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소설집 <65세> 작가의 말
65세 - 작가의 말
새벽에 잠이 깨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습니다. 새벽이면 목청껏 울어대는 수탉 소리와 한꺼번에 지저귀는 새소리에 익숙하지 않아서입니다. 자동차 소리에는 무디었는데 자연의 소리에는 예민합니다. 아직 자연과 친해지지 않아서입니다.
꿈이 아닌가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로 흘러들어온 순간부터 날마다 이 날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나는 지금 자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연의 순환을 느낍니다. 먹던 밥도 이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아닙니다. 닭이 먹고 새가 먹습니다. 그들이 먹고 배설한 것을 풀이 먹고 그렇게 자란 풀을 내가 뜯어 먹습니다. 배추 뿌리조차 버려지지 않고 두엄더미에서 퇴비로 만들어집니다. 도회에서 산다는 것은 온통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먹고 살아갑니다.
우리 집 식탁은 밭이 꾸며줍니다. 꺾어 먹은 아욱이 자라면 아욱국이 오르고 오이가 먹기 좋게 자란 날은 오이 무침입니다. 가지도 며칠에 한 번씩 찜으로 무침으로 식탁에 오릅니다. 그것들은 더디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꼭 내가 먹고 싶은 만큼만 자라줍니다.
초하의 텃밭은 온갖 생명들의 축제장입니다.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어떻게든 자라서 씨를 남기려고 아우성치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쑥갓 꽃이 피면 그곳이 텃밭인지 꽃밭인지 알 수 없습니다. 텃밭도 꽃밭같이 예쁩니다.
내 밭에 열리는 야채들은 문명의 그늘 속에서 자라는 촌부의 모습입니다. 마켓에서 파는 것처럼 미끈한 야채들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예쁘지는 않지만 농약 한 번 쏘이지 않은 야채들은 더러는 죽고 더러는 남아 날마다 우리 집 식탁 위에서 제 역할을 하니 기특할 뿐입니다.
육 년 만에 나오는 작품집입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쓰였습니다. 내 작품 역시 문명의 그늘 속에서 자란 촌부처럼 투박하지만 자연과 생명의 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넋이 되어 김포 벌판을 떠돌고 있을 젊은 날의 친구와, 지금도 갓길 어딘가에서 노래 부르고 있을 친구와, 그리고 이 땅의 모든 65세에게 바칩니다.
2021년 2월
강 명 희
.
저의 세번째 책소설집 <65세>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첫 번째 책 <히말라야바위취>라면
돈과 욕망에 마른 장마처럼 황폐화 되어가는 인간군상을 그린 두 번째 책이 <서른 개의 노을>입니다.
노인 원년에 나온 세 번째 책 <65세>는 시골에서 인생을 관조하며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고자 했습니다.
자식으로 치면 세째입니다.
세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인지 세 번째 작품집 <65세>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말합니다.
책이 나온 지 일주일이 되어갑니다.
인일 홈피 시절 하루종일 홈피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주로 이 칼럼란에서 놀곤 했지요.
등단을 하고 첫 번째 책이 나오고 두 번째 책이 나올 때도 이곳에 제일 먼저 신고를 했습니다.
저의 세 번째 소설집 <65세>가 세상에 나왔음을 신고합니다.
인일 동문님들의 관심과 사랑 부탁합니다.
다음은 제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독후감입니다.
강명희선생님의 소설집 《65세》를 읽고
어제 저녁식사 후에 식탁에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고 재미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 나이도 52세인지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어느 정도는 모르는 것이 없다 싶었는데,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한 방씩 얻어맞았다. 얻어맞는데 통쾌함이 있었다. 노인 세대를 전형적으로 그리지 않아서 넘 반가웠다. 젊은 페미니스트가 이야기하는 것의 반대가 아닌 '넘어섬'이 있어서 좋았다.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솔직해서 좋았다.
이 소설이 다루는 소재들이 매우 일상적이며 잔잔한데도 재미있는 이유는 기묘한 장치가 숨어 있어서다. 그 장치에는 웃음도 있고 세상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도 있고 용기와 지혜도 들어 있다.
<그녀가 세상을 건너는 법>의 주인공은 바람피운 남편한테 버림받으면서 딸과 함께 생활고에 내몰렸지만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이혼한 남편이 다시 합치자는 연락을 해오는데 여러 번 거절을 하긴 했지만 결국 받아들인다. 집도 주고 연금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면 너무나 통상적이고 뻔한 스토리인데,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이걸 알게 되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를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픈 손가락>에는 정말 슬프고 답답한 이야기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들은 어디서 들어봤을 만한 일들이다. 우린 대부분 그런 비극을 끌어안고 살다가 점점 망가져서 답답하게 죽어간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정말 놀라운 방법으로 숨통이 트인다. 대를 이은 가정폭력, 분노, 내 잘못이 아닌 환경의 변화, 내 안에 사는 악마를 잠재울 수 없는 고통... 이런 것들을 눈 녹듯 녹아내리게 하는 그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지난 여름날의 판타지>에도 예상치 않은 여성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런 캐릭터는 정말 난생 처음이다. 낯설게 하기의 미학은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적용가능하다. 어쩌면 이런 캐릭터에 내가 매료되는 것은 너무 뻔한 캐릭터가 아니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닌 저기 저만큼 저 산등성이를 훨훨 넘어가 버린 것 같은 그런 캐릭터. 그런 모습에서 나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누리는 것이다. 우린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어제 읽은 이 소설 이야기를 죄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하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될 터이니 꾹 참고 요렇게 몇 가지 힌트만 남겨놓는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작가는 매우 모범생인 듯 하면서도 엉뚱하고, 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갖고 있으면서도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다. 이런 균형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토록 새롭고 참신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란 불가능일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들이 큰 박수를 받으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은 것은, 그런 이야기가 쉽게 빛을 바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한껏 괴이한 멋을 부리고 괴이한 취향을 뽐내며 참석한 가장무도회처럼 부풀려져 있는데, 그 파티는 새벽이 오기 전에 끝날 예정이다. 뜨거운 열기가 뭔가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지만 어딘가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은 해소할 길이 없다.
강명희 작가의 소설집 <65세>는 그런 점에서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이 소설을 통해 세대차를 넘어서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늙어가는 이들에게는 가슴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