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부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33.허민희
인일의 정신을 드높히는 해외동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오래된 일입니다.
미국에 먼저 오신 외삼촌이 편지를 보냈는데 미국에는 먼지가 없어서
며칠이 가도 와이셔츠 목이 더러워 지지 않는다..라고 쓰셨더라구요.
나이아가라 근처에서 보낸 그 편지 속에서 깨끗하고 신선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때쯤 시카고에서 나의 남편 될 사람은 편지로 나를 꼬시려고 미국 자랑을 많이 했었습니다.
먹을 것이 무한정 쌓여 있다고요.
그리고 공부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만하면 시켜준다고도 했지요.
오자마자 임신하는 바람에 공부는 핑게낌에 물 건너 ....
40년 째 미국에 살고 있는 그는 미국이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분 좋게
"공간이 넓은 것"을 말하네요.
판자 집 코딱지만한 단칸방 두개에서 9 식구 꼬부리고 살던 그.
넓은 땅을 만끽하려고 그랬을까 이민초기에는 주말마다 아파트를 벗어나 들로 나갔던 기억이 나네요.
탁트인 들에 나가서 민들레 꽃을 따던 일들,
연휴에는 시카고에서 밤새워 운전하여 플로리다로 뉴올리인즈로 바다 끝까지 드라이브하던 기억들..
그래도 아직 못 가본데가 많이 남아 있는 무궁무진한 이 나라의 광대함이
콱콱 숨 막혀 살던 때를 다 잊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처음에 와서 귤을 실컷 먹고, 또 먹었던 생각이 나네요.
물론 한국도 이제는 먹을 것이 풍성하지만 여기처럼 싸지는 않지요.
이 세상에 이 나라 밖에는 없는 이런 풍성함이 늘 고맙습니다.
중학교부터 10여년 자취생활의 배고팠던 나와
가난의 원조 내 남편은 너무 많이 퍼 먹는 버릇이 생겼습니다만.
무얼 잃어버릴까 늘 조심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얼마 후에 완전히 무장해제하고 무방비로 사는 편안함을 알게 되었죠.
어린 내가 시골에서 인천, 서울 자취방으로 들고 가던 음식 보따리를 버스 짐 올려놓는 곳에 두고
혹 졸다가 없어지면 어쩔까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던 초조함 같은 것..
어느날 생각해보니 더 이상 시시한 일에 전전긍긍 안 하고 사는 것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래서 시카고 서버브 살 때는 아예 집에 자물쇠를 안 잠그고
앞 문 뒷 문 다 열어놓을 정도로 편한 마음으로 살았어요.
그래도 삼십년동안 그 집에 사는동안 단 한번도 도적 안 맞고 잘 지냈어요.
값 나갈 물건이 그 집에 하나도 없었냐구요? 아 들켰네..가난한 우리 살림을!ㅎㅎㅎ
한국에서는 순경을보면 공연히 주눅들던 마음을 차츰 잊어버리게 된것도 좋았고
아무도 내가 잘못하지 않는한 귀찮게 하지 않는 자유스러움이 참 좋았죠.
울 남편이 사고를 냈는데도 "니 남편 운전은 잘 하는데 어쩌다 사고 만났다"고 하는 순경의 친절함에 놀랐어요.

우리 고모에게 물었더니 미국이 좋은 것은 "일해서 돈을 벌수 있는 것"과 "차별이 거의 없는 것"이라고 하네요.
영어 단어 몇마디 알지 못하지만 자기 일하면서 20 여년 남부럽지 않게 산 것..
그녀는 자다가 일어나서도 감사할 일이죠.
배운 자나 못 배운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 잘 섞여 사는 것..
물론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역시 보이지 않는 선들이 은연중 있지만, 없을 수는 없겠지만
한국처럼 내놓고 차별하는 것은 몸으로 별로 느끼지 않고 살수 있어서 고맙다네요.
누구든지 열심히 살면 좋은 집, 좋은 차 지니고 살수 있는 것도 좋다구요,
남편이 또 보탭니다.
무엇보다 애들 넷 크게 스트레스 안 받고 공부 시킨것이 참 좋았다고요.
한국 같으면 그애들 대학갈 때 같이 잠 못자고 고생께나 시켰을텐데
하나님 은혜만으로 지들이 다 알아서 자랐고 결혼도 지들이 알아서 하고
무진장한 기회의 나라에서 능력만큼 꿈만큼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
그 때문에 그동안 아무리 고생 많이 했어도 후회하지 않고 감사하고 살지요.
물론 잃은 것도 없지 않지만 얻은 것이 너무 많으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아침입니다.
꿈과 좌절, 성공과 실패, 그리고 기쁨과 고난이 얽힌 내 인생 삼분지 이를 보낸 이곳,
살아볼수록 정들고 고마운 이 곳,
나와 내 후손들이 살아야 할 고향..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계속 기회의 나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갓 블레스 어메리카!
( 2011년 2월)

이땅의 주인, 우리 손녀딸 리셑의 최근 모습. 참 예쁘지요?
.......................................................................................................................................
음악은 중앙블로그 둥지님 방에서 퍼왔습니다.
- 멘델스존(Felix Mend)dma
02... 은파 (Silvery Waves) - 와이만 (A.P. Wyman)
03... 세레나데(Serenata
난 77년에 왔어요.
미국은 좋은 이유를 아주 공감이 가게 쓰셨네요.
나도 마국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 보고
내일 다시 댓글을 쓰지요.
호숙후배는 죠지아주에 사는 후배지요?
후배도 미국에 온 지 꽤 오래되었군.
우린 이제 이국에 사는것이 훨씬 편하지?
우리 미국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고 댓글 더 올리자구~
미주신년동문회때 롱드리스입고 파티한 것 미국이니까 가능한거겟지??
호숙후배 드레스 입은 모습이 세련되엇다했더니 미제된 지 오래되었군그려~~~
인선언니!
숙제를 밤에 자면서 잘 준비해서 낼 댓글을 잘 올리겠습니다.~
??4회에 전영숙이란 친구가 심심해서 올린다며 봄 여름 가을 겨울 넘 멋진 사진들을 꺼내놓았는데
볼 수록 아름다웠었드랬지요
인선씨도 심심해서 열어놓은 글 참 좋아요 그 맑은 마음이 수정같이 곱네요
그러고 보니 불쑥 들어왔네 아 참 나 4회 지연숙
인선언니 ~
한번쯤 생각해 보지만 글로써는 표현을 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좋은글로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니에게 공주라고 하시는 멋쟁이 형부님이 말씀하신것과
고모님이 말씀하신거 저 모두 공감합니다.
옆집에 무엇이 있든지 누가 무엇을 입었던지 그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특히 나이가 들어도 일할수 있는 기회가 한국보다는 많으니까 더욱더 좋은것 같네요 ~ 그쵸?
예쁜 손녀딸이 인선언니 많이 닮은것 같아요 ~
에구우,,,우리 이쁜 미제들,,,,!!!
표현을 넉넉히 인심좋게 해 줄쑤 있는 맴들,,,
그기 다 여기서 사는 좋은 면중에 최고 아닝가암???
애끼지들 말고,,눈치보지들 말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
그거 다 딛고 넘어왔더니
오히려 그것이 감사제목이 도ㅑㅇ것뜰,,,,
다 내어노으며 눈물들 짜 보시드라고이,,,,,
?내가 이 미국을 좋아하는점은 말쌈들 하신대로 누구에게도 구애받지않고,,,
?I can be myself? 할수 있고,,
또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주위의 사람들,,,,그쥐이???
?
?아아!! 또 있따아,,,?
내 맘대로 웃을수 있어서 조타아,,,누구도 지지배가 너무 우슴이 헤프다고 야단치지 않는다아,
또 항상 한 마음으로 살수있어,,,믿음을 실천할수 있는 단순한 삶이 만떙이다아,,,,하하하하하
에고오,,동문회에서 간신히 만회한 조신한 이미지가 슬슬 또 망가지능갑따아,,,
이그으으!!! 이 정도로 엥간할때 그만하자아,,,,
인선언니!
저는 남편과 중매로 2달하고 1주일만에 결혼하고 남편은 내게 아기씨를 쌱 뿌려놓고
미국으로 먼저 오고, 난 씨를 잘 키워, 아기낳고 아기가 8개월반 되었을때에
미국에 아기와 함께 왔답니다.
신랑감이 미국에 간다기에 키도 작고 목도 짧고 진짜 참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미국에 오고싶어 결혼했지요.(우리 남편은 이 홈에 들어올 줄 모르니 다행이에요)
언니네 형부처럼 미국에 오면 빨간차 타도 여행 다니고, 오페라구경은 주말마다
다닐 수 있고, 언제든지 공부는 하고싶으면 시켜주겠다고
꼬셔서, 미국에 올대때 롱드레스7벌을 맞추어 가지고 왔어요(오페라에 갈대 입고 가려고)
저도 오자마자 덜컥 대책없이 둘째가 들어섰고,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우야되었지당간에
저는 현재 아들 셋을 가진 뚱뚱 오동추 할멈이 되었고,
가발장사하는 장삿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난 미국이 좋습니다.
차 타고 어디든지 가면 넓은 땅에, 넓은 바다, 아름다운 산........
먹을 것 풍부하고, 잘난척하는 사람 별로 없고,
나도 잘난척 안 해도 되고,
또,
일만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직업에 귀천이 없고....)
언니!
난 정말 미국이 좋아요.
가끔
한국이 그리운 것은 봄에 개나리 진달래 필때,
냉이국에 쑥개덕이 그립기는 하지만........
그리고
우리 인일미제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해마다 재미있는 신년동문회가 있어
미국이 좋아요.
롱드레스 우아하게 입고 선후배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이 미국이 참 좋아요.
있다고 잘난 척 하는 선후배가 없어서 좋고
다들 인일의 자존심을 가지고 이민생활을 잘 이겨낸 우리 인일인들이
자랑스럽고 참 좋아요.
아이들 한번도 과외공부 안 시키고도 명문대학 다 졸업 시킬 수 있었던
이 미국이 난 좋아요.
근데,
인선언니!
나도 인선언니나 11회 김경숙후배처럼
글을 좀 매끄럽게 구수하게 쓰고 싶른데
왜 말처럼 잘 안될까요??
고것이 참으로 안타까고, 깝깝스럽소이~~~
나도
참 잘 쓸수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허지만
김춘자는 말을 잘 하니까 됐죠 뭐~~~
인선언니가
이 댓글을 근사하게 또 받아치시면 되지요~~
춘자후배, 롱드레스 일곱 벌이라구!!!!
그거 다 어찌 했누?
후배 남편은 아주 멋들어지게 꼬셔왔구만.
빨간차를 태워 미국구경 시켜주고, 주말마다 오페라 구경을 시켜준다 했으니!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제야 꺼냈어!
언제 마음먹고 자기 이야기좀 써봐요!
사람마다 독특한 자기 스타일과 자기 이야기가 있어서
다 써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춘자도 답글쓰는 실력보면 만만치 않거던.
말 잘하는 사람은 글 잘 쓸수 있는 능력이 숨어있다고 믿어.
경숙이처럼 글 잘 쓰는 것이야 좀 타고나야 하는지 모르지만
나처럼 쓰는 것은 조금 쓰고 또 쓰고
또 고치면서 또 쓰고 그러면 누구나 할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해.
춘자말대로 워낙 뛰어난 말솜씨..
즉흥적인 대응 그런것은 아무도 흉내 낼수 없는
은사니까 거기에 대면
글 잘쓰는 것이 하나도 문제가 아니지만 말이야.
컴퓨터가 참 좋아 잘 못 쓰면 고치기가 너무 쉬워서.
좋은 답글 떙큐!
한국엔 있고........미국엔 없는 것
미국엔 있고........한국엔 없는 것
그래서 그리워 하겠죠. 우리 맘에 그리움이 더더 자라겠지요.
1) 저는 이번에 뱅쿠버 처음 가보고,
시가 7형제중, 시동생 두가정이 뱅쿠버로 이민한건 정말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생각했습니다.
인종의 차별도 없고, 돈 없어도 병약해도 사회가 다 챙겨 주더군요~ 정말 좋은 나라임다. 전 이제 카나다를 사랑합니다!
2) 한국사람들은 도토리 키재기처럼 너무들 똑똑하여...
국내에선 문제 하나 차이로 (아니 동점자 여럿 중에) 넌 이래서 낙방, 넌 이래서 몇등.... 상처를 주잖아요.
제 생각엔
한국사람들은 세계로 널리 퍼져서... 어디에서나 헌신하고 그 지도자가 되어
또 모국의 발전에 기여하면, <좁은 땅덩이_인구의 과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얼마전 신문에서.... 케냐 선교사님이 거기서 자녀를 낳아 길렀는데, 모두 케냐 엘리트들과 함께 성장하였고
케냐 IT 중심 사업가로 성장하였다고요. 멋있지 않습니까?!
뱅쿠버대학 한인교수님, 그댁의 절세미인 따님은 장래 희망이 캐나다 수상이래요!
(하늘의 일은 누구도 예측 못하지요. 그리고 저 자신은 이런 일들은 된다 에 한표를 걸고, 필요하면 그 아이디어팀에도 참가ㅎㅎ
당연히 그 base는 "카나다 더 좋은 나라 만들기, 세계 일등나라 만들기" 여야 합니다)
또 국내에 있는 저희들은 열심히 해서 존나라 만들도록 할께요. 함께들 도와주세요
2011년초 현재, 미주동문들이 나라를 떠났던 당시의 모습에서 많이 변한게 사실입니다, 물론 갈 길은 멀지만요......
순애후배님 캐나다가 참 좋은 나라로군요.
요즈음은 미국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한번씩 들르면 너무나 세금이 높아서 놀라곤 했었는데...
한국의 우수한 두뇌들이 세상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탁월한 의견에 진심으로 동감합니다.
너무 작은 곳에 몰려서 지나친 경쟁하느라 코피 흘릴 필요는 없지요.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에게 많은 책임이 있네요.
여러나라를 다니며 좋은 것만 가져다가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면
장래 세계를 짊어질 귀한 사람들이 될 것이니까요.
좋은 답글 감사드립니다.
인선후배의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평안하고 순수해지는 매력이 있어요.
나도 76년에 왔으니까 미국에 사는 햇수가 더 많아 졌군요. 처음에 가족을 떠나 정말 어떻게 살까 했는데 다 살아 지데요.
우리는 여행을 많이 했어요. 우리 둘째딸은 한달만에 킹스캐년에 캠핑을 했지요. 낮에는 캠프장에서 놀다가 저녁에 는 모텔에 자면서
교회사람들과 같이 놀았어요. 그래서 외로움을 잘 달랬던것 같아요.이제는 다 커서 뉴욕으로 날아간 두딸을 그리며 사는 재미도있지만
인선을꼭 닮은 손녀를 올리는 할미의 마음을 그리워 한답니다. 실물보다 젊게 찍어준 사진 고마웠어요.
그리고 순자언니 우리 국민학교 선배시니 저한테는 12년 선배이십니다. 작년에 뵐때는 좀 어려운 선배님이신줄 알았는데 이렿게
유모가 있고 후배들 배려 해 주시는 선배님 감사합니다.
부영후배를 동창회날 못만나 정말 속상했어요. 사근 사근 눈웃은 치는 얼굴과 노랫소리를 그리워 했답니다. 내년에는 꼭 볼수있도록.
경배 선배님 변변치 않은 글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교회 덕분에 우리가 미국서 외롭지 않게 살았죠?
언니는 엘에이 사시는가요?
뉴욕으로 따님들이 가버리셔서 한편 그립지만 한편 두분이 꺠가 나지요?
실물보다 젊게 찍은 것 아닌데요. 누구보다 젊어보이는 선배님의 맑고 편한 얼굴 참 좋았어요.
국민학교 선배면 12년 선배라는 말은 첨 들었는데요. 그런 말도 있는가요?
제 손녀는 저랑 비교할수 없이 정말 예뻐요!
걔 엄마 아빠가 준수해서요. 제 입은 제 딸로 건너가 더 예뻐졌다가 손녀에게로 내리물림해서
점차 더 이쁘게 발전했답니다. ㅎㅎㅎ
이쁘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진짜로 부영후배 못보니까 참 섭섭하더라구요. 영희후배랑 쌍둥이 형제처럼 귀엽고 발랄해서
눈애 선해요.
미국이 좋은 이유는 많지요.
내가 사는 이시골은 공기가 맑아 무척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두분의 씨니어들께서 장수를 하고 계시지요.
내남편이 나하고 결혼하겠다고 돈 300불 하고 결혼선물로 일본에서산
캐논 카메라 300불 짜리를 들고 왔지요. F=1.4 이었으니
정말 좋은 카메라로 장기간 썻지요.
요 총재산으로 결혼을 시작하여 지금은 마누라, 자녀셋, 며느리와 손자한명
그리고 집한채 아즉도 왕성하게 일할수 있는 직장이 있으니 그리고
남편의 6년 학생시절 모두 공짜로 공부하고 애낳고 잘살었으니
정말 미국한테 엄청 감사하지요. 그래서 이곳이 좋습니다.
나요 미국역사의 시작인 식민지 시대의 수도 윌리암스버그가 있는
메이 훌라워 보다 30년 앞서 제임스타운에 첫발을 디딘곳 그리고 죠지 워싱톤 장군이?
욕타운에서 불란서의 도움과 함께 영국을 마지막으로 물리침으로
영국으로 부터 완전 독립을 할수 있었던 이곳이 바로 내가 사는곳 입니다.
아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묘지가 바로 이근처에 있습니다.
나이든 손님을 모시고 이곳에 와 영화 한편을 보면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곤 하는 Norfolk 맥아더 장군 메모리알이 30 분 거리에 있심다.
대서양과 맞다은 버지니아주 Hampton 에서 살지요.
ㅎㅎㅎ 너무 심하게 나의 제 2의 고향을 자랑했나 봅니다.
인선언니 !!!! 대박!!!! ?
언니 덕분에
이렇게 선배님들이 끊임없이 방문해주시니 이렇게 좋을수가 없네요 ~
순자언니
숙자언니
연숙언니
경배언니
춘자언니
호숙언니
그리고 순애언니 ~
YES !!!!
.
오늘은 기분이 엄청 좋습니다. 그리고 산뜻한 마음으로 일을 할것 갔습니다. 바람이 부네요. 운전 조심하시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선언니는 문만 열면 장사가 대박이네요.
그 이유는/
마담이 이쁘다.
마담이 순박하다.
음악이 좋다.
손님들과의 관계가 좋다.
써비스가 좋다.
간판(싸인판)이 좋다.
워낙 명성이 높다.
드나드는 손님의 질이 높다.
인선이 글 따라 와봤더니 아이고 여기는 별천지네.
근데 우리도 들어와도 될라나?
인선이야 무조건 믿지만 아니 뭐 드나드는 손님의 질이 ~~~~~~~~~~~~~~~~~하니까
좀 쫄리는 구석이 있어서리...
나 요즘 홈피 덕에 많이 망가졌거든요. ㅎㅎㅎㅎㅎㅎㅎ
지금 나가야 해서 나중에 다시 들어올께요.
기둘르서요.
그 허벅지 뚝 한 거 물리 치료 받으러 간다오.
인선아.
인일홈피를 나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드믈다는 표현이 맞겟지.
나야말로 이 억센 땅에서 시달리느라 많은 사랑이 필요하거든 .
외국도 아니면서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는 참 대책이 없더라.
혁명과 투쟁이 생활 속에 늘 존재하는 삶이 얼마나 고달프냐? ㅎㅎㅎㅎ
요새 내 편 많아서 점점 더 억세지고 있어.
모든 비 합리를 오로지 권위로 누르고 살아 온 우리 가장에게는 아주 힘겨운 세월이 됬고.
미국 이야기에서 가장 부러운 부분이지.
물리치료도 안아프고 가만 있어도 안아퍼.
고게 문젠가보더라구.
꾀가 나서 가기도 싫고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알 수도 없고.....................
여기 와 보니 대부분 아는 분들이군요.
허부영 후배만 정식으로 인사 한 적이 없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아주 친한 분들이에요.
다시 보니 인사안한 분이 7기의 김호숙 후배, 4기의 지연숙선배님도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워메~~
유명옥언니가지 등장하셨어라우~~~
대환영입니다.
허벅지가 뚝햇다는 표현 넘 웃겨서 한참 웃었어요.
명옥언니가 그런 말삼을 하시니 내래 덩말 둑갔습네다.
학교 복도에서 언제나 마루바닥만 보면서
걷던 넘넘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소녀이셨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것 같아요.
허벅지 뚝햇다니, 난 허리가 둑 했는데.....
어려서부터 대학 졸업하기 전 까지의 나만 아는 어느 분이
그렇게 억센 사람들만 사는 곳에서 어떻게 그리 잘 사는지 신기하다고! ㅎㅎㅎㅎㅎ
근데 춘자야.
내가 무지 부끄럼을 많이 타긴 했는데 집에서는 지금하고 똑같았어.
활동무대가 집안에서 집밖으로 좀 넓어진 거 뿐이야.
"허벅지 뚝"은 그 표현 외에 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
진짜루 뚝하고 뭐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구.
근육 파열이라니까!
허리는 아마 삐끗했겠지?
아 아는 사람 중에 최근에 진짜 허리 뼈 부러진 사람 있어.
본인은 약간 삐끗했다고 느꼈다는데 MRI 찍어보니까 허리뼈가 부러졌대요.
우리가 모든 기능이 약해져서 작은 사고에도 큰 병이 오는 경우가 많더라.
요즘 그래서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다우.
근데 니네 LA에 음악가들이 빵빵하네.
혜옥이에 경배언니에 춘자에~~~~~~~~~~~~~~~~~~~~~~~~~~~~~
11기 김경숙 후배랑 혜경언니까지 합세하면 작은 음악회 열어도 되겠다.
하루종일 이 방에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히루종일 음악이 흘러나오네요~~
지금 들리는 음악은 "토셀리의 세라나데"가 흘러나오는데
손님이 와서 잠간 갔다오겠습니다.
우리 남편은 나더러 개다리춤 너무 춰서 허리병 났다고해요.
하루종일 바닥에 주저앉아 CD를 둘둘 말아서 봉투에 넣고
손으로 일일이 주소 써서 100통정도를 혼자 했으니
안 그래도 허리가 좋지않은데다, 그리하야 허릿병이 ........
그래도 행복합니다.
오늘은 어느 멋있는 선배님게서 Godiva Chocolate를 보내주셧어요. (동문회를 위해 수고했다고..)
박스가 하두 커서 이게 뭔가했더니
스타이로 박스에 얼음까지 넣어서 쵸코렛을 보냈더라구요~~
인선언니!!
나 부럽지요??
정말로 오늘 디게 신나네요~~
명옥아
정말 보고싶다. 내년에는 한번 엘에이와서 드레스 한번 입어보는것이 어떨까
요즈음은 5회가 아주 막강해 졌거든.오늘 혜옥이가 배 한상자같고 와서 만났어. 처음 동창회에 나오라고 하니까 몇년 빼더니
요즈음은 친구들하고 노느라고 등한해 진것같애. 아무튼 빨리 힘줄나아서 내년에 한번 보도록 하자.
그리고 인선후배 순자언니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합해서 12년 선배님이란것이지요.
은파의 맬로디 정말 옛날 생각나게 하네요.
난 그 12년 선배란 말의 의미를 몰라서 한참 생각했어요.
그 초등학교에는 옥순언니도 다니고 재주꾼 미인들을 많이 배출했군요.
혜옥이는 수인이랑 여행도 가고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정말로 옛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친구지요.
혜옥이를 대학시절 죽 못만나다가
연주회 하면서 서로 만나고(정기 연주회는 프로그램이 각 대학으로 가쟎아요?)
마지막에 또 헤어진 게 아주 사소한 사건이었어요.
이대 입구 다방에서 만나기로 되었는데 마침 바로 그 시간에
윤경옥이가 반주랑 함께 렛슨 가야한다는 거네요.
다방 게시판에 쪽지 적어뒀지만 혜옥이나 저나 그런 거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혜옥이는 이대까지 왔다가 무척 섭섭한 마음으로 그냥 돌아가 버렸어요.
왜 그렇게 맹초같았는지..........................................
2007년 늦가을인가?
혜옥이가 친구들하고 부산에 나타났었어요.
그 후에도 인천에서 우연히 시간이 맞아서 만나고.
덕분에 홍예문 근처의 카페도 가보고 동인천도 가고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더라구요.
한번 인연은 영원한 인연인가봐요.
에그으으,,인선후배님,,
이제 동문회 열기가 좀 가시고 정신이 나시능갑따아..
야그가 저 방의 화려한 드레스에서 이 방의 미국이 조응것으로 돌아강걸 봉게에,,,하하하하하
우리 여기에 다들 적어보시지들 그러셔어들,,,
축복받은 이 땅의 야그들을,,,,
축복은 스스로 느끼는 자의 것잉건 우리 모두들 알고 있제에???
고생 무지 많았던것 진솔히 표현해 내시는 글 참 감동적이네요,,
어떤 글도 행동도 솔직한것보다 더 파우워훌한 것이 없다지요,,
내래에,,,지끔은 좀 즘잔도 빼야하고이,,,차차로 내가 동참할팅기 좋은 야그들 퍼뜩들 가지고 들어오시드라고요이,,,,
지금 자녀들 넷 다 훌륭히 키우시고 옛얘기 하실수 있는 인선후배님 내외분의 삶에
많은 주님의 은총이 함꼐 하시길,,,,,,,,,,,,,,,,,,,,,,,,,,,,,,,,,,,,,,,
저 지끔 마른 오징어 짤라서 할로피뇨 넣고 볶아 쫄여야하거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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