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얼마전 카톡으로 "행운의 편지"라는 걸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카톡과 휴대폰을 제일 먼저 확인합니다.
내용은 72시간 안에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케네디 대통령처럼 죽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일어 나자 마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읽으니 협박성 문자로 보이고 기분이 아주 불쾌하더라구요.
연락 한번 없던 동창이 이건 무슨 짓입니까?
그 동창아 마치 정신병자로 느껴졌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50~60년 전에 하던 짓을 이제 70세가 넘은 노인들이 할 행동은 아닌 것 같으니
그런 유치하고 또라이(?) 같은 짓 하지 말고 곱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며,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 갑시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 합니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12그루에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100여그루에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잎 떨어진 나무들이 쓸쓸해서 동백나무를 작년 가을에 구입하였는데 겨울이 너무 아름다워요
작년에는 100여 송이의 동백꽃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올해도 성미 급한 동백 한송이가 피기 시작하네요
눈발 날리는 창 밖과 수십 송이의 빨간색 동백꽃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동백꽃이 만발하면 구경 오세요
맛있는 차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정희야~
너희집에 피였다는 사진속에 동백꽃이 예쁘구나.
항상 싱그러운 식물들을 키우고 있으니
보기가 좋구나.
물주고 보살피는 네 마음이 보이네.
나도 큰아들이 목포 신안등에서 받아온 꽃다발을 김장하는날 가져와
며느리에게도 주고 나도 시들기 전에 꽃병에 꽂아보았단다.
오랜만에 장미꽃다발을 보니 마음이 환해 지더구나.
은희야~
꽃은 언제나 사람을 미소 짓게하네
꽃이 마음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처음 알았어
슬픈데 동네 입구에서 집마당까지 즐비한 꽃들은 보니 옷까지 적시도록 엄청나게 눈물이 흘렀는데 웬지 눈물의 량이 줄더리.
(1992년에아버자가 돌아 가실 때는집밖에서 죽는 것은 객사라고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싫다고 하셔서 집으로 오셨거든)
아버자가 폐에 물이 차서 아파트가 아니라 송도에 마당이 넓고 거대한 살구나무가 있는 개인 주택에 사셨거든
그런데 그 조화의 꽃들이 위로가 되더라
당시는 남동생들이 대기업에 임원들이어서 대학동창에서 직장 동료와 회장까지 조화를 보내던 시절이었거든
나는퇴직 후에 활동량이 적어서 나무라도 키운다.
베란다 한쪽은 전체를 정원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나무들 관리하느라 허리도 아프고 손도 농사꾼처럼 변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건강 해질 것 같다.
건강하고 적당히 오래 살고 싶다.
이제와 생각하니 내 삶은 어쩜 내가 원하던대로 살아진 것 같다.
재산도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고,
외모도 예쁘지도 않고, 밉지도 않고
공부도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그렇게 살았네
살수록 우리나라가 좋다.
참 편안한 나라야!
우리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웃으면서 즐겁게 함게 잘 살자.
얼마전 여동생에게 충고한 내용입니다.
감히 언니인 나한테 투덜대길래 제가 다음과 같이 충고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올립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수재를 둔 엄마의 자세가 아주 불량하구나
명심하거라
착하게 살이라
네 인간성에 따라 네 자식들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제아무리 수재여도 부모의 마음이 선하지 않으면 자식의 운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친절한 언니이지만 화가 나면 여동생에게도 위와 같이 아주 무섭게 말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이 착한 언니가 다 알아서 하는데 무순 불만이 그리 많은지 참다 참다 한마디 무섭게 했습니다.
저는 정의롭고, 정직합니다.
어제도 대학교 후배가 와서 모르는 사람에게 봉사활동 하는 것보다 아는 선배님 도와 드린다고 왔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혓바늘이 날 것 같다고 만류해도 몇시간에 걸쳐서 청소를 끝내고 반포에 있는 30억짜리
자기 아파트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이 아픈데 자기 자신은 다른 장소에서 봉사활동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했습니다.
남에게 상처 입히지 말고 봉사하며 살아 갑시다.
후배에게 미안 했지만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명문이라 부르던 인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힌 고령의 노인이 할 행동은 아닌 것 같아서
'행운의 편지' 보내지 말라고 했더니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고 더 험한 말을 하더라구요
죽는다는 소리를 잠에서 깨자 마자 읽으니 불쾌 하더라구요.
우리는 죽음이 가까이에 와 있는 세대이어서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어린학생들과는 다릅니다.
그런 데 그런 사람들에게 뭐? 뭐? 하지 않으면 죽는다.
이건 아니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조금 더 살아야지요.
나도 노인이라 마음이 어리석어서 "누구한테 보낼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내가 기분 나뻤던 사건을 남에게 보낼 수는 없더라구요
내가 기분이 나쁘면 다른 사람도 기분 나쁜 건 상식 아닌가요?
전 결국 다른 사람에게 행운의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나 대더니 결국 시골 무지랭이가 되어 있더라구요
너와는 수준도 안 맞고 무식해서 더이상 상대하지 않겠다고 문자 보내고 모든 통신 수단을 차단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무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