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지난 4월,
화려함의 극치인 <봄날>을 맞이하며 맘이 설레기 시작했다.
같은 꽃이라도 얼마나 자신을 뽐내는지....
촘촘히 빈구석 하나 안보이는 분홍도화지처럼,
이들은 내가슴과 눈을 현혹 시켰지만....
난 싱그런 초여름의 나무밑이 젤 좋다.
이둥지에서 여러번의 봄을 맞이 했어도
우리마당에 이렇게 꽃들이 예쁘게 피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은초 유치원 가기전에 조금 일찍 나가 차를 기다리면
녀석은 꽃들과 대화를 한다.
종알종알,고시랑고시랑,조잘조잘.
할매닮아 말도 많다. ㅎㅎ
무더운 여름이 오면 또 어떤 모습들이 찍힐까?
명제 언니!
비파나무 두 그루 있어요. 원래 큰 나무 두 그루 있었는데 두 나무 간격이 좁아서
서로 엉켜서 벌레집을 만드는 바람에 한 그루라도 제대로 살라고 하나는 베어 냈어요.
따로 떨어져 있는 한 그루는 이제 내 키만 해요.
작년에 비파가 엄청 열리더니 올해는 해거리를 하는지 전혀 안 열렸네요.
동네에 집집마다 있는데 노란 비파열매를 과일로 여기지 않으니 따지 않아서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요.
우리 동네는 작년부터 무화과 나무를 많이 심었어요.
농협에서 작목희망자 신청받아 자금과 기술을 지원해서 수백 그루씩 심었는데
수지타산이 맞는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쪼금 걱정.
우리집에 3년생 무화과 나무 일곱 그루있는데 어린아이 주먹만한 무화과를
여름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실컷 따 먹지요.
익어서 달콤해지면 새가 먼저 알고 쪼아 먹어서 우리는 새가 먹다 남긴거 따먹을 때가 많습니다.
올해는 그물을 칠까 생각도 ~
5월 17일 딱새 알 5개가 있더니 5월 31일 부화하여 새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 현관 앞에 둔 고목나무
빈 공간에 새 둥지를 튼 덕에 주인장인 제가 이런 귀한 탄생을 볼 수 있게되었습니다.
딱새 5마리와 며칠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을 품던 새가 아래에서 3번 째 사진이니 어미새겠지요.
위는 아비 새입니다.
며칠 동안 제주도 갔다 와서 15일 아기 새들이 뭉쳐 있기에 조금 띄어 놓으려고 손을 대는 순간
후르륵~~~후르륵~~~두마리, 이어서 세마리 모두 10여 미터씩 날아나와 어딘가로 숨어 버렸습니다.
벌써 날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부화 후 2주 정도 지나니 날아가네요.
하루 지나서도 다시는 둥지로 돌아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드나들던 부모 새도 얼씬도 하지 않고요.
근처 어디에선가 잘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이상 보고 마칩니다.
ㅋㅋ 오랫동안 쓰던 컴 모니터께서 돌아가셔서
나으 컴 전문매니져가 어제 슝~~~! 나가더니
우리방 TV화면 만한 모니터를 슉~~~! 모시고와
요롱조롱 설치해주는디....
어메나~럴쑤 럴쑤 이럴쑤가~!
인터넷 모니터에 TV 까지 나오네 그려~~~~!!!
엄마야~!
열무김치에 네식구 수제비 한그릇씩 앵겨 주곤 계산 끝났잖아요.
누구
이렇게 이쁜 사위 있으믄 뎃구 나와봐요~~~!!!
은범이네 핵교 일주일 휴교..
은초네 유치원 3일 휴원.
(애들은 신나지유)
아니 ~!
근디~!!!
와 에미네 핵교는 휴교를 안하냐고요.
고등핵교라 그런거여?
하긴 휴교를 해두 선생들은 나간다니......ㅉㅉ
피켓들구 그핵교 앞으루 나가볼까? U~C~!!!
유치원에선 죙일반 등록한 애들은 돌봐준다는데
그렇다구 은초를 애들두 몇명 없는 그곳에 남겨둘순 없잖아유.
내가 힘들어 먼저 쓰러지것시유~
(에효~!장어라두 한마리 사먹구 와야징~!)
메르스 공포의 불똥이 할머니들한테 튀었네요.
그래도 봐줄 할머니라도 있는 아이들은 괜찮은데
어제 뉴스 보니 학교 휴교하니까 아이들이 어울려서 거리를 쏘다니고 있더라구요.
오히려 학교 가는 게 더 안전한 거 아닌가 싶어요.
거제도에서는 아직(?) 메르스 환자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모든 행사가 다 취소나 연기되었어요. 하다못해 테니스 월례대회까지도.
외도 유람선 선장 말에 의하면 관광객들도 엄청 줄었고,
팬션도 텅텅 비었대요.
이럴때 거제도에 놀러오세요. 사람 없을 때 와야 손님 대접 잘 받아요. (그냥 해보는 소리)
인옥아!
내가 인천에서 서울가는 만원전차에서 편하게 앉아가는 방법 갈쳐줄까? 너만 알고 있어.
전차 타면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억지로라도 기침을 꿀룩꿀룩 하고, 재치기를 두번쯤한다.
진도 물길이 갈라지듯이 근처의 사람이 싹 사라진다. 게다가 손으로 이마를 집으면 한칸 싹쓸이 한다는구먼.
널널이 누워서 갈 수도 있다데.
중요한 건 타이밍. 도어 근처에서 그랬다가는 열릴때 밖으로 내동댕이 쳐진다니 고것은 각별히 주의.
글쎄 ~ 메르스에 걸리면 꼼짝없이 죽는 병도 아니고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는 병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건가.
주의는 해야겠지만 나라 전체가 너무 위축되는 것 같아 씰데읎는 소린 줄 알면서 기냥 해봤어.
울 엄니 계신 요양병원에 전화해봤더니 꼭 와야 할 일 아니면 문병오지 말라하네.(으메 ~ 잘됭거)
지난 주말에는 알아서
시어머니 계신 요양병원에 안 갔고
(주말이 아주 널널한 느낌~~)
그러게
초딩들은 휴교라고 집에 있겠지만
중딩들은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오만 데로
쏘 다닐 거 같아
학교가 더 안전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현숙아!
꼭 인옥이를 칭한게 아니고 ' 만만한 울칭구 누구나 ' 를 불렀던거야.
순영 언니나 형옥 언니 귀에다 대고 그런 끔찍한 정보를 갈쳐 드릴 순 없잖아.
글구 고런 정보 갈쳐드리기 쫌 아깝기도 하지. 왜냐하면 그 냥반들 전차 꽁짜로 타거든.
너희 시어머니께서도 요양병원에 계시구나.
누가 주말마다 가거라, 열흘간격으로 가거라 시키는 건 아닌데
늘 가 뵈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지.
우얏거나 메르스 덕분으로 병원측에서 출입을 통제 하니 소올찍히 말해서 ~ ~
아으~~~!!!
난 오늘도 은초 친구까지 데려다가
두지지배 봐주고 있다.
그 에미는 횡재했지 뭐~
갓난쟁이 까지 달렸는데,
지혼자는 안놀려하고....
갸들 점심까지 대령해야허고...
종알종알,고시랑고시랑 아주 시끄럽다.
할머니~!
수제비 해줘~~!!!(잡솨본 가닥은 있어서리 주문도 다양해요)
하여~
밀가루 반죽해야헌다.
은범이는 아침 9시에 친구네로 출근해서
갸랑 죙일 이학원 저학원 순례하고 그집에서
점심까지 얻어먹고 실컷놀다가 저녁먹으러 우리집으로 온다.
뭔 난리부르쓰인지 나도 모르것다.
여름여행건도 회장님 여행 다녀오시면 생각해봐야겠어요.
암만 8월이라해도 사회가 뒤숭숭하니 추진 하기도 어렵고 조심스럽네요.
6월 들어서면서 슬슬 바람 잡아야 우리님들이
떠나기전에 기쁨도 맛보시고 시간 조절도 하실터인데
어디 여건이 그리 되나요?
입도 쩍 못열겠어요.
버스나 숙소는 예약 되었는데...
빨리 이사태가 가라앉으면 추진 되겠지만 시간을 끌면 어렵겠어요.
그러게나 말이야~
으째야 쓰가이~
우선은 눈치를 좀 보고 있어야겠네.
이러다 메르스때문에 죽는게 아니고 나라가 경제 파탄나서 죽게 생겼어.
무릎주사 맞으러 병원 갔더니 꽉 차있던 대기실에 나랑 어떤 사람 달랑 두명 있더라.
가뭄도 심해서 아침 저녁 물주는것도 일이네~
?
어서 이 고난이 지나가기를 -
묵묵히 견디다 보면 옛말하겠지요
메르스 때문에 난리를 겪었었노라고 ...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미안해서 워쩌요.
윗동네는 가물어서 비를 학수고대 하는데
여기는 그저께 죙일 비가 왔는데 지금 또 우두두둑
많이 올 비 같지는 않지만
가물 때는 땅거죽만 적시는 비라도 그게 어디예요.
밖에 있던 남편이 비 온다고 널어 놓은 거 걷으라고 해서 허둥지둥 걷어 들여놓고
왔더니 그쳤어요, 지나가는 비였던갑네요.
작년의 세월호 사고 때나 이번 메르스나 명치끝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메르스가 사태수습이 빠를테니까 좀 나은가요?
우야둔동 조심해 가면서라도 힘을 냅시다, 힘을
난....
요즘 가끔 울엄니를 생각한다.
울아버지는 사랑을 많이 표현하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절절히 아버지가 그리울때가 많았다.
그에 반해 울엄니는 늘 쌀쌀하시고 말도 없으시고
눈으로 모든 표현을 하신 분이다.
큰눈으로 한번 두릿하면 난 오줌이 질금 나올 지경이었었다.
어릴적에 그모습이 무섭고 싫어서 난 주워 온 아이인 줄 알았다.
다른 형제들은 그것을 안느꼈나?
나만 유독 혼자 떠다니는것 같았다.
늘 엄마의 사랑이 그리웠고 고팠다.
아마도 아버지의 표현되는 사랑이 없었다면 난 가출했을지도 몰랐다.
이 나이 들어 하나밖에 없는 딸년 따까리 하면서 엄마가 참 얼마나 힘드셨을까?
문득문득 떠오를때가 있다.
왜 그냥반은 그리도 냉정하고 한번보면 두번도 안돌아 볼정도로 차가왔을까?
진정한 답이 오늘 아침에 확연해졌다.
최근 사태 덕분에 오면 즐겁고 가면 더 즐거운 손주들
매일 저녁까지 해멕이고 보내고 나면 완전 파김치다.
어젠 링겔까지 맞고 왔다.
오늘은 금요일...
모처럼 한가한 아침을 맞이하며
맘이 정돈됨을 느낀다.
난 은근히 조용한것을 즐기기도 한다.
잠깐인데도 이리 지치고 힘드는데.....
울엄니는 주야장창,사시사철,
그 젊고 고운 나이서부터 시부모에.시동생들셋에
자식새끼 여섯에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어려운 친척들에...
엄니도 입으론 표현 안해도 무지 힘드셨던게다.
그러니,
뭐가 즐겁고 신나셨을것인가?
당신처럼 힘들면 안된다고
절대로 종갓집엔 시집 보낼수 없다하시어
그나마 오날날 요리 신간 편하게 지내고 있지만
이나이 먹고 보니 내깐엔 10여년 모시고 할도리 다했다고
두발 뻗고 잘지내고 있음도 울엄니의 덕분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그 10여년 동안 난 어릴적에 나한테 무셥게 하셨던 일들을 요것조것 씹어대며 다 퍼부어댔다.
난 아부지가 뎃구 들어온 자식이었어? 부터 시작해서,
왜 난 한번도 안아주질 않았어?
왜 4학년때 막냉이를 맨날 내잔등에만 업혔어?(난 그생각만 하믄 지금도 등판이 아프다.ㅉ)
왜 고등학교생활관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입던 옷고름도 없는 한복을 입혀서 챙피당하게 했어?
.
.
수도 없이 같은 레퍼터리로 씹어대고 50여년간 받은 압박(?)과 설움(?)을
다 풀어댔었다.
에구....미친 ㄴ~~!!!
울엄니는 친정이 없다.
무남독녀에 두분은 나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난 지금도 오빠에 동생들에 전화 한통 때리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이모든것 울엄니가 목숨걸고 만들어 주신것이니....것도 감사하다.
내나이때 그분은 자유공원에 올라가 줄넘기를 1000번씩 하신분이다.
골다공증? 그런것도 없으셨다.
나?
그핏줄을 타고나 기골이 장대하긴 하나
겨우 탄천 1시간 걷는것이 일이다.
계속 반성문을 쓰다보니 낯이 뜨겁다.
호젓한 시간이 생기니 모처럼 엄니가 그리워 이곳에 투정한번 부려보았다.
아마도...
일년에 서너번 분기별로 돌아오는 제정신인 순간인가보다.
'
'
.
.
가만있자
오늘의 새끼쥴은 무엇이다냐?
에구.....언니 그걸 인제 깨달으셨소??
언니 글은 한 편 한 편이 다 작품일세.
내가 처음 본 언니 글이 그 새벽에 비빔밥 해 먹는 맛난 글이었는데
이 홈피를 통해 꾸준히 글을 쓰며 언니의 글이 정말 더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완전 <김순호표> 글.
이름을 보지 않아도 언니의 내음이 나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언니
다들 잘 계시죠?
우리 아이 고모가 아들 넷에 막내딸로 태어났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오빠들만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그렇게 귀히 여기는 것 같지 않았대요.
(이것도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누고 엄청 많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엄청 친하게 되고 믿게 된 후에 나눈 이야기예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건 아주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시거든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자기는 어려서부터 오빠들 시중드는 사람 비슷하게 자랐대요.
근데 그게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당연해서 자기 안에 불만이 있었는지도 몰랐대요.
(내가 뵙지 못한) 아버지께서는 자기만 특별히 예뻐한 건 아니었지만 자식들을 골고루 아끼고 귀히 여기셔서 자기도 아주 사랑받는 딸이었다는군요.
지금까지 자기 일생의 가장 큰 행복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읍내 길을 걷던 일이라고 해요.
그 고모가 미국에서 살게 되어 혼자 애기를 낳게 됐는데
딸을 낳고 그 아이를 품안에 안으며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아! 엄마는 왜 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을까..... 였대요.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겠지만 왜 그렇게 사랑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군요. 이렇게 넘치고 자연스러운 건데......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미워했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기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욕망을 눌렀다는 것일 거예요 이 경우는.
아이 고모는 매우 유능하고 여러가지 재능이 많고 진중한데 그런 능력을 사회적으로 한 번도 펼 수 없었어요.
근데 저는 그건 어머니의 부족한 품성이라든지 인격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언니 말처럼 너무나 힘들고 팍팍한 생활 속에서
그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존재 즉 남자!를 먼저 거두어야 한다는 강박,
그것이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한쪽을 확실히 눌룸으로써 확보되는 권리, 이런 양상은 남녀의 문제나 지역 감정이나 빈부차이에서나
확연히 드러나잖아요. 동서양이 똑같아요.
그 사이에 낀 이중의 피해자들인 셈이죠. 여자들이 말예요.
어떤 의미에선 가해자가 더 피해자일 수 있고요.
우리가 그렇게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유럽에서도 특히 영국의 경우,
딸이 부모가 원하는 결혼에 순종하지 않으면 때려서 방에 던져도 좋다
이런 구절이 1800년도 말~1900년 초까지의 책에도 득시글득시글하더군요.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이라는 에세이에서 말하고 있지요.
섹스피어와 똑같은 재능을 갖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고 치자.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들뜬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창문을 넘어 런던으로 와 극장 앞까진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엔?
그 당시 여자는 극장은 커녕 대학, 도서관 근처에도 갈 수 없었지요.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겠지요.
여자가 연기를 한다고? 그건 개가 춤 추는 걸 보는 것과 같지, 아님 개가 뒷다리로 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 일이 되지도 않겠지만 그런 일을 하려고 한다는 일이 정말 놀랍군 흠~(실제로 이 말을 한 교수는 그 당시 유명한 석학이었답니다)
결국 섹스피어의 여동생은 킬킬거리며 웃는 문지기에게 쫓겨 한쪽에 서 있다가
몸매는 괜찮군 생각하는 무대감독의 아이를 갖게 되고 결국은 사람도 다니지 않는
쓸쓸한 변두리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게 되었을 터이지요.
사회나 국가, 세상, 인간에 대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들어요,
언니 글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어요.
아이 고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변화의 용기를 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가 봐요.
그래서 계속 말하고 있지요.
여행을 가요. 난 한국에서 출발하고 고모는 미국에서 출발해요.
그리고 한달 동안 여행해요. 잘 걷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말해요. 난 십자가가 있잖아요.
그 집에는 물도 냉장고에서 갖다 먹지 못하고, 군주처럼 호통만 치고 있는 1940년대의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대단한 <남자>가 있답니다.
그분이나 나나 비슷한 환경이었네.
남아선호사상이 내몸에 느껴질 정도 였으니....
그래도 그것도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손주들을 키워보니 큰넘은 큰넘대로 이쁘고
작은 넘은 작은넘대로 이쁘더먼.
못난이 은초를 보면 힘든것도 잊어먹고 온몸을 불사른다니깐....ㅎㅎ
우야든동....ㅋㅋㅋ
사위한테 이런거 받아본 사람 있슈?
옴메야~!
뭔 늙은 장모한테 이런거 씩이나.크크크
도무지 나하곤 어울리지 않는것 이지만 사돈것과 똑같이 샀다는 그맘이 이뻐
얼른 풀어 차보았다.
쥐씨알 만해 차기도 어렵고 끌르기도 어렵다.
사위가 영국 출장갔다가 어제 돌아왔다.
얼마나 한국 음식이 고팠으랴.
출장가기 전날도 에미 일할것 많다고
애들 둘데리고 친가로 쫒겨 가서 쉬지도 못하고 떠났단다.ㅉㅉ
맘으로 건강하게 잘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애비가 국내에 없으면 웬지 내어깨가 무겁다.
웬일로 공항에 도착해 문자가 왔다.
어머니~!
저 지금 잘 도착했어요.
회사에 들렀다가 갈께요.
나으 답장.
그려~!
수고했네.
건강히 돌아오니 기쁘구먼.
애들은 다 잘있다네
어서 오시게.
이렇게 되기 까지 10년 걸렸다.
최서방아 ~!
담엔 좀 큰놈으로 사와라 잉~!!!
수노가 늦복이 터졌구나.
정말 사위에게 저런 선물 받는 장모 흔하지 않을꺼야.
축하한다.축하해!!!
옥규야~~~
네 글을 읽다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 끄덕 된다.
옥규는 나의 막내 동생이랑 같은데 생각의 깊이는 한참 나의 언니같다.
심금을 울리는 글 고맙게 잘 읽었어.
난 그나마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친정 부모의 사랑 듬뿍 받고 남녀 차별 없이
자란것에 감사 해야겠다.
봄님들!!!!
스위스 여행 잘하고 건강히 돌아 왔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그대들과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혼자 감탄하고 행복해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어요.
?
? 회장님 ~
스위스 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함께 가지는 못했지만 제 마음도 그득합니다.
좋은 경치를 볼 때 생각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랍니다.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을 보고 우리들을 생각하시고 아까워 하신 그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마음은 안정되고 행복감이 차오르게 되지요.
우리가 서로에게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비가 오려는지 잔뜩 흐린 하늘입니다.
가뭄으로 바싹 타들어가는 땅이 흠뻑 젖을 수 있도록 비가 왔음 좋겠네요.
오늘은 그냥 아무 일도 안하고 뒹굴뒹굴 ~
이렇게 빈둥거리는 날도 참 좋습니다.
문득문득 생각했어요.
아 ~!
지금쯤 언니는 신나겠구나 ~ !!! 하고.
작년까지 하도 싸댕겨서 꿈쩍도 하기 싫었었는데
애들을 끌어안고 있자니 몸은 힘들고 만사가 벅차 ~
에고 이판사판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지요.
(3주동안 동네 밖으로 안나갔어요.)
온니~!
아름다운 곳 많이 보시고 모두 건강하게 돌아오셨지요?
국내생활에 지친 민생들에게 멋진 사진으로
눈호사라도 시켜주~!!!
순영 언니 여행 다녀 오셨군요.
우리 친구들도 얼마 전에 스위스 여행을 다녀 왔는데
언니도 거길 가셨군요.
스위스는 지리적인 상황으로 볼 때 그렇게 축복받은 땅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역시 사람의 힘이란 건 정말 큰 것 같아요.
잘 다녀 오셔서 기뻐요.
방학도 다가오고, 이런 저런 여행 사진을 보니
마음이 공연히 두근거리고 들뜨네요.
여름방학은 너무나 짧고 꼭 해야 할 일도 있고 그래서
여름에는 여행 계획 잡기가 좀 그래요.
이번 여름만 해도 우선 방학하자마자 우리 12기 여행이 잡혀 있고, 그 다음 주에는
지리산, 또 우리 봄날 여행도 잡혀 있지요.
운동도 안 하고 학교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 걷는 거 갖고 우째 또 산엘 올라갈른지....
그래도 겨울에는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봐야지 생각하고 있지요.
그리고 언니
생각이 깊..... 그런 건 저와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고요, 그렇게 봐 주시는 거지요.
전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또 자주 당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가끔 내 나이를 생각합니다.
특히 퇴임을 3년 앞두었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덜 익어서 어쩌나, 이렇게 애들한테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끝내면 어쩌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어서 가슴이 콩콩거릴 때가 많아요.
생명력이 넘치는 반면 분노와 무례와 변덕이 죽 끓듯하는 아이들의 센 물결에 휩싸이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야말로 우두망찰 하고 있을 때가 많이 있답니다.
퇴임하면 매일 쉴 텐데도 금요일이 제일 좋고 토요일이 좋고 일요일은 불안하면서 좋답니다.^^ 월요일 출근할 땐 항상 분발! 힘내! 이런 마음이고요.
그래서 오늘은 좋은 날~~
오랜만에 봄님께 글 쓰니 좋네요.
좋은 저녁 되세요~~
하늘이 하루종일 우거지상을 하고 있어 큰비가 오려나 했더니 어두워질 무렵 찔끔 오고 끝인가봐요.
해가 쨍쨍하지 않아서 밖에서 일은 많이 했답니다.
매실 따고, 개복숭아도 알뜰히 다 땄어요.
우리집에 큰 개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50kg쯤 땄어요.
개복숭아가 기관지에 좋다느니, 관절염에 좋다느니 종편방송에서 하두 떠들어 대서
서로 달라고 난리예요. 양은 정해져있는데 달라는 사람은 많아서
양보하라고 하면 다들 어머니를 들먹이는거예요 .
어머니가 관절이 안좋아서, 어머니가 기관지가 안좋아서 발효액 담궈 드린다는 둥.
효성이 그렇게 지극한 줄 몰랐네요. 그중에는 괜히 어머니 핑게댄다는 거 알지만 . . .
사람 팔자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열매 팔자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바로 그 개복숭아가 그런 것 같아.
효소 담글 때 제일 좋다고 산책길 열매도 다 초장에 없어져 버렸네.
1000년을 살라는공~
서울에는 비가 많이 와서 정말로 내 배가 부르네.
심어 놓은 작두콩은 잘 크고 있는데 꽃이 피지 않아도 열매가 맺히는 건지
도무지 가늘가늘 요염한 자태만 뽐내고 있으니 원.....
밭을 갈아 엎으려고 찌질한 얼갈이를 다 뽑아서 물김치를 만들어 놓으니 먹을 만 하네.
찬정아우 대단해!!!
나 한 번 거제도 가 보고 싶어.
불현듯 폐 안 끼치고 가 볼게요.
거제도 회에다 소주 한잔 하면서 시간 만들어 볼 수 있기를......
?
거제 갈 때 대전에 들러
그럼 대전에서부턴 내가 교대해서 운전해 줄게.
물론 내 차로 ~
소주는 잘 못하지만 회는 잘 먹을겨. 나는 ...
찬정아 ~
그냥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1000년 살라고 담궈놓은 하늘에서 떨어진 개복숭아>
여기다 담궈놓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하루 한번씩
마루 이끝에서 저끝으로 굴린다.
3년전에 매실담궜던 날짜 쓴 위에 그대로....
이틀차이로 담궜두먼. ㅎㅎㅎ
나 ~
이러구 살아요.
지난 5월말 젊어서 고생 많이 하고, 한이 많은 노인 한 분이 생애를 마쳤습니다.
육이오때 전쟁 나간 새신랑이 뼛가루가 되서 돌아온 후 유복녀를 낳았지요.
가난한 친정이지만 어머니가 애는 맡아 키워준다며 떠밀듯이 또 시집을 보냈다네요.
새로 간 시집도 가난에 찌들긴 마찬가지. 전쟁 끝나고 누구나 그렇겠지만요.
개가해서 남매를 낳고 나중에는 친정에 맡겼던 큰딸까지 데려와 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초상치르러 미국에서 온 여동생(아버지 다른) 이 언니집에서 며칠 묵었다는데.
둘이서 옛날 이야기를 하며 울다 웃다 하느라 맛있는 것도 제대로 못 해 먹여 보냈다고 서운해 합니다.
어릴 때 살기는 힘들고 두 애비 자식 모아놓으니 이눈치 저눈치 봐야 하는 어머니는
딸들에게 온갖 욕을 그렇게 했다고 동생이 기억하더랍니다.
어머니 흉내를 내면서 깔깔대고 웃다가도
그런 어머니가 너무도 불쌍해서 찔끔거리기도 했겠지요.
한번은 그 동네에 뻥튀기 장수가 들어와 집집마다 쌀이든 보리든 튀겨서 먹으니까
어린 여동생이 그게 먹고 싶어서 어머니가 돈 벌러 간 작은 공장에 가 문을 삐끔 열고
'엄마 ! 쌀 가지고 가서 튀겨먹어도 돼?' 했다가
'이 육시랄년! 밥 해먹을 쌀도 없는데 튀겨먹을 쌀이 어딨냐' 욕만 쳐들었고.
한번은 언니가 남동생 업고 있는데 등에 업힌 애기가 배가 고팠던지 삶아건져놓은
보리쌀 바구니에서 한 줌 움켜쥐고 우물거리다가 왝하는 바람에
' 이 우라질년! 등에 매단 애도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는 년' 디립다 욕을 먹었다고.
그렇게 욕을 (쳐)먹고 자랐어도 지금은 어엿한 여사장이 되고, 품위있는 초로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자매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합니다.
'나는 자식 키우며 갸들한테 욕 할 일이 없던데 엄마는 왜 우리에게 그렇게 욕을 했을까?
사는 것이 힘겹고 이눈치 저눈치 보이고 그러다 보니 만만한 딸자식에게 욕하는 것으로 속을 풀어내지 않았을까.'
임종을 못 한 동생이 하는 말
' 관 속에 누운 어머니가 옛날 같았으면 또 욕 했겠지. 이 옘병할 년 모하고 자빠졌다가 인자 오냐?'
욕했다고 아무래도 심의에 걸려 짤릴 것 같네.
내가 그런 욕한 거 아니고 들은 것 뿐인데. 우짜까, 지우까, 냅두까.
핸드백씩이나 들었간디?
손에 뭐 들고 다닌거이 귀찮아 배낭에다 쳐넣어 메고있고.
그려~!
오지게 겁내는 모습이 거기까지 보였디야? ㅎㅎ
즈들이 갑인 줄 안당께..
속이 션~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