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매 맞은 밥
김 희 재
“이것도 매 맞은 밥이에요?”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매 맞은 밥이라니?
교회 영어예배부에서 주관하여 외국인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한국 DMZ 평화 생명 동산’에서 1박을 하고,
양구에 있는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냇강체험마을을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했다.
한국문화체험행사였다.
아프리카 르완다를 비롯하여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베네수엘라, 루마니아,
캐나다, 미국, 몽골 등 다양한 언어를 쓰는 피부색 다른 사람들이 함께 떠났다.
영어예배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물론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 충남대, 한남대 유학생과
서울 감리교신학대학에 다니는 신학생까지 두루 참여하였다.
DMZ 인근 풍경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놀랐다.
사람의 발길이 멈춘 곳에서 다툼없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질서가 경이롭다.
협궤열차를 타고 제4땅굴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통역장교가 정중하게 영어로 브리핑을 해주었다.
북한이 맨눈으로 보이는 을지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학생들은 진지하게 경청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구상에 하나 남은 분단국가의 접경에 와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텔레비전에서 보아 익숙한 곳에 오니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마음이 착잡하다.
만감이 교차한다.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땅이 황해도라는 설명에 ‘가본 적 없는 고향’이 사무치게 그립다.
휴전선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며 평생토록 마음속에 봇짐을 싸놓고 사셨던,
끝내 두고 온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친정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오는 길에 냇강체험마을에 들렀다.
여러 가지 전통체험 프로그램 중에 ‘떡메로 쳐서 인절미 만들기’와 ‘수수부꾸미 만들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인절미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나무로 된 떡판에다 잘 쪄낸 뜨거운 찰밥을 쏟아놓았다.
힘 좋은 외국 젊은이들과 말로만 잘하는 한국 어른들이 돌아가며 떡메를 쳤다.
하지만 차진 밥에 짝짝 달라붙는 떡메를 이기기 힘들었다.
체격 좋은 장정들도 몇 번 치고는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다.
교대로 돌아가며 밥알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찰밥을 짓이겨 뭉개느라 다들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면서도 연신 하하하 호호호 즐거워했다.
요령이라곤 하나도 없이 온 힘을 다해 만든 것이라 모두에게 더없이 귀한 의미가 되었다.
판에 넓적하게 펴서 뚝뚝 떼어주니 각자 개성대로 모양을 만들어 콩고물에 묻혀서 인절미를 완성했다.
그렇게 마무리하는 사이,
나는 여학생 몇을 골라 수수부꾸미를 만들 조리실로 데리고 갔다.
체험 마을 주인장이 미리 가져다 놓은 익반죽을 떼어 동글납작하게 잘 펴서 기름칠한 프라이팬에 올렸다.
양면이 다 익도록 두 번 뒤집어 준 후에,
그 위에다 잘 삶아 간 맞춰 놓은 팥소를 놓고 반으로 접어서 반달 모양을 만들었다.
시범용 부꾸미를 만들어 막 꺼내고 있을 때,
직접 만든 인절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다들 어디서도 먹어 보지 못한 흥겨운 맛에 취해 있었다.
내가 하는 것을 미리 본 여학생들은 각 테이블의 조장이 되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른 청년들이 수수부꾸미로 대동단결하여 웃고 떠드는 모습이 흐뭇하다.
이번 여행으로 그들이 한국을 더 많이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수수부꾸미 만들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카이스트에 다니는 루마니아 남학생이 슬그머니 다가와 자기가 만든 것을 먹어 보라고 건넸다.
내가 한입 베어 물자 어깨를 으쓱하며 서툰 한국어로 이것도 매 맺은 밥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평소엔 대충 단어만 나열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던 한국어 선생이 자꾸 되묻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몽둥이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나는 그의 말뜻을 알아챘다.
방금 마당에서 인절미를 만들어 본 터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즉, 그는 내게 ‘이것도 떡이에요?’(Is this a beaten rice also?)라고 물은 것이었다.
머리 좋은 외국 청년의 기발한 표현이 아주 적확하여 박수가 절로 나왔다.
내가 그의 말을 되뇌며 웃으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따라 웃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사람도 덩달아 큰소리로 같이 웃었다.
덕분에 한국문화체험행사는 큰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울적했던 내 마음도 싹 다 풀렸다.
앞으로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떡을 ‘매 맞은 밥’이라고 하는 것도 재밌겠다.
김희재 : 수필가. 계간수필 천료 (1998년).
미국 플로리다 탈라하시 한글학교 교장. 한남대, 육군대 한국어 강사 역임
저서, 산문집 <죽변 기행> 여행에세이 <끝난 게 아니다> 외 공동 수필집 다수.
계수회, 수필문우회, 한국문협, 국제PEN 회원.
이 글은 <계간 수필 2020, 여름호>에 발표한 것입니다.
몇년 전에 다녀와서 초고 써놓았던 글을
이번 여름호에 원고청탁을 받고 수필로 완성했어요.
막상 대전을 떠나고 보니 모든 것이 다 그립고, 당연했던 일상이 추억이네요.
주일마다 외국인들과 영어예배를 드리고
일년에 두어번은 꼭 문화체험행사를 했던 일도 꿈처럼 아득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