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60이 됐을 때 `60이라니`라는 졸문(拙文)을 썼었다
육십이 됐을 때는 아니 벌써 육십이 됐어 하는 황망스러운 기분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흘렀다 이제 칠십이 되었다
그래 나 칠십이야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체념적이고 자조적인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옛날엔 칠십까지 사는 건 매우 드믄 일이었다
요즈음은 어느 명철하신 100세 철학자 덕분에 칠십이면 너무 젊은 양 비춰진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육십에는 하지 않았던 병원 순례가 시작됐다
친구들과 만나도 대화는 아픈 얘기 일색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싫은 유비무환 정신으로
건강지키기가 삶의 중요 포인트가 됐다
건강이 중요한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건만
몸이 말하는 소리를 이제야 귀기울여 듣게된 것이다
그래서 건강제일주의자가 돼 신체 건강을 유지해간다고 치자
정신건강은 노력없이 팔팔하게 유지될까
백세 철학자를 보면 정신건강이 육체건강을 리드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나이와 성숙도가 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
나이만큼의 성숙도를 갖춰야 정신건강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심신건강의 균형을 갖춘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선진국이 아닐까 한다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먹은 나이로 또는 재력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
소위 시쳇말로 갑질이다
70 즈음에 드는 생각,인생 참 골고루다
ㄱ은 아들때문에
ㄴ은 딸 때문에
ㄷ은 남편 때문에
ㄹ은 ㅁ은......(ㅎ까지 사연을 쓰는 건 일도 아니지만 줄인다)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행복과 불행 다 무상(無常)이란 녀석이 그것채로 고정 시켜주지 않는다
더 행복할 필요도 없고 덜 불행하려고 허둥거릴 필요도 없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기 때문에 세상은 공평한 건 아닐까
70이 되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춰 행복에 겨워하는 사람들에게도
박수는 보내지만 부럽지는 않은 무심(無心)이 생긴다
별 거 아닌 항목이 마구마구 늘어난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 하다`고 했다 한다
버리고 갈 것도 별로 없는 소박한 여생을 바라는 단순한 70대를 살아보려한다
그래 나 칠십이야 어쩔래
아무도 어쩌지 않을텐데 스스로 위축되는 자격지심을 순화시키는 연습도 더불어 하려 하는
내 나이 70이다
임경선 선배님!
벌써 70이라니...
언제 날 한번 잡아 밥 한번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실상은
선배님이 아주 오랫만에 글을 다 올리니 왠지 안도의 숨을 쉬어 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낯설어
긴 터널을 언제나 빠져 나올까 했는데
이제야 평정심을 찾았나 싶어 반갑기만 합니다.
역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지혜로워 진다는 말과 같아 신기합니다.
오늘도
소녀와 같은
풋풋함과 낭만을 잊지않는 멋장이이고
자기 자신에 엄격하리만큼 절제된 생활을 하시지만
조금은 단추 하나쯤 풀어 놓고 살아도 되지 않을런지요.
70을 맞이하여
더욱 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언제나 기원합니다.
지난 몇년,문자와 사맛디 않는 게 좋아서 歌舞에나 관심이 가곤 했었다오
그런데 칠십부터도 살아가야한다는 大命題가
마치 `칠십이다`라는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면 술술 풀릴 것 같았어
홈피가 오랫만이니 새삼 낯설고 고향같기도 하고 그러네
터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언젠가 속초가는 길 새로운 터널이 너무 길어 무서웠던 생각이 난다
그냥 골방에 들어앉아 지내다가 가끔 햇볕 쬐고 그러려구......
이렇게 살다가 80이 되면
아~악 팔십이다 라는 글을 쓰고 싶어질까
그 옛날 드라마 대사 `인생무상, 삶의 회의` 생각나?
無常하기 때문에 삶은 다채롭고 그래서 각자의 인생은 나름 다 한편의 드라마가 되는 거겠지.
늘 위로가 되는 우리 산학이~
고마워
선배님 글이 반가운 후배가 저만은
아니네요.
언제나 글에서 느껴지던 파워와
여러날을 입속에서 머물게 하던
글귀들이 제게 선배님과윽 플룻트
연주처럼 있네요.
지금처럼 12년의 차이가 무색한
언니의 멋으로 함께 건강 챙겨보러
나가자푸네요.
경선아~
인일홈피에 십년전 "육십이라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해서
글을 찾아서 뒤로뒤로 물러가서 찾아가보았네.
경선이 나이 육십만큼 세월의 느낌을 적었으니 내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더라.
나도 칠십 중반으로 가깝게 다가가니
포기할건 빨리 포기하게 되고 하루하루가 소중한 느낌이들어요.
수족 멀쩡하게 사는일이 늙어서도 영구히 지속되리란 자신감도 없어지게하는 경험도 해보았구
건강한 오늘 하루가 소중하네.
내가 읽는 책에 저자가 쓴글에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 고독"
고독은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자기가 편안함을 느끼는 감정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자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나만의 고유한 순간과 장소에서 내가 해야 할 임무가 확연히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고독이라는 것은 나의 사회생활을 위해서 내가 만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준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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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용기를 주는 글이라 가져와 보았네.
은희언니~
돌이켜보니
60대가 됐다고 아우성을 쳤을 때까지만 해도
혈기방장한 시절이었어요
70대--일단 체력이 약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사 희로애락을 다 거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기쁨은 당연히 슬픔과 고통은 억울해하며 겪는, 사람마다의
개인차는 있겠지요
한 친구가 이제껏 무난하게 편안히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좀 다르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云云 말한 적이 있어요
갖출 것 다 갖춰 배부른 시절에 얘기인가 하옵니다
지금 티뷔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흐릅니다
음악따라 悲感해지네요 ㅎ
고독하면 그런대로
슬프면 또 슬픈대로 겪으며 견디는 게 삶이 아닐런지요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의 글 많이 반갑네요!!!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벌써 7학년이 됐어요.
지나간 세월 잡을 수 없었으니
이제부터 시작되는 7학년 더 기쁘고 힘차게 보내셔요,
지금 유후인이오
온천욕이 메인 메뉴인 여행이라 아주 편하다오
일찍 자고 꼭두새벽에 깨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하면서 지낸다오
우리 예전에 같이 했던 북유럽 여행에 비하면 편하기 짝이 없어
칠십대에 걸맞는 여행인 셈
너무 품이 넓어 저 품에 다 품을 수 있을까 혹시
둬명은 제풀에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가 들게 하는 (그대의 잘못은 물론 아니오)광숙후배~
이태석 신부님을 존경하는 광숙씨
사랑의 아우라가 보이는 그대!
내 고백한 바 없으나 ㅎㅎ 늘 위로가
되는 사람이오
간만에 홈피 들어 왔다 언니 글이 있어 읽어 봅니다
벌써 70이라니 믿어 지지 않는군요
카랑카랑한 목소리, 꼿꼿한 자세, 멋진 패션
게다가 박학다식 하신 언니
독서도 대단 하시고 참 본받고 싶습니다
버리고 갈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는 박경리 작가 말처럼
이제는 다 무상하지요
그러나 어제도 이쁜 주방용품 보고 사는 나를 어쩔까요 ㅎ
언니 처럼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삶을 살고 싶어요
늘 건강 하시고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 주시길 빕니다
혜숙이도 안심이 되는 사람이야
어떤 사람들, 이해관계가 있을 때 막무가내일 것 같은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 있거든 ㅎ
하긴 연기를 잘해 얼굴 이미지를 잘 포장하는 사람도 있긴 있지.
70이 되니 좋은 것도 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담담할 수있는 마음 이런 보너스 누구에게 받겠어
세월이 준 선물이지
루비콘 강 을 건넌지 오래된 사람을 붙잡고 변화시키려고 교훈적인 얘기를 주절거리던 오래된 훈장 습관에서도
완전 놓여나게 되고 말이지.
의욕적인 삶도 좋겠지만 담담히 살 수있는 여건이 됨에 감사하고
오늘도 `모르는 게 약이다` 하며 살고 있다오
한 깔끔한 혜숙이가 선배방에도 놀러와 댓글을 주니 참 좋네
땡스^^
어머나~
봄날 정모에서 5기엔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봄날에선 댓글 1등상 받았다고 뭐라고 한것이 생각나서
오늘 간만에 5기방에 들어왔더니 1월에 쓴 글이네.
아무도 들어오지를 않아서 아예 폐업했거든.
5기 친구들은 들어오라고 확성기로 외쳐도 안들어와요.
경선이가 이렇게 70 의 감회를 진솔하게 풀어냈는데 이제야 보다니~ㅎ
선배 후배들이 공감하고 네가 이제 동면에서 깨어났나 하며 ~ 너무들 반가워하네.
나도 니가 글 쓴거 알았으면 젤 먼저 댓글 달고 박수 쳐 줬을텐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나를 표현하고 상대의 표현을 들어주는것이 이유라는 이야기를 어다서 들었어.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는 죽을때까지 이어지겠지?
표현을 못하고 억눌렀을때 병이 되는거 같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당당한 삶.
나를 표현하면서 완성해 가는 삶.
그것이 건강한 삶일것 같아.
남은 인생 서로의 표현을 받아주고 보듬어주며 살아가자.
(언니가 너무나 오랜만에 글을 올리셔서 반갑고 반가워서 외람되게도 선배님들의 방에 들어왔어요)
우선 언니의 칠십을 축하합니다. 정말로.
아무나 칠십 되나요?
어림없지요.
저도 이 나이 되다 보니^^ 내 주위의 너무나 이른 이별을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게다가 언니는(들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세와 외양을 지니셨으니
본인이 굳이 밝히지만 않는다면야 누가 그걸 알겠으며(밝힌다 해도 무슨 상관이겠으며)
그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 외려 정말 잘 살아왔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섬세한 감정의 굴곡이라든지, 결벽함, 단정함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굉장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언니들을 만나면 정말 편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여러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요.
단순히 안부만 나누지는 않잖아요.
뭔가 더 얘기하고 싶고 진짜 얘기는 제대로 된 시간에 넉넉히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늘 헤어지지요.
그러기가 쉬운가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남들의 시선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 스스로가 느끼는 그것.
육체적 쇠약이야 좀 답답하기는 하지요.
예를 들어 몇 가지 음식을 좀 몰아서 하고 나면 전과 다르게 허리나 손목이 아프다든지, 고만한 칼질에도 손가락에 쥐가 난다든지 같은 거 말예요. 무거운 것을 들 때 망설이게 되고, 하다못해 운동을 할 때도 조심스러워지고, 찬바람이 숭숭 부는 무릎이라든지 그런 거 말이죠.
근데 또 그러지 않으면 어떡하겠어요.
맨날 쌩쌩하고 변함이 없으면 어떻게 아까워 이 생을 놓겠어요?
나도 자연의 일부니까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언니들이 57세였는데 정말 사랑스러운 언니들이었어요.
그건 지금도 그러하고요.
그래서 우리들이 만나서 언니들 이야기할 때는 모두의 눈이 초승달처럼 변하고 얼굴에는 웃음이 흐르지요.
언니들 너무 좋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한답니다.
언니를 비롯한 많은 선배님들이 좋은 걸음으로 앞에서 잘 가 주셨기에 저희들도 편안히 걸어왔습니다.
저희들의 좋은 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얼마 전 어떤 책을 읽고 너무나 마음에 닿아서 아, 이런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없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네요.
만나지 못하고 생각만 해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요즘 걸을 때나 일할 때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다 재미있어요.
걸을 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이라는 글을 되풀이 해서 들어요.
언니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언니가 오랜만에 글을 쓰셨으니까 <이기호의 원주통신>을 들어 보시라고 선물 드립니다.^^
실컷 웃을 수 있거든요.
그럼 이만 뒷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