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이 방은
짧게 스쳐간 생각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느꼈던 감동이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얻은 깨달음 등...
우리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이 분명하나
자칫하다 보면 놓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한 귀퉁이를 잡아두는 메모장입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도 좋고
자기의 기억 창고에 저장을 하기 위한 암호같은 독백도 좋습니다.
그저 메모를 하듯이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갈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달려만 가고
우리 머릿 속 기억 주머니의 끈은 어느새 느슨해져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제대로 간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하면 오래 잡아둘 수 있을까?.
언뜻 스쳐가는 좋은 생각들과
아주 짧은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 남긴 큰 이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허망하게 잊혀지지 않도록
문득 떠오르는대로 이 메모장에다
스쳐가는 단상들을 꽉 붙잡아 두시기 바랍니다.
그래
내가 받은것은 돌위에 새기고
내가 해준것은 모래에 새기란 말도 있듯이
받은것만 생각하며 감사하면서 살면
이 세상에 갈등은 없을거야.
방가방가~~~
어쩜 두 대전댁들이 금쪽같은 말만 한나댜!!!
새기고 살아야하는 귀한 말들이네.
그렇게 해야하는데 아니되니 어쩐담???
셋이 앉아
밤이 가도록 얘기하고파라.
개의 나이는 사랆 나이의 일곱배라서
열세살 먹은 강아지는 구십 노인 행세를 한다.
늙음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 강아지.
인생의 테이프를 일곱배속으로 빨리 돌려 예측하게 해 주는 좋은 교보재다.
마리 앙뚜와넷 曰...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될 것 아냐! 라 했다지만
빵도 있고, 밥도 있고... 배 고프지도 않으면서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버릇.
언제 부터인지 운동은 담을 쌓고,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소리는..."운동 좀 해라~살 좀 빼라!!!!!"
위의 인용문에 대해서 / 역사에 마리 앙뚜와넷이 사치와 허영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묘사 되었다 하지만
저런 소리를 할 푼수는 아닐 것이다. 그녀를 조롱하려 일부러 만든 것이다/라는 견해도 있더군요.
내가 서너시쯤 집에 오는 길에 들르는 야오야 (야채가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오기전에
파트 타임을 마친 주부들이 서둘러 장 봐 가려고 몰리고,
그 시간에 맞추어 그날의 ' 타임 서비스' 상품을 내놓는다(늦게 가면 다 팔리고 없다)
방금 계산을 치루고 정리대에서 자신의 수레에
주섬 주섬 집어 넣던 할머니가
세 알 들은 다마네기 한망을 들고와 점원에게 내밀며
" 방금 계산하고 났는데 이거 산다는 걸 깜빡 잊었구랴. 미안하지만 이거 하나 먼저 해 줌 안될까? "
" 할머니 손님들이 순서대로 줄 서서 기다리니 할머니도 저 끝에가서 기다려주세요 "
" 그건 그렇지요만 ...... "
할 수 없이 느린걸음으로 나래비 서있는 줄 끄트머리로 가는 할머니의 소매를 붙잡아 세우며
" 할머니 저 대신 여기서 하세요. 제가 뒤로 가지요 "
나는 여섯사람이나 물러나 꽁무니에 가서 섰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할머니가 밀고다니는 자신의 수레에 몸을 기대고 서있다가
" 아휴 ! 고맙수. 젊은 엄마(?)가 친절하시구려." 그 꼬부라진 허리를 더 꼬부려가며
인사를 한다.
" 우리 애들이 찻길 위험하다고 당췌 카이모노(買物) 다니지 말라는데 난 카이모노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 별거 사는 건 아니지만 가지도 사구 두부도 사구 도마도두 사구
"맞아요. 할머니 "
속으로는 ' 저 나이에도 살림에 집착이 있네. 저 할머니 보다 훨씬 젊은 나는 ~ ' 반성
춘선 언니가 새로 만든 이 코-너 참 마음에 드네요.
나는 가끔 착각에 빠진다.
한번도 만난적 없는 사람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매일 만나는 사람이 아주 낯설어 전혀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이란 누구일까?
그것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멀리 있어도 늘 마음 곁에 와 있는 사람이 진짜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글쎄 그런 걸 착각이라고 해야하나?
춘선이와 똑같은 기분에 잘 빠져드는데 그럴 때 가까운 사람들이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난 속으로 "지네들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안겨주는 사람이 진짜 가까운 거지" 생각하며 툴툴 대고..........................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하루밤 사랑에 빠져드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순희는 나보고 씩씩하다고 하고 유옥순언니는 종달새후배라고 한다.
이번에 인천가서도 그 두가지의 기질때문에 식구들과 약간의 언쟁(?) 을 했다.
억울한 사람 입장 대변해주면 꼭 반대편에서 불만을 가지네요...................................................................
그럴 땐 시시비비는 저 멀리 가버리고 "넌 무조건 내 편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고 야단!
마치 배신자 다루듯 한단니까 참................................................................................................정답이 없군요.
춘선아~
넌 역시 인생의 묘미를 잘 아는것 같다.
너무 맘에 드는 방인데 나 지금 정신이 딴데 있어.
전영희가 살림마작 올려 놓은것 요즘 매일 기록 깨느라 눈알이 쏟아져 나오는거 같아.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또 하게 되는 중독 증세.
이제 조금 있음 싫증날거니까 이 방에 들어와 쓸게.
오늘(25일)은 옥규 생일이고
유미코(일본 학생)의 남편 후쿠야마와 딸 리코의 생일,
수하(요르단 학생)의 막내 아들 새미의 생일.
내일(26일)은 내 생일이고
자운영 (대만 학생)의 쌍둥이 아들과 딸인 은해와 은진의 생일.
이 사람들은 모두
한 꽃송이에 조롱조롱 매달린 작은 꽃잎들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시기에 날을 받아서 이 세상에 나왔다.
태어난 곳과 년도는 다르지만 날짜가 같으니 한 데 뭉뚱그려 축하를 받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온 몸의 장기가 다 잘 여물어 가지고 나왔다는사실 하나 만으로도
모두들 주변 사람들로부터 생일 축하를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다음 주 수요일에 합동으로 학교에서 생일 잔치를 하기로 했다.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한가지씩 해가지고 모이면
어느 뷔페 음식점도 부럽지 않은 진수성찬이 차려지겠지.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
언제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는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될 것이고....
ㅎㅎㅎㅎㅎㅎ
어쩌다 들어왔는데 횡재했네.
옥규야, 춘선아 ~~~!!!!
생일 축하해~!!
이제 나이먹으니까 나는 생일이 싫던데...
니네는 아니지?
정말 축하해~! 보고싶고~~~!!!!!
나두 축하하러 따라왔어 ㅎㅎㅎ
갓 태어났네요, 옥규야, 춘선아 축하해...
생일이 나란히 있었구나
행복한 가을......
올레~~~
엊그제까지 외우고 있으면서
쨔잔~하며 축하해줘야지....했는데
막상 25일을 놓쳤네 그랴~~~~!
사랑하는 내동생들 옥규,춘선의 생일을
무쟈게 축하한다.
이맘때 태어난 아가들은 모두 그렇게
눈이 크고 이쁘고
나보다 남을 많이 사랑해야하는
천성들을 타고 났나봐.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많은 아름다운
이세상을 너희들의 사랑으로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기를 바란다.
아가들아~!
다시한번 생일 축하한다.
어머~ 너희들 생일이었구나.
옥규 생일은 지나버렸네.
어쩌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노래 들려주고 싶다.
언제나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너희들~
진짜 진짜 축하해.
저녁을 먹고 난 후 동네를 걷는다.
몸이 거뜬한 날은 뛰기도 하지만 걷는 것 조차 구찮은 날은 띵겨 먹기도 하고,
우리 동네는 전차 선로를 사이에 두고 1초메(丁目)와 2초메로 나뉘어 있다.
선로 양 옆 쭉 뻗은 도로를 다섯바꾸 걷고 나면 얼추 한시간이 된다.
어떤 할머니가 포도상자 두개 포개 실은 카터를 끌고 가는 모습이 힘에 부쳐 보이지만
선듯 건네 줄 것 같지않아 모른 체 하려니,
한 바퀴 돌 때 만나고, 두바퀴째에 또 만나니 워 쩐 다 ~
"할머니 힘들어 보이는데 제가 저기까지 끌어다 드릴까요 ?"
이 할머니 손잡이를 불끈 움켜 쥐며 경계하는 기색이 완연. 괜찮다데. 역시나.
그전에 나도 엄마한테 늘 상기시켰지.
' 모르는 사람이 뭐 준다고 덥석 잡숫지도 말고, 물건 들어다 준다고 선듯 맡기지도 말고,
자식들 이름이나 직장이나 전화번호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가르쳐 주면 안되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
또 한 바퀴를 돌고,
마지막 바퀴 마저 돌았어도 할머니의 포도상자 (거죽의 무늬가 그렇단 얘기지 사실 내용물이 무슨 보물덩이가
들었는진 모른다. 알 바도 아니고)는 한 없이 더디기만 하다.
" 에이 ! 할머니 이리 주세요. 제가 천천히 끌고 갈테니까 할머니는 그냥 살 살 걸어 가세요.
짐을 빼앗다시피 해서 끌고 가며,
" 할머니 왠 낯모르는 이가 짐을 끌고 성큼 성큼 어디로 달아나 버릴까봐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신거죠? "
"그게 아니고 염치가 없어서지,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덕분에. 도-모 아리가도.
안도하는 할머니
의심의 덫에서 놓여난 나
<엊그제까지 외우고 있으면서
쨔잔~하며 축하해줘야지....했는데
막상 25일을 놓쳤네 그랴~~~~!>
이거이를 일등 선물상으로 정합니다!
나를 안심시키는 최고의 선물.
언니 이렇게 정신없이 서로 좋아하며 삽시다!
고마워요 언니 친구들.
사랑하는 우리 친구 춘선이의 생일도 무지무지하게(윤대장보다는 약간 쪼금) 축하해!
순호 언니 생신도 무지무지하게 축하해요~~~~~~
여기 저기서 보이는 금재씨의 모습도 반갑고요.
찬정이 오랜만의 글 건재해 보여 반갑고.
동인천 역에서 불쑥 찾아갈 곳 만들어 주신 미선 언니도 고맙고요.
걸을 때 또 우리를 웃겨 줄 광이 언니도 그립고.
난 참 복이 많은가 봐요.
힘든 일이 많은 데도 그래도 세상이 좋게 느껴지니까요.
어제 서울에 갔다가 오늘 왔어요.
그 사이 다정한 생일 축하 메시지가 많이 올라왔네요.
감사하고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정말 이게 웬 복이래요?
가슴 가득히 행복이 차오르네요.
어제는 서울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있었어요.
계간 수필로 등단한 작가들이 동인 수필집을 냈거든요.
저는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늘 묻어가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이번엔 작정을 하고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가를 했지요.
헌데 하필이면 날이 겹쳐서 몇 배나 더 바빴네요.
생일 잔치 하랴, 출판기념회도 하랴.....
2년에 한권씩 내는 작품집인데 어느새 5권째네요.
언제 세월은 또 그리 잘도 갔는지....
이번 책에 낸 제 작품은 모두 우리 홈피에서 초고를 쓴 것을 다듬은 것이에요.
그야말로 스쳐가는 일상 중에서 잡아 둔 단상이지요.
여러분 ~
이 방이 참 좋지요?.
그냥 독백을 해도 부담이 없으니까요.
이런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따로 있어요.
우리 이쁜 막내 찬정이에요.
모두들 이 방을 부담없이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쳐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주옥같은 단상들을 많이 건질 수 있게 말입니다.
.
그저껜가?
꿀대금을 송금하고 김춘식목사님에게 문자 보냈더니 전화가 왔다.
로그인이 안되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있다고.
관리자 메일도 몰라서 사정을 알릴 수도 없다고 대신 좀 알려 달랜다.
참 고마웠다.
안되면 신경질난다고 팽개치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 열심히..........................
봄날을 사랑해주는 또 한 분의 손님이 생겨서 참 뿌듯!
자게판에 올리기도 뭣해서 질문답변에 올렸더니 영주 위원장이 그분에게 메일도 보내주고
혹시 또 있을 그런분들을 위해서 친절한 댓글을 달아줬다.
홈피 첫페이지 중앙 아래쪽에 관리자메일이 있다길래 보니 정말이네.
우리가 이렇게 관찰력이 부족하더라구.
사실 속으로 왜 관리자연락처가 없을까 했거든.
이렇게 자신은 안돌아보고 남 탓을 먼저 하는구나 하고 반성했어요.
내가 오늘 모임에서
맨날 고상한 척 폼 잡는 일본 아지매들을 죄다 울렸다.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이 있었단 소식은 여기 뉴스에서도 짧게 나왔으니 나 알았고,
북한이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 일이 거기까지 성사되었는지 모르지만 생사 안부라도 알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수라고,
원래는 천만 이산가족이었는데 점점 고령화되면서 생사도 모른 채 죽고 지금은 글쎄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전쟁통에 잠깐 피난했다가 달포쯤 후에 다시 돌아가게 될 줄 알고
어머니는, 죽어도 내집 지키다 죽겠다는 노인 시부모 조석 끓여 드리라고 남겨두고
삼부자만 피난오다가 그나마도 다 건사하지 못하고서리 폭격으로 아들 하나는 잃고,
전쟁은 끝났어도 돌아갈 길 없는 아버지와 아들은 갖은 고생을 해가며 피난민의 때를 벗으며 ,
홀아비 손에 키워졌어도 아들은 늠름하게 장성을 한다.
아버지는
에미없이 크는 아들 생각해서북에 두고 온 아내는 드러내 놓고 그리워 해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두고 어머니, 고향, 성묘 한번 못 하는 조상님 산소를 꿈속에서만 그리다가 돌아가시면서, ' 나는 죽거든 화장하여 뼛가루를 북쪽을 향해 뿌려다오. 바람에 실려 내가 뛰어 놀던 고향으로 가고 싶다. 가루가 되어서라도 이젠 돌아가시고 안 계실 어머니 산소에 엎드려 빌련다. ' 화장한 유골함을 안고 북쪽 가까운 임진각 철조망 넘어로 뿌리며 ' 아부지 ! 부디 고향으로 가소 . 고향 뒷산 조상님 산소 발치로 가서 편히 잠드소. ' 라고 외쳤건만 철조망 밑 고추밭만 하얗더라고. 넋이라도 바람타고 훨 훨 날아 가셨으려니 위안 삼고 돌아선다. 십년쯤 전 어느 잡지에서 읽은 ' 철조망 밑 고추밭이 하얗다'에서 읽은 기억에다 내가 살을 막 붙인 심파극에 모두 찔찔 짰다. 나는 안 짰다. 우린 그 정도 심파에는 만성이 되어서 눈물도 안 나지.
인일 아지매들의 저력은 일본땅에서도 빛을 발하는구나.
찬정아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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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신 김을 받았다.
우리 어머닌 그저 그런걸 잡수시면서 이 알량한 메누리한테
보내는건 아주 맛 좋은 上品을 보내신다.
그 김을 먹을 사람들이 우리 세 식구 말고도 많이 있는 줄 아시기 땜에.
' 금쪽같은 내 피붙이들이 의지가지없는 낯선 땅에서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건 다 주변에서
이리 저리 살펴주고 도와주는 덕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누어 먹거라. ' 그런 뜻을 담아
일년에 한 두번 보내신다.
' 우리가 즈그들 덕 본 건 뭐 있고, 도와준 건 뭐 있다고 ~ ' 그런 옹졸한 생각을 하다가도
울 엄니의 겸허한 마음이 담긴 김을 받고나면
'맞어. 잘 못 알아들은 눈치면 한번 더 말해 준 것도 신경써 준거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동과가 커서 다 못 먹고 시들려 버리면 아까우니까 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누어 먹고 싶었던 거였겠지.
내가 부득이한 일 있으면 흔쾌히 교대해 주는 동료도 있고,
별장에 초대해 준 남편의 동료에게도
남편이 나한테 늘 하는 말 ' 테니스 크럽, 탁구 크럽, 인디아카크럽 맨 노는 삼종셋트' 나카마도
아무리 저 좋아서 어울려 놀지만 다 고마운거지.
우리 어머니는 밥 한공기를 잡술 때도 고맙다고 하시고,
과일 하나를 잡술 때도 고맙다고 하신다.
새로 생긴 길을 지날때 " 이렇게 좋은 길을 닦는데 난 흙 한삽 뜬 적 없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 고 하셔서
우리를 다 웃겼지만 애 쓴 사람의 공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우리 엄니다운 생각이시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다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
나도 찬정이네 엄니처럼 생각하며 나이 들고 싶다.
명옥 언니
저도 맛있는거 해서 ' 맛있다 맛있다 ' 즐겁게 먹고
술도 한잔씩 하는거 좋아해서 심심찮게 일을 벌렸는데
언니앞에서 좀 뭣한 말이지만 연세가 드셔가니까(?) 점점 구찮아지네요.
넓지도 않은 일본 부엌 모두 나서서 도와준다고 설친다해도 정신없고
요리부터 뒷정리까지 도맡아 해야하니 ' 일이다 ' 싶어서 요즘은 꽤를 부리지요.
요즘 내가 좋아하는 모임은 각자 한가지씩해서 딴집이나 아니면 밖에서 만나는거예요.
그러면 한 두가지 넉넉히 해서 가지고 가지요.
언니 !
요새 웰빙이네 소문난 맛집이네 돈만 가지면 밖에서 편하게 먹을만한 집이 얼마나 많은데
뭘 집에서 만들고 그러냐고 밖에서 먹고 치우지 하는 사람도 많은데, 집에서 내 솜씨로
좋아하는 사람 불러서 오붓하게 나눠먹고 싸주기도 하신다는 언니 한마디로 감동입니다.
인디아카 라는 스포츠가 있어요. 생겨난지는 제법되었는데 보급이 안되서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배드민턴 셔톨 처럼 생겼는데 크지요. 그걸 손으로 쳐서 넷트를 넘기는 건데 게임은 배구의 룰 비슷하고 실내에서 해요.
땡볕에서 격렬하게 뛰는 테니스에 비하면 신선놀음 같긴해도 겨울에도 땀을 쫄쫄 흘려요.
지금은 테니스를 제일 좋아하지만 그게 격렬하다보니 나이든 사람들이 여기 저기 고장이
나서 살살 하거나 아주 그만 두는 사람도 많아서, 그런 때를 대비하여 좀 덜 격렬한 걸로,
2년전부터 주1회씩 죽어라하고 하는데 아직은 일인분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번번히 져요.
탁구도 그런 수준. 할 때마다 지고 그러면 자신도 스트레스고 팀한테도 미안해서 그 고비를
못 넘기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데 전 그 고비는 지났어요.
춘선 언니
지금까지는 우리 엄니 근력이 그만하고 우리가 이날 입때까지 멀리 살아서
'너는 내 빽이다' ' 어머니는 제 빽이예요' 서로 공을 세워주며 살았는데
앞으로도 그럴지는 저도 의문이예요.
내가 아는 어떤 이는 19년 전에 폐암 선고를 받고
네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겪어 내면서도
아직까지 직장에 다니며 굳건하게 생존하고 있다.
한쪽 폐는 이미 다 잘라내 버렸고
나머지 폐도 반 이상 잘라버려서 숨을 조금씩 쉬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
다들 그가 곧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측은하게 여기기도 하고 뒤에서 수근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가 고3이 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는 것만 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던 그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참.... 세상 일은 모르겠다.
그가 투병을 하는 동안에
참으로 건강해서 오래 살 것같던 사람들이 먼저 갔다는 사실이다.
운동 잘하던 사람, 승승장구하던 사람, 권모술수에 능하던 사람 등
그와는 견줄 수도 없이 건강한 지인들이 그보다 먼저 갔다.
그들을 배웅하러 문상을 온 그와 초상집에서 마주칠 때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명은 재천이라 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신비한 것이 <생명>이다.
우리 아는 분도 30년전에 간암선고 받으셨댄다.
그런데 골골 하시면서도 아직 멀정하신데 그 사이에 건강하던 동생 가고 부모님 차례차례 가시고.
"참으로 신비한 것이 <생명>이다"
이 말이 정답인 거 같다.
사람으로 태어 난 이상 노력을 하며 살자는 거지 살고 죽는 거야 우리 소관 아니거든요.
다시 돌아가서 찬정이 어머님의 훌륭하신 인품의 글을 읽으니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서 맘이 짠해진다.
내가 "아버님 반찬이 별로인데요" 하면서 진지 차려드리면
"무슨소리냐~ 하느님이 주신 음식 감사히 먹어야지.아프리카에선 굶어 죽는 사람도 태반인데~" 하시던 아버님~
아버님 때문에 속상했던건 생각 하나도 안나고 덕있으셨던 인품이 생각나는걸 보면 우리가 죽으면 남는건 재산도 아니요 미모도 아니요
바로 인격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우리 나라는 성형수술이 붐이지만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외모만 아니라면 주름살때문에 땡기고 뭘 넣고 하는건 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연륜의 아름다움은 왜 생각 못하는걸까?
나도 거울을 보면 늘어진 얼굴이 짜증나지만 글쎄~ 자연스럽게 늙어가는것이 더 곱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화림이 의견에 100% 동감이에요.
며칠 전에 읽은 신문기사 속에 이런 글이 있었어.
외국생활 오래하고 돌아와서 대학강단에 선 여교수의 이야긴데
제일 곤란한 게 강의실 학생들의 얼굴이 다 비슷해서 헷갈린다고.
얼굴도 비슷 머리도 비슷 화장도 비슷 옷도 비슷~~~~~~~~~~~~~~~~~~~~~~~~~~~~~~~~~~~~~~
나도 주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톡스부터 쌍꺼플 기타등등 조금씩 돈들인 사람들이 많은데
내 눈에는 조금도 나아진 게 없더라구.
오히려 다들 조금씩 무서워졌어.
푸근한 인상은 사라지고 땡겨올라가니까 상당히 사납게 보이더라.
자기들 말로는 시간이 좀 가면 자연스러워진다던데 몇 년 지나도 그렇더구만!
기껏 젊어져봐야 5, 6년 내외일텐데 60대가 50대 되고 70대가 60대 되는 게 뭐 그리 의미가?
난 7월초 검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제법 높게 나와서 내과에 가서 약먹으라고 주치의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월요일에 검사해봤더니 6개월전보다도 낮아져서 완전 정상이 됬더라.
기분이 좋아
지난 일요일
관료로 두루 두루 요직을 지낸 나카가와쇼이치(中川昭一) 전 재무상이 별안간 죽었다.
지난번 술이 덜 깬 몽롱한 모습으로 기자회견하던 모습 테레비에서 수도 없이 뵈 줄 땐
혀도 끌끌 찼었는데 이미 고인이 됐다 하니 불쌍한 생각이 많이 드네.
자기집 자기 침대위에서 죽었어도 확실한 직접적 사인은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만
어쨌거나 자살이든 급사이든 술이 원인인 건 확실하다.
평소에 술을 엄청 좋아하고 폭주를 해서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했다는데
결국은 지난번 로마 G 7재무장관 회담 후 기자 회견에서 술이 덜 깬 몽롱한 상태로
횡설 수설하여 국가적 망신을 산 게 치명타.
재무금융상 사직. 8선을 지낸 중의원인 그가 지난 선거에서 낙선
화병에 우울증에 자책감에 잠을 못 자고
조제된 수면제도 복용해야 했었다니.
이제 와서 소용없는 소리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런 충고를 했을 땐
부인은 얼마나 속을 썩고 잔소리를 했을텐데
왜 그놈의 술을 죽어라 하고 마시다가 결국 끝을 보고 말았을까.
' 저러다 끝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 나도 욕 삼아 뱉은 적이 여러번 있을 듯 싶은데
그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인 줄이야.
돌이킬 길 없는 사람은 이제 할 수 없고 이참에 나는
'씨잘데 읎는 참견' 이라고 다 뿌리치고 끝을 보러 달려 가고 있는 건 없는가 ~ ~
오늘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나눈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웃으면 복이 와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집니다.
내가 요즘 홈피 중독인 듯!(우리 아들의 표현)
어제 밤에 뭔가 달달한 게 먹고 싶어서 지난 번에 사둔 자유시간(쵸콜렡)을 찾으니 안보이길래
아들이 먹었나 싶어 묻는다는게 그만 "아들아 자유게시판 못봤니?"ㅎㅎㅎㅎㅎ
' '아들아 자유게시판 못 봤니? '
언니. 나 지금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어요.
아 ~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밍기적거리고 있으니 워쩌.
그제 밤에 우리 새애기가 전화를 했다.
양희가 양쪽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옷이며 형들에게 물려받은 못이며 장롱 가득 옷이 있는데
막상 지금 입힐 딱 맞는 옷이 없다고!
사러 가봤더니 더무 비싸서(여기 옷값을 아니까) 아까워서 못사겠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아기 옷을 딱 맞게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보이지도 않으니 큰거야 나중에 입히면 되지만 작으면 안되니까 다들 넉넉한 걸 사서 보내는 바람에ㅎㅎㅎㅎ
우리 양희는 지엄마 닮아선지 목이 길어서 조금만 큰 걸 입으면 휭하고 불쌍해보인다나?
상하 속옷, 바지, 칼라 달린 티셔츠 각각 2벌씩만 보내 주시라고.
쟘바는 많이 있댄다.
어제 아침에 마트 문 열자마자 사서 특급우편으로 보냈다.
빠르면 금요일에 들어가니까 주말에 입고 놀러가라고!
참 편리한 세상이에요.
고르다가 잘 모르면 전화해서 물어보고 하는데 이제는 여러번 사봐서 이쪽도 저쪽도 사이즈를 잘 알게 됬다.
아예 "바지는 베이지색으로 해주세요 "등등 주문도 구체적으로 한다.
이번 주말에는 새옷입은 양희 사진이 올라올 것이 기대된다.
양희에미는 양희가 아주 어릴 적부터 옷을 보내주면 크던 작던 반드시
그 옷을 입혀서 사진을 찍어서는 그 보내준 사람에게 메일로 보내주곤 한다.
덕분에 백일즈음에는 아주 바빴다. 여러 곳에 보내느라고.
내가 이렇게 인터넷을 해보니 사진 올리는 것도 보통 귀찮은 게 아니던데
양희가 태어나서 아직까지 아무리 바빠도 주에 두번은 꼭 올려주니 너무 고맙다.
다른 것 같으면 벌써 사양을 했을텐데 고 재미만큼은 도저히 단념할 수가 없어서 계속 즐긴다.
대신 엄청 좋다는 표현을 하니까 지네들도 재미가 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가산점이 팍팍 쌓이니까!
입 안에 거짓말이 가득 들어 있는 것같은 아이.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촛점을 잃은 눈빛.
아이의 자존감은 무릎 아래에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면서도 자기는 꿈을 찾아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단다.
꿈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돈으로 우겨 싸서 아이를 보낸 부모를 탓하고 싶어진다.
아이는 겨우 스무살인데 술과 담배와 나른한 향락에 취해 산다.
내 원 참....
"자유계시판 못봤니?" 했다구? ㅎㅎ 정말 미쳐부러~
덕분에 웃으며 자게 됬네. ㅎㅎㅎ
명옥아~
양희 너무 보고 싶지?
그 마음 아니까 사진 자꾸 올려.
예쁘다고 박수 쳐 줄게.
찬정이가 술 얘기 하니까 수다방에 쓰기는 좀 뭣하고 스쳐가는 일상란에 딱 쓰고 싶어진다.
그 놈의 원수같은 술~
술 냄새는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아는지 세탁기 속에다, 쌀통 속에다 별데다 다 숨겨 놓아도 결국은 찾아서 마셔댄다.
마시다 놓아둔 술을 난 보기만 하면 개수구에 버려 버렸다.
그러면 우리 남편은 아까운 술 버렸다고 난리가 나고~
한 일년간 잠적해 버릴까? 이혼을 할까? 차라리 빨리 죽어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말이 많이 위로가 됬었다.
요즘은 우리 남편 그야말로 개과천선 이뻐 죽겠다.
벌써 일년 반째 그 죽고 못살던 술 딱 끊고 한방울도 안마신다.
무지개 신부님이라고 알려진 차신부님 사목정보지 영역해 드리고 한달에 얼마간 용돈도 받는다.
오늘은 신부님이 멋진 양초 선물해 주시고 오래 사시라고 했단다.
외국 가서 강의 할 예정인데 통역해 달라고 ~
컴을 남편이 쉴 때만 쓸 수 있어 불편하긴 하지만 얼마든지~
용돈 받아 우리 예은이 축구화도 사주고 나 맛있는 밥도 사준다.
인생에 이런 반전이 있어서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고 했던가?
살아보니까 우리가 힘들어하거나 좋아하는 건 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더라구.
과거는 점점 미화되어서 자서전은 다 근사하지.
미래란 그냥 그렇게 상상하는 건데
현재가 좋으면 다 좋은거야.
그러니까 화림이는 지금 세상에 부러울 게 없겠다.
3동언니들 표현에 형부들이 한분은 칼날 사촌이고, 또 한분은 칼날 그 자체 셨다는데 세월지나서
암튼 행복들 하시댄다.
내가 속으로 우리집 생각을 하니까 이건 수류탄이라 폭발하면 사방에 파편이 튀거든.
근데 너무 조심을 해서 싸뒀더니 녹슬었나봐.
안전핀이고 뭐고 뭉글어져서 고철이 됬는지 아님 술을 너무 마셔서 녹았는지
암튼 위험물건이 아닌 거 있지? ㅎㅎㅎㅎ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오늘은 편하네요.
그래~ 명옥아~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 난 좋아.
고통도 껴안고 살아내면 다 추억이 되나봐.
"종이 시계"라는 책에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싱거워진다는 표현이 기발난 표현이라 생각했어.
이 동네에서 살기 시작한 지 25년째.
효자 시장, 통인 시장이라 불리운 그 시장은 반듯하게 고쳐놓은 지금과 달리 전형적인 옛 시장이었다.
보통 때는 사람들의 발길로 단단한 흙길이었지만 비가 오면 쳐놓은 천막 사이로 흐르는 물에 온 시장이 질척거렸다.
규모는 작았지만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거의 먹어 보았던 그 시루 팥떡. 그 때도 있었다.
그 때 그 아줌마 정말 고운 아낙이었다.
그 초라한 시장에 들어갈 자리도 없어 시장 바깥 길가에 앉아 더덕, 콩, 팥 등을 파는 노인 부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더덕을 까고 할머니도 옆에서 같이 까거나 콩을 까거나 하였다.
두 분이 말을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거의 한몸인 것처럼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그 때 할머니의 표정은 아주 편안했고 후덕해 보이기까지 했다.
10년 전 쯤,
그 전날 보았던 할아버지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죽었어요. 저녁 잘 잡수시고-
헐머니는 서러워하지도 않으며 담담히 말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할머니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할머니 옆에서 말없이 손발이 돼 주었고 흡족히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인지 여한이 없어 보였다.
그저 그대로 평온했던 할머니의 얼굴.
할머니는 변함없이 할머니의 터전에 앉아 하루종일 더덕을 깠다.
온화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참! 할머니는 한 번도 이것 사세요 저것 사세요 한 적이 없다. 파는 물건이 몇 개 되지도 않았지만 할머니 성격이 그런 듯 했다.
올해 할머니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할머니의 나이는 햇빛 가릴 곳도 없는 길바닥에 하루종일 앉아 더덕을 까기에는 많이 힘든 나이이기도 했다.
처음 뵐 때도 이미 60이 넘어보였으니까.
할머니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이유는 딴 데 있었다.
할머니와 한 이 미터 떨어진 곳에 할머니 또래의 새 할머니가 앉아 똑같이 더덕을 까서 팔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참 잘 됐다, 친구 생겼네 했다.
여기서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밥도 같이 먹고 말동무 하면서 지내면 좋겠다, 어차피 할머니한테 사는 사람은 사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할머니는 불평하고 투덜거리고 눈을 흘기며 이 할머니를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볼 때마다 화가 나 있었다.
새할머니는 눈치보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더덕만 까고 있었다.
할머니는 얼굴이 점점 변해갔다.
입이 쑥 나오고 뺨이 풀거지고 눈이 험상궂어졌다.
그리고 이것 저것을 가리키면서 -이것 좀 사 응? 저것 좀 사 응?- 하는 것이었다.
요즘 그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그 새 할머니한테 물어보니 별로 안타까워 하지도 않는 얼굴로 아파서 못 나온대요 한다.
질투나 시기가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상대를 누르고자 하는 데서 오는 힘이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원동력이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도 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 안타깝다.
사랑이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아낌없이 주는것.
준 후에도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게 되는 것.
이것은 어느 화장실 문에 붙어 있던 글귀인데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사랑의 상처는 모두
되돌려 받고픈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사랑이란....
아무 조건없이 주고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려야 완성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