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싸이’에서 보자.”
여대생 이민경씨(24)는 친구들과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 이렇게 바뀌었다.
‘싸이’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페이지(미니홈피)를 지칭하는 말.
싸이월드가 생긴 이후 친구들끼리 연락하는 방법이나 노는 법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 이씨의 말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에 따라 미니홈피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사용 연령층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올해 1월 말 530여만명이던 싸이월드 회원 수는 6월 말 현재 900여만명으로 늘었다. 5개월 동안 370여만명이나 늘어난 것. 1인당 미니홈피 체류시간도 같은 기간 월 245분에서 400분으로 늘었다.

∇대한민국 20대의 인명 데이터베이스=건국대에 다니는 정혜영씨(23)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른바 ‘소개팅’을 하기로 한 상대가 자신의 미니홈피 이벤트에 떡하니 당첨됐기 때문. 싸이월드의 ‘사람 찾기’ 기능을 이용해 상대방이 정씨 몰래 미니홈피를 다녀갔던 것이다. 정씨는 “소개팅 전에 싸이월드에서 상대방을 검색해보고 미팅 참석 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를 들어봤지만 이렇게까지 만연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인터넷 카페에서 유럽 배낭여행에 동행할 친구를 모집한 대학생 김지선씨(24)는 지원자 심사에 ‘사람 찾기’ 기능을 활용했다. 일일이 지원자의 홈피를 방문해 인상이 좋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선발했다.
“제 또래는 싸이에서 검색하면 어김없이 나옵니다. 싸이월드가 특정인의 얼굴, 인간관계, 취미까지 엿볼 수 있는 인명 데이터베이스(DB) 역할까지 하는 셈이죠.”

∇인간관계 튼튼히 해주는 또 하나의 네트워크=생일날 싸이월드에 접속했던 직장인 김지현씨(29·여)는 동료들이 생일선물로 보내준 수많은 음악파일과 ‘홈피 벽지’ 때문에 즐거웠다.
김씨는 “오프라인에서는 생일을 챙겨주기 어렵지만 인터넷으로는 부담 없이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업체 에델만코리아의 이중대 과장(32)은 명함을 건넬 때 싸이월드 클럽 주소를 적어준. 현재 이씨 클럽의 회원 수는 317명. 대부분 동료와 비즈니스 상대들이다.
“업무상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클럽을 통하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끼리 손쉽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
이씨는 자신의 회사생활 모습부터 업무 자료, 구인공고까지 클럽에 올린다. 회원들은 그 자료를 각자의 홈피로 옮겨놓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자녀 생활이 궁금해 미니홈피 찾는 부모들=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최모씨(48)는 얼마 전 20대 아들에게 미니홈피에 있는 ‘일촌(一寸)’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가장 가까운 지인을 뜻하는 ‘일촌’이 되면 자신의 생활이 속속들이 노출된다는 것이 아들의 거절 이유였다.
하지만 최씨는 고등학생인 딸의 ‘ID’를 빌려 아들이 ‘일촌’들에게만 공개한 여자친구 사진과 평소 자주 가는 장소를 모두 알아냈다.
딸을 캐나다로 어학연수 보낸 배병준씨(52)는 어학연수 기간 딸의 생활이 궁금해 아들의 도움을 받아 딸의 미니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있다.

미니홈피의 이러한 인기는 부작용도 동반하고 있다. 검색기능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스토킹’을 당하는 경우나 미니홈피 관리에 시간이 많이 들어 일이나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니홈피의 인기 이유에 대해서는 타인의 생활을 엿보려는 관음증적인 심리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픈 욕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미니홈피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점차 연출적인 요소가 많아질 것”이라며 “비슷한 취향을 가진 미니홈피가 뭉친 포털 형태의 미니홈페이지 등장도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이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유재인씨(이화여대 광고홍보학과 4년)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