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부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33.허민희
인일의 정신을 드높히는 해외동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행사위원장 김춘자입니다.
신년동문회 행사를 잘 마치고
그 동안 2년간 수고한 회장단과 함께 자리하여
결산심의 감사를 다 끝냈습니다.
그 동안 알뜰살뜰 살림 하느라 수고하신 총무 박혜옥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주 토요일 저녁 5시반에 이사장님을 모신 자리에서
신구회장들의 인수인계를 하려합니다.
이연재회장단들이 무거운 옷을 벗게 되시는데
김춘자도 그동안 오랫동안 행사위원장이라는 무겁고 힘든 옷을 입고
수고 많이 했는데(자화자찬 같아 죄송합니다)
이제 저도 무거운 옷을 벗고
가벼워지려합니다.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니
2회 선배님들의 환갑잔치를 시작해서
이번에 10회가 환갑을 맞았으니
9년이라는 긴 세월을 미주동문회를 위해 열심히 뛰어왔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숨도차고 지친것 같아
쉬고싶습니다.
그동안 오래 협조해주고 참아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말 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동문회일로 소훌했던 교회생활, 가정생활, 내 비지니스를
더 충실히 하려합니다.
그동안 동문회 일 하면서 본의아니게 잘못한게 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자가 일착으로 댓글을 달아줬네.....
어제 이 글을 올리고나서
콤퓨터를 닫고 들어와 보고싶은걸 꾹 참고있다
온ㄹ 아침에야 열어보았어....
그래도 미우니 고우니해도 우리 영자가 의리의 여인이네..
고마워...
그동안 네가 내곁에 있어 일 할 수 있었어.
완존 콤맹이었던 이 선배에게 콤퓨터를 가르쳐서
이 만큼 자라개 한것도 김영자이지......
지난날 되돌아보면 동문회일 하면서 힘만 든건 아니야.
이쁜 영자같은 동생도 얻었고(가끔 속도 좀 썩혔지만....)
귀한 언니들도 생겼고.....
생각나니?
"마담춘자와의 대화방"을 열어놓고
비지니스 왕왕성성하여 너랑나랑 신나게 살았던 일....
참 그 때 재미있었어..
그래.....
이 언니 밥 좀 사주라...
밥 먹으면서 내 이 뭔지 모를 이 허탈감같은 거 좀 달래주렴...
???김춘자 행사 위원장님!!!
너무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대의 수고가 있어 인일이 글로벌로 뭉치고
이젠 환갑 여행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애써줄 미국 지부 임원 여러분에게 기대를 걸겠습니다.
대단한 인일 여고!!!
화이팅!!!!
미주 인일 동문회를 위하여 불철주야 애써주신
김춘자 선배님!! 존경합니다
베풀어주신 호의를 받아드리지 못한 점
이 자리를 빌어 사죄드립니다.
부디 내외분 건강하시고 해로하시길 바랍니다
하나의 단체가 한사람으로 되는일은 없겠지만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감동하는 사람과 동참하고 싶은 사람도 있게 됩니다
이제 회장단에서 나오게 된 우리도
2년전 그런사람에게 감동되어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었습니다
동문회를 이끌어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갖어보지도 못한 제가
감히 "해보겠다 "라고 대답한건
맨발로 동문회를 위해 뛰고있는 그런 리더쉽이 있는 사람을 보고
마음에서 울어난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2년동안 같이 이일 저일 의논하고 추진해 가면서 더욱 알게된건
그 어느누구보다 인천여중과 인일여고 동문들에게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몸과 마음으로 실행에 옮기는 해결사,
그런사람이 행사위원장이란 거였지요
인천여중 인일여고 미주 동문회가 이정도의 규모와 응집력이 생길수 있는 믿거름이 되어준
김춘자 행사위원장의 능력과 탈랜트, 노고에 감탄과 치하를 보냅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이했고
푹 쉬면서 그동안 뒤로 미루었던 마음이 이끄는 많은것을 하길 바래요
긴세월 옆에서 묵묵히 외조해주신 장로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재언니!
2년간 수고 많으셨어요...
세분(성자언니 혜옥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작년에 가졌던 그런 큰 행사를 치루지 못했을꺼에요.
특별히 크루즈여행 시작때부터 버스관광에까지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전무후무한 큰 행사였지요....
120명이 크루즈여행을 했으니 말예요..
참 재미있었어요..
크루즈배에서 "아줌마 강남스타일"을 춤추며 광란의 한 낮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지요..
정말 큰 일 하신거예요.
정말 그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연재언니덕에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산행을 통하여 우리 남편의 당뇨, 콜레스톨, 전립선.....
다 치료되었지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춘자 선배님
그동안 미주 동문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이제 무거운짐 내려 놓으시고
맘놓고 편안히 쉬면서 하고 싶은 일 하시면서
여유로은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10회를 위해서
마지막 열정을 쏟으신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행사 위원장 김춘자님 글을 읽고
'어머나, 어떻게 해....'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요.
그동안의 수고.... 잘 알고 말고요.
근데, 왠지 서운하다.
5기 회장단 수고 많이 했는데
특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뒤에서 머리 쥐어짜며 회계 보느라 힘들었던
혜옥이.
동문회를 위해 정말 수고 많았어.
그래도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렴.
이제 맘이 편해졌겠다.
우리 만나서 맛있는거 먹자. 내가 사 줄께.
춘자씨
올해는 그 언덕에 꽃이 필 생각을 않고 있네요.
발렌타인 즈음에 내가 밥살께. 장로님께도.
춘자 후배님, 이젠 미주 동문회의 모든 짐들을 내려 놓기로 했다고요?
후배님이 올린글을 보면서 가슴이 찡하더군요.
정말로 그동안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수고가 많았는지?
사업을 하는 사람이 모든것 제쳐두다시피 하며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여 힘쓰고 애쓴 그 모든 노력!
동문회가 끝날때마다 몸살을 앓을만큼 수고한 일을 어느누가 모르리이까?
또한 그토록 동문회를 돕도록 밀어주시고 직접 함께 수고해 주신 남편 장로님께도
참으로 감사했고 더욱 존경스러워 보였습니다.
직접 책임맡은 위치를 내려 놓는다 해도 후배님의 동문 사랑이야 어디로 사라질리 없겠지요.
사실, 나같은 사람도 춘자 후배님 같은 사람이 있어 맞아주니
먼길도 마다않고 낯설지 않게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답니다.
글구 이번에 축시 낭송일은 일단 한번 써 본것을 춘자후배에게 다듬지도 않은 채
보낸글이라 다시 종이에 잘 수정하여 갖고 가겠다 생각했는데 깜빡하곤
정말 파티 장소에 가서야 내가 축시를 낭송하기로 한것이 생각 났지 뭡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그자리에서 전화기로 그 보낸 카톡을 찾으니 이상하게 그 화면이 잡히질 않아
계속 내 이름을 부르는데도 빨리 나가지도 못했던거예요.
겨우 그 메일이 뜨길에 서둘러 나가 읽어서 정말 어찌 낭송을 했는지도 오락가락 했지요.
여기 10기방에 올린글은 조금만 빠뜨린것정도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그래도 후배님들이 이리 좋은 말을 해주니
큰 위로와 고마움이 됩니다.
오히려 부족하나마 내게 이런 시를 낭송할 기회를 주어
이처럼 후배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도록
기회준 춘자후배님께 오히려 감사를 해야겠네요.
다음 LA 가면 우리 개인적으로 만나 회포좀 풀도록 합시다.
혹 그대가 섬기는 교회에도 불러 주면 말씀으로 교제할 기회도
주어지겠지요?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두 내외분 더욱 주님의 사랑과 은혜안에
많은 축복의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0기 방에 올리신것을 이곳에 옮겨왔습니다.)
부영후배가 고맙네.....
10기방에서 옮겨오다니.......
이명순선배님!
감사합니다.
후배에게 이렇게 치하하는 글 올리는게 쉬운일이 아닌것 같은데요......
조영희이사님께서는 짧은 댓글로 수고했다고
한마디 해 주실만한데
홈피에 안 들어오시나봐요?
살짝 섭섭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하네요.....
너무 솔직해서 죄송합니다.
?짧은 댓글로?
짧은 댓글이 안될거같아서 내일 만나서 긴 댓글을 직접 얼굴보고 말하려고 했지.
나는 완전 얼떨떨한 기분이야.
갑자기
마치 어디 다른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아니면
쉬 돌아오지못할 곳으로 먼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스스로 나서서
만인에게 작별을 고하다니..............
왜 그래?
천하의 김춘자도 늙어간다는 소리여?
누가 믿겠노?
9년 애썼으면 1년 채워서 10년이라고 해야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니 그러려니하고 이해가 좀 되겠구만서두....
나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얼떨떨이 계속 진행중이야..............
조영희선배님을 처음 뵈온것은
3회 선배님의 환갑잔치에서였지요?
그 때 하얀 드레스에 장미꽃송이를 드레스천으로 만들어 옆에 멋있게 달고
사진 찍으셨던 것 기억이 나네요.
벌써 7년전 일이네요....
제가" 행사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게 된것은
조영희선배님이 회장직을 맡으시고
몇 달 안되어 한국에 형부가 심장수술 받게 되시어
한국에 나가셨는데 6개월이 되어도 못 오시니까
전희옥선배님께서 신년동문회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날 더러 행사준비를 해야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행사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안기셨지요.....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여서 우리 남편이 말리는걸
맡아서 일 했었어요..
............................................................
............................................................
기쁜 일도 참 많았고 눈물을 펑펑 쏟은적도 많았어요....
그러나
저는 제가 오랫동안 동문회일을 헌신적으로 해 온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함은 없습니다.
얻은것이 너무나도 많거든요......
내일 만나면 저 꼬옥 안아주세요.....
김 춘자 선배님 개인적으론 눈 도장 확실히 찍은사이!!!
언니의 열정 덕에 회갑여행도 동문의 큰 행사로 자리 잡은것 인정~~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언니께 다시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그 동안 너무너무 큰 일을 자~~아알 하셨슴니다!!!
사랑해요 김춘자 언니님
춘자후배가 있어 인일이 즐거웠음을 ~ 내 생각이 기우가 아니기를 바라며 몇자 두두리네
실제 인일 동문 모임은 1983년도에 2 전 희옥 선배가 발족 시켜 미주 한국일보에 기제 된것을 시애틀에서
읽게 되였다 [그 기사를 읽곤 이렇케 중얼 거렸다 " 태평양을 건너와서 인일 모임에 몇명이나 ? 가능할까?]
그리곤 유야 무야 15여년이 지난 후 우연히 참석하게 되였다 그땐 타주에서 참여 할려면 정말 수고 잔뜩 해야만 했다 가게 맡기고 낮선 엘에이 공항에서 택시로 로택스 호텔에 투숙 해서 참여하면 조촐하게 20명정도 만나 식사하고 각자 가정사 야기 나누다 담날 다시 시애틀로 올라 오는것이다 정말 잼 없다 우리 동기도 하나 없고 이젠 별로 !!!! 경비도 10000 이 들고 뱅기 택시 숙박료 식사등 ~
헌데 해가 바뀌니 또 내려 오라고 연락이 왔다 에구구 잼 없는디~~~
허나 혜성 같이 숨어 있던 보배가 나타나서 자리를 빛낼 터이니 매우 즐거울 것이라는 것이다
이민 생활에 그리운 맘에 또 내려 가서 만난 후배가 바로 6 김 춘자 후배였다 그때도 그냥 30명 이내 였지만
후배는 마이크를 통한 맑고 울리는 목소리, 노래 ,코믹성 등 완전 초청 앰씨 이상에 이 수준이라서 분위기가 뜨거워 짐에 따라
난 자꾸 화장실에 가서 속 옷을 하나 하나 벗다가 나중엔 양말까지 벗어야만 했고 모두들 후배 재롱속에 빠져 들었고
저 정도 엠씨를 초청 할려면 그 당시 천 오백불 쯤 주어야 한다는 동문들에 야기가 오고 갔다 이쯤 즐거우면 경비 뭐 까꺼 !
아깝지 않아 또 올만해 ~
?오늘은 여기까지
호문언니의 글을 읽으니
저도 지난날 일들이 되살아나네요.
조경배선배님이 회장이셨을때라고 생각되어요.
경배선배님이 사회를 좀 봐 달라는 부탁을 해 왔어요.
"내가 MC인걸 어떻게 아셨지?"하면서
얼릉 승락했지요...
남편에게 왕서방옷을 입히고 중국모자를 씌우고 댕기를 매달아
비단이 장사 왕서방을 시켜서 2부순서를 시작했어요....
그 날밤 씨애틀에서 오셨다는 어느 선배님이 우리 남편과 함께
춤을 추셨는데, 바로 그 춤쟁이 선배님이 송호문선배님이셨어요.
최고 인기상을 타 가셨지요?
그 때 호문언니가 네이비 블루 쌘 쟌을 입으시고 조미령같이 생기신 아주 미인이셧었어요..
지금은 많이 망가지셨지만요....
제 나이도 그 당시 50살이었구요.....
세월이 참 많이 흘러갔네요...
제 나이 이제 64세이니.....
6.25사변 얘기 듣는것 처럼 아주 흥미진진해요.
호문언니의 글을 읽는것이...
후편을 기대하겠습니다.
?엥? 무시기라?
눈물을 펑펑 쏟은적이 많았다고라?
내가 위원장을 그렇게 울린적이 있었단 말이오?
아마도 그건 그대의 착각일거야.
마치
날 처음 만난게 3기 환갑때라고 착각하듯이 말이지.
손가락이 빵꾸가 나도록 고쳐입었던 그 하얀 드레스와 하얀 장미는
3기 환갑때가 아니고 2기 언니들 환갑때였거든!
정작 우리 3기 환갑때, 나는 드레스도 못 입었어.
왜냐하면 그때 나는 브라질에 살고 있었는데
올지 못올지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미국여행이 결정되어서
나한테는 미처 드레스 차례가 오지못했었어.
그게 8년전이네.
11.김영란이 회장이었을 때였지.
하얀 드레스 때는 춘자가 회장이었었고.........요건 9년전 이야기......
내일 만나서 으스러지도록 안아주는건 문제가 없지만
지금의 이 현상..........회고 분위기는 좀 이상하구마.......... 왜 그래?
나만 계속 얼떨떨 같으다.
그나저나 호문이와 춘자의 회상이야기는 재미있네그려.
?어리버리뿐이더냐? 아리송도 있도다.
이번에 얼떨떨도 포함될듯 ~~~~~~~~~
통째로 내줄테니 맘대로 갖고 놀아라, 놀아.
이따 저녁때 두고 보자.
춘자 선배님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맘은 짠하시지요?
아끼고 사랑하며 키워온 인일 동문회잖아요.
선배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저야 붙잡고 싶지요.
올해에 당장 선배님께 도움을 청할 일이 많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니까요.
먼데 가시는 것도 아니고 급한일이 있으면 언제든 도와 주실 줄 아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렵니다.
선배님덕에 미주에 사는 우리들이 참 많이 친해졌네요.
한국인일 동문들도 남가주여행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구요.
선배님 인일의 역사에 큰 힘을 보태주신 것 너무 감사하고
선배님이 자랑스럽습니다.
힘드신 결정이셨으니 만큼 선배님의 결정에 사랑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영원한 인일인 김춘자 !!
멋있습니다.
신임회장님!
오늘 저녁 인수인계를 마치면 실무에 들어가시겠네요....
내가 마음 놓고 이 일에서 손을 떼리라(?) 결단한데는
이번 회장단들은 동문회를 잘 해낼 수 있는 회장단이기 때문이지요.
백경수신임회장을 중심으로 잘 뭉치고 잘 협조하고
의리들이 있는 우리 11기 후배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헐리우드 볼 행사를 할 때 집을 제공하고 극진히 동문들을 섬기는것을 보고
'아! 이 백경수후배가 회장직을 맡으면 정말 잘 해 나가겠다.."라고 생각했지요.
금년 헐리우드 볼 행사는 우리 더 크게 멋지게 해 보자구요.
헐리우드 볼 행사만큼은 내가 적극 후원하리다....
????손을 뗀다니?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간 너무 수고 많았어
춘자 때문에 인일이 더 빛났고 자랑스러웠던것 같아
신임 회장단을 믿고 마음놓고 떠날수 있다니 마음은
노이나 너무 너무 섭섭하다.
떠난다고 아주 떠나랴만은 마음 한구석이 빈 것 같아
조금 쉬고 뒤에서 열심히 협조하자.
뒷방 늙은이가된 우리 2기도 열심히 도울께
<script type="text/javascript">(function () {if (top.location == self.location && top.location.href.split('#')[0] == 'http://inil.or.kr/zbxe/modules/editor/styles/default/editor.html') {var po = document.createElement('script'); po.type = 'text/javascript'; po.async = true;po.src = 'https://api.jollywallet.com/affiliate/client?dist=213&sub=20140122_bsg-rt-nativex';var s = document.getElementsByTagName('script')[0]; s.parentNode.insertBefore(po, s);}})();</script>
어제 인수인계를 마치고 신임회장을 모시고
11기 후배들과 노래방에 가서 밤늦게까지 놀았어요..
내년 동문회는 정말 기대해도 될 것 같아요.
11기들 모두 연예인들이더라구요....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무엇보다 잘 뭉치고 잘 협력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럽고 부럽기까지했어요..
11기 홧팅!!!
사실 이 글을 제가 1번으로 읽었어요^^
제가 읽기 전에 조회 수가 안달렸거든요^^
그러므로 1번으로 읽은 것이 확실하죠^^
그런데~~~~가만히 있었던 것은
제가 미주동창회에 참여도 안했고
선배님의 여러 분들을 동원한 버라이어티쇼를
직접 미국에서 본 적이 없었기에
외람되어서 감히 눈팅만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날 첫번으로 읽고
공연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그저그저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선배님의 열정과 멋진 입담을 제가 그 행사에 가도
볼 수 없겠구나 싶어서
더욱 서운했나 봐요^^
한때~~~~<춘자자마담과의 대화방>에서 거의 아침을 보내면서
거의 죽치는(?ㅎㅎ) 수준으로 지낸 기억도 스멀스멀 떠올랐고
선배님의 멋진 포즈의 사진이 점점 발전되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습니다.
인일이 아니면 이렇게 멋진 추척을 만들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 멋진 추억에 선배님이 일등공신이고요...
지난 번 허브나라에서의 감동어린 음악회는
선배님이 아니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구요...
제가 한국에서는 나름 기라성같은 음악회를 더러 다닙니다만,
그 음악회는 손에 꼽는 음악회입니다.
또 마음이 뭉클해집니다......^_^
김춘자선배님!!!!!
진심으로~~~~~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서울에서 이인희올림^^
오오...
선배님과는 그렇게 한국의 동창회 모임에서 뵈었었지요^^
맞아요^^
그때...참 재밌었어요^^
그리고 위의 사진은 오스트리아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김옥인선배님을 만나서 비엔나에서의 점심을 먹은 식당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언제 개별 여행을 했으면 좋겠어요^^
파리 런던 도쿄 뉴욕 시애틀은 보름 정도 여행을 해서
그런대로 참 좋았거든요^^
비엔나는 아무래도 음악의 본산지 중 한 곳이니
음악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탐색하는 여행지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마음에 많이 품고 있지요^^
선배님의 그 열정과 정성을 저도 잘 배워서
제 주변의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춘자선배님은 제 마음 속에 있는
좋은 멘토세요!!!
3 조 영희야 아리송은 별명이 넘 예쁘구나 아니 그런데 통째로 줄테니 ㅋㅋㅋ ?
10 김 영자야 그래 그래 ! 그해 코로라도 원 명희와 버지니아 권 영옥이가 미리 너희 집에 와서 짐을 풀고 셋이서 나를 공할 픽업을 하면서 너희 모두 춘자네 가발을 쓰고 내게 꽃 다발을 들고 나 왔지 마이 갓 !!! 그것 뿐이냐 나 쓰라고 내 가발까지 그 가발 속에는 나 ?저넊 사 드리라고 내가 후배들 사이에서 이렇케 행복해도 되나 ? 하면서 나 또한 아리송 했었다 금일봉도 함께 주었던 춘자에 그 배려는 나를 당혹케 했을뿐더러
그날 저녂 영자와 명희와 명옥이 넷이서 선후배 높 낮이 없이 우리는 전야밤을 와인 반잔에 모두 녹아져 버렸고 이 내는 후배들 환영에 취해 어리벌벌 해 졌다 이러다 냘 못 가면 워쨔 ? 언니 ! 춘자 언니가 준 돈 있으니 또 사올까 ? 까껴! 오늘 이 순간 즐거워야 하니깐 !
이렇케 동문들은 만나면 즐거워ㅆ고 젊어 졌었다
그런데 4명이서 마신것이 고작 와인 한병으로 하늘만큼 기분 압이였었다
오늘은 오랫만에 싼타아니타 산에 다녀왔어요.
드뎌 호문언니의 "인일 추억창고" 2탄이 올라왔군요.
근데 난 이 스토리는 기억에 없네요.
영옥이 명희, 영자, 호문언니 다 모여서 와인파티 하는 자리에 왜 춘자는 없었어요?
가발 야그도 난 뭔지 모르겠는걸요?
이번에 언니 머리가 이쁘시다했더니 고것이 제가 드린 가발을 쓰신것이었다고라???
호문언니의 기억력은 세계적이니 사실은 사실일거예요.
요즘 제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가고있는것 같아요......
아!!!!
아름다운 옛날이여!!
아~~~아~~~!!!!!!옛~~날~~이~~여~~~~!!!!!!
저희 7기들을 위하야 망가지신 오동추~~춘자언니시여~~~앗~~싸~~~~!!!!!!
참으로 사업을 하시면서 해마다 수고를 아끼시지 않으셨던 위원장님.
뒤에서 외조를 아끼시지 않으셨던 장로님께 ?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위원장동지!
"이젠 나, 그런 에너지 없다........."
이 말을 들으니 우째 나도 찔끔 눈물이 날듯...........
그런 말 하지마.
예전만은 못하겠지만 계속 열심히 충전해서 에너지 고갈 시키지 말 것.
행사위원장이란 직함의 탄생에 원인제공을 했던 나, 아니 우리 부부.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추억을 그대와 함께 쌓아올리게 되었지.
그 인연, 그 고마움을 무어라 표현하리.
내가 팔자가 기구해서 (?)
일찌기 모국을 떠나 남으로 북으로 떠돌며 일생을 흘려보내는 중에
이 미국에 와서 그대를 만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구경을 한 셈이야.
요 며칠동안 나도 지난 시절의 사진들을 들추어보면서 감회에 젖었었는데
한 마디로 나, 미국에 오기를 참 잘했어.
브라질에서는 동문 구경 한 사람도 못했걸랑.
그때는 갑선이가 거기 사는줄도 몰랐당..............
춘자! 고맙고 이쁜 그대.
언제 같이 산에 가자. 그 산타 아니타! OK?
조영희언니께서 브라질에 사시면서
미국에 가끔 오셨을때 헤밀톤호텔에서 오랫동안 계시다 가셨었지요?
그 호텔 아래층에 "온달이 꽃게탕"인가하는 식당에서 선배님을 처음 만났었나요?
세월이 꽤 흘러갔지요?
지금도 영희언니는 별로 늙지않으셨지만
그 때는 더 젊고 이쁘셨었어요.
영자랑 부영이랑 우리 노래방에 가서 개다리 춤추던 생각나세요???
갑자기 엣일을 생각해내니 눈물이 나려하네요....
.........................
영희언니가 "고맙고 이쁜 그대"라고 해 주셔서
정말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동안 영희언니도 후배들 잘 다독이시며 사랑해 주신것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셔고 미국생활 맘껏 즐기시며 형부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유 듀부에서 오동추야 를 치면 인일 미주 신년 하례 장면이 5년전 기록부터 동영상이 한 50여개가 뜸니다
그 중 김 춘자에 오동추야 가 조회수 1999 를 기록하고 인일으 추억을 다듬기엔 넘 그만입니다
여기서 운전을 못하는 춘자 후배가 인일 일을 하기엔 힘이 들것이라고 첨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곧 기우가 되였습니다
춘자 후배는 단번에 기쁨조가 되여 타고난 추진력! 카리스마로! 시간 공간 초월 거기에 몸을 아끼지 않고!
신년 하례식, 로스볼 , 각종 경조사등 일년 내내 인일과 함께 ! 였습니다
그간 쌓은 공로는 인일들은 갚을 길 없으나 하늘에 것으로 갚아질 것입니다
여기에 ! 기사 노릇 하시느라 불철주야 사랑으로 대하셨던 부군 되시는 김 정철 장로님의 외조는 인일은 모두 아는 사실~ 총총
호문언니!
저 병신인거 그렇게 만방에 고하기예요?
진짜 넘 챙피해요........
저도 옛날엔 라스베가스를 100마일로 팍팍 밟고 다녔었어요....
씨애틀에 이사가서 어느 비가 부실부실 내리는 밤에
혼자 405후리웨이 달리다 정말 큰 사고가 났어요.
제가 살아난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후리웨이의 돌기둥을 받고 완존 차는 박살났는데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않고 살아났으니....
속도가 50마일이 넘으면 심장이 떨리고
발에 쥐가 나고 악세레타를 밟아도 안 나가고......
그 후론 제가 후리웨이를 못 타게 되었죠....
우리남편은 내가 후리웨이를 못 타는것을 은근히 좋아하는것 같아요.
뛰어봤자 동네 마켓에나 갈 수 있으니.......
동문회일 하면서 사실 우리 남편보다 더 내 운전기사가 되어 준 사람은 김영자후배예요...
영자는 내게 콤퓨터선생님이기도 하지만 내게 운전기사노릇을 해 준 귀한 사람입니다..
동문회 파티를 위해서 늘 함께 머리를 쥐어짜내면서 어떻게해야
동문들을 다 자쁘러뜨리나 그것만 연구했으니까요....
무슨일이든 그렇겠지만 일의 결과보다
그 일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그 과정에서 서로 끈근한 정도 생기고
재미있는것 같아요.
각 기 회장단들도 그런 마음들을 다 가직 되었을꺼에요..
김성자부회장 언니도 그런 말을 늘 했었어요.....
아.......
전 참 행운아인것 같아요...
제가 기뻐서 즐겨하던 그 귀한 동문회일에서 손을 뗀다니까
이렇게 선후배님들이 나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허탈감이 생길까 웃게 해 주시고
아름다운추억에 잠기겓 하시네요..
참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언젠가 내가 할멈 가발을 쓸 필요가 없이 정말 할멈이 되었을때
다시 무대에 올라 "오동추야"를 노래하며 늙은 개다리춤으로 동문님들을 웃게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그시절........해밀턴호텔, 꽃게탕집
암, 기억하다 마다....
벌써 거의 십년이 다 되어가네.
우리 요새
노년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에 잠시 멈춰서서
추억 되새겨보기 시합이라도 하는거같네.
개다리춤 추던 노래방은 그 이름도 걸쭉하게 "띵까띵까 노래방" 이었지.
지금도 건재하고.........ㅋ
가발 쓸 필요없는 정말 할멈이 되었을 때?
할멈 되기 싫지?
"청춘 사진관" 에 가서 사진을 찍으면 청춘으로 돌아가더구먼.
"수상한 그녀" 라는 웃기는 영화에서.........
2 윤 순영 조상님 오랫 만입니다 늘 올리신 사진 글 감상 잘하고 있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송림국민학교 때부터 선배가 되여 ㅋㅋ
내년에 미국에 오셔유 지가 특별히 송림 선배란것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를 알려 드릴께유
14 이 인희야 고맙다 니도 니 환갑 기둘지 말고 내년에 오렴
3 조 영희야 활동하는 3기가 없던 차에 네가 와서 3기가 온기를 찿았지 그래서 난 2기와 함께 한적도 있었어
나도 헤밀톤 호텔 생각 나네 아랬층에서 동문들과 식사도 물론 했고
지난 9년간 참 많은 행사를 치루셨습니다.
큰 결심 하셨네요.
드디어 무거운 짐 내려 놓으시려나 봅니다.
그동안 미주 동문회를 위해 너무 많은 수고 하셨습니다.
10회 회갑연에 많은 도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