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책갈피에 꽂아 두었다가 예쁜 카드로 다시 만들어 고운 글을 적어 넣고,
졸업 하시는 선배님에게 어느 후배가 드렸을... 이 카드.
그게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주 옛날 내 졸업식 이었는지? 아니면 그 후의 후배들 졸업식에
갔다가 우연히 주은 이 낙엽카드. (제가 받은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내 앨범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잡고 있답니다.
갑자기 불현듯이 생각이 나서 이 방을 만들어 보는데,
춘선후배님, 새 방 만들어도 될까요?
취지는-
디카로 찍어서 올릴 수 있는(現物) 것 중에서 ,
추억이 서려 버리지 못한 것, 사연이 특별하여 죽을 때 까지 간직하고자 마음 먹은 것,
가족들의 기억이었든 친구였든, 애인이였든, 자식이였든 동물이였든..... 그 무엇 이었든 간에
내 집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추억 속의 물건들을 사연과 함께 올려 그 추억을 같이 공유, 공감하고자
이 방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동문들도 같이 해보시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되겠습니다.
안 광 희
우와 ~
약간 피곤한 월요일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이렇게 상큼한 놀이방이 열렸네요.
추억이 담긴 물건 사진을 서로 공유하며
우리들의 추억상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놀이터.
아 ~주 좋아요.
역시 우리 광야 온 최고 ~
저도 얼른 가서 기억 창고 좀 뒤져봐야겠어요.
아이들이 다섯살, 세살, 한살때 제 아빠가 출장갔다가 사온것입니다.
28년이나 되었어요.
배추벌레 배를 꾸 욱 누르면 불이 들어와 볼이 빨개져서 아이들이 참 좋아했지요.
색이 바랜 깨순이 청바지가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말해주네요..
순희언니, 오랫만에 인사 드려요.
28년 된 인형들이 마치 이제 막 사온 것 처럼 형태가 그대로 있네요.
배추벌레 인형은 애들이 등에 업고 엄마놀이 하면 딱 어울리겠어요.
근데 저는 왜 언니의 아이들이 두명 인줄 알고 있었던거죠?
세 아이의 배냇저고리는 안 남아 있나요? ㅎㅎㅎ
아이 셋 기르는것이 쉽지가 않아 배냇저고리 같은것 보관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
그래도
아이들 발바닥 찍어놓은것
아이들 초등학교때 그림 일기장이 있는데 어느 상자안에 있을꺼야.
창고 깊숙히 있어서 보여줄수 없어 아쉽네.
이 양산은 남자 친구가 1974년도에 독일에서 사다준거야.
복학생이었던 남자 친구는 대학 4학년이었고
난 사회 초년병 이었지.
삼단으로 접히는 양산이 핸드백에 쏙 들어가 편리하고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랫지만 그땐 참으로 예뻤어.
햇빛나는 날엔 양산으로
벼란간 비가올때 우산으로 오랫동안 잘 썼는데....
그 남자친구?
바로 우리 0심씨...
순희언니, 언젯적 양산인데 아직도 우산살 하나 부러지지 않고 천도 터지지 않고 그대로 이네요?
요즘은 비가 한번 오고 나면 길거리 구석구석에 너무도 자주 보이는 양산(우산대용으로 썼던),
우산들이 아깝지도 않은지 버려져 있더라구요.
펴 보면 멀쩡한 것도 있고, 우산 살이 한개 정도 휘어 있거나 부러져 있거나. 그 정돈데.
예전 우리 어렸을 적에는 우산 살이 부러지면 수선을 해서 다시 쓰는 것이 당연했었는데,
요즘은 1회용 처럼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언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산 장사들 망하겠어요. ㅋㅋㅋ
환갑기념으로 만사 재껴놓고 떠난 여행
영희친구 말시아가 산티아고 순레길을 떠날때 선물로 준 조가비
순례여행중 내내 훈장처럼 베낭에 달고 다녔던 추억의 물건
산티아고 순례길 무사히 마치고
스페인 땅끝마을 휘니스테아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해변가에서 주운 조가비
?수니야~~~~~~~~~~
올 여름 손님 치닥거리 하느라 얼마나 바뻤누?~~
안 봐도 비디오다.
영심씬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 모습도.......
언니는 가셨는지?
니가 홈에 나타난것 보니 지금 언니가 안계신 듯 보이누나.
난 사랑방 차리고 연신 손님맞이로 영심씨 처럼 바쁘고 행복하단다.
우리 수니 오는날
순이 원대루 맛잇는것 다 사둘께!~~~~
난 인청에서 젤루다 맛있는건 신포시장에서 굽는 중국 공갈빵
600원 하던것이 지난 금요일 지영이네가 와서 사러 갔더니 1000원으로 올랐네.
그래두 맛잇으니 사먹을수 밖에...
그리구 또 맛있는것 한개만 먹어두 든든한 복래정 월병
요거 사러 일부러 청관 화교학교 앞가지 걸어간다.
세번째는 청실홍실에서 먹는 모밀국수와 만두
명오기랑두 먹엇다.
그담번엔 먼저번 시장동네에서 먹는 생선구이와 쭈꾸미 볶음~`
어제 선옥이가 감탄사 연발!
너무 맛있다고 오늘도 또 오자네!~~
또 맛있는건 중공업너머에 있는 웰빙 간장게장
울 성당친구오면 둘루는집 ~~
요런데 다 데불고 다닐께 수니야~~
꼭 언니보러 우리 사랑방 오기다!
나는 아이들의 배꼽 떨어진 것과
젖니 빠진 것들도 한참이나 간직하고 있었는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무려 30번 가까이 이사를 다니다 보니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없어졌는지조차 모르게 다 사라졌어요.
수니 언니네 인형은 나이를 하나도 안 먹었네요.
어쩜 저리도 곱게 간직을 하셨단 말씀?
손주들에게 새것이라 하고 주어도 믿겠어요.
광희야, 잘 지내니????
야~~~생각난다
우리 고1때 지리시간에
일본지도를 펴놓고
네 일본펜팔친구 보게될지 모른다고
도시이름을 연결해 일본말한다고 했던때가.............
그리고 또 하나
그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능력부족으로..........
만리포인가에서
호영, 광희, 옥겸, 나 그리고 누구더라
비키니입고 모래밭에 앉아서 수박덩이 들고 먹고 있는 사진
너는 발 밉다고 샌달 엎어서 발을 덮고......ㅋㅋㅋ
표정들이 일품들인데
한번 올려볼까나.........
송자야, 기억 하는구나.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이 끊긴지 2~3년 되었단다. 그래도 참 오래 편지했지?
몽산포아냐? 기억이 가물가물...
호영, 송자, 옥겸, 옥자, 나..였지?
그러잖아도 어제랑 그제 옥겸이도 보고 호영이도 보고.
너한테 이런 얘기 들으려고 걔들을 만났나 보다. 굉장히 오랫만에 본건데 말야.ㅎㅎㅎ
부탁인데, 제발~
사진 올리는 것, 능력부족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 사진 올리면 '주금'이야 !
한번 올려볼까나.... 이런 말 하지마라마랴.
올릴꺼면 차라리 미국서 산 것 중 제일 오래 가지고 있는 물건 따위를 올리란 마랴마랴..
저도 오래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축현국민학교4학년(1964년)때 그림일기가 2권있네요.
가끔 읽어보면 재미있답니다.
광희후배님!
당장 올리고싶지요.
울 친구들오면 보여주곤 하지요.
후배님도 우리집에 한번 놀러와요.
일기도 찍어 올려주고
가을의 불암산의 숲길도 걸어보면 아주 좋아요.
오늘 집안 정리를 하다가
책장의 커다란책 사이에 끼어있는 오래되어서 누렇게 된 "스케치북"을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인일여고 2학년때(1970년) 것이에요.
그때는 글씨를 일부러 삐뚤빼뚤 쓰느게 유행^^
벌써 39년된 것이네요....
그 시절 "내영혼의 흐름"을 장장을 넘기면서 새삼스레 느껴보았습니다.
맑은 새암
김영랑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 본다
저 깊은 땅밑에
사로잡은 넋있어
언제나 먼 하늘만
내어다 보고 계심같어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 본다
저 깊은 땅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밤 그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 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거울......................(요귀절은 지금도 내 맘을 사로잡어요)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 나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솟아라.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사진의 글씨가 작게 보여서 다시 썼는데 오자가 있으몀 정정부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어요.
저에게는 시의 글이 담긴 책이 현재 없어서, 혹시 제가 그시절 잘못 옮겨 썼다해도 대조할 수가 없어서요...
로그인이 안되었었는데 유명옥님 덕분에 잊었던 아이디 찾고 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망증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ㅋ
처음 시골에 살기로 작정하고 내려왔을 때 며칠 다니러 오셨던 아버님이 함석을 자르고 나무를 자르고 하시더니 무언가를 만드신다.
원래 평생 목수 일을 하셨던 분이라 할 줄 모르는 나는 옆에서 구경만하는 것이 돕는 것입니다.
그때 만들어 진 것이 앙증맞은 삼태기입니다.
몇 년이 지나면서 재도 담고, 흙도 나르고, 돌도 나르고, 조각나무도 담아나르고...
용도가 무한으로 쓰입니다.
처음 만들어 주셨을 때는 이런 삼태기 그냥 사다쓰면 되는데...
볼 품도 없고...속으로 그리 생각했었지요.
쓰다보니 함석이라 뜨거운 것도 담을 수 있고, 무거운 것도 담을 수 있고...
오랜 경험이 초짜 농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신겁니다.
올해 88세이신 아버님!!!
평생 거칠고 힘든 일을 많이하셨어도 근력이 대단하셨는데
요즘은 한해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것 같아 저의 기도도 길어집니다.
다음 주 추석에 가서 뵐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소원해봅니다.
김 목사님이 무사히 귀환하셨네요.
다시금 환영 ~~ ^^*
이제는 아이디랑 비밀번호 잊지 않으실거지요?
노인의 지혜가 물씬 풍겨오는 함석으로 만든 삼태기.
그 속에는 세월이 가도 변할 수 없는 부모의 정도 함께 담겨 있는듯 하네요.
이제 낼모레면 추석이에요.
아버님 뵙고 즐거운 시간 많이 가지시길 빕니다.
앞으로 좋은 글도 자주 써 주시고요.
오늘은 가을비가 내리는 전형적인 비엔나 가을날씨에요.
조금전 잠깐 외출하면서 20년 넘은 우산을 썼었어요.
돌아오자마자 말릴려고 복도에 피어 놓으면서
갑짜기"forget me not" 생각이 나서
아직도 물기가 있는 우산을 담아보았네요.
1989년 비엔나에 음악연수왔던김에 파리여행을 하려고 했더니
그때는 한국사람이 프랑스 비자가 필요하다고해서 파리는 방문 못하고
아쉽게 한국으로 귀국하다가 파리 드골공항에서 샀던 것인데
다시 5개월후 비엔나 오면서도 무슨 미련이 있었던지 가지고 왔던 우산이에요.
두번째 올때는 동서장벽이 열린터라 프랑스도 노비자가 막 허용되기시작했었음에 불구하고...
우산꼭지와 손잡이에 크리스탈 장식이 있었던 제법 예뻤던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떨어져 나가고 이제는 골동품에 가깝네요^^
옛 것을 소중히 하는 마음!
집이 좁다는 핑게로 차츰 치우기 시작한 게 이제는 치우고 버리는 게 아주 생활화됬지요.
집안 구호가 "미련을 갖지말자" 라니까요.
가끔 , 특히 이런 글을 접할 때는 그리워지는 물건들!
아직도 몇 개 남아 있는데 찍어볼까나?
방을 만들어 놓고 자주 들여다 보질 못했네요.
옥인언니의 시화집. 저도 그것 비슷한 것 있었는데 고교시절의 것은 거의 남아 있지를 않네요.
39번. 옥인언니의 대충의 키를 알 수 있겠어요. 60명 전후의 학생 수에서 중간쯤이면.... 누구누구 비슷하겠네요.ㅎㅎㅎ
언니의 검은 우산 보다 저는 왜 언니의 바닥 타일이 더 눈에 들어 오는지요?
집에 복도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무늬가 멋스러워요.
자주 사진 올려주세요.
명옥언니,
안봐도 비디오에요. 명옥언닌 옛것을(죄다 그러리라 생각은 않지만) 그대로 집안에 퀘퀘 묵혀 두지는 않으실 것 같아요.
싹싹 치우고 버리고 털어서 청소할 것 같아요.
전 그냥 마냥마냥 껴안고 사는 스타일이고.
그래도 좀 찾아서 찍어 보시지요? 부산 스타일로요.ㅎㅎㅎ
김춘식님의 삼태기?(삼태기 메들리song이 생각나네요. 죄송)
삼태기 라면 저는 함석 보다는 칡인가? 그런 재료로 만들어서 대장간이나 그런 곳에서 파는 것 본 적이 있는데요.
아버님의 사랑이 듬뿍 묻어 나는 귀한 물건이네요.
앗?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 지더니... 천둥이 치고.......... 지금 막 비가 오네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좀 더 추워 진다고 하니 모두들 건강 조심하시고요, 외출하신 분들은
귀가 길에 비가 안 오더라도 가지고 나가신 우산 잊지 말고 챙겨 오세요.
내 인상이 어떻다고 안봐도 비디오일까요?
난(사실은 내가 아니고 우리 친정집) 버리지를 못해서 별의 별 물건을 다 재워놓고 사는 편인데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남편과 아주 큰 선언을 했다구!
"무조건 버리자"
예전의 우리 친정처럼 커다란 지하실이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한 개도 못 버린단다.
버릴물건 찾다보면 도저히 못버리고 필요한 거 빼고는 다 치워야한다고 누가 갈쳐두더라.
지난 겨울에 누가 중국에 선교사로 나갔다가 몸이 아파 귀국한 여자 선교사님이 쓸 살림 찾는다고 하는데
우리집에 첫번째로 전화했다가 그냥 우리집으로 끝났다구!.
침구에 제반 살림살이 일체에다 식기에 김치, 반찬,조미료까지 !
얼마나 쌓아둔 물건이 많으면 그리 됬겠니?
난 속이 다 시원했는데 그 쪽에서는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좀 민망하더라.
그래도 배냇저고리까지는 아니라도 아들이 쓰던 일기장이나 태권도 품띠 레고작품 같은 건 간직하고 있답니다.
누가 선물로 준 책도 절대 안치우고,
피아노 악보는 한장도 안버리고.
광희가 우리집에 꼭 한번 와야되겠다.
내가 얼마나 널어놓고 사는지~~~~~~~~~~~~~~~~~~~~~~~~~~~~~~~~~~~ㅎㅎㅎ
바빠서 다 치울 시간이 없어요.
생각 난 김에 하나.
어느해 제 생일에 조카들이 만들어서 선물을 한 것인데, 종이접기에요.
천마리의 鶴은 아니고, 당시 어린학생들에게 유행했던 공룡알 접기등등.
작은 언니의 두 딸이 만들어 보낸 것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조카들 여섯명이 틈만 나면 종이를 사다가(종이 접기용 색종이가
따로 있답니다. 일반 색종이 사이즈의 1/4 크기, 투명하게 셀로판으로 된 것도 있고...) 일일이 속에 꼬부랑 꽈배기 종이등을 넣고
공룡 알을 하나씩 완성해서 유리항아리에 담아 선물을 했는데, 천개는 넘어 보이죠?
이사를 갈 때 따로 들고 가기도 했답니다.
이 선물을 받고 감격스럽고 조카들이 얼마나 더 사랑스러웠는지...(언니들 한테는 제가 구박을 받았지요. 이것 때문에
애들이 공부도 않고, 집안은 온통 빨강 파랑 빤짝이 구겨진 종이들로 가득 했었다고요.ㅋㅋㅋ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고 보니 제가 올린 사진 둘다 생일 선물이네요. 모양도 둥근 것이고.
다음엔 색다른 것을 올려 봐야 겠네요.
저도 오늘 방 정리를 한 기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이방 저방 다시 훑어보고 있어요.
요즘은 어찌 이리도 눈이 쉬 피로한지 모르겠어요.
할 일은 태산인데 시간은 점점 더 부족하고.....
광희 언니가 올린 종이 별과 학이 우리집에도 한보따리 있었는데
언제 어디다 버렸는지 지금은 흔적도 없네요.
우리가 폐기해 버린 추억들도 참 많아요. 그쵸?
우리 아이 아장 아장 걸어 다닐 때 신던 앙징맞은 흰 고무신이 있는데
그거 찍어 올리자면 집안을 훌꺽 뒤집는 큰 공사를 해야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우리 엄마가 융으로 만들어 준 배내옷과 고무신을 꼭 꼭 싸서
일본 올 때 가지고 왔어요. 여기 이사 올 때 우린 역사가 끊어지는 느낌으로
엄청 버렸어도 " 열어 볼 일은 없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 " 이라 매직펜으로 쓴
사과괘짝만한 상자 두개가 깊이 깊이 들어 있거든요.
그 상자에는 우리아이 배내옷, 그 짜투리로 내가 만든 턱배기, 아들의 초등학교 저학년때 일기장(학교에서 일년치씩 제본해줬슴),
결혼 선언서, 사진,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조각보,
우리 엄마 손목시계( 수술 받던 날 잠깐 가지고 있으라고 해서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이날 입때까지),
그리고 잡살스러운 게 많이 있을텐데.
그 추억의 물건들 나도 새삼스럽게 궁금하고 보고 싶어 지네요.
추석 날
경기도 안성에서 농사 짓고 계신 부모님 댁에
형제들이 모두 모였었습니다.
사위와 딸래미도 왔더군요.
사돈댁은 전라도 광주라 명절이면 역귀성하여 서울로 오신답니다.
그리고 목사님 댁이라고 사위와 딸을 저희들 모임에 먼저 보내시는 분들이십니다.
고맙지요. 배려해 주셔서.
추석 때 임신 30주였으니
이제 32주를 접어들었네요.
아직 아이가 머리를 위로 두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자센가 열심히 하라고했는데...
딸래미와 찰칵했습니다.
태어 날 외손주에게 태어나기전 내가 옆에 있었노라는 증거로 남깁니다.
저 혹시 실례가 된지도 모르겠지만 전 솔직한 사람이라서.................................
아버지가 하도 젊으셔서 설명이 없으면 부부간인 줄 알겠습니다.
그나마 흰머리가 있어 망정이지.
염색하시면 안되겠어요. ㅎㅎㅎ
우리집에 장남이 100일도 되기 전 사진이 있는데요.
일본에 살 땐데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남편 친구와 찍은 사진이 있거든요.
여러장 찍었지만 그분과 제가 아기안고 찍은 사진이 압권이에요.
완전 한가족세트!
그 사진이 그집에도 있어서 여러사람이 보고 웃었는데
우리가 뭐 매스컴이라도 탈만한 사람들이었다면 악의로 사람들이 말 만드려고 들어도 증거사진으로 충분할꺼에요.ㅎㅎㅎ
개점휴업 상태와 다름이 없는데, 고맙게도 이 방의 조회수는 참 많군요.
영어로 房題를 만들어 놓으니 무슨 얘기를 하는 방인가~? 궁금하셔서 들여다 보셨었나봐요. - 작전 성공 ^^Y
제 주변은 온통 골동품 투성이.
옛 것을 버리지 못해 끼고 살아서 그렇답니다.
언니들, 오빠, 올케등이 모두 간추려 버린 나머지 들을 그나마 또 한번 더 간추리려다가 평생 같이 움직여 온 물건들.
옛 것에 집착을 하면 발전이 없다죠? 제가 딱 그 스타일 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한 件 올려 보려 합니다.
일명, 외삼촌 시계.
시계에 얽힌 비화가 아니고 외삼촌에 얽힌 약간의 슬픈 이야기입니다.(또 길어지게 생겼지만, 간추릴게요)
내가 20대 한창인 때에 정공회사를 다니시던 큰외삼촌(몇년 전에 고인이 되심)께서 만들어 주신 시계.
사진을 찍으려고 조금 움직여 보았지만 사실 지금은 잘 안맞습니다.
태엽을 감아서 똑딱 거리게 놓아 두면 하루에 몇 시간씩 늦습니다.
그래서 그냥 장식장 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식품일 뿐이죠.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 잘 모르지만 제 기억속의 외삼촌 부부의 신혼시절은
아주 잘 생긴 외삼촌과 날씬하고 아름답다고 까지 할 수 있는 외숙모의 모습,
또한 양복과 예쁘게 차려 입은 한복의 차림새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납니다.
어디든 그림자 처럼 같이 다니셨죠.
식구들과 같이 간 소풍길에서 찍은 흑백사진 몇 장이 남아 있네요.
철도공무원이셨는데, 경상도로 발령이 나시면서 인천에서 떠나셨고
그 후 우리들은 외숙모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아기도 낳지 않은 새색시였었죠.
정말 아름답고 슬픈 스토리로 만들려면 그 죽음도 또한 영화, 소설 속에서나 나옴직한 병명이었으면
더욱 더 애절했을텐데요... 황당하게도,
외숙모께서는 고구마를 드시다가 얹혀서 병원으로 옮기시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후의 외삼촌이죠.
그야말로 외삼촌으로서는 평생 단 하나의 사랑이 떠나 버린거죠.
회사를 관두시고 올라 오셔서 혼자 사시면서 술 중독이 되다시피 하시고
주변서 여러 사람을 소개도 해드렸건만 끝내 자기 사람으로 끌어 안지 못하고
거의 폐인의 길을 걷다시피 하시다가 몇년 전에 돌아가셨답니다.
옛날 영화배우 같이 잘 생긴, 다정하고 (너무도)말이 없으시고, 특히 우리 엄마를 잘 따랐던 외삼촌께서
30여년 전 틈틈이 시간 내어 손으로 돌리고 밀고, 깎고 맞춰서 선물로 주신 태엽시계.
제가 어디서 살든 따라와 숨을 죽이고 묵묵히 한귀퉁이를 지키고 있답니다.
세상에 그렇게 가시는 분도 있구나.
허지만 사람의 생과 사는 운명이니 고구마 안잡수셨어도 돌아가셨을꺼야.
이런 이야기 듣다 보면 너무 애틋한 사랑도 할 게 못되네요.
아항 그런 가슴아픈 사연이...
어제 고구마 한 박스 누가 줬다고 들고 들어오던데...
조심해야겠네요. 김치국물 꼭 옆에 대령해 놓아야겠어요.
추억! 멋져요!
그래서 우리들은 어려서 부터 고구마를 먹을때는
어른들 잔소리를 꼭 한번씩 들어야만 했지요.
물 먹어라~ , 천천히 먹어라~
그래도 가끔은 찐고구마 먹다가 끅끅 거리며 딸꾹질을 한답니다. 물 가지러 가기 싫어서.
<속상한 얘기>
제가 요즘 얼마나 정신줄을 놓고 사냐 하며는요,
여기 '훠겟미낫 ' 에 사진 하나 올리려고 시계를 보면서 생각했지요.
외삼촌 뵌지가 언제더라? 지금쯤 여든이 다 되셨을텐데 어떻게 지내시나?......
그러다가 아!! 돌아가셨던가? ....흑흑~~ 제가 이랬어요.
부랴부랴 언니한테 전화를 했더니 '너 왜그러니? 돌아가신지가 언젠데? 너도 같이 갔었잖아..'
언니, 저도 도낀 개낀이에요.
둘째 낳고 산후우울증과 함께한 초기 치매증상 비슷끄레한 단어 기억상실비슷한...
기억력은 둘째치고 말을 하려면 단어, 이름 다 생각이 안나고
저기 저기만...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어느새 회복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이 여름 쯤 아들넘 군에 보낸 것이 제겐 스트레스였는지
또 그 증상 비슷한 것이 찾아오더라구요
그래서 두려움 비슷한 것이 발동하야
뭐라도 해야겠다 한 것이 영어였어요.
언닌 미술, 사진, 천재적 감성...
할 일 많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것들이 언니를 보채고 있다는 증거에요.
갸들과 더 열심히 함께해 보세요. 남 눈치볼 것 없이여.
누가 내 인생 대신 살아주나염?
에공 아침부터 부처님 앞에 문자 쓴다.
기냥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 땜시 좀 앞서 간다 생각해용
에고 도망가야지33333336666666
신영이 말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열심히 산에 다니는 사람 ,아파트에서 열심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 단월드에 결석안하고 오는 사람들
나중에 속사정을 듣고 보면 다 답답한 구석이 있더라구.
물론 하다보니 그 공부나 운동의 참맛을 알게 되서 더 정진하긴하지.
나도 그 어려웠던 시절(피아노가 없었던 9년간)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싶어.
광희야.
넌 빼는 시간에 그냥 열심히 해라.
남보다 좋은 재능을 타고 난 건 확실하쟎아?
꽝온니, 일요일날 시험보고 이제 한숨 돌려요.
근데 제생각엔 달라진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기냥 공부 한 적이 있다는 만족감?
그래도 성공?
아님 말구요.
온니 보고시포용!
공부란 게 하는만큼 느는게 보이지는 않더라.
그냥 농사짓듯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귀도 트이고 음악도 트이고 손가락도 잘 돌고 그렇더라구.
열심히 하세요.
명옥언니, 정말 그럴까요?
이노무 영어는 그럴 것 같지 않아요.
지금 사촌동생네 집에서 오는 길인데
아들이 7살 4살인데 온 집안이 영어로 말해요
고 작은 입에서 얼마나 술술 영어가 나오는지
오메 기 죽어...
애들이 얼마나 차분하고 장난감도 사이좋게 잘 가지고 노는지...
우리반 아이들 생각하며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지난 주에 짧은 여행 다녀왔거든.
남편이 고문으로 있는 자그마한 용역회사인데 거긴 사장부부가(둘 다 제자고 남편은 박사 ,부인은 기술사고 그래)
하도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아예 일년에 한 두번 사원들 여행 시키는 게 회사 복지거든.
작년여름에 처음으로 나도 홍콩 따라갔었는데 후반부터 올 전반까지
나라 경기도 안좋은데 볼쌍 사납다고 자제하다가 이번에 대만을 갔어.
사장네 가족 4, 우리 부부. 부부가 3쌍에 아이 하나, 독신남녀가 4 해서 모두 17명이었지.
거긴 회사 전체가 한 두명 빼고는 다 같은 학교 선후배라 우리 남편 제자들이거든.
그래서 분위기가 내가 가도 괜찮은 곳이지.
나이많은 사람들 어디 낑겨가면 불편해 하쟎아?
그리고 다 젊으니까 오히려 귀찮아 안하고 잘 모시고 다녀주더라.
아이구 서론이 길어졌네.
3살 반짜리 남자아이가 하나 따라 갔는데 요 놈이 영어를 제법 잘하더라구.
영어 유치원 다닌 적도 없고 그냥 엄마가 직장 다니는데도 틈틈히 데리고 놀면서 가르친 거래요.
그 엄마 말이 영어유치원은 인성 교육을 안하기때문에 생각있는 엄마들은 좋아 안한대네.
또 하나!~
며칠 전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중국어를 듣고 계시더라구.
중국어 배우시냐고 묻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됬는데
지금 55세시라네.
5년 전에 문득 자기가 늙어서 일도 못하게 됬을 때 "내가 뭘 하고 살았나?"
하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더래요.
열심히 일했지만 먹고 사느라 남은 것도 없고.
그래서 평소에 취미가 있었던 어학에 도전을 하기로 했대.
중국어, 영어, 일어 3개국어에 능통하면 늙어서 얼마든지 자원봉사도 할수 있고 그러면
자식들이 오네 안오네하면서 불평도 안할꺼고 환영받는 노인이 될 것 같더래요.
4년이 지난 지금 제법 귀에 잘 들어오게됬다고 그러더라.
자식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아주 자랑스러워 한대
그리고 한가지 더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공부를 하니까 손님이 타도 좋고 안타면 더 좋고 그렇게되셨대.
참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이셨어.
복을 받고 안 받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더라.
그 나이에 그 형편에 그리 즐겁게 사는 사람 몇 있겠어?
내 생각에 그 분이 영어 유치원 다닐 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은 건 확실하던데 말이야
명옥아~
잘 다녀왔니?
사진 좀 올리지 그러니?
대만은 볼 것이 많다고 그러던데~
암튼 여행 다녀와도 아프지 않고 홈피에도 잘 들어오고 하니까 좋다.
그 택시 기사 아저씨 너무 훌륭하시네.
소박하지만 멋지게 사시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구~
신영이도 훌륭하다.
언제나 뭘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
제 추억 속의 하나.
1971년 당시 펜팔을 하던 일본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받은 생일선물입니다.
북 처럼 생겨서 뚜껑이 달린 이 것은 뚜껑을 열면 향긋한 일본풍의 향수 냄새가 나는데
40年이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그 향내가 여전히 나네요.
가장자리는 나무가 아닌 플라스틱이지만 나름대로 이 선물을 받았을 때의
내 기분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이 기뻤답니다.
전에는 붉은 우단으로 내부가 되어 있어서 손상이 갈까봐 아무 것도 안 넣어 두었지만
지금은(사진을 찍느라 다 뺐습니다) 집안에 굴러 다니는 단추며, 여행지 가서 주워 온 조약돌,
클립 떨어진 귀걸이, 알 빠진 반지 등등을 마구잡이로 넣어 두는 그냥... '통'의 구실만 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처음엔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께서 즐겨 쓰시던 (너무 헐어서 당시에 내가 버리려 했던) 우산을
찍어 올리려 했는데(아버지 께서 내가 버릴까봐 우산 천이 터진 부분을 꿰매어 놓으심) 갑자기
찾으려니 없네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