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불행하고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코 외롭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늘 감시히는 미음을 갖고 철학자 같은 마음으로 산다.
내가 진실로 원하면 모두 얻었고,
안되면 "아~~하느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네" 하고 곧 포기한다.
난 자존심은 강해도 고집은 없다.
잘되면 내 능력, 못되면 하느님 뜻!
세상은 幸과 不幸이 같은 量인 것 같다.
그래서 느닷없는 행운이 찾아오면 경계하고 조심해야한디.
속부터 겉에까지 행복한 인간은 없다.
고통은 행운이 찾아올 전조 증상이다.
그래서 고통도 즐기며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동생들에게도 늘 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남동생 모르게 여동생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했다.
내 보기에 여동생은 너무 많은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아 "겸손하라""잘난척 하지 마라" 충고 했다.
아들,딸이 모두 뉴욕의 명문대학을 졸업후 뉴욕에서 의사가 되었다.
이건 분명 행운인데 조심해야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억대의 돈이 여동생에게 흘러 들어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동생이 늙고 병든 언니 괴롭히지 말라고
카톡 문자를 보냈더니 나한테 분통을 터트리고, 여동생이 의절을 선언했다
그래서 여동생의 행운은 나와의 의절(이건 아마도 고통)로 본인(여동생)이 끝을 냈다.
이게 바로 그 "제로의 법칙" 이구나
이제부터 언니의 지원은 끊어질테고 자신은 가족을 그리워하겠지?라는 생각은 들었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통입니다.
지금 저는 여동생을 그리워합니다.
마음도 아픕니다.
핏줄, 혈연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빠한테 한마디 들었다고 언니인 나와의 인연을 끊어?
어리석은 것!
생각지 못한 행운이 들어오면 경계하시고
고통은 행운이 곧 뒤따라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행운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선행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봉사, 나눔, 기부 등등
예전에 TV에서 지금은 무당이 된 어떤 남자 탈렌트가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K여배우의 관상과 사주를 보면서
"지금은 돈도 많고 잘 살고 있지만 말년운이 나쁘다며 많은 선행을 해야 나쁜 운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아름다운 K여배우는 많은 기부 활동과 모범적인 행동만 합니다.
원래 성품이 좋았던 여배우였는지 아니면 다른 점성가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들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말년운이 더 좋은 사람도 있고, 사주팔자에 평생운이 좋은 사람도 있다고 대학시절에 내장사로 답사갔다가
주지 스님에게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들 모두 주지 스님에게 자기들에 미래를 알려 달라고 떼 쓰던 생각이 납니다.
몇일 동안 내장사에서 숙식을 했는데 깜작 놀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이 가발을 쓰시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외출하시더라구요.
당시에 가발도 승용차도 흔한 일은 아니었거든요.
거기다 스님들은 아침마다 자기 머리는 자기가 깎더라구요
아니 정확한 표현은 긴칼로 머리를 면도를 하더라구요
제가 친구들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와 ~ 중은 제머리 제가 깎는다."
한마디로 주책을 떤거지요
우리가 몰려가서 구경하니 스님들이 머쓱해 하더라구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밤이면 스님이 감, 밤 그런 것들 갖다 주며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관상도 봐주고, 손금도 봐주고,
늦가을 내장사의 단풍은 장관입니다.
그 후에 그 남자탈렌트는 신내림을 받고 현재는 박수무당이 되었습니다.
무당이 되기전에 신끼(神氣)가 오는 사람의 예언이 제일 정확하다고 합니다.
저는 캬톨릭 신자인데 우리의 민간신앙을 아예 무시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전 역사 교사였는데 역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사건들이 있었어요.
착한일 많이 하셔서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福
난 여동생의 삶이 부럽습니다.
행운은 그 아이한테만 가는 것 같아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아무것도 아닌 오빠의 카톡 문자로 화를 내니 그 아이가 고통을 받을 것 같아 마음은 편했습니다.
'고통과 행운의 량은 같다' 생각이 제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아프거나, 사업이 망하는 이유로 고통 받는 것보다 형제와 잠깐 외면하고 사는 것은 세월이 가면
해소될 일이니 잠깐의 마음고생(고통)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빠한테 야단 맞고 왜 나한테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되기는 하지만 잠시 헤어져 지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혈육 관계는 언젠가 다시 회복 되니까요
제 여동생은 조직 생활의 비논리적인 명령, 비인간적인 지시 등을 모릅니다.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수업 시간중인 학생들을 하루종일 교문에 세워 놓거나 안내하는 일을 지시했습니다,
행사 장소까지 화살표로 붙여 놓으면 될 것을 왜 학생을 고생 시키지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난 학생부에 심하게 항의해서 우리반 학생들을 수업 시간에 빼내는 일을 막았습니다.
초기 철없는 교사 시절 야단도 많이 먹었습니다.
물론 부당하게 야단을 맞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비오는 날 우산 없는 학생들 하교시켰다고 야단 맞고,
학생이 빨간 양말 신었다고 야단 맞고,
여교사가 티셔츠 입고 출근 했다고 야단 맞고
그때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 만나면 서로의 스토리를 끝도 없이 이야기
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당시의 괴로움도 새월이 많이 지나니 즐거운 추억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