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근래 몸이 좀 좋지를 않다
엄마는 "늙는라고 아프지" 하지만 3개월을 내리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기침에 콧물에 두통에 몸살때문에
밤에 잘 때에도 목에 수건을 칭칭 감고 자는데도, 여전히 기가 꺽이지를 않는다.
왜 이럴까?
참다 참다 6월 20일 병원을 찾았다.
이것 저것 진찰 끝에 X-RAY를 찍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라는 말인가?
사진상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물체가 양쪽에 두개나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갸우뚱하며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오라 한다.
비교를 해 보니 전에도 희미하게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부분이 지금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결핵을 앓은 적도 없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물체일까?
일단은 C.T를 찍어야 정확히 알 수 있으니 걱정말라며 소견서를 써준다.
아침을 먹지 말고 가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병원문을 나서는데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힘이 들고 감기를 달고 살았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쫙 풀린다.
무작정 오는 버스를 잡아탔다.
푹푹 찌는 여름날의 오후
거리의 풍경이 정지된 듯, 나 혼자만이 무리에서 내팽겨쳐친 듯,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온다
어찌해야 되나?
아이들 혼인도 한명도 시키지도 못 했는데......
아버지는 파킨슨 병으로 오늘도 힘들어 하시는데..........
무엇보다도 그동안 어려운 길을 돌아돌아 힘들게 살아왔는데 또 다시 그 길을 가라하면 내가 과연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무섭다.
그리고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 내린다.
걸핏하면 "뭐,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습관처럼 내뱉었던 말들이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깨닫는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서운데 달관한 척 "뭐, 그까짓 것, 죽으면 되지"했으니.....
얼마나 경솔하고 한심한, 돼 먹지못 한 거짓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툭툭 내뱉었단 말인가?
교만한 내 자신이 하늘아래 부끄럽다.
길병원 응급실 바로 옆
인천 영상물 센터에서 C.T를 찍고, 또 2시간을 기다린다.
대합실에 앉아있는 저 많은 사람들이 현재 나 같은 심정으로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앉아 있겠지하니 기가 막힌다.
그런 와중에도 혼자 와서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뿐이니 그것도 서글프다
바로 엊그제 초등학교에서 "걷기대회"를 한다고 웃고 떠들었는데 불과 이틀 사이에 지옥을 헤메고 있으니
내가 지금 나쁜 꿈을 꾸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 때 누가 선배님 여기는 왠일이세요 라며 인사를 한다.
낯익은 10회 후배로 아는 분이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모시고 왔다고.
"어쩐 일이세요?"라는 질문에
"나 지금 너무 무서워"했더니 "별일 아닐 거예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제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7시가 되서야 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준다
판독은 처음 병원에 가면 알려 줄 것이란다.
병원을 다시 찾았다.
얌전한 학생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판독을 기다렸다.
선생님이 영상물 쎈타 원장님께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아무 일도 없이 깨끗합니다"하며 동전 크기의 물체는 신체의 일부분으로 99%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법인데
간혹 1%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수가 있다며 크게 웃는다.
자기도 의사 생활 20년동안 처음 보고 처음 듣고 알았다고......
이런 경우 판독을 잘못하면 혹인데 물혹인지 암인지 알기 위해 조직검사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무언가가 쑥 빠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 지옥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고맙습니다" 말이 진심으로 나오고
투병중인 우리 아버지도 매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그동안의 불효에 가슴이 미어진다.
누구나 다 한번은 가야 할 영원한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生老病死의 아픔을
혼자서 건너야 하는 인생을 과연 지혜롭게 받아들일 사람은 누가 있을까?
작년 봄에 건강검진받을 땐 이상이 없었는데
그 해 가을에 검진기회가 또 있어 받았더니 두어군에 이상증세가 있음을 발견해서 처리했죠.
나날이 달라지는 신체의 변화입니다.
몇년 전, 입원해서 천장 바라보고 눈을 껌벅거리며 나 죽으면~ 이후에 대한 소설 쓴적 있답니다.
근데 저 지금 잘 살고 있어요 ㅎ
심리적 안도감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산학 선배님이 아프셨군요~!!
뵌지도 오래 되었는데 안부도 못전해 죄송합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 너무 다행이네요^^*
기분 전환하시고 감기도 훌훌 날려 보내시길~~!!
소생의 기쁨, 크게크게 축하함~
그래, 산학인 복받은겨!
실제 암 선고받고 큰수술해야하는 경우도 많은데.......요거 기념으로 뭐 하나 결정하시오!
작은 시집 출간, 어때요. 좋~~~~~~습니다.
(살면서.... 이런일 안겪은 사람 있남?
최근엔 8김자미님도 겪었고.... 난 애기 둘 기저귀 찰 때, 넘 과로하는 살림에=장정7에 하루도시락6쌈
....몸이 이유도 없이 붓는데, 새끼 둘 놓고 죽는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감기를 달고 산다.... 할 때 소문내야해, 난 왜이러지? 그러면
여기저기서 답이 온다니까. 도움이 온다니까요; 사방 막혔어도... 도움이 하늘에서 온다 안합니까.
그런데 8김자미 님도 기적같은 경우라... 했는데 당신은 정말 독특하게 기적은 일이 일어 났구먼. 이제 잘 살펴서
건강 잘 챙겨야.... 출가도 시키고 할 일 다 해야~~ 서방님께 면목설거요.
"의사의 말 듣고 다시 검사하고 기다리고" 문장으로는 이리도 짧게 표현되는 그 시간이 산학에게는 얼마나 길고 힘들었을까. 아무일 없다는 검사 소견을 듣곤 마음 놓였다지만, 혼자서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가슴 조려야 했을 네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산학아! 건강해야 해.
영자야
바쁜 너를 이곳에서나마 만나니 얼마나 다행인지?
얼굴 본 지도 한참이네
이래서 못 보고, 저래서 못 보고.........
여름철이면 너 있는 곳은 매미소리 시끄럽고 산바람이 좋을텐데
지금에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어머나~ 산학이한테 그렇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소릴 듣는 순간
을메나 눈물이 났을꼬?????
하여간 추카추카!!!
우리의 삶이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해야만 하는가!!!
요즘 넘 힘든 후배들이 ㅁㅈ, ㅈㅁ.
밥 좀 많이 먹고
살 좀 찌우고
기운내자고~~~~~~~~~~
산학이
아이고 깜짝이야~
없는애 떨어질뻔 했잖아요?ㅎㅎ
어휴 ~
별일 없다니 다행이예요.
그런데 왜? WHY? 제목이 거짓말 인가요?
이제는
나으 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서순하 선배님
그동안 제가 "죽고싶다" "그래 죽으면 그만인데 ..."라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어요.
그래서 알았지요
"죽고싶다 "라는 표현이 "살고싶다"였음을요.
천재시인 김소월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겠습니다" 라는 반어법처럼 말입니다.
?많이 힘들었을텐데 답글이 늦었구나.
여하튼 좋은 결과이니 ?감사함과 함께 "?섭리?"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다음 싯귀가 떠올랐어.
내가 힘들때마다 떠올리곤 하는 시야.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나옹화상 시>
어쨋든 애많이 썼구나. 다 잊어버리고 예쁜 웃음 지어봐.
?사진 암만 올리려해도 안 되네.무지 예쁘게 나왔는데,,,
담에 더 노력해 볼께.?친구들과 함께 음악 들어보자꾸나야.
도대체 뭐가 미안한건데,,,ㅎㅎㅎㅎ
내가 깍쟁이었나? 말이 없고 음악많이 듣고 공부만했지. 미래가 불투명하니까.
홈피에서 처음 널 만나서 얼마나 나의 삶이 풍요러워진거 알지? 글로 정도 나누고
사진도 올리고 음악도 올려보고 또 그리운 선생님도 글로 뵙고,
나 진짜 컴맹이었어. 취미가 영판아니야. 근데 이젠 정도 드네.
남편 정기검진 결과때문에 마음을 너무 졸였나 봐.눈에 염증이 생기네.
산학아, 안과에 간다. 3일째야. 사진올리느라 무지 애썼는데,,,대신
음악으로 위로를 보낸다. 다행히 네가 건강을 잘 유지하는건
산행을 꾸준히 한 덕도 있는 것 같애. 좋은 일도 몰래 많이 하고,,,,
이젠 안울어도 되는거다. 그렇지? 에구, 가슴 떨려라.
?산학이~
오늘하루 아주 작정하고 댓글 좀 달려다가
그것도 여의치않아서리 이제서야 이곳도 들여다보고
제목이 ....뭔 일이 또 생겼나 해서리.....
그날 말로전해들었던 그이야기인데도....글로쓰니 한번 더 생각하게하네
친구책은 시간만 있다면 세권 다 순식간에 읽을 수 있을텐데
차분하게 앉아서 읽을 틈이 안생기네그려
실로 오랜만에 해본 외출에서 산학이가 사준 맛난 저녁먹고
돌아오는길...........아주 고마웠네.
솔직하게 전해주는 산학이 이야기도 좋고
산학인 산학일 좋아하지않는 친구도 그냥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
"사람이 그냥 주는거 없이 싫은사람도 있지않나요" 하던말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하고 돌아왔어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말이지..............
요즈음 우리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죽고 난뒤에 남은사람이 해줄일에대해
이야기를 하곤하지..........아주 소박하게 집에서 수목장으로 할까
등등등......
은희언니!
"요즈음 우리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죽고 난뒤에 남은사람이 해줄일에대해
이야기를 하곤하지..........아주 소박하게 집에서 수목장으로 할까
등등등......"
소박하게 집에서 수목장을 해요?
그게 성주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소박하다니요?
참 그럴 수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언니 마음은 이런 말장난이 아닌 거 아는데 분위기가 쳐지는 것 같아서 장난 좀 쳐봤어요.
저도 일년에 한번씩 연례검사라는 거 하는데
이번에는 초음파에 뭔가가 보인다고 해서 조직검사를 했다니까요.
괜찮지싶어도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선생님 말씀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지만 암튼 찜찜하기 짝이 없는 한주간이었답니다.
어제 결과보러 갔더니 역시 괜찮다고 하시네요.
산학이가 이 글 올렸을 때 딱 내 기분이 그랬었지요.
요즘은 둔해진 건지 뭘 걱정을 해도 스스로는 의식을 잘 못해요.
어제 밤 수요예배 반주하는데 피아노 건반이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지더라구요.
몹씨 피로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요.
아마 신경 쓰고 있다가 긴장이 풀어져서 그리됬나봐요.
산학아.
우리 축하해야 하는 거니?
명제도 같은 경험을 했다지?
나중에 셋이서 밥이라도 먹자.
명제에게는 받은 것도 많아서 밥한번 사줘야 하거든.
?명옥아~
오래간만이야
그러게 ......글이란 읽는사람이 이해하는데로 느낄수도 있다는걸
간과했네.
지적해 주어서 고마워
산이할아버지 이곳 고향에 내려와서 고민이 생겼거든
부모님 계신 선산이 도시계획에 들어가서
결국은 어느때인가 하필 아버님어머님 묘소쪽이 길로 책정되어
수년내에 이장해야 하는데 .....자기도 건강이 자신없고 그것이 항상 숙제이거든
돌아가셔서도 한곳에 편안하게 계시지 못할바엔
자기는 초장에 자식들 걱정끼치지말고 화장해서 자연으로 빨리 돌아가는게
좋을듯하다고....비석도 말고 그냥 자기가 기른 나무중에
재라도 묻어주면 제일 좋을거같다고 했지
요즈음 십년도전서부터 우리집에서 나온 이야기가 이젠 제법 공론화되더라구
그래서 장묘문화에 대한 TV프로를 며칠전에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이야기를 했고
그러면서도 산학이 글을 보고 우리가 쉽게 한 이런 이야기가
또 실제 당하면 그리 말대로 행해질수 있을가 해서리....
문득 써본글이야
은희 언니
나날이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교수님 곁에서 뒷바라지 하는 언니를 보면서
이조시대 여인들을 생각합니다.
요즈음 같은 현모양처가 실종된 세상에 남편을 어머니같은 마음으로 오래된 친구인 양, 곁에서 다독이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요?
무엇이든 받아주고
무엇이든 들어주는
어머니 같은 아내를 곁에 둔 교수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분이십니다.
산학아~
조선시대 여인네 같다고......ㅎㅎㅎㅎ
그냥 져주는게 이기는거다...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면서 살뿐이지
언감생심 현모양처꺼정은 못되지 싶네.
이제 슬슬 꾀도나고 그려....문득 도망가서 혼자 하고싶은짓 시컷하고
돌아다니다 올가하기도하고 그려
남아있는 자식들 힌들게 만들가싶어 참고있고 그러는중이지
이런글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는줄도 모를걸
그래서 부부지간은 아주 알 수 없는 사이이지 싶기도한데......ㅎㅎㅎㅎ
산학인 내 생각과 많이 비슷한점이 있어 반갑고 그러네
정직하게 산다는건 어려운일인데......... 노력하는삶이
되보려고 하는 자체로 충분하지않을가싶다.
?
"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은희 언니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알고 계시지요?
2만 5천년만에나 만나게 된다는 기가막힌 부부의 인연을
소중한 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비하하는 일들을 숱하게 보아 왔습니다.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내가 갖지 못 한 것의 대한 욕심에 눈이 먼 탓이겠지요.
33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탤런트 박용하
준수한 외모에 선한 인상
"겨울연가"때문에 많이 좋아했는데 안타까왔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너무도 많은 장점을 지녔는데도, 소중하고 감사한 줄 모르고 가버린 남자
왜 그 길을 택했을까?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내가 가진 것만으로 소중히 알고 감사히 살아야지 하지만 세상은 모를 일 투성입니다
그래도 오늘
저는 운수대통한 좋은 날이었습니다.
비가 온다고 좋아서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바로 집 앞에서 "자이안트" 촬영이 한창이라 체면이고 뭐고 빗속에서 한참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범수도 보고....
그런데 뜻밖의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이래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비 내리는 날엔 무언가 하늘에서 나에게도 선물을 주지 않을까 ?
어릴 적 저는 그런 꿈을 꾸며 컸답니다.
1) 관 속에서도 넘 이쁘더라고... 뉴스에서 전하던데.
2) 난 이번 사건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봐. 죽고 사는게 내 맘대로가 아니더라는 것.
'아무리 죽으려해도 도저히 죽지 못하여, 차라리 용기내어 살자' 결정한 사람들이 나중에 성공하고 회고하는 얘기, 가끔 듣지요.
박용하는 죽을 이유도 뚜렷이 없고 그저 요즘 상태가 여러모로 꼬인것 같은데.... 그리 쉽게/작난처럼 쉽게...... 죽었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뭔가가 있어, 우주에-
운명일수도/사주팔자 소관일수도-
통칭하여 신(우주에너지의 총화...라 표현하면 어떨까)의 섭리(뜻? ㅎㅎ)일수도....
?산학아~
지금 자정이 썩 지나고 새벽 두시가 가까워 오는데
뭔가 어제 오늘 같은 생각을 했나보네
박용하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데
언제인가 2기홈피에 가요도 올리고 했는데
어쩌다 박 용하에 노래 인 "처음 그날처럼"을 듣게 되었었지
특별한건 뭐 별로 없는데.....뭔가 그냥 자꾸 끌려서
그날 오랜동안 그노랠 되풀이 듣곤했었지
하도 되풀이해서 듣고하니까 딸아이가 질리는지
"엄마 질리지도 않우 꼭 고딩같구려" 하고 핀잔아닌 핀잔을 주고 웃었던 적이 있었어
참 그노래의 박 용하구나....하면서
지금 또 다시 그노랠 찾아 되풀이 들으면서 비오는 밖을 내다보고있네
딸아이 비오는데 차 끌고 나갔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 기다릴겸.....말이지
....올인 이라는 드라마 OST라는데 난 그 드라마도 보질 않았고...
젊은애들 내용 뻔한거일텐데...사춘기소녀처럼 그노래를 왜 되풀이해서 들었을가
다시 가사내용을 들으니 ..."언젠가 힘든 이길이 끝이 나는날 그대 곁에서 내가 눈감는날"
...참 ....그러네....에효....
아직 새파란 나이에 충동적으로 행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도했지만
나름대로 제가 가는길이 너무 무거웠지 싶기도하네.
그렇다고 그렇게 싹뚝 짤라 버리긴 너무 아까운 데 비도 많이 오는날
많은 일본펜들이 극성이지 싶기도하고 제 설음이지 싶기도하지만
어쨌든 비속에서 슬퍼하는모습들
며칠전서부터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인간의 마지막...
여하히 마무리가 될른지는 아무도 모를텐데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저냥 살게되는게 우리일상이니
다행이다 싶기도하면서도
이렇게 메스컴에서 보여주는
나이가 아까운 젊은이들 그리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공인들이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건 이젠 그만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야.
....이 블로그에 있는 노래 산학아 들어볼래......
http://blog.naver.com/oscalsea?Redirect=Log&logNo=110089060037
?서순하 후배 안녕하세요
같이사는 우리집 막내며느리도 그러네요...올인이
그 시절 인기 드라마였노라고
어느 생명이든 스스로 끊는 슬픈일은 없어야하는데
근래에 메스컴에 젊은이들이 잊어버릴만 하면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어 안타깝네요
오늘 동기친구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들의 대화중에도 박용하의 죽음이 잠시
화제가 되기도했지요.
자식둔 부모로 자식일은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큰소리칠 일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자손들이 그저 건강한 육신 보존하고 씩씩하게 살아주면 얼마나 좋을가...그것이 제일 큰 바램이 되가네요
외손녀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애틋해서 어째요.
우리집도
막내아들아이가 아기때 한달여 일찍태어나 몸무게 미달로 인큐베이터에 보름간 있었지요
2.5키로가 되는날 용단을 내려 집으로 데려왔는데
그러던 그 미숙아인 아들아이가
지금 제 둘째가 오늘내일 태어나길 초조하게 기다리는 두 아이의 애아범이 되었답니다.
외손녀도 인큐베이터안에서도 무럭무럭 잘 자라줄거라 믿어요.
그 귀중하고 소중한 생명.........외할머니 귀여움을 잔뜩 받을날이 와야지요.
은희언니
올인의 삽입곡 .... 제가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언니 말대로 블로그에 들어가 가사를 음미하며 다시 들으니 왠지 또 다른 전율에 소름이 끼칩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그 가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도 있지요?
그런데 언니처럼 갑자기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는데
다음날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과연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텔레파시가 그곳까지 전달 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기들은 세상을 보는 순간 다 알지만 말문을 여는 순간 다 잊어버린다고요.
그래서 인간이 아기처럼 순수하면 직감으로 세상을 아는 법이라고요
이런 의미로 보면
언니는 아기처럼 순수한 분이시네요.
사실을 안 순간 얼마나 놀랐을까요?
노랫말이 가슴을 후벼파네요
음악 감사합니다.
???박용하!!!
가슴이 왜 이리도 허전 할까?
평소에 펜이라고 자처하지도 않았었지만....
가끔 가끔 들렸던 자살 소식보다 더 여운이 길다.
그러고 보니 사춘기 소녀 때에 열광하던 모습은 아니었어도
내가 꽤나 박용하를 좋아 했었나보다.
일본에서 마지막 촬영한 화보의 스틸 컷을 보며
너무도 아까와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진다.
생각컨대 용하는 젊은애들 보다는 중년의 펜이
더 많았던 것같다.
너무도 선하고, 재주 많고, 잘 생기고....
은희야!!!
음악 잘들었다.
가려운데 긁어주듯 음악을 올려줘서 고맙다.
용하가 출연했던 영화라도 한편 보아야겠다.
내가 마지막 본 영화는 '작전'이었는데........
바쁘다 보니 이제 들어왔습니다.
산학언니, 그렇게 한번 크게 놀래고 나면
큰 면역체(?)가 생겨서
이젠 건강챙기시며 살게 되어
훨! 건강지키실 수 있을껍니다.
남의 일은 남의 일..
내자신이 실제 겪어보면 그만한 교육이 있을라구요!
늘~ 약해 보이시지만
누구보다도 강하시단 걸 압니다~! 아자아자~~
김영희님
여전히 바쁘고 건강하지요?
서예하느라, 사진찍으랴, 여행다니랴 정말은 아플 새도 없겠네요.
그래도 2년간 함께 했다고 남들에게 글 잘 쓰는 후배가 있다고 자랑하고 다닌답니다.
이름만 들어도 반갑네요.
늘 좋은 작품과 만나기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함정례 선배님
여전히 목회활동에 열심이신가요?
건강하시지요?
선배님두 우리 모두가 좋아하잖아요.
컴퓨터 교실에 처음 오셔서 열공하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외국인을 상대로 낯선 나라의 언어로 목회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신기해서 제가 자꾸 질문을 했지요.
알수록 대단한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나 보다는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은 더 건강하셔야 합니다.
물론 지켜주시는 분이 항상 곁에 함께 하겠지만요.
감사합니다.
산학 후배,
사람은 동서를 불문하고 같다는 생각을 갈수록 하게 되요.
선하게 살고 싶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리고 절대자에 귀의하려는 마음이랄까요?
물론 문화적인 차이는 있지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목회자로서의 부름에 발버둥 치고 굴복(?)한지 30년,
동서의 접목 (아무래도 제 뿌리는 동양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니까)을 통해
제가 섬기는 공동체가 조금은 지구 가족이 되는데 도움이 되라고 하시는거 같애서요.
항상 새롭지요.
물론 내 나라 말처럼 자연스럽지 않지요.
근데, 목회던 어떤 일이던 마음이 중요한 거 같애요.
우리 한인들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말은 못해도 성실해서 이거던요.
정말 부지런하셔요.
야채/과일가게 하시는 분들 보면 과일이 반짝반짝,
사가게끔 하고 파니까요.
오늘 새벽 제단 시간 후, 강변으로 나갔어요.
전봇대를 잘라 밖아논 마른 곳에서 잎사귀들이 나 있더라구요..'
물이 있어 가능했겠다 싶으면서도 생명의 엄숙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식물이건, 동물이건, 인간이건
생명이 있는 한 그 생명을 예뻐하며 살고 싶어요.
우리 산학 후배,
혼자 사는 거, 힘든 거
저도 같은 처지니까 십분 이해해요,
우리 힘내요.
??와아, 나같은 사람이 까꿍해도 될랴나 모르긋네,,,
우리 산학님의 글밑에 주렁주렁 열린글들,,,,,읽는데 한시간쯤 걸렸어요,
왜냐하믄 올리신 글들을 하나하나 정독을 해야 했거든요?
전부 제 마음에 와 닿는 잔솔한 말씀들,,,,
느낌?????=우리 홈피가 이루워 낸 제일 이상적인 분위기,,,
선후배님들 모두 들어오셔 진솔한 삶의 야그들을 내어놓으며
서로 들어주고 위로/격려해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예요,
산학님, 충분히 위로 받으셨으리라 믿어요,
항상 저 밑바닥에서 나오는듯 진솔한 산학님의 글을 읽고 너무 마음이 아려설라무네
글을 올릴까말까 망서리다가 예라, 뭘, 내가,,,,,
또 좀 다른분들이 쓰시도록 뒷전에 서보자 하다가,,,,,이렇게 들어왔읍니다,
너무들 좋은말씀을 골고루 다 해 드렸으니 새삼 다른 말은 필요조차 없겠지요,.
그런대로,,우리 2김은희선배님의 글쓰시는 모습,
또 현재의 삶의 어려우심을 마다않고 친밀히 진솔히
마음아픈 후배를 위로하기 위해 나줘주시는 따듯한 글들을 통해
홈피의 필요성---나의 아주 말년의 모습이,,,, 바로 이렇게,,,
약간 냄새가 날 말년의 나의 골방에서도 선후배의 간격없이
이리도 나눌수 있다는 막힘읎을 공간이,,,,,,,
얼마나 나의 늦삶을 퐁요롭게 해 줄까?를 생각하며,,,,
잠시 좀 점잖하여설라무네 홈피에서의 나의 망가진 이미지를 개선해보겠다고
마음을 움추려 나 자신을 3기방에서만,,,,이라고 생각했던 벽을 꺠고
이렇게 까ㅏㅏㅏㅏ꿍하기에 이르렀읍니다.
모두들 박용하 그 칭구가 왜? 왜?
요즘 잘 나간다는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목숨을 버릴까?
어떻게 병든 노인 아버지를 두고 그런 결단을?
수발드는 노인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어떻게??? 그렇게,,,?
최진실의 동생,,,,어떻게 떠난 누나로 마음아픈 어머니,
그 조카들을 키워내야할 어머니를 두고,
이미 엄마를 잃음으로 졸지에 의지를 읽은 조카들을 두고,,,
그렇게 할수가,,,,,??
그런 일들로 전국이 허망하고,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 같네요,
위의 2김은희선배님의 말씀....
이조시대의 여인이라고????나를????ㅎㅎㅎㅎㅎㅎ
그기 아니여어,,,,그저 마지못혓설라무네에,,,,
옆에 있는 사람들땀시 안 그럴수가 없잖나벼어??
그런 내속은 이리 저리 들끓고 있노라고 적당히 내 속의 추한면을
이 열린 공간에서 진솔히 내 놓을수 있는 그 모습,
제게는 오히려 진실하게 살아온 삶에 대해 연약하고 지쳐 피곤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당당하신 선배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이 우리 홈피에서 참으로 이루어져야 할 진정한 모습같아서,,,,이렇게,,,,
저의 답도 그러네요,
모두들 자신에게만 촟점을 맞추다보니
그 문제가 너무 커져서 자신도 감당을 못하고
자신만의 감정과 문제에 치어설라무네 결국은 그런일을 쉽게,,,?
본인이야 어디 쉬웠겠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나 우리전 세대들이 겪어온 어려운 환경속에서 견뎌온 삶들,,,
전쟁후의 악조건의 잔재가 남은 삶들이 오죽샜겠어요?
아무리 결혼생활/시집살이가 어려웠던들.
넌 출가외인이니 그집 귀신되라며 당장 아님 제우 하루밤 재워주고
들어단짝 쫒아보내시던 부모님들의 그 모진 사랑의 훈계가 없었던들,,,
부모/형제를 생각하니 가문이름 더럽힐수없어,
도망도 못가고, 차마죽지도 못하고(어쩌면 핑게?) 어찌어찌 살아온것이
그런대로 끝장을 보니 살만하게 풀린 우리 여인네들 삶들,,,,
뭐 다 그렁거 아니겠어요? 산다능기????
운전할떄 옆자리에서 자동차 코앞을 보고가면 삐뚤빼뚤,,,,지그재그,,,
앞을 쳐다보거나 책을 보면 차멀미하여,,,결국 토할수밖에 없듯,,,
그러니 저 멀리에 나의 시선을 두면 똑바로 갈수 있드시,
너무 온갖 섬김으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오늘의 젊은이들이기에,,,,
그런 엄청난 아픔을 남에게 준다는것을 생각할 연습이 안 되어 있는것같애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함정례후배님의 진솔한 목회현장에서의 글,,,
유명옥후배님의 항상 솔직/상큼할뿐아니라 긍적적인 말을 이끼지 안으시는 글,
지명제후배님의 글도 지난번에 읽고 위의 같은 마음으로 답글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서순하후배님의 항상 위트있고 솔직한 글,,,
최재화후배님(나를 설라무네선배님이라고 부르시는),
김영희후배님(오랫만이예요, 그리도 하시는 일이 많으싱감요?),
깁광숙후배님(어머님일 후, 지금쯤은 마음이 가라앉으셨는지??),
유순애후배님(요즘 총돋창회모금일로 애 쓰시네요,)
윤순영후배님들의 위로의 글 다 좋았읍니다,
에구, 이김에 우리 동문을 하나로 묶기위해 홈피창조하시느라 주야불철하신
김영주전위원장님, 전영희위원장님꼐도 잠간 감사묵도하고설라무네,,,,에,,,
자, 산학후배님, 이제 열심히 사실 이유도 찿으셨고
살맛도 나시겠지요???하하하하하하
우리 매순간 감사하며 기쁘게 사시자구요,,,,,
이것은 사실 좋기만한 환경이기에 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견딜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의 몸부림속에서 버둥거리다가 터득되는,,,,
절대자를 신뢰하는데서 오는 나의 의지가 선택하는거랍니다,
에구 신나뿌려어,,,,
사능기 다 그렁기야아,
잘난체 혀봤자 뭐 별거간디이??더 거기서 거기랑게에?
남의 떡이 결코 내떡보다 크지 않탕겨어,,,,,
시루떡, 팥떡, 호박꼬지떡, 수수찹살경단떡, 인절미, 절편, 갈래떡,쑥개피떡,,,혀 봤자
다 고것들이 갤국은 쌀로 만들고 약간 재주를 더 뿌링겨 아닝가벼어,,,,그치비이????
자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번 속터지게 맴껏 우서보자꾸래이이ㅣㅣㅣㅣ!!!
정순자 선배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건강하시지요?
선배님께서 주신 장문의 답글이 괜히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저처럼 긴 답글을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저는 행복한 여인입니다.
한명 한명 별을 헤듯 이름을 불러주시고 덕담을 주시니 새해 첫날 세뱃돈을 받아든 심정이 이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우리에게도 있었나?
이제는 문 밖이 저승이라
한번은 다 겪을 수 밖에 없는 일들 때문에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님 말씀처럼 웃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밤새도록 잠 안자고 걱정한다고 해결 될 일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누군가가 노래를 했지요.
"그냥 웃지요" 라고요.
선배님 감사드립니다,.
에그, 명옥후배,,,,내가 그런 실수를,,,,
근디말이여어, 윤순영선배님이야 섭하실리가 읎지,
졸지에 몇살 젊은 대우를,,,,,,,,,,,,,,하하하하하
근디 고롱거또 좀 지적을 햐 주시지이,,,,,
내가 말이여어, 김순호후배님과 최인옥후배님과 김영자후배님의
이름을 빼잡수셨어,,,,
내가 그래서 주로 이름을 적기를 삼가하능거는 꼭 이리 누궁가 빠지거들랑?
김순호/서순하를 구별하는데 한참 걸렸다우,,,
김영자/김영희,,,,,최재화/최인옥,,,,,실수하기 아주 십상이구마니,,,,,하하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사랑의 글들 참 좋았답니다,
,,,,,,,,,,언니, 가찹게 살면 좋겠읍니다.,,,,,,,,,,
음매애ㅐㅐㅐㅐ,,,,,핻복햐뿌려어이,,,, 이런 말도 듣고이,,,,
미국에 사시남요?
내 전화번호 (775)747-4432로 까꿍해 주시면,,,,,,
고기서부터 시작합시다이,,,,최재화후배님,,,,
눈이 빨리 회복되셔야할텐데,,,,,
한 7주라니 을매나 어려우셨을까요?
헤헤헤헤헤헤
이제 나이가 들통이 나 뿌렸네이요,
역시 나이는 못속인다고 그렇게 그래도 안 믿었드니마는,,,,,
교정담당? 쉿!!!그기 크게 알려짐시 서로할려할틴디이,,,,,
명옥이 언니
순자 언니
두 분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유쾌하게 웃음을 선사했는지 두 분은 모르실거예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대개는 동생이 일을 저지르고 다니면 언니가 쫓아다니며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법인데
언니 동생이 바뀐 것 아시지요.
옛날 제가 어릴 적 살던 송림동 샛골엔 공동우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 였지요.
딸 일곱이 줄줄이 오골오골 지냈습니다.
우리 둘째가 나가 놀고 싶은데 막내를 보라고 하니까 그냥 들쳐 업고 나가서는,
귀찮으니까 우물곁에 포대기채 내려 놓고는 신나게 놀고는 어두워지니까 애기는 생각도 못하고 집으로 온 것입니다.
우리 엄마 기겁을 해서 애기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제사 우물곁에 내려놓고 온 것을 기억하고는 그곳으로 뛰어갔지요. 엄마와 함께....
신기하게도 울지도 않고 물 길러 온 동네 아줌마들 곁에서 생글생글 웃고있던 우리 막내.
그 날 제 동생 엄마에게 죽도록 맞았지요.
언니들을 보니까
저의 어린 시절이 떠 오르네요.
와하하하하하하 눈물이 질금질금,
이거 우서야하나? 울어야하나아?
시상에 그런 좋은 시절도 있었네요오???
요즘같으면 애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데려다가 팔아먹든가? 나쁜짓을 하등가?
그걸보고 유괴라 하잖아요?
심지어 다 큰 사람도 여자건 남자건 몰래 잡아가는 현실이니,,,,
지금은 남자 노인이 이웃 어린아이 무릎에 앉고 있었다가는
당장에 성추행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기 십상이겠고-그 당시에는 '사랑'
낮선 사람과는 말도 않게 시키는 요즘의 메마를수밖에 없는 산교육의 현장,,,,
와아, 감사합니다, 그런 글을 진솔히 나눠주시니,,,,
그럼 우리 산학님은 7딸중 제일 큰 딸???음매네에,,,
그떄 제일 큰 따님은 뭐하셨당가???
지금 그 두쨰는 뭐하신당가??하하하하하
우리 명옥후배 읎음시 우리 3기방 큰일나죠,
누가 조용함시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다가 야단도 치고설라무네,,,,,
누구보다도 댓글을 먼저 달아주며 분위기를 업해주는 따듯함,,,,
그 당시의 한국의 삶을 진솔히 표현하시는 산학님의 글은
역시 살아있는 글, 숨을 쉬고 있는 글이랍니다,
가-------------암사합니다.
선배님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세대를 시집살이는 죽도록 하고, 받지는 못하는 서글픈 세대라고요.
옛날 이야기를 다시 하면
엄마가 아침이면 커다란 양푼에다 콩나물밥을 잔뜩해서는 숟가락만 꽂아 놓으면 우리는 후딱 먹고는 순서대로 엄마앞에 앉습니다.
엄마는 딸들의 머리를 곱게 빗기고
우리는 엄마가 싸 놓은 도시락을 하나씩 챙기고 학교를 갑니다.
물론 양말은 부지런한 아이가 제일 새것을 골라 신고, 게으른 아이는 해진 양말이래도 별 수가 없었지요.
맨날 티격태격 싸우며 크느라 서로가 지겨웠는지,같은 인천여중 인일을 내리 4명이 다니니 할수없이 우리는 협정을 맺습니다.
복도에서 만나도 아는 척 하지 말기로요.
집에서도 지겨운데 학교까지 와서 얼굴 보는 것이 괴로와서였을까?
담임 선생님이 가정조사서를 쓸 때에도 칸이 모자라 밑으로 3명은 그냥 생략하자 하셨습니다.
대개 맏이들이 그렇듯 저는 좀 모자란 문열이었고,. 동생들은 야무지고 씩씩했습니다.
엄마의 걱정인 나는 늘 엄마 치마폭에 싸여있는 동안 심부름이나 애기보기등은 다 동생들 몫이었습니다.
지금도 동생들 원성이 자자함은 말 할 것도 없지요.
그 때의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한살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부탁할 때에만 "언니"하지 평소엔 "너"라고 하는 동생도 있습니다.
한 방에서 오골오골 같이 생활하던 그 시절
전날 씹던 껌을 버리기 아까와 벽에 붙이고 잤는데 아침이 되니 깜쪽같이 사라져 싸움이 났던 일
그리고 그 일로 손을 들고 벌 서던 일들
경찰 공무원이라 자주 집을 비웠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너 지금 몇 학년이냐?"하셔셔 딸들의 원망을 받기도 했지요.
년년생에 다 고만고만하니 계산이 만만치를 않으셨겠지요.
우리 8형제의 애환이 녹아있는 송림동 72번지
일명 샛골엔
지금은 자식이 다 떠나고 늙으신 부모님만 50여년을 지키고 계십니다.
송림동 살았으면 송림국민하교 출신인가요?
우리도 송림동 256번지에 오래 살았다.
우리 형제들이 거기서 송림국민학교를 거쳐 인중 제고로 여중 인일여고로 다녔다.
좁은 집이라 식구가 늘 때마다 엄마가 요리조리 개조에 개조를 해서 .
1. 내 기억으로는 처음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를 창고로 만들고 장독대를 그 지붕위로 옮겼고
2.그 다음은 연탄 쌓는 작은 창고를 방으로 고쳐서 오빠 방으로
그 방 크기가 당구대보다 작았다
원래가 광이었으니까 앞 쪽에만 문이 있었는데
방으로 쓰려고 현관 들어오는 쪽으로 문을 내서 그냥 양쪽 문 열어놓으면 통로가 됬다.
한쪽 문에는 책상놓고 그 위에 선반 달았는데
화가 난 사람이 들어가서 울거나 씩씩 거리기에 아주 안성마춤이었다.
바닥이 따뜻하니까 대개는 그러다 잠이 들고....................
3. 집의 앞부분만 2층을 올렸는데 (일종의 원두막처럼 밑은 안방에서부터 좁은 마당이었다)
2층에 올라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서 등으로 문(뚜껑)을 밀어 올리고 들어갔다.
추워서 오빠가 3계절은 이곳에서 살고 한 겨울이면 광을 개조한 작은 방을 썼다.
아무리 떠들어도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를 안주니까 오빠 친구들의 아지트 역활도 톡톡히 했다.
4. 저녁이면 형제들이 이층 올라가는 계단에 쪼르르 앉아서 놀고 간식 먹고~~~~~~~~~~~~~~~~~~~
그 때 우린 무지 행복했다.
세상물정 모를 때라 아버지하고 엄마만 계시면 아무 걱정이 없는 줄 알았다.
우리 아버지는 드믈게 꼭 요즘 아빠들처럼 자상하시고 애들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해주시고 싶어 하셨으니까.
인천가면 한번씩 아버지하고 그 동네 가보곤 했는데 작년 봄에 아버지 입원하신 후에
뵈러 가는 길에 엄마랑 오빠랑 셋이서 또 가봤다.
그 아래 동네는 많이 변했는데 그집이 있는 곳은 아직까지는 변함이 없었다.
운 좋게 그 바로 앞집에 살던 여동생을 만났는데
우리가 살던 집은 송현 성결교회가 구입을 해서 지금은 비어있다고 한다.
그 오래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삶이 고달플텐데
그냥 교회에서 샀다고 하니 마음이 좋다.
산학이 덕에 나도 매일 주저리 주저리~~~~~~~~~~~~~~~~~~~ ㅎㅎㅎ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아!!!!
이건 완전히 하나의 아름다운 소설(아님 실화?)을 쓸수있는 야기꺼리예요,
요즘 칠칠이 넘치는 풍요에 젖어사는 아이들에게 들려줄수있는 아주 귀한 야그들,,,
거기에다가 너무도 진솔히 엮어내시는 그 글솜씨와 곁들여,,,
더 많이 생각해서 하나하나 써서 낭중에 묶어보세요,
'전쟁후의 그 가난하던 시절의 딸칠공주집 야그들-느그들은 아는가?'
라는 식의 제목으로,,,,,,하하하하하
쏀쎄이션을 일으키리라 믿어요,
내사 베스트쏄러의 구전은 어떤식으로 받을랑가?
많은 사람들이 옛날에 금송아지 맺노라고 하는 세상에
이리도 진솔히 옛날얘기를 엮어낼수 있음은 정말로 귀한 자질이시랍니다,
시상에 낭중에 부모님이 그 7공주들때문에 얼마나 효도를 받으셨을까?
요즈음 즈그들만 죽어라고 위하여 어려움이라고는 통 모르고 자란 아이들.
그러니 너무들 이기적이라 가슴알이하고 있는 부모님들,,,,
시상에 아직도 그곳에서 50년을 지키고 계시는 부모님들, 복되시어라,,,
금술이 아주 좋은 분들임에 틀림없어요.
하하하하하하 명옥후배님 글 넘 재밋어라,
세상에 고롷케도 자상하게 옛일을 그려내내요,
그 시절이 정말 행복힜어라,
엄마 아빠만 있으믄 다라고 생각했던 시절,
학교갔다와서 집에 엄마가 없으면 이웃집을 다 뒤지든 시절,
그놈의 냉장고가 생겨 훼스트훝이 생기며
아이들에게 엄마의 절대성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네요,
냉장고에 있는 스낵이 더 좋응게,,,,
그 많은 형제들 속에서 항상 벅저글하던 분위기,,
아,,,,,그리워라, 아, 재밋어라,
요즈음처럼 무더운 한여름이면
앞마당 평상위엔 시원한 돗자리가 깔리고
마당 한구석에 있는 화덕위에선 큰솥을 걸어두고 수제비를 해 먹기 일쑤였습니다.
해금된 바지락을 잔뜩 넣고 팔팔 끓이다가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서 넣은 후, 채썬 감자와 호박을 낳고, 한소큼 김을 낸 후
평상위에 솥채 갖다놓고 후후 불어가며 먹던 그 기가막힌 수제비의 맛.............
엄마는 간식대신 호박을 송송 채썰어 부침개를 하느라 집안은 온통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지요.
기름이 남으면 감자도 얇게 썰어 부쳐내고
그렇게 저녁은 해가 지기 전에 빨리 먹었습니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였지요.
저녁 후
하늘에 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면
마당엔 쑥이 피워지고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지 늦도록 노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루의 피로를 수돗가에서 엄마가 밀어주는 등목으로 풉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그 차갑고 오싹했던 물의 감촉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선배님들
지금 그 많던 수많은 별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없을까요?
비록 없이 힘들게 살았어도 수제비 한그릇에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와아ㅏ 와아하 엉엉엉 행복했던 시절,,,,
?끈끈한 사랑이 넘치던 시절,,,
친척 누구가 오시믄, 오빠 언니 칭구들이 오면
쌀 걱정/반찬걱정할 엄마사정은 아랑곳 모르고
대롱대롱 목에 매달려 오래오래 있다가라고
저녁먹고 자고까지 가라고 사정사정하던 철부지,,,
그런 내가 구엽다고, 사람 딸른다고 예뻐하시던 분들,,,,
?와아ㅏ 와아하 엉엉엉 행복했던 시절,,,,
저도 그랬어요.
사촌 언니들 오면 난 처음부터 오래 있으라고 조르느라 잘 놀지도 못했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좁은 집에서 항상 종종 걸음이시던 울엄마는 내가 미웠지 싶은데
전혀 그런 내색 안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워낙 떠들썩한 걸 좋아하셔서 우리집은 항상 시끌벅적이었지요.
그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다 해주시려고 하셔서 우리집 아이들은 좀 나약한 부분도 있었어요.
"불굴의 투지" 같은 건 없었는데 암튼 내가 힘들어하면 우리부모님 속상하시겠다 정도로 버티곤 했지요.
이혼하면 동생들 결혼에 지장 줄 것 같고. ㅎㅎㅎㅎ
진짜 고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사는 게 힘들었어요. ㅎㅎㅎㅎ
그러다보니 요즘은 '씩씩한 명옥 언니' 소리도 듣게 됬네요.
말년에 아버지는 집이 조용한게 제일 힘드셨나봐요.
오빠가 아침저녁 드나드는 복을 누리셨는데..................................
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거든요.
교회묘지가 되서 자주 가뵐 수가 있대요.
교회에서 장례식 있을 때마다 오빠 언니가 열심히 따라가시더라구요.
물론 일이기도 하지만 간 김에 아버지 뵙고 온다구요.
산소에 가도 이웃들이 다 아는분들이고 참 좋아요.
아이구 옛날 이야기 하니까 끝이 없어요.
명옥 언니네도
아버님이 사람을 좋아하셔서 집안이 시끌시끌 했네요.
방금 전, EBS 명화극장에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라는 오말 샤리프 주연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한 한 가족의 가슴뭉쿨한 이야기입니다.
자식 하나를 키우기 위해 희생하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프랑스의 감독 앙리의 자전적 이야기로
다음 주 일요일엔 2부가 방송될 예정입니다.
세상살이가 다 같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네요.
우리는 받기만 했을 뿐, 무엇을 해 드린 것이 있을까요?
다 저 잘나서 컸을 뿐이라고 하지는 않았을까요?
정순자 선배님
늘 격려를 주시고 "잘했다" 칭찬을 넘치게 주시니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선배님때문에 기가 팍팍 살아나기도 했고요
언젠가는 꼭 갚을 날도 있겠지요?
감사드립니다.
우리산학님, 감사로 끝나믄 안되지비이,,,,,
빨리 넘어가기전에 100고지 혀야지이,,,,
명옥후배, 들으셨남????
이그으, 그당시 다 부잣집에서 자라지는 앉았어도 다들 공주급으로는 컷잖나베에?
시집가도록 손수건하나 안 빨아보고,
내 멘스걸레하나 안 빨아보고 자란 철부지,,,,
남편은 미국으로 떠나고 애기가 애기를 낳는데
제새끼 기저귀 한번 안 빨은 막내애기 철부지,,,
지금 생각하믄 을매나 철이 없었든지,,,,하하하ㅏ하하
결혼해가지고 천리만리 떨어져서
내손으로 밥을 할수 있을때 엄마에게 밥상한번 내손으로 차려드릴수 없다는거시
을매나 서럽든지 설겆이하며 울고,
제발 좀 울지말라고 하믄 샤워하며 울고 했다오,,,'
그 눈물 지금 다 위디 갔남?????
세상에 여기 뒤늧게 들어오니 이리도 재믿는 글들들 올려 주셨네요.
산학후배의 글이라면 이렇게 댓글이 흘러 넘치는군요.
명옥후배 산학후배 그리고 순자의 글을 읽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남니다.
모두들 형재분들이 많이 계시는군요. 6.25로 졸지에 무남 독녀가 된 나는
형제많은 동문들이 넘 부럽습니다.
산학후배의 글, 학교서는 서로 아느척 하지 말자고 정말 재믿는 예기군요.
딸많은 부모님은 지금쯤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최재화후배님, 시상에,,,
20살이 된 딸을 업을수 있는 어머님은 결코
우람하게 벌어진 장사가 아니였을것입니다,
연약하디 연약한 하나의 아낙이,,,,그 아픈딸을 살리기 위햐여 낸
죽기아님 살기의 오기의 힘,,,
그것이 바로 어머님의 힘이지요,
그렇지 않고서 그 당시 좀 유복하다했자 거기서 거기인
삶속에서 그 많은 자녀들을 어찌 다 교육을 시켯을가요?
오직 내핍, 오직 인내,,,,오직 사랑이라는 오기로 버틴 우리 어머니들이 있어,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자식들은 지식인이 되고, 개인주의에 물들고, 너무 잘나서
설자리가 없 부모님들이 많게 된 세상이 되고 말았지요?
후배님, 다음엔 꼭 어머님 업어 드리세요,,,,하하하하하
?에고오, 니 왜 그러냐?
허, 니 그말 안즉도 기억하고 있냐아?
?하시며 감격해 하실 어머니,,,
꼭 사진하나 박아서 여기에 올리세요, 잉?
우와~~~~ 숙자언니도 오시고.
페이지가 넘어갔는데도 이 방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네요.
하나만 더 쓰면 100개군요.
사실 창작이야 어렵지만 지나간 이야기 수다 떠는거야 쉽지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으니 서로 공감하고~~~~~~~~~~~~~~~~ 그 공감이라는 게 너무 귀하고 좋아요.
??백고지추카 백고지추카백고지추카백고지추카추카
명옥후배,,,,애 또 나 을려어어ㅓㅓㅓㅓㅓㅓ????
,,,,,,같은 시대를 살아왔으니 서로 공감하고~~~~~~~~~~~~~~~~ 그 공감이라는 게 너무 귀하고 좋아요,,,,,,
바로 그기 우리 홈피의 분위기를 말해주능거 아닝가베에?
서로 떄뭍은 야그를 좀 이왕이믄 넉넉히 너수레이 서로 나누기,,,,
잔치끝나고 가는 손님 싫다능거 억지로 붙들어
떡한덩이라도 싸다가 그집 못 온 식구 멕이라고 싸 보내는 인심처럼,,,,,
,,,,,,,사실 창작이야 어렵지만 지나간 이야기 수다 떠는거야 쉽지요,,,,,,,헤헤헤헤헤헤헤헤
하나도 안 틀리고 맞는 말쌈,,,,,유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100고지 추카ㅏㅏㅏㅏㅏㅏㅏㅏ
??백고지추카 백고지추카백고지추카백고지추카추카
자! 우리 산학님 이만쯤하믄시 살맛나죠?하하하하
우리 나이에 산학이 같은 경험 한두번 안해 본 사람 있을까?
건강 검진 센터에서 이것 저것 검사하니 모든 장기가 일단은 유소견으로 나오더라구.ㅎㅎ
대부분은 "약간의 이상이 있으나 나이에 따른 노화로 보임" 정도 인데
한가지 쯤은 혹이 있는데 알아봐야 한다며 조직 검사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엄마들은 산학이하고 똑 같이
아직 장가 안보낸 놈은 어쩌나?
둘째 낳으러 오는 새애기는 어쩌나?(물론 친정도 있지만)
친정엄마에게는 뭐라고 하나? 등등 자기가 아닌 남 생각부터 하게 되더라.
착한건지 바보같은건지.................................................
한번 지나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자주 겪게 되는 그런 일!
여기서라도 토로하고 불안을 나누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