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위 사진은 박노해 시인이 찍은 것입니다.
그는 이 사진이 들어있는 엽서 뒷면에 이렇게 씁니다.
-거대한 모래폭풍과 '하붑'이 지나가고 누비아 사막에 푸른 여명이 밝아오면 나일강에도
아침 태양이 떠오른다. 하지만 사막의 진정한 태양은 여인들이다. 단순한 살림으로 삶은 풍요롭고 단단한 내면으로 앞은 희망차고 단아한 기품으로 주위가 다 눈이 부신 사막의 아침 태양은 그녀들이다. 내 생의 모든 아침은 바로 그대이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올 한해를 이렇게 보내고 싶습니다.
봄님들과 함께 미소 함박꽃 피우면서요.
복 많이 받으시고, 복 많이 지으세요~~~
요즘 저희 동네는 2 차 경제봉쇄에다가 밖에 나가다니지 말라는 명령(2월 11일까지)에
될 수 있으면 집콕방콕 하면서 지내지요.
생필품사러, 약국이나 진료에 관계된 곳은 다녀도 되고 집근처 동네를 걷는 것은 허용이 된다네요.
그래도 간혹 개 운동시키느라 다니고,
걷기를 하던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나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네요.
오늘은 모처럼 햇빛이 쨍하고 하늘도 푸르러서
온도가 조금 올라간 오후에 (영하 7도) 아예 동네한바퀴 후에 장도 좀 봐오려고
단단히 무장하고 냅색까지 매고, 중공군 털벙거지 모자 쓰고 마스크도 쓰고...
해서 5 천보 이상을 거의 일 주일만에 걸었다고 자랑해요.
헌데 바람을 안고 걸을 때는 숏컷으로 걸을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다가
그래도 모처럼 걷는데 악착같이 제가 걷는 코스로 꾸준하게 걸었지요.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은 서로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하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하이 ~!" 하고 손을 살짝 들어주고...
바람을 등지고 갈 때는 햇살이 따스하고,
눈이 부시게 화창한 겨울날에 기분도 한껏 업업업
나라 전체로 보면 확진자 수가 많이 줄었다 하는데
거제도는 예외.
들리는 말로는 일가족이 순천에 계신 어머니 생신이라
모여 식사를 하고 온 일가족이 다 확진.
거기서 그치지않고 그집 가장이
스크린콜프장 가고, 어디 가고, 어디 가고
자식들도 막 돌아다녀 문제가 커졌어요.
모여서 고스톱 친 친지들이 집단으로 확진자 되고,
이동 목욕 서비스 받은 노인들이 요양보호사한테서 감염되고,
몇 군데 집단으로 감염되니
5일 사이에확진자 32명이 나왔다네요.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감염경로등이 공개되잖아요.
병에 걸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있지요.
어머니 생일 한해 거르면 큰일이라도 나냐는둥
(다른 지역에서도 와서 11명이 같이 모였는데 9명이 양성)
고스톱 치는 건 3밀이라네요(밀집, 밀폐. 밀접)
경미하긴 해도 이상증상이 있어서 보건소 간거라는데
검사하고 오는 길에 시장(市場) 들르고, 여기저기 갔다하니까
거제시민들이 다들 시장(市長)을 고발해야한다고 난리입니다.
지자체가 이동 제한이나 집합 금지 등 방역 지침을 어긴 사람에게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아 그런 상황이 된거라고.
어머나~ 어제 남동생이 전화와서 무조건 아침 먹고 집합하라고~ 깝깝해서 살 수가 없다고 해서 점심먹고 여동생 집으로 가서 고스톱 치고 깔깔 거리고 웃다가 밤 11시에 집에 왔어. 분당사는 여동생 부부도 올라오고~ 저녁 먹으러 7명이 동네 식당에 갔는데 여자끼리 남자끼리 나눠 앉았어. 5명 이상이니 눈가리고 아웅~ 3밀이 맞네. 이제 동생들이 오라해도 안된다 하고 가지 말아야겠다.
흰눈이 펑펑 ~ 썰매는 달린다 ~ ~ ~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
펄 ~~펄 ~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 ~ ~
파아란 잔디가 보이게 눈이 다 녹았는데 심술장이 눈이
다시 또 하얗게 소리없이는 아니고 바람 동반해서... 오늘 15 쎈티의 눈이 오겠다고 하네요.
이래저래 집콕방콕에 있으니 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눈이 반갑진 않네요.
함박눈이 멋있긴 하지만, 함박꽃으론 도저히 안 보이니 제가 눈처럼 심술장이?
요즘 저녁 한끼만 한식을 하고있으니까
손끝이 자연스레 구글선생한테로 가지네요.
"오늘은 뭘 먹지?" 해서 그저께는 뒤지다보니 쓰다남은 도토리묵가루를 대 ~~발견!
도토리묵을 쑤면서 갑자기
오 ~~도토리묵밥 !!!헌데 멸치가 떨어져서 육수 낼 꺼리도 없고 우짠다냐?
ㅎㅎ시판 냉동 냉면육수를 이용해서 냉면발 대신에 도토리묵으로 ~~흠 ! 굿 아이뎌 ~~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맛나게 먹을 생각에
하루쯤 식혀서 탱글하게 해야하는데 당일로 고고고 ~~
김치속 털어서 송송썰어 무치고
계란지단 부쳐서 얌전히 썰고
김도 채썰듯 예쁘게 자르고 (ㅎ 이럼 제가 엄청시레 조신과? 이건 절대로 아님)
냉면육수에 도토리묵 썰어넣고 그위에 세 가지를 얌전하게 올려서 저녁상에
"아니 ~추운 겨울에 이 뭐꼬?"
먹어봐 ~~워메 맛낭거 ~~! 함서 국물까지 저는 다 ~~마셔버렸다고 또 자랑질 ㅋㅋ
암시랑도 제가 엄마젖도 안 떨어져서 외숙모의 손에서 자랐다는게 맞는가보네요.
먹는거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뵈나요 제가?
아기때 엄마 떨어져서 있었다면 속이 허 할꺼야. 먹기 위해 사는것 처럼 목숨 걸고 먹어야지~ㅋㅋ 인선이 땜에 한참 웃었네. 남편분도 넘 재미있으셔.
그럼요. 그럼요.
먹기 위해 살든 살기 위해 먹든
엎어치나 메치나 그 말이 그말이예요.
먹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한 동네에 사는 할머니가 계세요.
아흔여덟살 되셨다는데 정신이 총명하고 경위가 밝아요.
우리집 근처에 그 노인의 아들이 하는무화과 과수원이 있어서 알게 되었지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과수원 옆에 딸린 밭에서 일도 하셨는데
근래는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왔다갔다 하는 정도라고 했어요
근데 열흘전 밤에 뇌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다네요.
부산 큰병원으로 가서 처치받고 열흘만에 퇴원하셨대요.
말 못 하게 될까봐 말 연습,
다리 힘 빠져 못 걷고 화장실도 못 갈까봐 병원에서도 내내 걷는 연습
기운 떨어져 몸져 눕게 될까봐 죽 한 그릇을 싹싹 잡순다고하네요.
대단한 의지력이지요.
그래도 노인 일은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
100 세를 채우고 싶으시나보다. 생에 대한 욕망은 본능이니 뭐라 할 순 없지만 보살피는 아들은 힘들겠네 우리 아버님이 97세에 돌아가셨어. 우리딸이 아버님 산소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 힘드니까 이만 돌아가셔도 된다고 맘속으로 말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맘에 걸리고 슬프다고 한일이 생각나네. 주향아~ 요즘 안들어와서 불러봤어.
기다려야 하나봐요
박찬정
묵은 논
바람 찬데
얼었던 땅 비집고
나온 이파리는
얼었다 녹았다
양볼 불그레하다
기지개 켜기 조차 두려워
납작 엎드린 어린 잎
샛바람에 파르르 떤다
설한풍 견디고
용케 세상 빛 봤는데
시린 발
고개 움츠린 나날뿐
아니다. 그건 아니야
비록 풀포기라 해도
햇살 보드라운 봄날
한번은 살아봐야지
아이야!
나중에 가자꾸나
돌미나리
풋풋한 봄내
그리워도
종댕이 끼고
나서기엔
아직 이른가 보다.
주향아~
요즘 안들어와서 불러봤어.
글쎄말여라
화림 언니도 아시다시피
갸가 좀 순진무구혀쟈뉴.
요즘 맨날 테레비에서
5인 이상 모이믄 안된다쿠니까
요기에 모여도 안되는 줄 알고 안 들어오는게벼요.
주향아
여기는 괜찮아.
그 대신 마스크는 꼭 하고 들어와라. 알았쮜.
5 인이상에 걸리면(각자 벌금 $880) 큰일나니까
저는 그만
한 발을 디밀다가 얼른 갈랍니다.
ㅎㅎ 실은 마스크를 집에 놔두고 와서요 ~
마스크는 턱까지 가려야 하는데...
요즘 한번씩 나갔다가 들어오면 입 주위에 뾰루지처럼 나네요.
연고를 발라주면 또 들어갔다가 다른쪽에 나곤 하네요.
그저 집콕하면서 살아야 될거 같지요?
며칠전에 '누드잡채' (혼자 명명해준 이름)를 만들어서 친구한테 사진을 보냈지요.ㅎㅎ
잡채에 아무런 고명도 안 넣고 잡채로만 맛을 낸..
남편이 국수 종류는 뭐든 좋아해서 가끔 만들거든요.
친구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하더니만 재료가 이것저것 있다고,
'나체잡채'를 안 만들고 보통잡채를 했다네요.
ㅎㅎㅋㅋ제가 왈,"나체잡채' 아니고 '누드잡채'라고 허는디 ~~"
갑자기 누드라는 단어가 떠오르질 않아서 나체라고 했다고...
하긴 누드나 나체나 알몸이나 다 똑같은 단어???
모처럼 햇님이 화창하셔서 나갈까 했는데,
임플란트 땀시 나갔다 들어온 남편이 보기보다 꽤 춥다고 또 바람도 불고해서 집콕.
놀러왔더만 다들 마실가셨나 방에 불꺼졌네요?
암시랑도 제가 전생에 우렁각시???
또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춤까지? ㅋㅋㅋ
< 나뭇잎배>
낮에놀다 두고온 나뭇잎배는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나요
푸른달과 흰구름 둥실거리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논 나뭇잎배는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근거리는
갈잎새는 혼자서 떠다니겠지
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나뭇잎배 ..가 일일드라마 '밥이 되어라' 에서 나오는데
모처럼만에 들으니까 너무 좋아서 흥얼흥얼 불러지네요.
이럴 때 목소리가 고우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부럽단 생각이 들지만
뭐 어때요 ~~못 부르면 못 부르는대로 나만 흥겨우면 되지요.ㅎㅎ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나는 나뭇잎 배~ 순수한 동심이 그대로 전달되는 어여쁜 동요네. 그 동요 찾아서 들어보고 싶다. 마스크 쓰니 입이 붓고 가렵다고 하는 사람들 가끔 있더라. 당분간 누드 잡채 해먹으며 집콕 해야겠네.
지금 유트뷰에서 찾아서 들어봤어.
가수 이선희가 부르는 동요가 있는데 영상도 예쁘고 가사도 좋고 ~오랫만에 동심에 젖었네.
오늘 아침 생각
여느 때처럼 뒷산 한바퀴를 돌아왔습니다.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호젓하긴 해도 차가 다닐 수 있도록 해놓은 임도라서
길은 참 좋아요. 오늘따라 날도 화창하고.
엄지가 맨 앞에 가고(산길에서는 좀 자유롭게 뛰어놀라고 목줄을 풀어놓습니다)
그 뒤에 남편이 저벅저벅 걸어가고
맨 뒤에 제가 따라 걷습니다.
어느 날은 이야기를 하며 나란히 걷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렇게 일렬 종대로.
오늘 아침 남편이 저만치 떨어져 앞서 걷는 걸 뒤따라 오며 보는데
어느날 저렇게 혼자 뚜벅뚜벅 뒤도 안돌아보고 먼길을 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져서 잰걸음으로 남편을 따라가 잡았지요.
'같이 가요. 살아서라도 나란히 갑시다.'
그 말이 생뚱맞게 들렸는지
'왜? 맨날 다니는 길을 잃어버릴까봐.'
에구 ~ 내 깊은 속내를 당신이 알겠수.
근데 그 어느 날 내가 먼저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하는걸까요.
'
여자의 평균 수명이 5,6년은 길다니까 남자가 먼저 가겠지. 그리고 남자가 먼저 가야해. 여자들은 혼자 앞가림 잘하지만 남자들은 암것도 못해 ~대부분. 나도 내가 먼저 죽는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ㅎ 얼마전 독서모임 과제가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죽음학 강의" 였어. 그때 부터 죽음에 필이 꽃혀서 "사는게 뭐길래" "죽는게 뭐길래" 보고 이번엔 베르베르의 "죽음" 이란 책을 빌려왔구먼. 죽음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쓰인 책이라는 국어샘 이었던 친구의 추천을 받아~ 다시는 못본다는 것은 슬프지만 육체의 허물을 벗는것 뿐 사는 동안 선행( 보시) 잘 하며 양심을 지키며 잘 살면 아름다운 영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대체적. 이 책 다읽으면 또 나름 정리해서 올려볼께.
큰 시누님께서 환갑도 되시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형제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막내 시동생이 둘째 누이더러 하는 말이
"다음은 누부 니 차례데이 ~~" 에 놀라고 화내면서 하시는 말씀이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데이 ~~." 하시더라구 했데요.
예전에 성당에서 우아하게 곱게 보이시던 노부부가 계셨는데,
부인께서 심장수술 도중에 수술대에서 돌아가셨지요.
그렇게 깔끔하고 말끔하시던 신사분의 차림새가 전과 같아도
왠지 후줄근해 보이시더라구요.
학생들은 드디어 오늘부터 학교에 가는데,
경제봉쇄는 22일까지 연장을 한다네요.
이러다가는 정말 불필요한 (생계유지엔 불필요가 없겠지만) 사업체는 힘들겠어요.
몇 달이면 나아질줄 알았던 것이 벌써 1 년이 지나고 ~~
빨간꽃 모양의 형태 바이러스가 이토록
온 세상을 홀라당 뒤집어 놓다니...나원참!
우리 성당도 21일까지는 영상미사를 드린다하구요.
참참참!!! 까탈스럽고 조금은 차거운 남편이(속 정은 봄날인데 ㅋㅋ)
이번 목요일에 생일이 다가오는 단 하나의 며늘에게,
꽃선물을 배달주문 시켰다고 또 자랑질 해요,ㅋㅋㅋ
시아비의 70 생일상 차려준거 아마 감격했나봐요 ~~
멋쨍이 시아방이라고 제가 남편엉덩이 살곰살곰 근지러줬어요.
전, 한번도 꽃선물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질투마음 없네요.ㅎㅎ
그러게 ~ 너무 길어지니 진이 빠지네. 파마를 한 뒤 한달 보름만에 머리 자르러 미장원에 갔더니 혼자 있던 원장이 이러다 굶어 죽겠다고~ 한숨을 쉬고 있더구먼. 모임 있음 머리를 하고 나갔는데 나부터도 모자에 마스크 쓰고 똘똘이 산책만 시키고 오니 머리 할 일이 없지 건 그렇구 남편분 진짜 멋쟁이시다. 이제 인선이 한테도 하시겠지 며느리 덕에 꽃선물 시작 하셨으니~ㅎ
ㅎㅎ~ 인선아~ 카나다에서도 구정 지내며 떡국 먹고 그러니? 우리집도 성당 합동 연미사 못해서 집에서 제사 지냈어. 한동안 집에서 안지내서 몇년동안 빛을 못봤던 제기 닦다 시간 다 갔어~ㅎ 딸네도 못오게 하고 영상으로 세배만 받고~ 일년쯤 더 이렇게 지내면 약간씩 도는 사람이 생길것도 같네 옥규는 바쁜 일이 있나봐.
차례상 음식 장만하며 구시렁거리지도 않았는데
차례지내고 떡국 먹으며 남편이 그럽니다.
올해까지만 명절차례 지내고 내년부터는
명절 차례는 지내지 말고 시부모님 제사를 합사하여
아버님 제삿날 한번만 지내자고요.
올해 어머니 첫제사만 지내고 내년부터 제사는 합사하려고 했지만
명절 차례를 아예 안 지낼 생각은 없었거든요.
조금씩만 한다고 해도 혼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딱해 보였나봐요.
손이 빠르기나 하나, 그렇다고 도와 준다고해도 가로걸린다 할테니
무슨 대책이 필요하다고 혼자 궁리했겠지요.
힘은 들어도 아주 안 지내면 서운할 것 같아 제가 절충하여 의견을 냈지요.
제사는 합사하고, 명절엔 형식에 매이지 말고 간단히 차리기로 했어요.
추석엔 송편과 갖가지 과일 모아 한접시, 술과 안주 한가지,
식혜(그건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던거니까)
설엔 떡국과 과일과 술, 식혜, 안주가 될만한 고기나 생선 한접시만 하기로.
우야든 명절 노동량은 많이 줄겠지요.
캐나다 국적을 갖고있지만,
얼굴은 노랗지만 속은 완전 캐나다산으로 놀지를 못하지요.ㅎㅎ
한국에서 명절이나 기제사에 한국서(장남도 아닌데) 궁시렁거리면서 지내다가
이젠 저희가 기제사며 차례상을 차리니 남편의 속이 편한가봐요.
설날과 추석 또 시부모님 합사하라는데 제가 따로 지내면서 국밥은 두 명 분으로 ㅎㅎ
일년에 고작해야 네 번뿐인데 제사밥 기둘다가 굶어돌아가시겠다고 ㅋㅋ
그바람에 친정아버지도 사돈 덕분에 차례상을 받으시지요.
어제도 설차례를 아침에 올리고는 설거지 수북히 쌓아놓고
미리미리 챙겨둔 세 보따리 차에 싣고 달렸지요.
신새벽에 내린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가는 내내 앞이 안보이게 내리는 눈에 도로 집으로 갈까?
끄떡않고 운전하는 남편이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설인줄도 모르고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문도 한참을 두드려서야 열어주시는 친정엄마는
왠일이냐면서 무슨 날인줄도 모르고 계시고...
으음 설이야? 하시다가 사위에겐 오늘이 추석이냐고 되묻고.. 흑흑흑
그래도 딸 덕분에 아버지가 상을 받는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지요.
친정아버지 좋아하시는 식혜도 미리 만들고,
미리 천천히 한가지씩 거북이처럼 하니까 몸도 덜 피곤하고..
아~~한가지 큰일을 또 해냈구나!
시어머니 기제사 까지는 해방이다 야호!!!
이 또한 지나가리니 ~~~
명절이라고 탕국도 안 끓이고(대신 떡국)
호박전과 두부전은 빼고 안하니 편하긴 하네요.ㅎㅎ
끝말잇기에 보니 화림이 언니가 겨된장이라는것이 뭔가 하시던데요.
제가 아는 바로는 그런 된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일본 밑반찬에 누카츠케모노 라는 게 있어요.
우리 장아찌 같은 것이지요.
고운 쌀겨에다가 다시마, 가츠오등 여러가지 부재료로
가미하여 소금물로 버무린 것을 누카미소(겨된장)라고 합니다.
그 속에 오이나 가지, 무 등을 통째로 박았다가 맛이 들면
꺼내어 썰어 먹어요. 그렇게 발효된 누카미소는 한번 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오이를 넣었다가 꺼내먹고 나면 가지를 넣고, 당근을 넣고 그러지요.
누카미소 자체를 먹지는 않아요.
김치 담그는 솜씨가 있는 사람이 있듯이 누카츠케모노를 맛있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여러가지 배합해놓은 누카미소가루를 수퍼에 팔기도 합니다.
일본 테레비 방송에서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오이 다섯개 들려보내며
한 동네 사는 할머니한테 누카츠케 해달라고 심부름 시키는 것도 봤어요.
일본에서는 교토 츠케모노가 유명하지요.
언젠가 찬정이가 한번 설명했는데 더 자세히 얘기 해주니 좋네. 한번 들어선 금방 까먹는다니까~ㅎ 그 겨된장에다가 이것 저것 돌아가면서 뭐 박아놓았다 먹음 편하고 좋겠네. 인선인 친정부모님 계시니 좋으면서도 힘들겠네. 난 살아계실때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한것이 많은거 같아 두고 두고 걸려. 엄마의 마음을 많이 공감해 드려. 인선이도 제사 지내느라 애썼구먼.
25 ~35 센티의 눈이 온다고 예보에서 떠들더니만 드디어...
일 주일도 못되게 가기 시작한 학교도 모두 문을 닫고,
몰아치는 바람이 현관앞으로 몰리는 바람에
문을 열 수 없이 쌓이고 ~~남편 눈 치우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나가서 눈 치우는데만도 시간 반이나 걸려서 운동하고 왔지요.
쌓아놓은 눈은 족히 2 미터나 되지싶네요.
뒷뜰엔 봄이 올 때까지 그대로 녹게 놓아두지요.
해서 내일 '재의 수요일' 미사참례 한다고 신청했다가 취소했지요.
저녁 8시 미사인데 도저히 갈 엄두가 안 나네요.
몇 달만에 처음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인데...
이곳은 오늘부터 레드존으로
미장원도 열고 식당은 10 명 제한이고, 가게들도 인원 제한 시켜 문열고
슬슬 경제가 풀리면 좋겠습니다.
이젠 다시는 경제봉쇄 같은 사태가 안 벌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예방접종에 대해선 와서 맞으란 말이 없네요.
밖엔 다시 하나도 반갑지않은 함박눈이 또...
거긴 눈이 오면 그렇게 무섭게 많이 오는구나. 문이 안 열릴 정도로~ 우리 성당 사무장님이 확진되고 신부님도 밀접 접촉자라 사제관에서 보름 못나오시고 했대. 지금은 어찌 됬는지 성당 못간지도 오래됬네. 반장모임도 못한지 한참되고~ 65세이상 노인들은 가도 오히려 눈치만 보여서~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눈치 보시면 안되죠,
젤로 조심하고 규칙 지키시는데.
날씨가 바람탓에 매서워도
햇빛아래 봄의 꿈틀거림이
곳곳에 있네요, 단디 싸매고
걷으니요.
이방의 제목처럼 미소 가득한 아이를 보고
그보다 더 고운 미소로 화답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봄날 언니들의 손주들과의 사진과 글로 전해주시면
힘이 불끈불끈 솓더라구요.
지나고 나도 다시 떠올라서 그 함박미소
흉내도 내면서 기분 좋아지는.
미국의 춘선언니 손주도
일본의 찬정언니 손주도
캐나다의 순희언니 손주도
이곳의 현숙언니 손주들
언제 진짜루 만나
고 통통한 손 톡톡
두드리고 싶어라~~
제가 거제시에서 매달 발행하는 신문에 주민생애사를 고정으로 쓰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지요.
인물 섭외를 시에서 해주기도 하지만 제가 대상자를 직접 찾아서(지인의 소개등으로)
인터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거제도내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와 인터뷰 약속한 사람이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니
그래도 만나자고 우길 수도 없고 대략난감.
생애사 대상자는 다 65세 이상 70세, 80세 넘는 분도 많거든요.
지난달 인터뷰하려고 했던 분은 93세, 거제 향교장을 하셨던분이었어요.
우야든 코로나가 좀 수그러들때까지 미루기로 했고
할 수 없이 대타로.
주민 생애사
돌아 온 고향 최창호 이야기
#거제도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자 어른, 아이 막론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를 피하고 있다. 인터뷰 날짜 약속했던 분마저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려달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비대면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는 주민 생애사 인터뷰. 기사 마감일은 부득부득 다가온다. 아! 맞다. 그 사람. 처음엔 손사래를 치겠지만, 일단 말이라도 건네 보자.
#그는 1953년생, 전후세대다. 옥포에서 태어났다. 집집마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라 그가 태어난 시각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대로라면 그의 생시는 오(午)시일 것이다. 거제 -부산을 하루 두 차례 오가는 여객선 천신호가 옥포항 들어오는 시각이 11시경인데 항구로 들어오기 전 양지바우 모퉁이쯤 오면 뱃고동을 한번 울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막바지 진통으로 정신이 가물가물한 와중에도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두 살 무렵 어머니 등에 업혀 부산으로 이사했다. 일제강점기말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 온 그의 아버지가 일본사람에게서 배운 기술을 밑천삼아 부산 미군부대에 취직을 했다. 그의 조부모는 있는 논밭에 농사나 지으면 좋으련만 늙어가는 부모 곁을 떠나는 아들네가 못 마땅했다. 그 눈치를 보느라 이사하기 전날에서야 중간치 가마솥을 떼어 밥그릇, 국그릇과 수저 몇 벌, 조리 등을 챙겨 넣었다. 솥단지와 이불보따리 뿐인 단출한 이삿짐을 싣고 부산으로 왔다.
#단칸 셋방을 전전할 때, 아이가 셋이나 된다면 방을 얻을 수 없어 옥림 외가에 그의 형과 그를 맡겼다가 나중에 데려오기도 했다. 아버지의 월급을 모아 집을 사고 고향에 땅도 샀다. 고향 사람들은 부산에 볼 일이 있으면 그의 집에 와서 하루 이틀 묵었다. 손님이랄 것 없이 같이 끼어 자고, 식구들 밥상에 수저 한 벌 더 놓는 것뿐이었다.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온 사람, 딸의 결혼을 앞두고 혼수를 하러 온 사람, 어선을 타고 나갔다가 월명시라서 잠시 들어온 사람, 전방에서 휴가 받아 고향 가는 군인도 그의 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거제 가는 아침 배를 탔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 어느 쪽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없으면 없는 대로 기대고 보듬을 수밖에 없던 궁핍한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을 하거나 폭력을 쓰지는 않았지만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가족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고 남이 하는 말에는 솔깃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이일 저일 벌려 거듭 손해를 보았다. 어머니는 번번이 그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았다. 소년 창호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애면글면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웠지만 부모 슬하를 뿌리치고 나가기엔 너무 어렸다.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 부산 명문인 경남중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자신의 성취감보다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이런 저런 사업을 벌렸고 어머니는 수습하는 일에 머리를 싸맸다. 애써 장만한 고향 땅도 팔아서 아버지의 사업이라는 밑 빠진 독에 털어 넣었다. 아버지 독단적인 처사에 저항할 수 없었던 그는 스무 살만 넘으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했다. 대학에 입학하며 집에서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이 나이가 되기까지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았다. 스스로 신중히 결정하고 어떤 어려움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며 살아왔다. 독선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오히려 세상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데 단단한 디딤돌이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에게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군림하는 가장이 되지 않겠다고 늘 다짐했다.
#태풍 매미가 거제도를 할퀴고 간 그 다음해 시월이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살고 있었고, 고향에서는 일 년 째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어머니 혼자 돌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몇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긴 늦가을. 그때 일본 니카타 지방에 큰 지진이 나서 그곳 반도체 공장의 생산 라인이 멈춰 섰다. 그곳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끊기고, 신칸센도 멈추어 고립무원이 되었다. 도쿄 본사에서 현장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엔지니어를 동반한 책임자 몇 명이 끊기지 않은 나가노 쪽 국도로 돌고 돌아서 현장에 도착하였다. 일행 가운데에 그도 있었다. 한참 일을 하는 중에 부친의 부음이 날아왔다. 늦가을 짧은 해는 벌써 기울어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밤 새워 일을 마치고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평생 가족과 엇나가던 아버지는 이승을 뜨는 날마저 아들의 다리를 슬쩍 걸었다.
#13년 만에 귀국했다. 전에 살던 서울이 아닌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왔다. 노후에 살 집을 직접 설계하고 공사에 같이 참여하여 지을 계획을 진즉부터 하고 있었다. 그림같이 멋드러진 집이 아니라 자연친화적이고 에너지를 자가생산하여 쓰는 기능적인 집을 짓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그의 집이 그렇다. 태양열로 난방과 온수를 쓰고, 지하수로 냉방을 하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쓴다. 계절에 따라 밖의 공기와 실내 공기를 자동 순환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쾌적하다. 시판하는 자재를 구입하기도 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로 주문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집의 이곳저곳을 자신의 아이디어와 솜씨로 개조하거나 활용도 높이는 작업을 한다. 그의 집 2층 열 평 넘는 방은 연구실 겸 취미를 위한 휴게실이다. 집을 지을 때부터 구상한 그만의 공간이다. 자유로운 공간답게 적당히 어지러져 있다
#어릴 때 부산에서 거제도 오려면 자갈치 뱃머리에서 영복호를 타고 뱃멀미에 시달리며 왔다. 그래도 거제도에 올 수 있는 방학을 꼬박꼬박 기다렸었다. 옥림 외가에 와서 바다로 산으로 다니며 놀던 추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거제도는 그가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올리는 그 시절의 거제도가 아니다. 예전에는 거제도라면 풍광 좋은 자연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조선소를 먼저 생각한다. 덕분에 넉넉하고 편리하여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잃어버린 것에 아쉬움도 많지만 눈높이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한 것이라고 덮어둔다. 거제에는 그와 아내만 살고 아들 내외와 손주는 일본에 산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이나 다니며 유유자적 살아 보려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는 6년간 치매를 앓다가 지난해 돌아가셨다. 그는 남은 인생 힘에 벅찬 꿈을 꾸지는 않는다. 마라톤 할 때 힘의 분배를 잘 해야 완주할 수 있는 것처럼 칠십을 바라보는 그는 오늘도 삶의 균형을 잡으며 하루하루 값지게 살아간다.
ㅎㅎ나도 뉘기래 덕분에 다 읽은 후에야 알아챘네요.
저 ~~위에 아버지는 꼭 우리 부모님의 자화상을 보는듯 하구요,
가만히 계셔주는 것이 부자되는 지름길 같았는데...
남자의 위신이나 아버지의 자리매김을 굳게 하시려는 마음이셨었나?
아님 마음이 여리셔서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여기셔서 거절을 못하시고...
아버지 뒤치닥거리로 더욱 힘드셨던 엄마는
지금 홀로 사시면서 아프셔도
그 많은 자식들(칠 남매) 중에서 냉수 한 사발 가져다 바칠 자식이 곁에 없어요.
나의 삶을 작가의 눈으로 읊어낸 실력이,
역시 찬정작가님~~
딱이야 ~딱이야 ~ ~작가가 딱이야 ~ ~ ~!!!
중간쯤 ~ 그는 가족과 일본에서 살고 있었고 ~ 부터 혹시 남편분 이야기? 하며 읽었어. 53년 생 이니까 나보다 세살 어리시니 69세일꺼고 그럼 찬정이랑은 여섯살 차이인가? 이 글의 욧점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까지 공연히 계산해보는 이상한 언니네~ㅎ 딱이야~작가가 딱이야~ 에 공감 백프로 오래전 봄날에서 거제의 찬정이 집에 갔던 추억이 새롭네. 나무 냄새 향긋하고 밝고 쾌적하고 뭔가 특이하게 독창적인 집. 홀로 떨어져 있는데도 외롭지 않아 보이는 단단한 집. 최창호씨 너무 멋지다. 독립적으로 홀로 어려움 다 이겨내시고 가솔을 책임지시는 분~ 부럽다. 그러나 이제는 이 나이 되고 보니 각자의 업보대로 사는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이라네.
어제 뉴스에서 바이든 정부가 취임식 하는걸 보니 왠지 마음이 조금 놓이네.
미국 사는 친구랑 통화할때 트럼프가 부추겨서 의사당 점거했다고 미국 민주주의도 이제 끝나나 보다 해서 제대로 취임식을 할라나 ~하고 걱정했거든.
가족들이나 친구들도 깝깝하다 하면서도 조금씩 적응되고 있나봐
사는게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