 우리 아버지사진이 걸려 있는데
볼적마다 아버지하며 오늘 잘다녀 왔어...하며 보고한단다
춘서나!
언니덜 웃긴다더니 왜 울리고 그랴..... "아부~지~~~" (x13)(x13)(x13)
나 지금 이글을 쓰며 울고 있어....
너무 나의 아버지가 보고파서....
작년 84세에 가셨는데 사실만큼 사셨다고 생각 했거든...?
근데 너무 고통속에 가셔서 가슴아파
돌아가실때 오금을 못펴고 가시드라
몸이 굳어서.....
나의 아버지는 유난히 날 가엾이 여기셨지
어렸을때 형제들이 엄마랑 아버지랑 다투시면
우리 큰오빠가 우릴 모아놓고 엄마 아버지 헤어지믄
느이덜 누구랑 살래 했었어
5명 모두가 엄마랑 산다고 했지만 난 아버지랑 살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울 아버지 불쌍해서 아버지랑 산다 했었어
말대로 됐지만......
어렸을때 내가 몸이 약해 학교를 휴학한적도 있었는데
그옛날에 그귀한 바나나를 먹고싶다고
도시락 나르는 급사 언니한테 편지 써보내면
몰래 몇개 사서 빈 도시락 갖고 올때 보내시곤 하셨었지 .....
난 울아버지가 더 오래 사시길 기도도 했어
엄마보다 더 좋아서.....
5살때 옆집에서 눈깔사탕 1개 훔쳤다가
울엄마한테 죽지 않을만큼 혼날때
울아버지 술이 얼큰하게 취해 오셔서
엄마를 무섭게 야단치고 날 끌어 안으셨지....
당신이 안사줘서 그렇다고..... 아버지....아버지....
그때 그얼굴이 지금도 남아있어
근데 꿈에도 한번 안나타나더라
벽에 우리 아버지사진이 걸려 있는데
볼적마다 아버지하며 오늘 잘다녀 왔어...하며 보고한단다
춘서나!
언니덜 웃긴다더니 왜 울리고 그랴..... "아부~지~~~" (x13)(x13)(x13)
2005.08.06 23:36:13 (*.84.109.71)
우리인생 가을쯤에 다시 씨뿌리어 인생이모작을 하자더니
겨울지나 황천길에 훨훨 떠나신 우리 아버지들 기억속에 다시세워
보고싶다 소리치면 그 옛날 상가집에 멀쩡하게 앉아있다 문상객만
나타나면 아이고 데이고 울어대던 상주들과 같아지네
기억속에 아버지들 구구절절 많은사연
작고 큰 차이일 뿐 그 시절 격랑기에 휩쓸리어 모진세월 보내셨지
지금처럼 한두아이 조절해서 기르지도 못하시고
여러남매 두었어도 쓸쓸하게 가시었네. 당신마님 수발 삼년 알아보지도 못하시고
큰딸손에 의지하여 그렇게 가셨건만 노인당뇨 치매삼년 어머니의 노고없이
어찌편히 가셨겠나.아들같은 우리큰언니 당신도 마흔한살에 혼자되어
두 남매 거느리고 교사생활 수십년에 친정부모 모시고서
자기는 혼자 몸이니 눈치 볼사람 없다하고 모든 희생 감내했네
아들이 셋이지만 병든아비 병수발을 누가 좋다하겠는가.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섭섭한 마음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이지.
아이고 데이고 불상하신 우리아버지
춘선이가 문상와서 한번 울어보았어요.
오늘은 아버지 생각하고 울어보는 날이래요.
수둘패기 막내딸이 오랜만에 울고보니 벌써 해가 설핏지는
이 싯점에 와 있네요.
겨울지나 떠나신길 가을문턱에 선 막내딸이 가신길을 따라가겠지요
그 길따라 가더라도 길목길목 지켜주고 불을 밝혀주옵소서.
겨울지나 황천길에 훨훨 떠나신 우리 아버지들 기억속에 다시세워
보고싶다 소리치면 그 옛날 상가집에 멀쩡하게 앉아있다 문상객만
나타나면 아이고 데이고 울어대던 상주들과 같아지네
기억속에 아버지들 구구절절 많은사연
작고 큰 차이일 뿐 그 시절 격랑기에 휩쓸리어 모진세월 보내셨지
지금처럼 한두아이 조절해서 기르지도 못하시고
여러남매 두었어도 쓸쓸하게 가시었네. 당신마님 수발 삼년 알아보지도 못하시고
큰딸손에 의지하여 그렇게 가셨건만 노인당뇨 치매삼년 어머니의 노고없이
어찌편히 가셨겠나.아들같은 우리큰언니 당신도 마흔한살에 혼자되어
두 남매 거느리고 교사생활 수십년에 친정부모 모시고서
자기는 혼자 몸이니 눈치 볼사람 없다하고 모든 희생 감내했네
아들이 셋이지만 병든아비 병수발을 누가 좋다하겠는가.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섭섭한 마음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이지.
아이고 데이고 불상하신 우리아버지
춘선이가 문상와서 한번 울어보았어요.
오늘은 아버지 생각하고 울어보는 날이래요.
수둘패기 막내딸이 오랜만에 울고보니 벌써 해가 설핏지는
이 싯점에 와 있네요.
겨울지나 떠나신길 가을문턱에 선 막내딸이 가신길을 따라가겠지요
그 길따라 가더라도 길목길목 지켜주고 불을 밝혀주옵소서.
2005.08.07 08:39:56 (*.238.113.75)
은희언니, 춘선아, 순호야~
왜 아침부터 울리고 그랴~
나 기억퍼즐을 울 아버지한테 맞춰서 웃겨줄게.
둥이,둥이 해도 우리 아버진 진짜둥이야.
폐암으로 4년전 76세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지 전까지도 그 둥이의 끼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셨다는거 아녀.
울엄마가 간병사두는 돈을 아까워하셔서 손수하신느데 우리가 그 꼴을 어찌보겠냐.
돌아가면서 우리가 밤을 새우는데 난 특히 아버님을 모시니까 견딜수가 없더라구.
돈은 어따 쓸려고 꽁꽁 묶어두고 우릴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하는수 없이 내가 동생들에게 아무소리말고 한사람이 100만원씩 내라고 해서 6형제한테 600을 거둬서 엄마를 드렸어,
원해 7형제인데 막내 여동생이 중2때 하늘나라에 갔거든.
그래서 간병사를 뒀는데 한 40쯤된 춘선이가 표현하는 호리낭창한 여인네야.
아버지가 엄마가 간호하심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그 간병사가 간호함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지시는거야. 우리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우리 엄마가 약이 올라가지고 "당신 내가 간병하는게 좋아요. 간병사가 하는게 좋아요"
뭘또 물어보시는지, 뭔 좋은 대답을 듣겠다구~
아버진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면서 어눌하게 "간~~병~~사" 해버렸다는거아냐.
우리엄마가 죽어가면서까지 그 버릇 못고친다고 얼마나 씩씩대며 질투를 하시는지~ㅎㅎㅎ
근데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젤 슬피우는 사람은 엄마였어,
장지로 가는 뻐스에서 엄마가 내내 우시니까 울 막내 여동생이 보다못해 엄마한데
"엄마 고만 우세요. 아버지가 하신 말씀생각해. 간~~병~~사"
그러니까 갑자기 엄마가 우시던걸 그치시고 막 웃으시는거야.
우리 모두 얼마나 웃었는지 코메디지?
춘선 순호 은희언니글 읽고 울다가 나도 지금 그때 생각이나서 웃고 있단다.
은희언니~
언니의 덕스러움 배우며 살게요.
순호야~
솔직담백 호탕함이 너무 좋아.
춘선아~
나의 영원한 바비, 그 빛나는 감성 살려 좋은글 많이 써라.(:c)(:f)(:l)
왜 아침부터 울리고 그랴~
나 기억퍼즐을 울 아버지한테 맞춰서 웃겨줄게.
둥이,둥이 해도 우리 아버진 진짜둥이야.
폐암으로 4년전 76세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지 전까지도 그 둥이의 끼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셨다는거 아녀.
울엄마가 간병사두는 돈을 아까워하셔서 손수하신느데 우리가 그 꼴을 어찌보겠냐.
돌아가면서 우리가 밤을 새우는데 난 특히 아버님을 모시니까 견딜수가 없더라구.
돈은 어따 쓸려고 꽁꽁 묶어두고 우릴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하는수 없이 내가 동생들에게 아무소리말고 한사람이 100만원씩 내라고 해서 6형제한테 600을 거둬서 엄마를 드렸어,
원해 7형제인데 막내 여동생이 중2때 하늘나라에 갔거든.
그래서 간병사를 뒀는데 한 40쯤된 춘선이가 표현하는 호리낭창한 여인네야.
아버지가 엄마가 간호하심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그 간병사가 간호함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지시는거야. 우리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우리 엄마가 약이 올라가지고 "당신 내가 간병하는게 좋아요. 간병사가 하는게 좋아요"
뭘또 물어보시는지, 뭔 좋은 대답을 듣겠다구~
아버진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면서 어눌하게 "간~~병~~사" 해버렸다는거아냐.
우리엄마가 죽어가면서까지 그 버릇 못고친다고 얼마나 씩씩대며 질투를 하시는지~ㅎㅎㅎ
근데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젤 슬피우는 사람은 엄마였어,
장지로 가는 뻐스에서 엄마가 내내 우시니까 울 막내 여동생이 보다못해 엄마한데
"엄마 고만 우세요. 아버지가 하신 말씀생각해. 간~~병~~사"
그러니까 갑자기 엄마가 우시던걸 그치시고 막 웃으시는거야.
우리 모두 얼마나 웃었는지 코메디지?
춘선 순호 은희언니글 읽고 울다가 나도 지금 그때 생각이나서 웃고 있단다.
은희언니~
언니의 덕스러움 배우며 살게요.
순호야~
솔직담백 호탕함이 너무 좋아.
춘선아~
나의 영원한 바비, 그 빛나는 감성 살려 좋은글 많이 써라.(:c)(:f)(:l)
2005.08.07 20:19:19 (*.234.141.109)
난 언니들을 울리려고 그런게 아닌데....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을
퍼즐찾기 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쓴건데
너무나도 감수성이 풍부한 울 언니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니
참말로 우야꼬....
화림언니 ~
부모는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부터
아름답게 포장된 신화로 남는거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도 미워하고 싫어했던 부분은
기억 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게 되는지 ....
그저 고맙고 좋았던 것만 기억이 나는거 있죠.
그래서 천륜인가봐요.
어떻게든 언니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내 기억주머니에는 그런 웃기는 얘기가 별로 없는지
아무리 뒤져봐도 마땅한게 없네요.
누구 웃기는 퍼즐 조각 가지고 계신 분 없소 ?
우리 언니들 오랜만에 실컷 웃어볼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을
퍼즐찾기 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쓴건데
너무나도 감수성이 풍부한 울 언니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니
참말로 우야꼬....
화림언니 ~
부모는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부터
아름답게 포장된 신화로 남는거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도 미워하고 싫어했던 부분은
기억 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게 되는지 ....
그저 고맙고 좋았던 것만 기억이 나는거 있죠.
그래서 천륜인가봐요.
어떻게든 언니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내 기억주머니에는 그런 웃기는 얘기가 별로 없는지
아무리 뒤져봐도 마땅한게 없네요.
누구 웃기는 퍼즐 조각 가지고 계신 분 없소 ?
우리 언니들 오랜만에 실컷 웃어볼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2005.08.09 20:16:15 (*.120.114.117)
화림아 정말 너의아버님
대단한 둥이신가보다
진짜 깔깔거리고웃었어
다들부럽네 아버지의기억이 마음속에
있다는것이
나는 아버지 구경도 못해봤어
내가 난지 얼마안되어 이북으로 납치
되셨거든 아버지의얼굴도 못본 사람도 있어
다 행복한 여인들이네요
대단한 둥이신가보다
진짜 깔깔거리고웃었어
다들부럽네 아버지의기억이 마음속에
있다는것이
나는 아버지 구경도 못해봤어
내가 난지 얼마안되어 이북으로 납치
되셨거든 아버지의얼굴도 못본 사람도 있어
다 행복한 여인들이네요
2005.08.10 07:59:20 (*.238.113.75)
인순아~
피로는 좀 풀렸니?
그랬구나~
자라면서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겠구나.
엄마가 많이 애쓰셨겠네.
그래도 너랑 어머니 세월의 풍상이 전혀 안느껴져.
아주 곱고 따듯하고 편안한 분위기야.
네 말 듣고 보니 기억할 수 있는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것이네.
인순아, 차 한잔 마시고 화이팅.(:c)(:y)(:l)
피로는 좀 풀렸니?
그랬구나~
자라면서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겠구나.
엄마가 많이 애쓰셨겠네.
그래도 너랑 어머니 세월의 풍상이 전혀 안느껴져.
아주 곱고 따듯하고 편안한 분위기야.
네 말 듣고 보니 기억할 수 있는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것이네.
인순아, 차 한잔 마시고 화이팅.(:c)(:y)(:l)
2005.08.20 21:54:11 (*.234.141.86)
내 첫 미팅 이야기....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였어요.
인일여고 동문 선배가 주선을 해서
제고 출신들이랑 파고다 공원에서 단체로 미팅을 하게 되었어요.
남녀 각각 20명이 넘는 인원을 파고다 공원에 모아 놓고
각각 번호를 정해 주고 짝을 맞추어 주었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는 엉성한 방법으로
모르는 남녀가 짝을 맞춘 것이예요.
내 번호는 3번인가 그랬는데
주선자가 3번~ 하고 부르니까 저 쪽에서
그 당시 대학생 교복이었던 검정 옷을 입은 키 작은 남자애가
손을 번쩍 들고 나오는 거예요.
나도 손을 들고 나가야 짝이 맞는데
순간적으로 모르는 남자애랑 짝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쑥스러워서
끝내 손을 들지 못했어요.
아마도 제가 딸 많은 집에서
남자들과 어울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란 탓이었는지
모르는 남자랑 둘이서 나가는 게 엄두가 나질 않았거든요.
(솔직히 그 애가 내 눈에 너무 작아 보이기도 했구요. ㅋㅋ)
한번 손을 들 챤스를 놓치고 나니까
나 여기 있소 하고 나서는게 더 어렵더라구요.
아무리 불러도 나서는 여자애가 없자
짝을 못 찾은 그 남자애는 한 켠에 비켜 서 있고
다른 번호들은 일사천리로 짝을 맞추어
각자 자기 파트너랑 어디론가 나가더라구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는지
끝번까지 다 불렀는데도 짝이 없는 사람이
남자3명, 여자 2명이었는데
다행히 내 짝이었던 3번은 그 사이 가버렸더라구요.
주선했던 선배들이
짝이 없는 애들을 몽땅 데리고 근처 다방에 가서
커피를 한잔 씩 먹여 가지고
우루루 전철을 같이 타고 집에 오는 걸로 첫미팅 끝~
그 후에도 미팅은 몇 번 했지만
혹시나~ 하고 나갔다가 역시나~하고 들어온다는 말이 딱 맞아서
내 맘에 드는 사람을 파트너로 만나지 못했지요.
언니들도 미팅을 했나요?
그 땐 어떤 방식으로 미팅을 했는지 무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내 첫미팅 파트너가 될 뻔했던 그 남자애는
지금쯤 장가를 가서 잘 살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하고요. 호호호호 ~ ::$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였어요.
인일여고 동문 선배가 주선을 해서
제고 출신들이랑 파고다 공원에서 단체로 미팅을 하게 되었어요.
남녀 각각 20명이 넘는 인원을 파고다 공원에 모아 놓고
각각 번호를 정해 주고 짝을 맞추어 주었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는 엉성한 방법으로
모르는 남녀가 짝을 맞춘 것이예요.
내 번호는 3번인가 그랬는데
주선자가 3번~ 하고 부르니까 저 쪽에서
그 당시 대학생 교복이었던 검정 옷을 입은 키 작은 남자애가
손을 번쩍 들고 나오는 거예요.
나도 손을 들고 나가야 짝이 맞는데
순간적으로 모르는 남자애랑 짝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쑥스러워서
끝내 손을 들지 못했어요.
아마도 제가 딸 많은 집에서
남자들과 어울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란 탓이었는지
모르는 남자랑 둘이서 나가는 게 엄두가 나질 않았거든요.
(솔직히 그 애가 내 눈에 너무 작아 보이기도 했구요. ㅋㅋ)
한번 손을 들 챤스를 놓치고 나니까
나 여기 있소 하고 나서는게 더 어렵더라구요.
아무리 불러도 나서는 여자애가 없자
짝을 못 찾은 그 남자애는 한 켠에 비켜 서 있고
다른 번호들은 일사천리로 짝을 맞추어
각자 자기 파트너랑 어디론가 나가더라구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는지
끝번까지 다 불렀는데도 짝이 없는 사람이
남자3명, 여자 2명이었는데
다행히 내 짝이었던 3번은 그 사이 가버렸더라구요.
주선했던 선배들이
짝이 없는 애들을 몽땅 데리고 근처 다방에 가서
커피를 한잔 씩 먹여 가지고
우루루 전철을 같이 타고 집에 오는 걸로 첫미팅 끝~
그 후에도 미팅은 몇 번 했지만
혹시나~ 하고 나갔다가 역시나~하고 들어온다는 말이 딱 맞아서
내 맘에 드는 사람을 파트너로 만나지 못했지요.
언니들도 미팅을 했나요?
그 땐 어떤 방식으로 미팅을 했는지 무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내 첫미팅 파트너가 될 뻔했던 그 남자애는
지금쯤 장가를 가서 잘 살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하고요. 호호호호 ~ ::$
2005.08.21 15:35:42 (*.116.84.240)
한양대 음대 기악과 1학년 (이름도 기억 안나요) 하고 미팅할 때 한말
진수: 음대 가려면 체르니 얼마 쳐야 해요?
한음: 씨~ㄱ
(지금 음악학원 하는 제조카가 그 때 바이엘 쳤는데..것도 대단하게 생각해서 그만..실언을.(x19))
진수: 음대 가려면 체르니 얼마 쳐야 해요?
한음: 씨~ㄱ
(지금 음악학원 하는 제조카가 그 때 바이엘 쳤는데..것도 대단하게 생각해서 그만..실언을.(x19))
2005.08.21 17:39:38 (*.121.85.215)
ㅎㅎㅎ....
미팅 이래야 뭐 바닥이 좁아서
맨 제고 출신들 하구만 했지
근데 난 남자형제들 틈에서 자라선지
갸덜이 기냥 어려보이구 가슴이 뛰두 않아서
억지루 쫌 중얼대다 들어오고
쬐곰 이쁜 애덜은 After도 받구 하두만
난 고런거하는 ㅁ두 없구......
딴아이 After 받느라 편지온거 슬쩍해서
읽구 배가 아파서 꾸겨서 쓰레기 통에 넣어버리구........
갸한테 얼마전에 그야그 했더니
(버렸단 소린 안하구 기냥 읽어보구 도로 편지함에 꽂았다구.......ㅍㅍㅍ)
팔짝팔짝 뛰며 왜그랬냐구..?
그편지 있었으믄 자기 팔자가 달라졌을 꺼라나 뭐라나....ㅋㅋㅋ (x10)
아마 내가 교회 안 다녔으믄 사기꾼 됐을껴.....ㅋㅋㅋ(x9)
미팅 이래야 뭐 바닥이 좁아서
맨 제고 출신들 하구만 했지
근데 난 남자형제들 틈에서 자라선지
갸덜이 기냥 어려보이구 가슴이 뛰두 않아서
억지루 쫌 중얼대다 들어오고
쬐곰 이쁜 애덜은 After도 받구 하두만
난 고런거하는 ㅁ두 없구......
딴아이 After 받느라 편지온거 슬쩍해서
읽구 배가 아파서 꾸겨서 쓰레기 통에 넣어버리구........
갸한테 얼마전에 그야그 했더니
(버렸단 소린 안하구 기냥 읽어보구 도로 편지함에 꽂았다구.......ㅍㅍㅍ)
팔짝팔짝 뛰며 왜그랬냐구..?
그편지 있었으믄 자기 팔자가 달라졌을 꺼라나 뭐라나....ㅋㅋㅋ (x10)
아마 내가 교회 안 다녔으믄 사기꾼 됐을껴.....ㅋㅋㅋ(x9)
2005.08.21 22:57:11 (*.234.141.86)
요즘 애들도 미팅을 하나요?
그 때는 으레 미팅은 대학생이 되면 통과의례처럼 해야 하는 거였죠.
미팅의 비극....
내 파트너는 그 중에 젤 맘에 안드는 폭탄이 걸리고
맘에 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파트너가 되고...
그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거예요.
미팅에서 파트너 정하는 방법도 다양해서
서로 같은 번호로 짝이 되는 건 고전적인 방법이고
남자가 내 놓은 소지품을 여자가 집으면
그 물건의 임자와 짝이 되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자기 맘에 꼭 드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끼리 슬쩍 바꿔치기 하기도 했었고요. ㅋㅋㅋ)
지금도 기억에 남는 파트너 정하기는
가수 이름과 히트곡을 맞추어 가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송창식 - 새는
김세환 - 좋은걸 어떡해
그 때 내가 집은 가수 이름은 김세환이었고
내 파트너는 좋은걸 어떡해 였고
내 친구는 송창식 이었고
그 파트너는 새는 이었고....
우리가 조은걸, 새는 이라는 닉네임으로 부르던 그 파트너들은
아직도 우리들 마음 속에 청년으로 남아 있는데
지금 실제의 그들은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고
일상이 바쁘고 조금은 지친 중년 아저씨들이 되어 있겠죠?
순호언니 말마따나 바닥이 좁아서
누구랑 미팅했던 누구라는 것이
빤히 소문이 나기도 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
30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을 만나보니
미팅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골인을 한 애들도 많기는 해요.
그런데 웃기는 건
원래 자기 파트너가 아니었던 사람과 성사가 된 예가 더 많다는 거예요.
얼마나 스릴이 있고 드라마틱 했을꼬?
옥규야 ~
미팅한다고 우루루 몰려 다니던 것이 바로 어제 일 같구나.
그런데....미팅을 했던 기억은 아주 또렷이 나는데
파트너 얼굴은 도무지 생각이 안난다.
너는 생각이 나니? ::p
그 때는 으레 미팅은 대학생이 되면 통과의례처럼 해야 하는 거였죠.
미팅의 비극....
내 파트너는 그 중에 젤 맘에 안드는 폭탄이 걸리고
맘에 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파트너가 되고...
그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거예요.
미팅에서 파트너 정하는 방법도 다양해서
서로 같은 번호로 짝이 되는 건 고전적인 방법이고
남자가 내 놓은 소지품을 여자가 집으면
그 물건의 임자와 짝이 되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자기 맘에 꼭 드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끼리 슬쩍 바꿔치기 하기도 했었고요. ㅋㅋㅋ)
지금도 기억에 남는 파트너 정하기는
가수 이름과 히트곡을 맞추어 가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송창식 - 새는
김세환 - 좋은걸 어떡해
그 때 내가 집은 가수 이름은 김세환이었고
내 파트너는 좋은걸 어떡해 였고
내 친구는 송창식 이었고
그 파트너는 새는 이었고....
우리가 조은걸, 새는 이라는 닉네임으로 부르던 그 파트너들은
아직도 우리들 마음 속에 청년으로 남아 있는데
지금 실제의 그들은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고
일상이 바쁘고 조금은 지친 중년 아저씨들이 되어 있겠죠?
순호언니 말마따나 바닥이 좁아서
누구랑 미팅했던 누구라는 것이
빤히 소문이 나기도 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
30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을 만나보니
미팅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골인을 한 애들도 많기는 해요.
그런데 웃기는 건
원래 자기 파트너가 아니었던 사람과 성사가 된 예가 더 많다는 거예요.
얼마나 스릴이 있고 드라마틱 했을꼬?
옥규야 ~
미팅한다고 우루루 몰려 다니던 것이 바로 어제 일 같구나.
그런데....미팅을 했던 기억은 아주 또렷이 나는데
파트너 얼굴은 도무지 생각이 안난다.
너는 생각이 나니? ::p
2005.08.28 01:00:23 (*.116.74.129)
박화림 선배님, 어머니 보내고 오셔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말씀으로 묻지도 못할 일이고 해서 봄날에 올린 선배님 글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각자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길이 험난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선배님내외분, 건강하시고 우리 죽는 날까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묻지도 못할 일이고 해서 봄날에 올린 선배님 글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각자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길이 험난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선배님내외분, 건강하시고 우리 죽는 날까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05.08.28 17:34:28 (*.186.241.201)
오랫만에 빨간 불 들어 왔길래 왔더니 내가 제일 좋아 하는 찬양이~~~~~~~~~~~~~~~
게다가 부산 카톨릭 합창단의 연주군요.
기독교에 가장 강하게 이끌릴 때가 장례식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근데 진수후배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딱맞는 음악만 골라온대요?
난 찬송가가 좋아서 교회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대에서 입학예배 보는데 그넓은 강당에 울려 퍼지는 전기 오르간 소리에 일단 꼴닥 넘어갔어요. 정식으로 다닌건 훨씬 뒤지만 지금도
찬송가만 들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답니다..
대개의 젊은 반주자들은
그냥 악보가 클래식음악에 비해 쉬우니까 막 쳐대더군요.(안그런 사람 빼 놓고)
교회 반주는 예배를 돕는 역할이지 혼자 연주 하면 안되는데도 회중의 연령이나 가사전달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땐 한대 팍 쥐어박고 싶어진다구요(제가 워낙 화끈한 성미인데 아마 여고 친구들은 잘 모를꺼에요.
내숭은 아닌데 부끄럼 많이 탔기 때문에 아주 얌전한 고교생이었거든요)
우리가 기도할 때 옆에서 떠들면 신경질 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전 아직도 찬송가 반주하기 전에 굉장히 여러 번 연습하고 예배시간 1시간 전부터 가서 연습한답니다. 빠르기나 강도도 성도들의 연령이나 인원 수에 맞춰서 조절하지요.
찬송가 가사는 대개 4절로 되어 있으니까 기,승,전, 결이 있거든요. 같은 곡을 4번 반복하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오르간이나 오케스트라가 없을 땐 피아니스트가 기지를 발휘해 줘야 지요.
사실 우리 교회는 별로 크지도 않고 성가대도 전문가집단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니까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되고 예배는 생방송과도 같쟎아요?
화림이 어머님 상으로 마음이 갈아 앉았는데 위로가 됩니다.(:l)
게다가 부산 카톨릭 합창단의 연주군요.
기독교에 가장 강하게 이끌릴 때가 장례식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근데 진수후배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딱맞는 음악만 골라온대요?
난 찬송가가 좋아서 교회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대에서 입학예배 보는데 그넓은 강당에 울려 퍼지는 전기 오르간 소리에 일단 꼴닥 넘어갔어요. 정식으로 다닌건 훨씬 뒤지만 지금도
찬송가만 들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답니다..
대개의 젊은 반주자들은
그냥 악보가 클래식음악에 비해 쉬우니까 막 쳐대더군요.(안그런 사람 빼 놓고)
교회 반주는 예배를 돕는 역할이지 혼자 연주 하면 안되는데도 회중의 연령이나 가사전달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땐 한대 팍 쥐어박고 싶어진다구요(제가 워낙 화끈한 성미인데 아마 여고 친구들은 잘 모를꺼에요.
내숭은 아닌데 부끄럼 많이 탔기 때문에 아주 얌전한 고교생이었거든요)
우리가 기도할 때 옆에서 떠들면 신경질 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전 아직도 찬송가 반주하기 전에 굉장히 여러 번 연습하고 예배시간 1시간 전부터 가서 연습한답니다. 빠르기나 강도도 성도들의 연령이나 인원 수에 맞춰서 조절하지요.
찬송가 가사는 대개 4절로 되어 있으니까 기,승,전, 결이 있거든요. 같은 곡을 4번 반복하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오르간이나 오케스트라가 없을 땐 피아니스트가 기지를 발휘해 줘야 지요.
사실 우리 교회는 별로 크지도 않고 성가대도 전문가집단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니까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되고 예배는 생방송과도 같쟎아요?
화림이 어머님 상으로 마음이 갈아 앉았는데 위로가 됩니다.(:l)
2005.08.28 18:37:25 (*.234.141.39)
명옥언니,
저도 찬양곡이 좋아서 이 방에 망연히 앉아 있어요.
어떤 음악보다도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영혼 깊은 곳부터 다독여서
상처나고 헝크러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네요.
어제 반창회에서 졸업 후 처음 보는 친구들이 저더러
너는 참 많이 변했구나 하기도 하고
네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구나 하기도 했어요.
변했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대로인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많이 변한 것은 외모겠지요.
세월에 쓸려 가면서
살도 붙고, 주름도 생기고, 장기들도 노쇠하고....
생각도 많이 변했을 거예요.
예전엔 똑부러지게 야무지고, 콧대 높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스칼렛 같은 똑똑한 여자가 좋았었는데
지금은, 편안하고, 남을 배려하고, 마음이 낮고 겸손한
멜라니 같은 여자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전에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려 애쓰니까요.
그럼,
아직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진지하게 삶에 임하는 <열정>이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날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던 그 순간에 했던 <결단>이었으면 좋겠어요.
주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의 <첫사랑>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의 <참 자유>였으면 좋겠어요.
명옥언니와 이 가을이 너무 깊어 버리기 전에 만나서
바다를 내다보며 차나 한 잔 마셨으면 좋겠어요. ::$
저도 찬양곡이 좋아서 이 방에 망연히 앉아 있어요.
어떤 음악보다도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영혼 깊은 곳부터 다독여서
상처나고 헝크러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네요.
어제 반창회에서 졸업 후 처음 보는 친구들이 저더러
너는 참 많이 변했구나 하기도 하고
네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구나 하기도 했어요.
변했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대로인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많이 변한 것은 외모겠지요.
세월에 쓸려 가면서
살도 붙고, 주름도 생기고, 장기들도 노쇠하고....
생각도 많이 변했을 거예요.
예전엔 똑부러지게 야무지고, 콧대 높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스칼렛 같은 똑똑한 여자가 좋았었는데
지금은, 편안하고, 남을 배려하고, 마음이 낮고 겸손한
멜라니 같은 여자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전에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려 애쓰니까요.
그럼,
아직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진지하게 삶에 임하는 <열정>이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날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던 그 순간에 했던 <결단>이었으면 좋겠어요.
주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의 <첫사랑>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의 <참 자유>였으면 좋겠어요.
명옥언니와 이 가을이 너무 깊어 버리기 전에 만나서
바다를 내다보며 차나 한 잔 마셨으면 좋겠어요. ::$
2005.08.28 19:40:27 (*.238.113.75)
진수후배~
이 방 본래 음악도 기억퍼즐 맞추기에 좋았지만 지금 특별히 추모곡을 올려주니 감동이네요.
우리 엄마도 엘리자벳이고 난 요안나 랍니다.
옛날엔 뭐든 천주교에 촛점을 맞췄는데 단학선원에 몇년 다니면서 종교관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것이 중요한 것이지, 가는 길이 다를뿐 주님께 가는 목적은 같다는 생각이에요. 영혼의 완성이 중요한 거지요.
명옥아~
종교가 있다는건 참 행복이란 생각을 했어.
엄마가 가실때 죽음에 너무나 의연하셔서 나도 엄마가 그토록 맘이 크심에 놀랐단다.
한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절대로 억지로 삶을 연장시키지 말라고 부탁하셨어.
또 눈물이 흐르네.
글고 너 건겅은 괜찮은지? 지난번에 걱정하더니만, 목은 다 낳았는지~
춘선이 말처럼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바다를 보며 차 한잔 마시자.(우아~ 무드있다)
춘선아~
중국여행에서 그렇게 많은걸 느끼고 왔다니 좋겠네.
감성이 그리 풍부한데 어디 다녀온들 남다른 추억과 느낌을 담아오지 않겠어?
지루한 사추기는 어찌 됬노?
언제나 너의 팬이야, 나도 힘낼께, 우리 화이팅,(:f)(:l)
이 방 본래 음악도 기억퍼즐 맞추기에 좋았지만 지금 특별히 추모곡을 올려주니 감동이네요.
우리 엄마도 엘리자벳이고 난 요안나 랍니다.
옛날엔 뭐든 천주교에 촛점을 맞췄는데 단학선원에 몇년 다니면서 종교관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것이 중요한 것이지, 가는 길이 다를뿐 주님께 가는 목적은 같다는 생각이에요. 영혼의 완성이 중요한 거지요.
명옥아~
종교가 있다는건 참 행복이란 생각을 했어.
엄마가 가실때 죽음에 너무나 의연하셔서 나도 엄마가 그토록 맘이 크심에 놀랐단다.
한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절대로 억지로 삶을 연장시키지 말라고 부탁하셨어.
또 눈물이 흐르네.
글고 너 건겅은 괜찮은지? 지난번에 걱정하더니만, 목은 다 낳았는지~
춘선이 말처럼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바다를 보며 차 한잔 마시자.(우아~ 무드있다)
춘선아~
중국여행에서 그렇게 많은걸 느끼고 왔다니 좋겠네.
감성이 그리 풍부한데 어디 다녀온들 남다른 추억과 느낌을 담아오지 않겠어?
지루한 사추기는 어찌 됬노?
언제나 너의 팬이야, 나도 힘낼께, 우리 화이팅,(:f)(:l)
2005.08.28 20:03:35 (*.234.141.39)
화림언니,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게 사추기가 온 덕분에
미친듯이 홈피에다 댓글도 달고
언니들과 속살을 내보이는 대화도 하고 그랬어요.
이제는 사추기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요.
이모작을 하려면 땅을 다시 갈아야 하는거 잖아요.
우리가 사추기라 이름지은 감정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칫 그대로 퇴화해 버리고 말 뻔했던
내 속에 있던 많은 감정들을 복원해 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죠?
헝클어진 반짇고리를 뒤집어 쏟아놓고
단추는 단추대로 실은 각기 제 색깔대로 얌전히 정리를 해서
제 자리에 쓰기 좋게 올려 놓은 기분 아세요?
적시에 황산에 갔어요.
숨이 턱에 닿도록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에 뿌리를 박고 우뚝 서 있는 소나무, 그리고
힘겹게 구름을 헤치고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다시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했어요.
좀 더 의연하고 담담한 자세로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보람있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휘청거리며 방황하며 보내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니까요.
언니가 내 삶에 찾아 오신 거 감사해요.
나도 언니에게 기쁨과 힘을 나누어 드렸음 좋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게 사추기가 온 덕분에
미친듯이 홈피에다 댓글도 달고
언니들과 속살을 내보이는 대화도 하고 그랬어요.
이제는 사추기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요.
이모작을 하려면 땅을 다시 갈아야 하는거 잖아요.
우리가 사추기라 이름지은 감정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칫 그대로 퇴화해 버리고 말 뻔했던
내 속에 있던 많은 감정들을 복원해 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죠?
헝클어진 반짇고리를 뒤집어 쏟아놓고
단추는 단추대로 실은 각기 제 색깔대로 얌전히 정리를 해서
제 자리에 쓰기 좋게 올려 놓은 기분 아세요?
적시에 황산에 갔어요.
숨이 턱에 닿도록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에 뿌리를 박고 우뚝 서 있는 소나무, 그리고
힘겹게 구름을 헤치고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다시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했어요.
좀 더 의연하고 담담한 자세로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보람있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휘청거리며 방황하며 보내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니까요.
언니가 내 삶에 찾아 오신 거 감사해요.
나도 언니에게 기쁨과 힘을 나누어 드렸음 좋겠어요.
2005.08.28 21:31:10 (*.186.241.201)
그런데 춘선후배 이 댓글도 만만챦게 늘고 있는데 이참에 여기도 새살림 차리면 어떨까?
봄날처럼 말이야. "기억 퍼즐 맞추기"란 제목이 시작도 끝도없이 한없이 갈 것 같은데~~~~~~~~~~~~~~~~~~~~~~~~~~~~~~~~~~~~~~~~~~~~~~~~~~~~~~~
제목 공모 합시다. 아니면 1탄 2탄 3탄으로 가든지!
여러분 어찌 생각 하십니까? 묵살하지 말고 신중히 고려해 주세요.(:l)
봄날처럼 말이야. "기억 퍼즐 맞추기"란 제목이 시작도 끝도없이 한없이 갈 것 같은데~~~~~~~~~~~~~~~~~~~~~~~~~~~~~~~~~~~~~~~~~~~~~~~~~~~~~~~
제목 공모 합시다. 아니면 1탄 2탄 3탄으로 가든지!
여러분 어찌 생각 하십니까? 묵살하지 말고 신중히 고려해 주세요.(:l)
2005.08.28 21:50:03 (*.234.141.39)
명옥언니,
그냥 뒷채에 있는 작은 골방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생각하고 싶을 때 들어 와서 생각을 나누는 방으로
이 방을 남겨두는게 어떨지요?
이야기를 풀어 낼 다른 방들이 이미 많은데
굳이 이걸 광장에 내다 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댓글이 너무 넘친다 싶기 전에
제가 또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서 올리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가 그곳에서 이어지겠죠?
서로의 마음을 풀어 놓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야 글 사랑에 글도 많이 모이고
저도 작품을 쓸 기회를 얻을테니까요.
언니,
오늘 교회에서 나오는데 햇살이 참 고왔어요.
과일의 마지막 단맛을 완성시키려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그것은 어쩌면
이제 막 밭을 갈아 파종을 한 씨앗을 틔우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죠.
언니가 치는 반주에 맞춰서 찬양을 부르고 싶고
언니의 피아노 연주를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듣고 싶네요.
언어가 없이도 교감을 할 수 있게요.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도 대화를 하는 지금처럼.... ::$
그냥 뒷채에 있는 작은 골방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생각하고 싶을 때 들어 와서 생각을 나누는 방으로
이 방을 남겨두는게 어떨지요?
이야기를 풀어 낼 다른 방들이 이미 많은데
굳이 이걸 광장에 내다 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댓글이 너무 넘친다 싶기 전에
제가 또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서 올리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가 그곳에서 이어지겠죠?
서로의 마음을 풀어 놓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야 글 사랑에 글도 많이 모이고
저도 작품을 쓸 기회를 얻을테니까요.
언니,
오늘 교회에서 나오는데 햇살이 참 고왔어요.
과일의 마지막 단맛을 완성시키려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그것은 어쩌면
이제 막 밭을 갈아 파종을 한 씨앗을 틔우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죠.
언니가 치는 반주에 맞춰서 찬양을 부르고 싶고
언니의 피아노 연주를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듣고 싶네요.
언어가 없이도 교감을 할 수 있게요.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도 대화를 하는 지금처럼.... ::$
2005.08.29 21:45:36 (*.116.80.127)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들으며 우리는 한 어른의 임종을 예감했습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라도 이 세상에서의 삶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기적이 우리에게 보여졌지만 사람의 죽음은 당연히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고통과 임종뒤에는 일시적인 실망과 원망도 따르더군요.
기도는 하였지만 살아나실 것을 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고통을 잠재워달라고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원할 수 없었지요.
많은 이들이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당사자인 박화림선배님께서는 양동이로 하나는 흘렸다고 하셨지요.
이제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고 박선배님께서는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박선배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주여 임하소서를 들려드렸습니다.
그 곡은 다소 불경하다고 하실지 모르나 한두달 전부터 화림선배님을 위하여 찾은 곡입니다.
여러 곡을 찾고 듣고, 찾고 듣고를 반복하면서 화림선배님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해치지 않을 곡으로...
며칠간은 종교적인 음악을 여러분들이 양해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런데 알고보니 이미 열흘 가까이 전에 돌아가신 것을 이제야 알았더군요.
화림선배님으로서는 얼마나 지치고 힘드신 나날이었겠어요..
돌아가신 분은 돌아가셨다지만 남아 있는 분은 지치지 말아야지요.
주여 임하소서를 듣고 또 우셨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는 화림선배님께서 보다 빨리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서 건강하게 이웃과 함께 계셨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곡을 바꿀 생각을 했습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오늘 저는 이 곡을 내렸습니다.
이 곡이 오히려 경망하여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고, 이 곡을 불렀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던 수녀께서
삶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악기가 없어도, 노래하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화림선배님의 마음에서 고요한 명상으로 평온을 얻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라도 이 세상에서의 삶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기적이 우리에게 보여졌지만 사람의 죽음은 당연히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고통과 임종뒤에는 일시적인 실망과 원망도 따르더군요.
기도는 하였지만 살아나실 것을 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고통을 잠재워달라고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원할 수 없었지요.
많은 이들이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당사자인 박화림선배님께서는 양동이로 하나는 흘렸다고 하셨지요.
이제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고 박선배님께서는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박선배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주여 임하소서를 들려드렸습니다.
그 곡은 다소 불경하다고 하실지 모르나 한두달 전부터 화림선배님을 위하여 찾은 곡입니다.
여러 곡을 찾고 듣고, 찾고 듣고를 반복하면서 화림선배님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해치지 않을 곡으로...
며칠간은 종교적인 음악을 여러분들이 양해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런데 알고보니 이미 열흘 가까이 전에 돌아가신 것을 이제야 알았더군요.
화림선배님으로서는 얼마나 지치고 힘드신 나날이었겠어요..
돌아가신 분은 돌아가셨다지만 남아 있는 분은 지치지 말아야지요.
주여 임하소서를 듣고 또 우셨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는 화림선배님께서 보다 빨리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서 건강하게 이웃과 함께 계셨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곡을 바꿀 생각을 했습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오늘 저는 이 곡을 내렸습니다.
이 곡이 오히려 경망하여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고, 이 곡을 불렀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던 수녀께서
삶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악기가 없어도, 노래하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화림선배님의 마음에서 고요한 명상으로 평온을 얻기를 바라면서.
2005.08.30 01:37:18 (*.238.113.75)
진수후배~
어쩜 그리 섬세하고 정이 많은지, 음악을 그리 신경써서 골라놓았다니 황공은 물론이고 감동이네요. 하느님은 왜 사랑하는 사람을 작별하게 만드셨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땐 이 정도로 슬프진 않았는데, 엄마는 정말 가슴이 시려와죽겠네요.
나 근데 "기차는 8시에 ~"그 음악 너무 좋던데, 그 음악 들으며 추억을 더듬고 했었는데 다시 올림 안될까?
이제부턴 명상속에서 엄마를 만나려고 해요.
우리 홈피에 없어서는 안 될 D,J 진수후배, 하는 일이 더욱 잘 되기를 기도 할게요.(:y)
어쩜 그리 섬세하고 정이 많은지, 음악을 그리 신경써서 골라놓았다니 황공은 물론이고 감동이네요. 하느님은 왜 사랑하는 사람을 작별하게 만드셨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땐 이 정도로 슬프진 않았는데, 엄마는 정말 가슴이 시려와죽겠네요.
나 근데 "기차는 8시에 ~"그 음악 너무 좋던데, 그 음악 들으며 추억을 더듬고 했었는데 다시 올림 안될까?
이제부턴 명상속에서 엄마를 만나려고 해요.
우리 홈피에 없어서는 안 될 D,J 진수후배, 하는 일이 더욱 잘 되기를 기도 할게요.(:y)
2005.08.30 09:34:14 (*.19.209.17)
Dear Hwa Rim unni,
I am so sorry to hear your mother's passing.
Though it's the first time writing to you, I feel I am standing near by you to condole your mother's passed away.
One of the most difficult situation as an immigrant is hard to be there on time for dying parents. For my mother's passing I could not stay in here after I got news for mom's terminal cancer, so I flew a couple days later and stayed in there whole year. Five years later, when my father's passing time we're barely made in funeral atter he pass away. Everybody were waiting for children of MangJa. Compare to this situation, your mother was blessed surrounding with all of her children and relatives.
I saw your warmful heart and typical little women's feature. Showing your own weakness and asking for spiritual help from friends. I know this summer is very long and warm for you and your family to take care of your father-in-law and dying mom. Bless your heart!!!
I will offer special mass for your mom to go heaven safely.
May God give you strength to bear every suffering.
Mr. Park (respectful way), thank you so much. I am very appreciated your kindness for Hwa Rim unni's loss. God bless you,too.
Pax et bonum,
Kyoohui
I am so sorry to hear your mother's passing.
Though it's the first time writing to you, I feel I am standing near by you to condole your mother's passed away.
One of the most difficult situation as an immigrant is hard to be there on time for dying parents. For my mother's passing I could not stay in here after I got news for mom's terminal cancer, so I flew a couple days later and stayed in there whole year. Five years later, when my father's passing time we're barely made in funeral atter he pass away. Everybody were waiting for children of MangJa. Compare to this situation, your mother was blessed surrounding with all of her children and relatives.
I saw your warmful heart and typical little women's feature. Showing your own weakness and asking for spiritual help from friends. I know this summer is very long and warm for you and your family to take care of your father-in-law and dying mom. Bless your heart!!!
I will offer special mass for your mom to go heaven safely.
May God give you strength to bear every suffering.
Mr. Park (respectful way), thank you so much. I am very appreciated your kindness for Hwa Rim unni's loss. God bless you,too.
Pax et bonum,
Kyoohui
2005.08.30 12:11:07 (*.82.74.89)
나도 이 음악이 제일 생각을 차분하게 해 줘서 좋던데
화림언니도 그러시네...
우리는 그저 무심히 듣고 즐기는 음악을
그리 깊은 배려를 통해 골랐다니....
무어라 할 말이 없네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규희야,
나무를 보면서 많은걸 배운다.
새 잎이 나려면 먼저 있던 이파리들이 낙엽이 되어
그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하더라.
쉬지 않고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
먼저 온 이가 먼저 가고
나중에 온 이가 나중이 갈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축복이 되는 거야.
인생이란
올 때는 순서대로 왔어도
가는데는 정해진 순서가 없는 법이니까.
나보다 늦게 온 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지 않고
차례차례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아니,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싶지 않아.
내가 먼저 가고 싶지.
남편에게 나는 가끔 이렇게 협박을 한단다.
"당신,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
나 고이 잘 싸서 보내 주는게 당신의 임무라는거 잊지마 !!!"
떠나 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한 것보다 더 큰 모양이지?
아마 그것은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몰라.
아무튼 나는,
사는 것이 너무 무료하고 지루해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아름답게 떠나고 싶단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활활 다 태우며 살다가
떠나는 순간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갔음 좋겠어.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화림언니도 그러시네...
우리는 그저 무심히 듣고 즐기는 음악을
그리 깊은 배려를 통해 골랐다니....
무어라 할 말이 없네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규희야,
나무를 보면서 많은걸 배운다.
새 잎이 나려면 먼저 있던 이파리들이 낙엽이 되어
그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하더라.
쉬지 않고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
먼저 온 이가 먼저 가고
나중에 온 이가 나중이 갈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축복이 되는 거야.
인생이란
올 때는 순서대로 왔어도
가는데는 정해진 순서가 없는 법이니까.
나보다 늦게 온 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지 않고
차례차례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아니,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싶지 않아.
내가 먼저 가고 싶지.
남편에게 나는 가끔 이렇게 협박을 한단다.
"당신,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
나 고이 잘 싸서 보내 주는게 당신의 임무라는거 잊지마 !!!"
떠나 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한 것보다 더 큰 모양이지?
아마 그것은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몰라.
아무튼 나는,
사는 것이 너무 무료하고 지루해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아름답게 떠나고 싶단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활활 다 태우며 살다가
떠나는 순간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갔음 좋겠어.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2005.08.30 13:38:11 (*.238.113.75)
규희후배~
12기 후배들이 올리브 올리브해서 누굴까? 궁금하긴 했었지만 우리 서로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멀리서 위로의 글 올려줘서 뭐라고 감사해야할지~
우리 엄마 미사를 올려준다니 또 눈물이 나네요.
우리 엄마는 최 엘리사벳이에요.
고맙게 받을게요. 한국오면 꾝 연락해요,
갈데 너무 많아요. 은희언니네, 부산 명옥이네, 우리집은 근처에 일산 호수공원이 있구요.
이국따의 어려움 그 따듯한 맘으로 잘 이겨나갈것 같군요.
만날날까지 안녕~
사랑스런 진수후배 ~
부지런하다.어느새 음악을~
이 누나가 아무리 바빠도 밥한번 사고 싶구만.
죽어도 안보여줘서 우리의 궁굼증을 더욱 유발시킬 모양이지?
암튼 잘 지내요, 감사.(:c)(:f)
12기 후배들이 올리브 올리브해서 누굴까? 궁금하긴 했었지만 우리 서로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멀리서 위로의 글 올려줘서 뭐라고 감사해야할지~
우리 엄마 미사를 올려준다니 또 눈물이 나네요.
우리 엄마는 최 엘리사벳이에요.
고맙게 받을게요. 한국오면 꾝 연락해요,
갈데 너무 많아요. 은희언니네, 부산 명옥이네, 우리집은 근처에 일산 호수공원이 있구요.
이국따의 어려움 그 따듯한 맘으로 잘 이겨나갈것 같군요.
만날날까지 안녕~
사랑스런 진수후배 ~
부지런하다.어느새 음악을~
이 누나가 아무리 바빠도 밥한번 사고 싶구만.
죽어도 안보여줘서 우리의 궁굼증을 더욱 유발시킬 모양이지?
암튼 잘 지내요, 감사.(:c)(:f)
2005.08.30 15:17:18 (*.107.89.143)
+ 주의 평화.
중간 중간 보는데 타이밍을 못맞춰서 부득이 두루 인사를 드립니다.
규희님, 춘선님, 화림 선배님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별히 이규희님, 망자를 위한 연미사 놀랍고 고맙습니다.
중간 중간 보는데 타이밍을 못맞춰서 부득이 두루 인사를 드립니다.
규희님, 춘선님, 화림 선배님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별히 이규희님, 망자를 위한 연미사 놀랍고 고맙습니다.
2005.08.30 23:44:09 (*.221.56.136)
규희야 니 마음이 고맙다. 훌륭하다.
나 해석 다 했다. 완벽히.
마침 영어 선생이 지나가지 않니? ㅎㅎ
화림이 언니가 무척 고마워하겠구나. 마음 나눔이 너무나 좋구나.......
나 해석 다 했다. 완벽히.
마침 영어 선생이 지나가지 않니? ㅎㅎ
화림이 언니가 무척 고마워하겠구나. 마음 나눔이 너무나 좋구나.......
2005.08.31 08:09:40 (*.238.113.75)
옥규야~
맞아, 규희후배의 고운 맘씨가 넘 고마웠어.
근데 나두 완벽하게 해석 다 했다.
"이리와 봐~ 여보~ 이거 빨리 해석해 줘~"했거든 ::p
맞아, 규희후배의 고운 맘씨가 넘 고마웠어.
근데 나두 완벽하게 해석 다 했다.
"이리와 봐~ 여보~ 이거 빨리 해석해 줘~"했거든 ::p
2005.08.31 09:53:33 (*.234.141.39)
어제 운전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규희였어.
내가 달아 놓은 댓글을 보고
너무 심각하고 우울하게 느껴져서 전화 했다고....
규희야,
내 말은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야.
끊임 없이 오고 가는 자연의 질서 속에
나 역시 포함이 되어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 뿐이지.
특별히 우울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표출한 게 아니니까
니가 그 멀리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거야,
내 말 알아 듣지?
이모작 씨뿌리기를 정말 잘 해야겠어.
자칫하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시간을 죽이는 것조차 힘이 들어 쩔쩔 매면서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업혀서 징징거리며
저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다가 가는 인생이 될 수 있거든.
타다 만 나무처럼 연기만 요란하게 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눈물을 짜내고
시커멓고 보기 흉한 깡탱이를 남기고 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연습해야 할거 같아.
활활 타올라서 완전연소를 하고
아무 찌꺼기도 남기지 않는 연습 말이야.
아무도 우리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하여,
훌륭한 어른으로 사는 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으니
스스로 깨쳐서 통달하기란 정말 만만치가 않아.
어느새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가을걷이를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데
한번 거두고 난 빈 들에다가
또 무엇인가를 심든지 아님 그냥 묵히든지
그건 전적으로 자기의 선택일 뿐
공통 필수 사항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두렵게 다가오는거 있지.
나는 요즘
내 인생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하고 있단다.
비어 가는 내 들에다가
무언가를 다시 심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좋은 씨앗을 심고 싶어서 .....
규희는 요즘 무슨 생각하고 사니? ::$
규희였어.
내가 달아 놓은 댓글을 보고
너무 심각하고 우울하게 느껴져서 전화 했다고....
규희야,
내 말은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야.
끊임 없이 오고 가는 자연의 질서 속에
나 역시 포함이 되어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 뿐이지.
특별히 우울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표출한 게 아니니까
니가 그 멀리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거야,
내 말 알아 듣지?
이모작 씨뿌리기를 정말 잘 해야겠어.
자칫하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시간을 죽이는 것조차 힘이 들어 쩔쩔 매면서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업혀서 징징거리며
저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다가 가는 인생이 될 수 있거든.
타다 만 나무처럼 연기만 요란하게 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눈물을 짜내고
시커멓고 보기 흉한 깡탱이를 남기고 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연습해야 할거 같아.
활활 타올라서 완전연소를 하고
아무 찌꺼기도 남기지 않는 연습 말이야.
아무도 우리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하여,
훌륭한 어른으로 사는 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으니
스스로 깨쳐서 통달하기란 정말 만만치가 않아.
어느새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가을걷이를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데
한번 거두고 난 빈 들에다가
또 무엇인가를 심든지 아님 그냥 묵히든지
그건 전적으로 자기의 선택일 뿐
공통 필수 사항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두렵게 다가오는거 있지.
나는 요즘
내 인생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하고 있단다.
비어 가는 내 들에다가
무언가를 다시 심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좋은 씨앗을 심고 싶어서 .....
규희는 요즘 무슨 생각하고 사니? ::$
2005.08.31 19:31:56 (*.234.141.39)
지금 막 찾아 낸 퍼즐 한 조각.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네번째는 분명히 아들일거라 기대를 했는데
우리 엄마가 또 딸을 낳은 거예요.
애 낳은 산모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 아기 고추가 어디 갔노 하고
갓난애를 이리 들쳐 보고 저리 들쳐 보고...
해산 구완 하러 오셨던 외할머니도
사위 볼 면목이 없다고
밤길에 울면서 울면서 집을 나섰는데
그만 전봇대가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부딪쳐서
앞니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하셨대요.
외할머니...
참으로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이름이네요.
유난히도 아들을 선호하셨던 그 경상도 노인은
어릴적에 잔병치레를 일삼던 나를 은근히 구박했어요.
고추도 못달고 나온 것이
지 에미 힘들게 달달 볶아 먹는다고요.
아무거나 주는대로 먹지도 않고
외갓집만 다녀오면 병이 나는 허깨비같은 손녀딸이
외할머니에게 착착 안기지도 않았으니
충분히 미움을 받을만도 했죠.
우리 아버지는 겉으론 아주 무뚝뚝하지만
속 정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나봐요.
엄마한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도
월급날이면 꼭 장모님이 좋아하는 쇠고기 사고 술도 한병 들고 가서
밤이 늦도록 장모님과 권커니 자커니
술이 얼찌근하게 오를 때까지 대작을 하곤 했으니까요.
고향에 두고 온 오마니가 그리울 때면
불쑥 술 한병 사들고 찾아가기도 했다니
외할머니에게 사위는 아들 맞잽이도 되었겠죠?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나는 죽어도 장모가 될 수도 없고
외할머니는 더더욱 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이거야 원,,,,
그런데 말예요.
내가 유심히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엄마 얼굴이
꼭 외할머니 같아지더라고요.
그러더니 몇년 전부터
우리 애들도 내게서 외할머니, 내 엄마의 모습을 보더라고요.
이미 가셨지만 우리 엄마는 아직도
딸들의 모습 속에서 살아 계신지도 몰라요.
화림언니,
언니는 이미 외할머니가 되었으니
죽어서도 아주 오래오래 살아 있을 거예요. 그쵸? ::$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네번째는 분명히 아들일거라 기대를 했는데
우리 엄마가 또 딸을 낳은 거예요.
애 낳은 산모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 아기 고추가 어디 갔노 하고
갓난애를 이리 들쳐 보고 저리 들쳐 보고...
해산 구완 하러 오셨던 외할머니도
사위 볼 면목이 없다고
밤길에 울면서 울면서 집을 나섰는데
그만 전봇대가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부딪쳐서
앞니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하셨대요.
외할머니...
참으로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이름이네요.
유난히도 아들을 선호하셨던 그 경상도 노인은
어릴적에 잔병치레를 일삼던 나를 은근히 구박했어요.
고추도 못달고 나온 것이
지 에미 힘들게 달달 볶아 먹는다고요.
아무거나 주는대로 먹지도 않고
외갓집만 다녀오면 병이 나는 허깨비같은 손녀딸이
외할머니에게 착착 안기지도 않았으니
충분히 미움을 받을만도 했죠.
우리 아버지는 겉으론 아주 무뚝뚝하지만
속 정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나봐요.
엄마한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도
월급날이면 꼭 장모님이 좋아하는 쇠고기 사고 술도 한병 들고 가서
밤이 늦도록 장모님과 권커니 자커니
술이 얼찌근하게 오를 때까지 대작을 하곤 했으니까요.
고향에 두고 온 오마니가 그리울 때면
불쑥 술 한병 사들고 찾아가기도 했다니
외할머니에게 사위는 아들 맞잽이도 되었겠죠?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나는 죽어도 장모가 될 수도 없고
외할머니는 더더욱 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이거야 원,,,,
그런데 말예요.
내가 유심히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엄마 얼굴이
꼭 외할머니 같아지더라고요.
그러더니 몇년 전부터
우리 애들도 내게서 외할머니, 내 엄마의 모습을 보더라고요.
이미 가셨지만 우리 엄마는 아직도
딸들의 모습 속에서 살아 계신지도 몰라요.
화림언니,
언니는 이미 외할머니가 되었으니
죽어서도 아주 오래오래 살아 있을 거예요. 그쵸? ::$
작가로부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질책을 받았음을 밝히는 바이며
추후로 고딴 짓은 안하기로 약속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