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여기는 주제가 있는 놀이터 제 3관의 2실,
감명 깊었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방입니다.
앞에 열었던 방이 뒤로 넘어가게 되어 이렇게 다시 열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를 소개해 주어도 좋고
옛날 옛적에 교복 입고 몰래 갔다가 단속(?)에 걸려서 치도곤을 당했던 추억의 영화도 좋고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하며 보았던 바로 그 영화를 회상해 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재미 있는 영화의 줄거리를 조곤조곤 들려주어도 좋지요.
이 방에서는 가급적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매개로 하여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많은 것들을 풀어내 공유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우리의 훌륭한 지적, 감성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모든 불들께 이 방을 공개하오니
굳이 봄날 회원 운운하지 마시고
누구든지 마음에 감동이 있으시거든 편안하게 들러 이야기 하시기 바랍니다.
( 이 방에서 이야기한 영화 목록)
1, 아빠의 화장실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정확히 짚은 것 같은데........................................................
옛날에 본 철도원이 떠오르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어느나라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요즘 옥규가 자주 보여 반갑고 안심이다.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도 아닌 나인데 안보이면 걱정스럽더라구. ㅎㅎㅎㅎ
옥규야~
음~ 이 영화 내용을 읽으니 너무 가슴 아프다.
안보는게 날것 같으네.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난 요즘 고전 명화 보고 있다.
"닥터 지바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진주만"
"벤허"
"에덴의 동쪽"
오늘은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의 상큼한 매력에 빠져버렸다.
혜경이 언니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사진을 뵈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안타깝기 그지 없을 가족들의 마음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나는 요새 테레비에서 영화 <미인도>를 다시 봤어요.
화면 가득히 살아 움직이는 신윤복의 풍속화들이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영화관에서 볼 때도 앞 부분에 나오던 그 카메라 앵글이 너무 생생하게 좋아서 또 보고 싶었거든요.
신윤복을 남장 여인이라 가정해 놓고
그 이야기를 영화로도 만들고 드라마로도 만들었는데
두 편 모두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했지요.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면 역사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참으로 대단해요.
.
바더 마인호프
감독 : 울리 에델
이 영화는 독일에서 60년대 말을 거쳐 70년대에 적군파(RAF)라 불리운 그들의 행로에 대한 기록이자 드라마다.
다큐멘터리적인 부분도 많이 삽입됐고 재연 장면을 드라마적으로 아주 담담하게 표현한 영화이다.
150분이나 되는 긴 영화이고, 또 나는 독일의 적군파라든가 6,70년대의 세계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고 굉장히 집중해서 흥미롭고 가슴 아프게 보았다.
소박하고 사실적인, 내가 볼 때 아주 균형을 맞추어 객관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 생각되었다.
어느 쪽에 대한 지나친 찬사나 비방도 없이,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무모하면 무모한 대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만들어 보여 주었다.
마치 눈물이 흐르면 흘려라, 욕하고 싶으면 해라,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해 봐.
근데 넌 뭐 했는데? 아님 하고는 있니?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기성세대나 제도권의 관료, 은행가, 정치인들을 개, 돼지라 부르며 이 모임의 계획과 방향을 추진해 나간 안드레아스 바더(모리츠 블라입트로이)라는 남자와, 글로 이들의 생각을 끊임없이 대변하던 울리케 마인호프(마티나 게덱)라는 순수한 지식인 여자가 상징하는 의미를 합해 이 조직을 독일에서는 바더 마인호프라고 한다고 한다.
바더는 급진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매우 전형적인 남자의 속성을 지닌(성의 해방을 늘 외치면서도, 하지만 애인 앞에서는 온순한) 단호하면서도 과격하고 다소 무모한 성격의 사람이고, 마인호프는 단정하고 객관적이며 순수한 지식인 기자이다.
매우 다르지만 근본적 목적에서 그들은 마음을 함께 한다.
시대가 그러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헤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은 마인호프도 고통 속에서도 결정적 순간에 이들과 함께 한다.
그들의 순수한 저항에 지나친 국가권력의 ㅂ인간적 태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백화점에 불을 낸 사건을 두고 마인호프와 바더의 애인이자 평생 동지인 구드룬 엔슬린(요한나 보칼렉)이 대화를 한다.
-이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는 건 실수였어. 하지만 히틀러 때 파시즘 퍼지듯 구경만 할 순 없잖아. 저항할 만큼 해 봐야 후세대에 떳떳하지.-
그들의 이런 저항은 결말이 눈에 보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실패했느냐 성공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분노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그들의 근본적 의지에 우리는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70년대를 이어 8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암묵적으로 억눌려 있던 폭발적이지만 무력한 분노가 저절로 연상되었다.
평생을 기도와 봉사로 일생을 보내신 어느 온화한 부인이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 전xx을 죽이고 싶어- 하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도 함께 느껴지던 무력감을 분명히 기억한다.
<색계>라는 영화를 볼 때, 그 대학생들이 시대의 악을 징벌하기 위해 목숨과 젊음을 걸고 벌이는 혁명의 내용과 형식이 너무나 초라해 안쓰러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느껴져 착잡했던 것처럼, 요란한 테러와 방화, 탈취와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어설프고 추운, 결국은 젊은 날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들은 개인의 안위를 이미 벗어났고,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의 진정하고 진실한 평화와 정의를 꿈꾸었다. 민중을 위해 저항해야 하는 대상에 저항했다.
하지만 세상이 모순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이미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혹자는 말한다.
그들은 왜 그리 유연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유연할 수가 있나?
유연하다는 게 뭘까?
실패를 확신하면서도 불나방처럼 인생을 바치는 그들의 실패는 진정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준비 부족과 이념의 과잉으로 거칠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음에도 젊은이다운 그들의 순도 높은 공존의식과 평등정신, 그리고 그것을 행동화하며 모든 기득권을 버린 일에 대하여 여러 모순이 있음에도 나는 쉽게 비판적인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내 안으로만 향해 있던, 그래서 중간이 뻥 뚫린 것 같은 나의 젊음에 대한 부채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사일런트 웨딩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소련의 지배를 받는 루마니아.
한 젊은이 커플이 결혼을 하게 됐는데 마침 스탈린이 죽는다.
이로 인해 전국에 웃음과 음악과 소리가 금지된다.
준비한 음식은 썩을 것이며, 먼 곳에서 온 손님도 가야 한다.
어떻게 할까?
이들의 저항은 소리 없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
소리 없이 노래하고 소리 없이 춤추고 소리 내지 않고 먹는 것.
이런 일은 불가능하고 결국 에라 모르겠다 이들은 즐겁게 춤추고 노래한다.
어떻게 됐을까?
모두 죽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럴까?
비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은 아닐까?
온순한(?) 나라에서 온순한(?) 국민으로 살아온 나 같은 얼충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타인의 삶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마티나 게덱의 기막힌 연기를 보는 것도 좋고(눈으로 그렇게 많은 것을 표현하다니....), 독일 연방수사국 국장 호르스트 헤롤드로 분한 브루노 간츠의 진중한 생각이나 행동도 유심히 볼만하며,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흐르던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도 좋았지만, 바더의 애인으로 나온(실제 인물과 매우 닮았다는) 조한나 워카렉의 일관된 모습과 냉정을 잃지 않는 태도는 나에게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네 시각으로 영화를 보니 더 좋다.
네 이야기에다 내 상상을 보태는 것도 즐겁구나.
요즘 나는 너무 슬프거나 심각한 것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해야 하는 것도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고.
그냥 너무 생각을 많이 하거나 스트레스 받는게 싫어서 그래.
이 또한 노화 과정의 한 증거일까?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가 연중행사가 되었습니다. 사는 곳에 영화관도 없지만 영화 보기가 그렇더라구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이번 여름 휴가 때에 지리산 내려왔던 아들 내외와 "해운대"를 보았더랬습니다.
TV에서만 영화를 보다가 대형화면에서 흐르는 장면들이 보기에 참 좋았었습니다. 내용은 둘째로 치고...
오늘 방콕하면서 TV OCN에서 방영하는 "골든 에이지"를 보았습니다.
우연히 텔레비젼을 켰는데 첫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아지 사료를 사러 가야함에도 그대로 주저 앉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청할 때 광고가 하도 많기에 첫장면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지요.
몇 장면 흘러가는데 보기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영화배우 이름도 감독 이름도 모릅니다. 내용도 사전에 몰랐고요.
"골든에이지"는 당시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스페인왕 펠리펠레2세 (구교도)와
유일하게 스페인에 대항하고 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시교도)이 칼레해전을 앞에 두고 겪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불안감 과 왕으로서의 책임 등등을 다룬 영화로서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자가 아닌 전사이자 왕으로서의 임무를 택하게 됩니다.
1500년대 더더구나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삶을 단편적이지만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왕궁 내에서 펼쳐지는 행사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왕궁에 있는 듯한 대리만족을 주더군요.
또한 전쟁을 일으키는 목적이 침략이지만
구교도인 펠리페2세의 독백을 통해 '나는 빛이고 영국 여왕은 어둠'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신교도인 여왕을 신의 이름으로
심판한다는 설정이 전편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목사이다 보니 교회사를 볼 때 신구교의 갈등이 교황과 왕들의 대립이였던 점에 비하면
이 영화는 왕들의 대립이고 그들의 믿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무엇인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펠리페2세는 '무적함대가 전멸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눈물흘리며 아멘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기의 시종인 베스(나중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이 사랑했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나은 아이를 안고 축복해주면서
'난 처녀 여왕이라 불린다. 혼인하지 않았고 남편도 없었다.
신은 이런 나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고 고백하더군요.
인간의 욕심으로 신의 이름을 빌어와 전쟁을 일으키지만 주님은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원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할까 봅니다.
칼레해전은 스페인 해전사상 가장 완벽하고 치욕적인 패배였다네요.
펠리페2세는 이 전쟁 후 재산 탕진으로 10년후에 몰락의 길을 걸었답니다. 2시간 동안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할까 봅니다.
영화를 보면서 깊은 묵상을 하셨네요.
저도 이 영화를 꼭 한번 챙겨서 보고 싶어집니다,
저도 화면 보았어요.
감동적이네요.
삶의 동력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로는 고난이 삶을 움직이는 큰 힘이 되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많으니까요.
어머~ 옥규야~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잘 됬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렇게 슬픈 영화니?
어머 울고 싶을때 그거 보면 너무 좋겠다.
나도 꼭 보고 펑펑 울어버려야겠네.
슬퍼서 울었다기 보다는 울고 싶었는데 마침 울게 해주는 게 있어서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얼마나 꺼이꺼이 울었는지(아무도 없는 우리 집이었기에 망정이지) 마치 썰물이 빠진 것 같네.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했고 아파 봤고 무력했고 그래서 안을 수 있고........
그런 마음들이 가끔 미치게 울게 하는 것 같아요.
내용은 완전 만화인데 마치 내 옆에 있는 아이들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다가왔어요.
특유의 엉성한 유머 이런 것도 아무 반감이 들지 않고 짠하기만 하더라구요.
영화 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나 이거 보면서 울고 있다 그랬더니
아들 둘이랑 봤는데 큰애가 어느 장면에서 울었는지 알아? 그래서
뻔하지. 인터뷰 할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니깐 아버지라는 장면이지? 했더니
응 흑흑흑.....
애고 불쌍한 자식........
하면서 낄낄거리며 같이 울었어요.
아들이 영 양에 안 차서 싸늘한 눈빛을 보내던 아버지, 아버지의 유능함에 미치지 못해 늘 전전긍긍했던 그 집.
이제는 굉장히 관계가 완화되어 아주 좋다는데, 그 장면에서 울더라는 말을 들으니 또 마음이 아파서.
영화 이티를 보면서 크게 운 장면이 있다.
도망가던 자전거가 하늘로 나는 장면.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뭐랄까, 갑자기 뭐가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 둘? 셋? 그런 장면에서 울기에는 좀 오래된 나이가 아닐까?
울면서도 참 이상했다.
나중에 융의 책을 보다가 이거였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는데.
융의 이론에 의하면 오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축적된 인간의 공통된 경험이 있단다.
함께 바랬던 것, 함께 두려워했던 것........ 이런 경험과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우리 현대인에게도 남아 있어서
그런 상황이 연출될 때 사람은 감동을 느끼고 흥분하고 그런단다.
높은 곳으로 날고 싶은 욕구는 오래 축적된 욕구였으리라.
내 안에도 그런 원시의 감정이 있고 그 유전자가 나를 울게 했던 것인지 모른다.
실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난다든가, 높다든가, 떨어진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 큰 무서움을 갖고 있는 나인데도
이런 영화를 보면서 무대책으로 우는 것을 보면
도대체 나의 의지라는 것은 있는 것인가? 어디까지 매어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
옥규야~
3일 동안에 영화 4편을 봤다.
요즘 하나로 통신 쎗톱박스로 보면 한달에 9000 원만 더 내면 극장상영 끝난지 얼마 안된 영화 맘껏 볼 수 있어.
물론 대형 화면으로 보는 것 보다는 못하겠지만 바쁠땐 이 방법도 괘안은것 같아.
"해운대" " 국가 대표" "박쥐" "블랙"을 봤어.
국가대표에서 제일 슬픈 장면이 니 말대로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니까 "아버지" 라는 장면이었어.
자식이 아무리 성에 안차고 미워도 그 근원은 바로 사랑이기에 아들은 그걸 알고 있는거지.
이 부분은 나 처럼 맘에 안드는 아들을 두고 있는 사람은 더 가슴 아프게 와 닿을거 같아.
근데 나 너처럼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았다.
눈물 몇방울에 순간 가슴이 아리었을 뿐~
옛날 보다 맘이 많이 건조해진걸까?
지쳐서 포기한 때문일까?
눈밭을 헤치고 시원하게 하늘을 나는 몇 장면만 봐도 본전 건진 기분 ㅎㅎㅎ
"해운대" 랑 "블랙" 다 재미있고 또는 감동적이었은데 "박쥐" 왜 그러니?
나 이제부터 아무리 국제 영화제에서 무슨 심사위원 상을 받았다 해도 박찬욱 감독 작품은 안볼란다.
아무리 영상 미학이 탁월하다느니 천재 감독이라느니 해싸도 영~ 내 취향 아니다.
어찌 그리 잔인한고~ 속까지 느글 거린다.
물론 뱀파이어는 사랑과 욕망의 속성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영화적 장치 일 수도 있지만 신부님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것도 싫고
피범벅이 된 장면도 싫다.
"친절한 금자씨"도 속이 느글거리더구만 이 영화도 역시 ~
이젠 인간의 본성을 너무 잔인하게 파헤친 영화보다는 가슴을 적셔서 따듯한 눈물 한방울 또르르 굴러 내리게 하는 그런 영화가 더 좋다.
며칠전 본 이란 영화라는 "천국의 아이들" 의 그 귀여운 꼬맹이들~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였어.
인간은 실로 위대하다.
음악으로 영화로 미술로 이렇게 감동을 주고 위안을 주고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하다니~
그 중에서도 영화는 종합예술이기에 난 영화를 더욱 사랑한다.
바더마인호프 진작에 준비해 놓고 보기가 두려웠어요.
그런데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80년대에 '계란으로 바위치기'같다는 생각을 하며
좌절감에 몸을 떨던 때도 생각나고
멍하니 살아온 시간들도 생각나고...
선천적으로 두려움이 많은 난(한의사 말로는 심장이 약해서 남들보다 두려움이 크다나요)
뭐하나 실행을 하려면 지독히도 떨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 수는 없어 하는 마음이 컸었던 젊은 날!도 생각나고
울면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남은 날들의 시간들이 귀하게 생각되고
안간의 고귀함도, 우리 꼬맹이들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하게 해요.
옥규야 고마워!
'솔로이스트' 보면 너 이 곳에 안쓰곤 못 베길걸.
다음탄을 기대합니다!
전에 본 '세비지 그레이스' 라는 영화가 요즘 자꾸 떠오릅니다.
'버더마인 호프'를 보면서 우리의 치열했던 80년대를 생각했지만
또 한가지 그 당시 힘든 것은 우리나라 만 유독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영화를 보니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전세계적으로 참 힘든 시기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
'세비지 그레이스' 나 '솔로이스트' 를 보면
또 이시대를 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은 왜 사나? 행복이란 뭘까? 시대정신이란 뭘까?....
서로 사랑하며 살면 되잖아?
그렇지만 그렇게 얘기하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더 절박한 사람들에겐 허황한 소리로 들릴 것 같고...
관계의 재구성 이란 책에서 얘기하듯
내가 먼저 느끼고, 미안해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느껴 보려고 노력할 때
정서의 튜닝이 이루어지고 세상에 대한 신뢰도 만들어진다는 말을 맏어봐?
머릿 속은 맴맴 어지럽지만
이방 덕분에 이런 생각들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에 흐믓해지는 저녁입니다.
좋은 꿈들 꾸세요!
Rosso Come Il Cielo(Red like the sky)
한국에서는 <천국의 속삭임>이라고 영화 제목을 붙였네.
주인공인 미르코는 이탈리아 작은 시골에 사는 강인하고 맑은 사내아이.
드넓은 하늘과 들판과 언덕, 나무와 풀, 바위가 알맞고 평화롭게 펼쳐지고 그 사이를 누비는 아이들.
너른 들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꼭 아이들만큼 노는 아이들.
영화관에 늘 같이 가는 다정한 아버지.
미르코는 또 기계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과 노는 도중 잠시 집에 들렀다가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호기심이 발동해 아버지가 숨겨 둔 엽총을 꺼내게 되고 의자가 끄덕대는 바람에 자빠지며 오발사고를 내고 만다.
그 사고로 미르코는 실명을 하게 되고 의사의 권유로 기숙학교인 맹아학교에 가게 된다.
맹학교 기숙사 창으로 뿌옇게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 그나마 사라지는 실루엣.
미르코는 징징대고 울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는다.
중도장애자들이 그렇듯 미르코는 자기는 본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다시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점자를 배우려고도 안 하고 수업에 집중도 안 한다.
줄리오 선생님은 그에게 말한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지? 왜 그럴까? 더 깊이 들리기 때문이야. 소리에 집중할 수 있고 오감이 더 예민해지기 때문이야. 넌 이런 훌륭한 오감이 있는데 왜 보이는 것만 생각해?-
미르코는 기숙사 청소 관리자의 딸 프란체스카를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된다.
그 여자아이는 맹인 아이들과 놀아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엄명에 집안에만 갇혀 있다가 자유롭고 용감한 미르코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미르코는 우연히 발견한 녹음기에 이런 저런 소리를 녹음하게 된다.
바람이 부는 소리, 비가 오는 소리,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 걸음 소리......이런 것들을 녹음해 여름이 오는 소리, 겨울이 오는 소리 이렇게 제목을 붙인다.
계속해서 이런 저런 물건들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고 녹음으로 하고, 프란체스카의 목소리로 내용을 담는다.
혼자 하던 작업이 친구들과 이어지고 더 많은 친구들과 이어지며 그 작품의 내용은 더 깊어지고 음향적 넓이는 더 발전해간다.
중도 맹인인 그 학교 교장은 이 아이들은 나와 같다, 따라서 내가 제일 잘 안다, 공연한 희망을 주어서 상처를 줄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에 이들의 직업을 두 가지로 한정하지.
직조공과 전화교환원.
발전이 없는 대신 매우 안정적인 학교지.
미르코는 아이들과 동화 내용에 맞춰 여러 소리를 녹음을 하면서 한 번도 영화를 보지 못한 아이들과 몰래 기숙사를 빠져 나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즐거워하는 아이들.
일 년에 한 번 학부모를 모시고 발표하는 학예회 같은 것이 있다.
그 학예회는 늘 성경 내용을 무미건조하게 읽으며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려 해도 열정과 상상력을 억제해 온 학교 분위기에서 다른 창의적인 내용이 나올 수 없다.
미르코와 일당들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성에 갇혀 무서운 용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공주를 구하는 내용의 동화를 극으로 만들고 있다.
숲에 바람이 부는 소리, 동물들의 소리, 위험한 계곡을 빠져나오는 소리, 저벅저벅 걸음소리, 싸우는 소리, 부엌 기구를 이용한 창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 용의 울부짖음.......
녹음을 하는 장면을 들키게 되고 교장에게 녹음기와 테이프를 뺏기게 된다.
-이런 못된 짓을 하다니...... 나쁜 놈들...... 다른 착한 아이들을 다 물들게 할 순 없어. 내쫓아야지!
미르코에게 넌 퇴학 처리되어 집으로 가야한다고 명령한다.
우연히 이 테이프를 듣게 된 줄리오는 그 작품성과 창의성에 크게 놀란다.
교장에게 말한다.
-그 녹음기를 준 사람은 나였고, 이 아이의 이 녹음 작업은 너무나 훌륭한 것이다. 당신 맘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뺏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뭐냐?-
교장은 말한다.
-당신은 일반인이지만 난 맹인이야. 그들은 나와 같아. 나만이 그들을 상처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
-당신은 열여덟까지는 보지 않았느냐? 볼 때 가졌던 그 많은 경험들, 여행의 기회를, 모험의 기회를, 자유로운 발상을 왜 우리 아이들한테는 뺏는 것이냐? 당신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을 막는 존재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꿈을 꾸는지 아느냐? 아이들의 작품 발표회를 내가 맡아서 하겠다!-
부모들이 참석한 발표회 입구에서 검은 천을 나눠주고 줄리오는 부모들에게 그 천으로 눈을 가리기를 부탁한다.
눈을 가린 부모들과 눈을 가리지 않은 맹인 학생들 앞에서 공연은 시작된다.
그 다음은 상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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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은 아이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말이다.
색깔 알아?
응
파란색은 어때?
음~ 그건 자전거를 탈 때 네 얼굴에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가볍지.
빨간색은 어때?
응, 그건 불처럼 뜨겁고 하늘의 노을처럼 따뜻해.
이 영화는 실화인데 이 아이는 여러 소리를 채집하고 채집하면서 그 깊이를 더 해 나갔고 결국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음향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이 영화를 봤는데 어찌나 좋던지 알려주고 싶어서...... 미르코로 나온 아이, 정말 독특한, 대중적이지 않고, 자아가 충실한 매우 인상적인 배우였어요. 여행 잘 다녀 오겠습니다.>
친구가 전해준 "전세계를 매료시킨 사랑이야기"를 같이 보고싶어 옮겨봅니다.
Away from Her
우리 결혼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청혼하는 그녀에게
즉시 그러자고 대답한 그.
그녀에게 생명의 환한 광채가 느껴졌단다.
그럴 수 있겠지,
겨우 18세였으니~~~.
새 순이 울라오는 듯한 기운이 그녀 주변에 넘쳤겠지.
그들은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내지 않고 44년을 같이 살았다.
함께 스키를 탄다,
활강 보다는 크로스 컨추리.
그들의 삶도 크로스 컨추리 스타일이다.
함께 이야기 한다.
뭐든,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함께 산책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식사를 한다.
매일 매일.
함께 책을 본다.
잠들기 전 남편은
그녀에게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를 읽어 준다.
남편은 교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고
그 중에는 죽기까지 그를 사랑한 여학생도 있었다.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녀를 떠나지도 않았고
그녀를 버리지도 않았다.
생명의 광채가 넘쳤던 그녀에게 알츠하이머란 병이 찾아 왔다.
불이 환하게 켜진 큰 저택의 수 많은 방에 불이 하나 하나 꺼져 가다
마침내 저택이 어둠 속에 잠겨 버리는 것과 같은 병이라고 한다.
최근 기억 부터 사라진단다.
후라이팬을 냉동실에 넣는다거나,
와인을 와인이라 부르지 못하거나,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 걸 모르고,
극장 안에 불이 났을 때 어디에 전화 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고,
스키를 타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결심한다.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요양원으로 들어가기로.
알츠하이머 전문요양원의 규칙은 처음 한 달 간 면회금지다.
한 달은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는 최소의 기간이란다.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떨어져 지낸다.
한 달 후,
그녀는 남편을 감쪽같이 잊어 버렸다.
그 곳에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제는 모든 것을 그 남자와 함께 한다.
함께 카드 게임을 하고,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이야기한다.
남편은 힘에 부치도록 그 남자를 위해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녀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를 포기 하지 않고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녀를 떠나는 건 사랑에 빠진 그 남자다.
남자가 요양원을 떠나자 그녀는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절망에 빠져 점 점 병이 깊어 가는 그녀~~~.
기분전환을 해 주려고 20년간 살았던 집으로 데려와도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그녀를 요양원으로 보낸 후 그는 결심한다.
그녀를 멀리 멀리 보내주기로!
그녀의 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그 남자의 집으로 찾아가 그 남자의 부인에게 사정한다.
자기 아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남편을 요양원으로 보내달라고...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힘든 것 모두를 한다.
아내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아내에게 선물로 데려 온 남편.
꺼져 버린 그녀의 방에 잠깐 불이 들어 온 것일까?
그녀는 남편을 알아 본다.
남편이 읽어 준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를 기억해 내고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버릴 수도 있었는 데,
버릴 수도 있었는 데..
그러지 않았다고.하며, 꼭 안아 준다.
멀리 떠나기 전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것일까?
남편에게 마지막 선물을 한 것일까?
이런 남편이라면 44년 아니라
100년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아니라 남편은 천사였다 ..
너무 쉽게 헤어지고
너무 쉽게 잊혀지고
너무 쉽게 사라지는
요즘 사랑에 비하면 .!
숭고한 사랑으로 남을 수 있겠지.
현실에는 없고 영화에서나 있는 남자일까?
"진실은 그게 아닐까?
비록 우리 이렇게 멀리 고역의 땅으로 흘러와 후회할지라도
계속 마음을 다잡아 공통의 신념을 위해
개인의 다른 생각은 버리고 손을 잡고, 발을 맞추어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항상 손을 잡는다.
겁에 질렸을 때도."
"연인들은 떠날 지 머물 지 결정하지 못한다."
"예술가와 의사는 번번히 돌아온다."
"미친 사람만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의사들은 떠나면서 계속 걱정한다."
"자신의 기술이 고통받고 버림받을 것을"
"거인들과 요정들을 오랫동안 보아온 연인들은
자신들의 몸집은 그대로인 지 의심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조용히 기도한다.
- "세상 그 무엇보다 순수한 걸 찾게 해 주소서."
- "독특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 "이를테면, 역사의 모습을 깨닫게 해 주소서."
"저의 의심과 방황이사라지도록."
"오늘과 어제가 한 몸처럼 같도록."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 중에서....
옥인언니,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쥴리 크리스티의 나이 든 모습도 정말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글 표현이 간략해도 감동 그대로 전해져서 영화 한편을 다 본듯해요.
저도 얼마 전에 영화 두 편을 보았는데, 표현이 서툴어 그 느낌을 글로 옮기지는 못했어요.
그대신, 좋은 영화를 저렴하게, 편하게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하려 합니다.
소개 해 주고 싶은 영화가 있으시면 영화 후기도 가끔 올려 주세요.
예전과 달리 이제는 주부들의 영화관 발길도 꽤 많이 늘었더라구요.
글 잘 읽었어요. ^^*
광희야~
이 소재를 미국에 있는 친구가 메일로 보내주었는데,
용량이 엄청커서 내가 손좀 보아 정리한 다음 올린거야.
봄날에 특별히 "영화감상"편이 있어서 같이 보고 싶었지.
전문가가 찍은 사진에는 주름까지 섬세하지?
나도 첨에는 크리스티의 노안에 깜짝놀랬었어.
그런데 다시 찬찬히 보니 친근해지더라고...바로 내 곁에 있는 것처럼 ^^
그리고 요양원사진 나오는 것에서 첫번째사진을 보면,
거기서 만난 남자곁에 앉아 다시 사랑에 충만한 환한얼굴로 나이도 어려 보이면서리...
참~ 연기 끝내주네 싶었겠지 ㅎㅎㅎ
이런 얘기가 영화에서만 가능할까?
62세의 나이에 또한번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고 병에 걸려서도 사랑을 하다니...
아마 본인의 나이도 잊어버려서 가능할지도...
언제인가 기차여행을 하다 한여인을 만났었는데,
한 70전후의 여인이었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여인이 첫번째 남편과는 너무 어렸을 때 만나 20여년 결혼생활후 서로 합의이혼한 다음
두번째 남편을 그녀가 50이 넘은 나이에 만나서 정말 사랑했다고...한 10년 살다가 남편이 죽었데.
그런데 한 참이 지났어도 그시절 남편과 지냈던 순간 순간이 점점 살아나서
한달에 한번씩 남편과 지냈던 멀리 떨어진 전원 주택을 기차타고 찾아간다고 ..
그때는 그얘기가 실감이 안났었는데,
이 영화 얘기를 접하고는 그 여인이 다시 떠오르더라고.
물론 알츠하이머 여인과는 다른 상황얘기 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정열적인 사랑을 할 수있다는 것이 같아서인가봐.
그때 그여인이 죽은 남편과의 얘기를 할때
얼굴이 홍조되며 사랑에 젖은 눈빛이 아직도 선하네...
우리 동기 김영희는 사랑얘기 보다는 정얘기가 더 자연스럽다는데,
사랑이냐 정이냐 구분안하고도 특별한 감정이 가끔은 우리를 신선케 하지?
광희도 남편하고 이 영화 보러 가 봐~
영화는 더 실감이 나겠지?
광희남편이 겁이 나려나??? ㅎㅎㅎ
옥인후배~
가끔 올리는 사진 예술 감각이 뛰어나고 음악 상식도 전문적이라 많이 배우고 있어.
더구나~ 영화까지? 그대는 팔방미인이여~
암튼 그 영화 꼭 보고 싶다.
아니~ 근데 저 여자가 닥터 지바고 의 쥴리 크리스티란 말야?
말 안해주면 몰라보겠어.
그렇게 빛나던 얼굴이 정말 많이 변했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서로를 마음의 눈으로 예쁘게 봐주는 여유가 있어야 할것 같아.
얼마전 우리 남편 부부동반 모임에 갔는데 남편 친구의 한 부인이 알츠 하이머 병이 2년전에 시작됬데.
아직은 심하진 않은데 뭔가 좀 다르긴 하더라구~
집도 2번이나 잊어버려서 겨우 찾았데.
그날은 화장실에 가서 하도 안와서 일행중 한 부인이 가봤더니 화장실에서 밖으로 나오는걸 잊어버렸나봐.
계속 거기 그렇게 앉아있는걸 겨우 두드려서 문 열고 나오게 했어.
남편도 너무 안쓰럽고 그 부인도 너무 안타까워.
인생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또 한편 고해이기도 해.
박화림 선배님~
불이 환하게 켜진 큰 저택의 수 많은 방에 불이 하나 하나 꺼져 가다
마침내 저택이 어둠 속에 잠겨 버리는 것과 같은 병이라고 한다....(본문에서)
저는 이 부분을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구나... 느꼈구요.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떨어져 지낸다.
한 달 후,
그녀는 남편을 감쪽같이 잊어 버렸다.
그 곳에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부분에서는 이 여인이 자신의 남편과 44년 동고동락하고도
떨어져있던 한달후에 아주 잊어버릴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남편과의 삶에서 도피하려는 잠재의식의 반영이 아닐까?하고 ... 영화나 소설이 바로 그시대의 반영이라는데, 이여인 걸린 병에는 증말로 안 걸리고 싶지만 이 치매병은 의지로서만은 안된다지요?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경종과도 같은느낌이었죠. 모두 모두 봄날에 와서 글쓰면서 치매방지 하세요. 어디선가 읽었는데, 치매방지로 손놀림 많이 하는게 좋다네요 예: 타자, 피아노등 건반악기 연습 등등 열 손가락 골고루 쓰는게 제일 좋다고 ㅎㅎㅎ 참~! 선배님처럼 풀륫연주하는 방법도 있네요^^
이 영화와 상황이 달리(영육의 건강상태),
어느날 갑짜기 육체에 이상이 와서 연주 생활을 마쳐야했고,
결국은 피아니스트였으며 현재 지휘자로 활약하는
사랑하던 Daniel Barenboim과도 헤어져야만 했으며
42세에 생을 마쳤던 불후의 첼리스트 샤클린 드 프레의
엘가 첼로 협주곡을 올려요
어떤 영화보다도 슬픈 실화이지요.
Elgar Cello Concerto (I. Adagio - Moderato)
Orchestra: BBC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John Barbirolli
Composer: Edward Elgar
Cellist: Jacqueline du Pr? (26.01.1945 Oxford~ 19.10.1987 London)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도 나왔었는데
제가 제목을 기억 못해요... 누구아시는 분계세요?
슬프고도 감미로운 선율이다.
제목은 모르겠고 알게 되면 꼭 한번 봐야겠네.
요즘은 슬픈 영화를 보면 기분이 다운되어 우울해지기 때문에 잘 안보는데 내용을 듣고 보니 이 영화는 보고 싶어.
화림씨.
오랜만이네요.
한참 사진 열심히 찍는거 아주 감탄 하면서 ( 열성과 좋은 프래임에)
보고 있었는데
요새는 ?
졸업식에서 많이 연주하는
"위풍 당당 행진곡" " 사랑의 인사" 로 우리에게 익숙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이 단조는
세계 일 차 대전의 후에 전흔에서
보이는 엘가의 불안, 절망 환멸의 느낌이
가슴을 저미는듯한 비장한 화음과 멜로디로 시작하는
, 화림씨 말 처럼 슬픔과 감미로움, 이 함께 하는
엘가의 말년에 작곡돤 가장 사랑받는 음악중에 하나 입니다.많은 첼리스트들이 연주 합니다만
역시 드 프레의 연주가 가장 맘에 듭니다.
어머나 혜경언니~
너무 반가워요.
갈증날때 물을 주는 것처럼 항상 필요할때 짠하고 나타나서 도와주시네요.
언니~ 말씀 놓으세요.
후배인데 황송해요.
미국 다시 들어가셨나요?
우리 율리아노랑 같이 식사한번 대접하고 싶은데 오시면 항상 언니가 너무 바쁘신거 같아요.
후배, 친구들에게 포위되서 ㅎㅎ
사진은 지금도 찍는건 좋아하지만 처음 열정만 못해요.
한참 열내고 나니 좀 시들해지더라구요.ㅎㅎㅎ
카메라도 더 좋아야할것 같고 (재주없는 목수가 연장탓하듯~) 제대로 배워야할것 같고 그러네요.
그래도 좋은건 예전엔 영화볼때 그냥 감상했는데 이젠 아~ 이런각도에서 사진찍음 좋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영화볼때 기쁨이 하나 더 늘었어요.
언니 ~ 옥인후배가 말한 이 영화 제목 아시게 되면 여기 써 주세요.
꼭 보고 싶네요.
늘 건강하세요.
오늘 중국영화 `완령옥`을 봤다.
1935년에 향년 25세로 자살한 실존 여배우 이야기.
주인공 완령옥 역에는 겁나게 연기 잘하는 장만옥.
감독은 시공을 넘나드는 것은 물론 실제 필름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끼어 넣기도 하고
출연자인 장만옥에게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묻기도 하는 새로운 다큐멘터리 기법을 동원하기도 하면서
한명의 관객에게서도 감동(혹은 자극이라 해야할지)받지 못했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철저히 단도리하는 무서운 사람이더라고.
영화를 다 보고 관객의 느슨한 볼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니까.
사는 게 너무 느슨해 스스로를 조이고 기름치고 싶은 사람
또는 영화에 빠져 같이 우울에 침잠하고 싶은 사람은 보세요.
<매달 올라오는 '영화공간 주안'의 상영예정作을 이 놀이터에 올리겠습니다>
- 일 시 : 화~토 오후 3시(매일 1회)
- 장 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 관 람 료 : 없 음(무 료)
- 상 영 작 :
4월 1일 (목)
쓰리 타임즈 4월 2일 (금)
쓰리 타임즈 4월 3일 (토)
폭풍우 치는 밤에 4월 6일 (화)
완령옥 4월 7일 (수)
완령옥 4월 8일 (목)
연지구(인지구) 4월 9일 (금)
연지구(인지구) 4월 10일 (토)
빨간 모자의 진실 4월 13일 (화)
반생연 4월 14일 (수)
반생연 4월 15일 (목)
하나 그리고 둘 4월 16일 (금)
하나 그리고 둘 4월 17일 (토)
욤욤공주와 도둑 4월 20일 (화)
애정만세 4월 21일 (수)
애정만세 4월 22일 (목)
흔들리는 구름 4월 23일 (금)
흔들리는 구름 4월 24 (토)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4월 27일 (화)
귀신이 온다 4월 28일 (수)
·귀신이 온다 4월 29일 (목)
첨밀밀 4월 30일 (금)
첨밀밀
[출처] [공지] 4월 주민시네마테크 상영작 안내 (Cinespace 주안) |작성자 연연 ★ 이번 4월에도 볼만한 영화가 많지요? 테마가 중화권 뉴웨이브 영화입니다. 영화관에서 만나요~~~
어린이날~
어제 우리 예은이 운동회라고 해서 다녀왔고 선물도 주고 용돈도 주고 왔다.
오후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하나로 채널로 "나무 없는 산"을 보게 됬다.
어찌나 울었는지~ 침이 겨우 넘어갈 정도로 목이 메이는 영화다.
꼬마들 둘이 우리 예은이랑 예준이를 너무 닮아서 더 눈물이 났나보다.
"김소영"이란 생소한 이름의 감독이고 제작은 미국의 독립영화사에서 했다한다.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가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아빠를 찾으러 가면서 "진과 빈" 두아이들은 고모집에 맡겨진다.
돼지 저금통이 꽉 차면 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믿고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아서 오빠들에게 100 원씩을 받아서 저금통을 채워나간다.
100원짜리를 다시 10원짜리로 바꿔서 저금통을 채운 아이들은 엄마가 떠났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매일 엄마를 기다린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오지 않는다.
지금 아이들을 맡을 형편이 안되니 산골의 친정아버지께 맡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이들은 다시 외할아버지댁에 맡겨진다.
이제 엄마는 오지 않을것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할머니의 뚫어진 신발을 보고 새로 사시라고 줘버린다.
한소절의 음악도 없고 한장면의 미화된 대화나 행동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보고 느끼라고 한다.
감독은 냉정하다.
어떤 해결책도 주지 않는다.
단지 느끼고 생각하고 나아가서 그 어린것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행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하라고 무언의 질책을 하는것 같다.
<매달 올라오는 '영화공간 주안'의 상영예정作을 이 놀이터에 올리겠습니다>
5월의 테마는
한국의 대표 국민배우 안성기, 한석규 그리고 송강호 입니다
- 일 시 : 화~토 오후 3시(매일 1회)
- 장 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 관 람 료 : 없 음(무 료)
- 상 영 작 : 5월 1일 (토)
명탐정 코난 극장판
칠흙의 추적자 5월 4일 (화)
바람 불어 좋은 날 5월 5일 (수)
업 (어린이날 특집 애니메이션) 5월 6일 (목)
칠수와 만수 5월 7일 (금)
겨울 나그네 5월 8일 (토)
리틀 아인슈타인
고 투 아메리카 5월 11일 (화)
개그맨 5월 12일 (수)
태백산맥 5월 13일 (목)
축제 5월 14일 (금)
묵공 5월 15일 (토)
마다가스카 5월 18일 (화)
8월의 크리스마스 5월 19일 (수)
주홍 글씨 5월 20일 (목)
초록 물고기 5월 21일 (금)
밀양 5월 22일 (토)
마다가스카 2
5월 25일 (화) 우아한 세계 5월 26일 (수)
괴물 5월 27일 (목) 복수는 나의 것 5월 28일 (금) 박쥐 5월 29일 (토) 아이스 에이지 3 [출처] [공지] 5월 주민시네마테크 상영작 안내 (Cinespace 주안) |작성자 연연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
감독 파울 슈마츠니 , 마리아 슈토트마이어
출연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구스타보 두다멜
1975년, 엘 시스테마는 베네주엘라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와 몇몇의 친구들이 만든 청소년 오케스트라, 음악센터, 음악 워크숍의 연합을 말한다. 거의 국가적 프로젝트이다.
예산의 90%가 정부 예산이라고 하니.....(정말 부러운 부분! 물론 이건 아브루의 정치적, 경제적 능력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큰 이유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이런 것을 받아들여 그 긴 세월 협조한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 생각한다. 강 파헤치는 것보다는 10000배는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10살이 되면 마약이 시작되고 그 후 두세 달 후에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베네주엘라 카르카스 빈민가의 아이들.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학교고 뭐고 모든 게 멈춰지고 집에서 머무는 아이들.
아이들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집은 그야말로 두려움의 지옥이다.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어두움 속에서 잡히지 않던 사회였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는 음악 교육을 통하여 이 어둠 속의 아이들의 능력을 끌어내 아름다운 세계로 이끈다. 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음악 교육을 통해 스스로가 자존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그 사랑이 옆으로 퍼져가 행복한 아이, 행복한 사회, 행복한 나라,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노력을 바친다.
그리고 35년 뒤,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차고에 모여 열렸던 음악 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의 센터로 퍼져나갔고, 11명이었던 단원 수는 30만 명에 이르렀다.
전국에 184개의 센터가 있고 거기에서 일하는 선생들은 자신의 일을 몹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직접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룹으로 모여 작은 사회관계가 시작됨을 알게 해주고, 그 사회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에 맞는 악기를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과 연습을 하여, 전체를 위한 협동과 단결하는 조율을 통해 '음악'이라는 거대한 하모니로 하나가 됨을 체험하게 해 줌으로써 소속감과 규칙, 규율을 알게 하여 바르게 자랄 수 있다고.
‘엘 시스테마’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차세대 최고의 지휘자로 지목하여 화제가 된 28세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굉장히 신선한 모습!!!)과, 17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 된 에딕슨 루이즈 등 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음악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는데, 그런 것보다 더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은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도 서로 깊이 신뢰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가파른 언덕에 상자를 쌓아놓듯 집을 짓고 사는 빈민가의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성실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사랑은 마음이 뭉클하도록 깊다.
로데릭이 다니는 천국, 링코나다 센터는, 두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의 아이들이 음악의 기초를 배우는 곳이다. 80퍼센트 이상이 빈민가 출신의 아이들인데, 학비 걱정 없이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로데릭은 이곳에서 트럼펫을 연주한다.
그는 말한다. --전 장래희망이 세 가지예요. 컴퓨터 엔지니어, 신경과 의사, 음악가도 되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해야 돼요. 안 그럼 꿈을 못 이루니까.--
모든 아이들이 꿈을 갖게 만들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는 학교.
프로그램이 참 재밌고 살아있는데 그 중에 감동적인 것은 '종이 오케스트라'였다.
학생이 1200명이나 되는데 악기는 부족하다 보니, 종이로 만든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아주 어린 아이들은(2-6세), 종이로 만든 악기를 가지고 오케스트라의 기본을 배운다. 재밌는 노래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의 악기를 연주하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바이올린 하면 바이올린 주자들이 바이올린 바이올린 하며 소리 내고 ........... 얼마나 귀엽던지.....(가기 싫은 피아노 학원에 끌려가듯 가는 우리의 아이들......)
지금 엘 시스테마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두 개의 센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산비센테 센터'이다. 산비센테는 도시 전역의 쓰레기가 쌓이는 매립장이 있는 곳인데 아이들은 그곳에서 쓰레기를 뒤지면서 기적처럼 그곳에 세워진 음악학교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배운다.
물론 음악에 대한 아무 기초가 없는 아이들이다.
또 하나는, 바르키시메토 센터인데 인지, 시각, 청각, 운동장애, 자폐증,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청각장애아들도 참여시켜 몸 안의 리듬을 느끼게 하여 수화 노래를 음악에 맞춰 부르게 한다. 베네주엘라 수화도 무척 귀여웠고 아이들이 밝아 보여서 좋았다.
이 일은 너무나 훌륭한 일이지만 이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죽을 듯이 일을 한다. 한 사람이 말했다. “아침 7시에 와서 새벽 세 시까지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아브레우는 이렇게 말해요. -죽으면 쉴 시간 충분하다.-" 또 직원들은 말한다. "일주일에 하루가 더 있다면 그 날도 일할 겁니다." ”아브레우 같은 사람이 열 명만 있어도 세상이 변할 거예요.“
아브레우가 말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선진국에선 풍요로움이 지나치면 권태와 염세주의에 빠져들어요. 공허하고 지루한 삶. 지키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거죠. 엄청난 부는 엄청난 가난만큼이나 비참할 수 있어요. 물질적으로 가난한 애들은 음악으로 마음의 부자가 되죠. 일단 음악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면 그 힘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어요.
카라카스 빈민가 출신 트럼펫 주자인 10살 소년 요브란은 이렇게 말한다.
"범죄가 많은 위험한 곳에 살고 있지만, 난 음악을 가졌죠! 사람들은 몰라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탱고> 같은 기막힌 남미 영화를 통하여 남미 나라들의 기막힌 음악적 능력과 즐거운 삶을 알고는 있었지만, 참으로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은 정말 놀랍고 놀라워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음악(연주)은 있는 집 아이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생각할 때, 과연 행복이란 것을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고, 막막한 심정이 드는 것 어쩔 수 없었다.
노신의 글에 있었던가? 원래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
이제 많이 남지 않은 나의 교직 생활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어른 노릇을 할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두루두루 나는 저녁이다.
광화문 시네큐브와 이대 안에 있는 모모에서 합니다.
옥규야~
운전 많이 해서 피곤했을텐데 체력 대단하네.
더워서 광화문까지 가기는 그렇고 제목 잘 기억해 뒀다가 혹 하나로 채널에서 하면 볼께.
너무 좋은 영화 같구나.
순영 언니도 그 날 많이 피곤하셨을텐데 일일히 답글 주시고 우리 후배들이 힘이 나네요.
옥규가 쓴 영화 이야기를 읽는 내내
두 편의 영화가 생각이 났다.
하나는 <어거스트 러쉬>.
또 하나는 <코러스>
둘 다 음악을 주제로 엮어가는 영화고
가슴 떨리는 전율을 느끼게 해 준 음악이 있어 좋았던 영화다.
우리 영혼 속에 음악이 담겨 있다면
일상 자체가 영화가 될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어낸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인 실화로 엮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도 하고.
어린 소년과 음악.
천부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의 미소.
그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선율.
그냥 가슴이 찡하고 울컥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감동.
그것이 이 두 영화의 매력이다.
어거스트 러쉬는 오래 전에 영화관에서 보았는데
최근에 테레비에서 두어 번 더 봤다.
그래도 좋았다.
나두 최근에 본 영화 어거스트 러쉬 감동깊게 보았어.
그리고위대한 침묵도.....
그런데 꼬마 니콜라 보고선 실망을....
책 볼때의 나의 무한대의 상상력에 비하면 미흡한게 눈에 띠어서......
언니
어떤 영화도 내 스스로가 책 보면서 가졌던 상상력의 세계를 넘을 수가 없나 봐요.
니꼴라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전 책도 재밌게 봤지만, 그래서 그 꼬마 니꼴라의 모습이 내 마음대로 그려져 있지만.
기억력이 워낙 훌륭해서 이 영화는 책과 별도로 아주 새로운 영화라고 봤거든요.
앞으로도 책으로 재밌게 본 것은 영화로 보지 마세요. 정말 실망하거든요~~~
<위대한 침묵>도 정말 독특한 느낌으로 본 영화인데, 서울 시내 카톨릭 신자들은 다 모인 것 같더라구요.
영화를 보고 오는 내내 깊이 깊이 생각했어요.
종교가 무엇일까? 신념은? 믿음은? 구도는? 극기는?...................
책을 보고도 실망하지 않은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였어.
그만하면 그 방대한 스케일을 무리없이 잘 옮겨 놓았고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맞게 배우를 너무 잘 선택했다는것~
"비비안리" 크리크 게이블" 너무 딱 적역이잖아?
"어거스트 러쉬"도 감동적인 영화였어.
"위대한 침묵"은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보면 더욱 감동이 왔을텐데~
집에서 하나로 채널로 봐서 좀 아쉬었어.
옥규야~
넌 종교가 없지?
내가 만약 친구에 의해서 캐톨릭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아마 난 지금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가고 성당에도 가고 더 좋았을것 같아 ㅎㅎ
자기 종교만 옳다고 하는것도 싫고 (그거야말로 종교적 이기주의) 교리에 너무 매이는 것도 싫고 ~
단학은 종교는 아니지만 거기서 얘기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너무 좋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
매이는것이 싫은 교리가 그래도 방황할때 나를 붙들어주고 제자리로 오게 해준다는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것 같아.
옥규야~
가끔 절에 가서 불공도 드리고 교회 부흥회도 가고 신부님의 좋은 강의도 들음 더 좋을것 같은데~
아니 어쩜 넌 여기 저기 안가도 맘가짐이 선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기독교는 사람이 아무리 선해도 하나님을 안믿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해서
타종교인과 비종교인들에게 집중 포화를 당하지.ㅎㅎㅎ
나같은 사람은 운명론자이기도 해서 어떤 거역할수 없는 힘에 이끌려 기독교에 입문했다고 여기지만
내 사고와 철학에 따르면 이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긴하다.
난 그런 걸 내부모와 내 나라를 거역할 수 없듯이 내가 정한 이 종교를 그냥 신봉하기로 했어.
강제성은 없어도 난 약속이나 의리라는 걸 중시 하거든.
아닌 말로 결혼 생활 힘들다고 다 이혼하냐?
종교는 영적 결혼이라고 믿는데 의외로 일류 교회 찾아서 좋은 설교 찾아서 평생 방황하는 교인들이 많더라.
요즘 세상에 좋은 설교야 얼마든지 받아볼 수 있고
사실 분위기란 것도 자기가 노력하면 시간이 걸리긴 해도 바꿀 수 있는 건데............................
종교를 주식투자나 펀드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빠른 시일에 이익을 얻지 못하면 그냥 팔아 치우더라구.
사실 설교에 은혜받는 건 그 설교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때로는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열린 마음이 아니라 회색분자가 아닐까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제 환갑이 지난 지금은 무조건 믿기로 했다.
그것이 설사 잘못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냥 끝까지 가는거지.
우선 개신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과 피아노가 너무나 귀하게 쓰임을 받쟎아?
그 점에서 무신론자인 우리 옆지기조차도 당신은 교회에 잘 갔다고 한다니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언니같은 교회 동생이 전에 그러더라구.
신앙생활하고 10여년 지나니까 어느새 전에 자기가 제일 싫어하던 유형의 종교인으로 변해있더라구!
허지만 남에게는 그런 잣대를 들이밀 수 없지.
내가 10년 이상 열심히 다닌 단학은 자기들은 종교를 뛰어넘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장사로 보이더라구.
아니면 겉보기론 그냥 장사 같은데 깊이 들어 가면 종교집단일 수도 .............................................
화림이는 열심히 오래 안다녀서 그냥 좋은 점만 봤을 꺼야.
처음에는 다들 뿅 가게 빠져 들어.
몸에는 확실히 좋거든 .
게다가 사범이나 지원장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 선 까지는 별로 거부감이 안오지.
그냥 그 정도로 생각하고 다니면 되.
수련시간에는 뭐든지 자기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하니까 오로지 자생력을 키워야한다고 열심히 설명해놓고는
그 외의 시간에는 가지가지 건강 상품 다 팔고 무료로 가르쳐주던 특별수련도
슬금슬금 패키지로 묶어서 거액의 돈을 받고~~~~~~~~~~~~~~~~~~~~~~~~~~~~~
깊이 들어가면 전생도 보여주고 한다네.
엄청 거액을 들여야한대.
난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 것 같더라.
사실 교리가 나쁜 종교가 어디 있나?
점점 사람들이 자기본위로 변형시켜서 탈이지.
옥규는 여기 저기 편견없이 다 잘다니고 있는 걸로 아는데?
옥규는
카토릭에서 말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영세받교 입교하지 않아도 양심법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이들
그들 모두가 하늘나라의 주인인것을......
양심 팔아먹고 신앙 생활 열심히 한다고 교회 발바닥 달토록 드나드는 사람과는 사뭇 차이가 나지...
그래도 딴엔 그들이 신자가 아니였으면
얼마나 더 흉악한 양심의 범법자가 될가 생각도 해본다.
영화 이야기 하다 샛길로 빠졌네
요번 토요일(8월 21일) 주안 장로교회에서 오후 8시본당 2층
나문희 김윤진 주연의 하모니 상영합니다.
문의 ;010-4231-7117 / 011-9912-3091
무료이니 감상 많이 하세요.
음향시스텤 인천에서 최고라고 하던데......
오늘 안나가고 영화 이야기 하니까 좋네요.
미선 언니도 오시고~
"하모니" 영화 봤어요.
감동적인 부분이 많고 저절로 눈물이 나데요.
죄인 하나하나 어쩜 그렇게 인간적 일까요?
어찌 생각하면 누구도 그 상황이 안되면 말할 수 없는거죠.
나두 공정한척 누구를 판단 할 때도 많지만 ~
환경이 사람을 많이 지배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멋있을때가 "누구든 죄없는 자 돌로 저 여인을 쳐라" 에요.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내려놓고 전부 가버렸잖아요.
명옥아~
우리 남편 단학 평생회원까지 끊어 놓고 안간다.
나야 오래전에 한거지만 우리 남편은 사놓고 일년도 못가고 안가니 아까워.
지금 성당의 차신부님 원고 영역하는데 신부님이 못다니게 하시더래.
보통사람의 눈에 안보이는 1프로의 사이비~ 신부님은 그걸 봤다고 가지 말라고 하시더래.
같이 다니다가 혼자 가기 싫어서 나도 덩달아 안간다.
운동 차원에선 너무 좋은데 아니~ 이론도 좋은데 너무 상업적으로 변했다 싶은건 나도 느낀거야.
이념은 좋아도 그걸 관리하는 사람들이 욕심이 생겨 마구 본래의 취지가 변형되는것 같더라.
아기 아직 안 낳았지?
이제 아기 낳음 당분간 못들어오겠네.
그래도 짬짬히 들어와 놀다가라.
쓰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봄 니가 아기 낳는줄 알겠다 ㅋㅋ
개신교에서도 몸에 좋다고 끊어놓고는 다들 안다녀.
비슷한 거 찾아서 요가를 가지.
문제는 기독교에는 그런 몸에 좋은 수련법이 없다네.
우리 원로 목사님께서 예전 담임목사 시절에 어찌나 몸에 관심이 많으신지
다 찾아 봐도 기독교에는 그런 게 없다고 안타까워 하시더라구.
그래서 내가 좀 가르쳐줬으면 하셨는데 난 그 때 속이 좁아서
"사이비 종교라고 하면서 뭘 고런 걸 챙기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ㅎㅎㅎ
우리 교회 장수대학에 건강 프로그램이 있어서 내가 강사를 소개해줬거든
처음부터 교회에서 거부감을 주는 용어는 쓰면 안된다고 했는데도 쾌히 승락하더라구.
몇 년 했는데 어른들이 무지 좋아하시더라.
실제로 하는것의 몇분지 일도 안되는데 그래도 놀라워 하셨어.
그냥 다 함께 상생할 수는 없는지........................................................
안타깝다.
화림아~~~
생태씨가 번역일 하시며 왕년의 실력 발휘한다니 너무 좋다.
그전에 맨날 생태씨 건강 회복 바라며 기도중에 기억했는데
요즘은 기억이 안되누나.
그만큼 잘 살고 있다는 거겠지....
그리구 차동엽 신부님께서 명상이나 단학 요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더라.
난 그분이 지혜의 보고이기 때문에 그분 강연 감명깊게 듣고 명심하려구하는데
기억력의 한계를 무시할 수 없네!
그래서 가끔 피정이나 강연 들으며 재 충전하면 좋은데
그게 여의치 않구나.
암튼 화림이네 봄날같이 행복한 날 도래한것에 대해서 너무 기쁘구나.
El bano del Papa 아빠의 화장실
감독 : 세자르 샬론, 엔리케 페르난데스
출연 : 세자르 트론코소, 버지니아 멘데즈
브라질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우루과이 시골마을 멜로.
가난이 일상인 그곳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비토와 그의 친구들은 자전거로 국경을 넘어 생필품을 밀수(라기에는 너무 소박하지만)해 가게에 갖다 주는 일을 한다.
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
쉬지 않고 그들은 패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탄다.
값도 안 되는 물건들을 싣고 달리는 배경은 끝없는 풀밭과 시골길이 어울리는 넓은 평야다.
검문소에 있는 악랄한 군인들은 이들의 생활을 힘들게 한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약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검문에 이들은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건강하게 이겨나간다.
비토에게는 빨래로 생활비를 보태는 너무나 안정되고 근면한 아내와 총명한 딸이 있다.
고교생인 그 딸은 몰래 티비 앵커를 꿈꾸며 어두운 밤 혼자 몰래 조그만 거울을 보며 뉴스를 전하는 연습을 한다.
언론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는 당찬 사춘기 소녀.
-늦었다. 불 꺼라- 소리에 불을 가리고 조그만 소리로 연습하는 사랑스러운 그러나 안쓰러운 딸 실비아.
팍팍하기 짝이 없는 이런 삶 속에서도 아버지 비토는 끊임없이 돈 벌 연구를 한다.
쉬지도 못하고 무리하게 자전거를 타는 비토에게 무릎 관절염이 온다.
문득 찾아오는 통증과 함께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비토.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 자전거 타기를 그만 둘 수 없는 비토.
그에게 꿈이 있다면 오토바이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기막힌 소식이 들려온다.
교황이 이 마을에 순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순방길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들었다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수법도 섞여 있어 영화의 시선이 다양하다.)
티비에선 교황의 이번 방문에 함께 올 브라질 인들이 4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속 방영이다 어쩌면 5만 명이 될지도 7만 명이 될지도 ..... "
그 방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대한 예견이 쏟아져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의아했던 것은 이 우루과이 시골사람들이 브라질 사람들을 아주 돈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날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저마다 한 몫 잡을 것을 꿈꾸며 광분한다.
어떤 집은 집을 저당 잡아 암소 두 마리를 사고, 또 어떤 사람은 동네 고양이까지 잡아다 소시지를 만들어 팔 계획도 세운다. 빵에 튀김에 햄버거에 샌드위치에 동네 사람들은 분홍빛 꿈을 꾸며 흥분하여 모든 것을 이 장사에 바친다.
자본이 없는 비토는 기발한 생각을 한다.
교황을 보러 많은 관광객이 올 것이고 그들은 이 많은 음식을 먹을 것이고 그러면 화장실이 필요할 것이다. 좋다! 유료 화장실을 만드는 거다.
가진 돈이 없는 아빠는 엄마가 딸 실비아의 학비를 위해 모아놓은 돈을 달라고 하고 엄마는 딸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절대 못 준다고 한다.
하지만 유료 화장실을 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믿는 아빠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
돈을 뺏으려는 아빠와 뺏기지 않으려는 엄마 사이에서 폭력이 일어나고 실비아는 아픔과 절망으로 자기의 꿈을 보류한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이런 다툼은 큰 목적 앞에서 무위이다.
부인과 딸은 이 간절한 아빠의 노력에 협조한다.
악랄하고 비열한 채권자에게 자전거까지 뺏기고 변기통을 어깨에 메고 뛰어오는 아빠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딸.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애를 태우는 화장실 건립(?)은 드디어 이루어지고, 아빠의 가르침대로 부인과 딸 아이가 휴지와 물을 옆에 놓고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고 연습한다.
익숙하지 않아 얼떨떨하게 실수를 반복하던 부인이 말한다.
-정말 화장실을 사용하고 돈을 낼까?-
그 밤에 부인은 남편에게 말한다.
“신이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으면 누굴 돕겠냐”고.
하지만 예감했듯이 5만 명은커녕 4천 명 정도의 군중이 물 한 병 사지 않고 지나가버리고, 교황은 방탄유리에 싸인 채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남긴 채 순간에 가버린다.
마을을 빼곡히 메운 마을 주민들은 그대로 남은 음식들 앞에서 망연자실하다.
TV에선 교황의 희망을 가지란 말이 계속 흘러 나온다.
그 다음은 다큐 형식으로 버려져 썩어가는 음식을 보여준다.
산더미 같은 빵들과 소시지 , 개들의 먹이가 되어버린 소고기..
티비에서는 연방 흥분된 어조로 교황의 방문은 영광이었다고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자고 말을 한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언론의 책임? 종교의 빈틈? 인간의 헛된 욕망?
고민할 것 없다.
그냥 보면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