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당신은 단지 조금 숨을 쉬면서 그것을 삶이라고 부르는가?'


친구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 시간은 늘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번 달 함께 읽은 책은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인생에 대해 던진 여러 질문들에 대한 깨달음을 51편의 에피소드들로 엮은 산문집이다.


젊은 날엔 류시화의 글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나이들어 읽으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더라는 한 친구의 감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친구들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글은 퀘렌시아이다.


퀘렌시아는 투우장에서 지친 소가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힘을 모으기 위해 찾는 일종의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한다고 한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으로 퀘렌시아는 장소를 의미하지만 때론 시간이나 활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가장 나답고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나에게 퀘렌시아의 시간은 언제인가?'


늘 많은 가족들과 북적이며 살아야 했었던 한 친구에겐 잠시나마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차를 마시거나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면, 다른 친구에겐 토요일 직장에서 퇴근하여 저녁 밥을 준비하기 전까지의 낮잠이 퀘렌시아가 되었다.

직장과 가족이 전부라 생각하는 한 친구에겐 돌이켜보니 퀘렌시아가 없었고 그런 삶이 힘들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노라는 의견도 있었다.

젊은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삶에 여유가 생기니 퀘렌시아가 달라지더라며 몇 년째 계속해오는 감사 일기 쓰기, 성경 말씀 쓰기와 묵상이 퀘렌시아가 된 친구도 있었다.

걷는 시간이 좋다며 음악도 듣지않고 특별히 생각하는 것도 없이 걷는 동안 마음이 비어지는 것을 느낀다는 친구에겐 걷는 그 시간이 퀘렌시아가 아닐까?


여행과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오디세이아>를 언급하며 오딧세이가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긴 여행과 모험을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저마다의 이타카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비유했다.


삶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 속에 진정한 묘미가 있다며 목적지란 사실 그곳에 이르는 여정의 경험을 위한 설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목적지로 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즐거웠냐고!

삶의 여정의 매 순간을 즐기고 감동했는가?


한 친구에 의하면 늘 함께 다니는 여행친구가 있는데 둘은 여행 취향이 너무 다르단다.

맛 탐방을 즐기는 그녀의 친구는 유명지 음식을 먹기 위해 먼 길을 돌아서라도 꼭 가기를 원했고, 유적지 답사를 원하는 그녀는 그런 요구가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서로의 다름을 불평하며 비난으로 여행을 망칠 것인가? 

아님 다른 취향 덕분에 나라면 하지 않았을 새로운 경험을 즐길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얼마 전 강릉을 다녀온 친구는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람과 한 곳에 머물며 함께한 시간이 주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을 했다.


그 친구의 말에서 마틴 부버의 인간이 맺는 두 종류 관계가 떠올랐다.


오래 전 마틴 부버의 <나와 너>를 읽으며 참 어려운 책이라 생각했었는데 

류시화씨는 그 핵심을 간결하게 요약하여 들려준다.


인간이 맺는 두 종류의 관계란 나 - 너의 관계와 나 - 그것의 관계이다.

나 - 너의 관계가 인격적 관계라면, 나 - 그것의 관계는 기능적 관점에서 맺는 인간관계다.

나 - 너의 관계는 온 마음을 기울이는 관계이며, 사랑의 관계이고 너를 나의 의도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인간관계에서의 가장 큰 상실은 나 - 너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상대방을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여기는 나 - 그것의 관계가 많아지는 것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였기에 사람과의 만남은 여행의 이유이고 목적이었을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저자가 만났다는 일본인 여행객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이 50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집을 팔아 재산의 절반을 아내에게 주고 이혼한 후 여행을 떠났다는 일본인에게 그 이유를 묻자 '행복하지 않았다'라고 답을 한다.

그에게 맞지 않는 직업, 맞지 않은 조직이었고 그의 영혼에 맞지 않은 아내였다. 


내가 그라면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견디고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는가?


저자는 말한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스스로를 무시하며 산 것'이란다.

너의 가슴을 뛰게 한 기억들, 네가 삶을 최대한으로 산 모든 기억만이 너의 것이라고...

너의 삶을 살아라.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삶이 주는 모든 경이로움을 즐기고 예찬하고 감동하라고 부추긴다.

사는 것이 시시하게 느껴지거나 권태롭다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 오늘 놀라운 일은 무엇이었는가?

- 오늘 감동받거나 인상 깊은 일은 무엇이었는가?

-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런 건 없었다고 빠르게 답하지 말고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란다.


한 시절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과 이별을 해야 했다.

세상의 모든 유행가는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세상이 온통 슬픔으로 무채색이었다.

더 이상 내게 기쁘거나 행복할 일은 없을거라 속단했다.

고인 듯 보이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내 인생도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그 해 봄 나무에 돋은 여린 잎을 보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게 감사하고 경이로웠다. 지금도 봄이 되면 그때 그 봄을 맞던 기분이 살아난다.


특별해야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에서도 경이로움을 느끼며 

죽기까지 삶의 신비에 감사하고 감동으로 설레이고 싶다.


저자는 여행길에서 되도록 긴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라고 조언한다.

목적지에 이르는 지름길이 아닌 우회로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고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 삶의 스토리가 되고 즐거움이 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맛이 아닐까?


오직 보고자 하는 것만 보기를 원했기에 여행길이 주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여행길의 불쾌한 기억만 되새김하는 여행객들은 얼마나 딱한 사람들인가?


때로 신은 길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친구들에게 깊은 인상은 남긴 또 다른 에피소드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미소짓게 한다면'이었다.

양로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추억이 서린 도시 곳곳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삶의 마지막 집이 될 양로원에 대한 생각이 양가적이다.

삶에 대한 해답은 삶에서 무엇을 경험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다며, 

자신은 양로원에 들어갈 때 무엇을 추억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는 친구 말엔 슬몃 웃음이 나왔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던 친구도 있었다.

웬지 그날따라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싶어 더운 물로 몸을 닦아드리고 

아픈 몸을 위로해 드렸는데, 그게 마지막 작별이 되었단다. 


사람에게 헌신적이고 베푸는 삶이 몸에 밴 그녀처럼 세상을 친절하게 대하고 싶다.

친절이 메아리되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는 귀절을 읽으며 옛 동료를 떠올린 친구도 있었다. 

늘 불평이 많고 남을 비난하던 그 사람을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멀리했는데 그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일방적으로 나쁘게 생각한 것이 새삼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화가 나면 소리지르는 경험을 다르게 체험한 친구도 있었다.

직장에서 중책을 많으며 그녀가 한 결심은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것이었다.

갈등이 예상되는 결정들에 대해 이견을 거칠게 항의하는 동료들도 화내지 않고 들어주고 조근조근 말하는 그녀에게 결국은 슬며시 화를 내려 놓더라고....

늘 생각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삶의 지혜가 참 깊다.


알아차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친구도 있었다.

사람들과 모임에서 많은 말을 하고나면 늘 개운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단다. 

불필요한 말들을 많이 한 것은 아닌가? 후회할 때가 많았는데 이 글을 읽으며 그 이유를 깨달았단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본래에 나는 생각들이 아니라 그것들의 관찰자이다. 그 '나'의 알아차림이 없으면 생각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현존이 아니라 끊임없는 중얼거림이 일상을 차지한다'


그 친구는 결국 저자가 일관되게 말하는 주제는 '카르페 디엠'이 아닐까하는 의견을 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의 의미를 한 때는 '현재를 즐겨라'로 생각했으나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이곳에 존재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과거를 지고 다니지 말고 미래를 염려하지도 말며 지금 내가 머문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카르페 디엠의 참된 의미일 것이란 말에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찻 잔속의 파리'도 읽으며 유쾌했다.


인도를 배낭여행할 때 현지인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는 'No, problem'이다.

그때 종종 든 생각이 나는 'problem'인데 너만 'No, problem'이면 어쩌냐고...


한 여자가 티벳 승려들과 회의를 하는 도중 파리 한 마리가 그녀의 찻 잔속에 빠졌다.

순간 미간이 찡그려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티벳 승려인 린포체에게 그녀는 '그저 파리가 찻 잔에 빠졌을 뿐' 'No, problem'이라 대답했다.

그 때 린포체가 손가락을 넣어 조심스레 파리를 건져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더니 기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파리는 이제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No, problem'의 기준을 누구에게 둘 것인가?

그 기준이 나에서 타인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로 사고의 중심축을 옮겨 생각하는 것이 유쾌했다.

'나 괜찮아'에서 '당신도 괜찮은가요?'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기분 좋은 일이 얼마나 많아질까?


가슴이 훈훈해지던 또 하나의 이야기는 남아프리카에 산다는 바벰바부족의 이야기다.

이 부족에서는 구성원 중 잘못을 저지른 이가 생기면 잘못을 저지른 이를 마을 광장에 서게 한 후 온 부족이 모여 그를 둘러싼 큰 원을 만든단다.

그리고 돌아가며 부족원들은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행한 좋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한단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낸 후에는 즐거운 축제를 열어 잘못을 행한 구성원을 다시 일원으로 받아들여 환영해 준다는 이야기는 꼭 동화같았다. 

이래서 작은 사회가 아름답다니까.


친한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할 언행으로 '충조비판'을 꼽은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충고나 조언, 비난이나 판단은 관계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우리 사회엔 스승이나 비평가가 너무 많다.

때론 그저 들어주고 내 안의 좋은 점을 상기시켜며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연조직염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세균감염으로 추석기간 고생한 친구, 

산에 갔다 발목 골절을 입은 친구, 

강화된 농지법으로 일이 곱절이나 늘었다는 친구,

아직도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중인 친구들아


인생 새옹지마라고 삶의 양면성을 생각하고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꾸나.

다들 얼른 나아라.


10월엔 예고한대로 박혜윤이 쓴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자.

이 시대에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 참 빠르다.

벌써 10월이라니....

이렇게 만나지 못하고 세월이 흐르는 것에 회장의 고민이 깊더라.

그래도 우리에겐 단톡이 있고 이야기를 나눌 홈페이지도 있어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갱신되는 시기이니 서로 조심하고 살자.

건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