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자리걷이
뒷산 산책길에서 마주쳤다.
언제부터 산을 헤매고 다녔는지 꼴은 말이 아니다.
길게 자란 털에 검불과 진흙덩이가 온 몸에 엉겨 붙어 있어 발을 떼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도움을 청하는 듯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경계심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초봄의 산바람은 아직 찬데 주위엔 개의 거처가 될 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몸집도 작은 것이 이 산중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해결하는 일은 그리 만만하진 않았을 것이다.
기르던 개를 산에 갖다 버린 것일까. 무책임한 인간을 생각하니 화가 난다.
불쌍한 생명을 못 본 체할 수 없다.
장갑과 목줄을 챙겼다. 그물망까지 준비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개는 별 저항 없이 잡혔다.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더욱 처참하여 애완견이라기보다 낡은 마포걸레 같다.
거죽에 걸친 남루의 무게는 상당했다.
씻기고 뭉친 털을 대충 깎고 보니 앙상하게 마른 흰색 말티즈였다.
작은 상자 안에 또 하나의 상자를 넣고 아치형으로 입구를 도려내어 개집을 만들었다.
포근한 옷가지를 깔아 주었지만 낯설어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먹이도 안 먹더니 사람이 눈에 띄지 않을 때 조금씩 먹는다.
이제는 집에 들어가 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다.
제 이름을 알 수 없어 우리 개들의 돌림자를 따서 꽁지라고 붙였다.
안으려고 하면 기겁을 해서 내 손등을 물려고 한다. 안심하고 마음 열기를 기다렸다.
며칠 지나자 쓰다듬는 손을 허락했고, 좀 지나자 보듬어 안는 것도 허락한다.
안으면 내 팔에 턱을 괴고 발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실낱같은 믿음을 표현했다.
먹이를 먹고 나면 어디론가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오곤 했다. 볼 일을 보러 나가는 것이려니 했다.
한줌밖에 안 되는 녀석이 힘없이 걷는 모습은 구겨진 휴지 조각이 바람에 구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도 부드럽게 불려 준 먹이를 조금 먹고 나서 살그머니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들어오지 않는다.
갈 만한 곳을 아무리 찾아 다녀도 없다. 꽁지를 찾아낸 곳은 처음 녀석을 발견한 그 곳이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곳, 찬 바닥에 네 다리를 뻣뻣이 편 채 죽어 있었다.
죽을 때까지도 그곳에서 제 주인이 찾으러 오기를 기다렸나 보다.
내가 목에 둘렀던 수건을 풀어 죽은 꽁지를 여미어 싸는 동안 남편은
언덕바지 나무 밑에 작은 구덩이를 팠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다. 하지만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측은하고, 속상하다.
주인을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니던 꽁지는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컸을 게다.
나를 만나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되고 인간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랐다.
영양 공급과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라 판단하여 의사의 적극적인 치료를 미룬 것이 후회되었다.
‘제 명이 그 뿐인 걸 인력으로 어쩔 수 있나.’ 남편은 변명처럼 체념처럼 중얼거리며
꽁지 묻은 자리를 다독거려 마무리했다.
보름 남짓 돌본 떠돌이 개의 죽음은 오래 전 이웃집에서 초상을 친 후 했던 자리걷이를
내 앞에 끌어다 놓았다.
그 집과 우리 집은 한 집 건너 이웃이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으로 애쓰지 않고도 잘 산다는 말 뒤에는 가장의 난봉기 때문에
그의 처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말이 같이 따라 다녔다.
그러던 그 집 가장이 죽었다.
상가의 마당뿐 아니라 집 앞 길에도 차일이 쳐졌다.
평소 한껏 멋을 부리던 이웃집 여자들이 누런 베옷 차림에 머리에는 수질을 썼다.
그런 차림이 죽은 사람보다 더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사람의 죽음을 수습하는 한편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화투판까지 벌리는 광경이
그 나이 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부잣집이라 초상은 장하게 치르는데 진정 애통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던
어머니의 말씀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출상을 한 후에도 그 집 안마당의 차일은 걷히지 않았다.
해질녘에 동네 사람들이 자리걷이 굿을 구경하러 다시 모여 들었다.
무당이 망인의 목소리를 빌어 넋두리하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과부가 된 안주인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평생 의좋게 살자고 약속해 놓고 가슴에 못을 박아 미안하다고 했다.
망인의 처는 목 놓아 울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구경꾼들은 숙연했고 주위는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습은 적어도 떠난 자에 대한 남아 있는 자의 도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동네 노인들은 자기 설움을 보태어 연신 눈언저리를 닦는 듯이 보였다.
무슨 구경인가 해서 기웃거렸던 나도 젖은 눈을 소매끝으로 찍어냈다.
자리걷이는 무당의 힘을 빌어서나마 떠나는 이에게는 홀가분하게 짐을 벗겨주고,
남은 가족은 위로하여 산자와 죽은자의 관계를 정리하는 마음의 빚잔치가 아니었을까.
꽁지가 떠난 후 나는 그의 흔적을 걷어냈다.
보금자리를 소각로에 넣고 불을 붙였다.
깔아주었던 옷가지가 타며 개털 특유의 냄새를 뿌렸다.
꽁지의 흔적이 연기가 되어 날아간다. 나는 혼잣말을 연기에 실어 보낸다.
망인의 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용서를 빌던 무당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의 혼잣말은 분명 꽁지에 대한 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자리걷이였다.
불꽃도 연기도 사그러 들고 소각로 바닥에 한 줌의 재가 떨어졌다
?찬정이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읽으며 슬프다는 생각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어.
찬정이와 남편분의 곱고 넉넉한 마음 만 생각하기로.....
수니언니네 쫑구는 인일식구였었는데....
꽤 긴 시간동안 인일해외지부의 간판 스타로 쫑구 사진이 올라와 있었죠.
그 주인 만큼이나 순둥한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 쫑구~
언제 수니언니네 들리게 되면 쫑구가 좋아하는 간식이랑 예쁜 꽃 사서 그 소나무 밑에 놔줘야겠습니다.
지영이가 쫑구를 고향에다 묻어 주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했을것 같네요.
하이고~
먹먹해라.
앞뒤로 넓은 동산에서 예쁜집을 꾸미고
산천 초목들과 대화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부럽기도 하고
그 삶속에서 글로 승화시켜내는 것들이 같이 함께하는 듯 보기좋단다.
작은 돌 하나,
작은 잎 하나.
작은 생명 하나하나
귀히 여기며
가슴아파하고
그모습을 나누어 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같이 다독여주고,
이게 늙마에 웬복인지....
난 참 좋은곳에 터를 잘잡고 있음을 다시한번 느낀다.
오늘 개학에 입학식에 정상수업 하랴 교실 정리하랴, 이번에 맡게 된 중복 장애 애들 자료 준비하랴 콩 튀듯 팥 튀듯 하고 있지만,
그래서 하루 만에 거짓말처럼 허리가 아프지만,
신새벽 이 글을 읽은 느낌이 하도 커서 감사의 말은 하고서 콩 팥 튀어야 할 것 같네.
글의 흐름이 어디 하나 걸리는 데가 없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정말 훌륭한 글일세.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글에 나타난 그대의 삶.
수노언니 맘과 내 맘이 똑같네.
귀한 글 잘 읽었소~
?찬정아~ 다 읽고나니 눈물난다. 난 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 아들땜에 할 수 잆이 키우게 됬어. 근데 키우다 보니 연민이 생기더라. 사료 외에 먹을걸 주면 병생긴다해서 될 수 있음 안주는데 먹는걸 어찌나 밝히는지 뭐 먹을때 괴로워. "어쩌다 개로 태어났니~" 수시로 중얼거리게 되.
꽁지가 네 맘 알고 하늘나라에서 고마워하고 있을꺼야. 어쩜 다시 그 자리로 갔니~ 너무 짠하다. 너의 글은 언제나 감동이다. 언젠가 한권의 책이 되서 나오겠지. 그 날을 기다릴께.
제가 아는 사람중에는 진짜로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고 애뜻하게 여기는 사람이 여러 명 있어요.
자기가 전생에 개였나 보다 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요.
차 타고 가다가도 떠돌이 개(떠돌이라 해도 개들은 인연이 있는 곳 주위를 맴돕니다)를 보면
불쌍해서 그냥 못 지나친대요. 먹을 거를 놔주든가, 아무 것도 없으면 물이라도 주고 간다네요.
일본에서도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다섯시까지 쳐야 하는 테니스를 네시만 되면 먼저 가요.
그녀의 집에는 나이들거나 장애견들을 길러요. 골든 레트리버 같은 대형견을 주로 기르지요..
어둡기 전에 개를 한마리씩 데리고 다 산보를 시키려니시간이 많이 걸리는거지요.
나이 든 개가 털이 빠지거나 꺼칠하니까 면 티셔츠를 고쳐서 개 옷도 만들어 입혀요.,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고, 돈 한푼 생기는 것도 아니예요.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우리 동네에도 저녁 무렵이면 개 산책 시키는 사람들 많단다 옆 집 백인 아주머니는 하얀 개 세 마리를 항상 데리고 다니지 얼마 전까지도 두 마리 더니 지난 여름 미국에서 똑같이 하얀 개를 입양하였대나 그런데 요즈음 한 마리를 유모차에 테우고 다니기에 물었더니 암에 걸렸대 잘 걷지를 못해 이렇게 태우고 다닌다고 하면서--- 얼마 전에는 내가 산책할 때 잃어버린 묵주를 우리집에 가져다주면서 애나---이거 너의 것 맞지---하여서 얼마나 감동이던지 찬정아 잔잔한 정이 묻어나는 너의 글 자주 보기 바란다 거제도 앞바다---쪽빛 물색은 여전하겠지
수니 언니 !
따님이 쫑구를 태어난 고향에 묻어 준 그 마음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꽁지의 유품(?)을 태우며
' 꽁지야 ! 훨훨 날아 그리운 네 어미곁으로 가라 ' 그랬습니다.
신옥이 언니, 수노언니, 화림이 언니, 옥규 언니
제가 꽁지 초상의 상주로 문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지난 해 봄 얘깁니다. 우야튼 바쁘신 중에도 문상(?)을 와 주셔서고맙습니다.
금재야 !
거제도는 요즘
수선화가 하나 둘 피기 시작했고,
미루나무가 푸르스름하게 물이 오르고 있다.
홍매와 백매는 벌써부터 피었고,
동백나무 밑에는 붉은 꽃이 수북히 떨어져 있네,
너희가 살던 옥림아파트
그 아래 옥하마을 앞바다는 여전히 너를 기다리고 있지.
그 물색 그대로.
글치 않아도 주인잃은 강아지를 데려왔다 했는데 잘 크고 있나 궁금했어요
딱하기도 해라....
글을 읽으며 우리 쫑구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울 딸이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강아지를 사다 키우고 싶다해서
몇날 며칠을 말렸어요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에야 집에 오기때문에 나는 강아지 못 키워준다 하며...
자기가 다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드디어 쫑구가 우리 식구가 되었는데
모든게 다 내가 짊어져야할 짐이었어요
다들 바쁘니 늘 집에 혼자 남겨져 있는 녀석도 눈물나게 가여웠고...
밤에 집에 들어와보면
집안 구석 구석 한군데 빤한곳이 없고 ㅉㅉ
시간이 없어 새벽 2시도 넘어 목욕을 시켜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내 손으로 7년 이상을 키우다가
우리가 섬으로 들어오며
딸 아이가 쫑구를 서울로 데려갔어요
오죽할까 하는 마음에 늘 걱정이었어요
서울에 가서보니
참 기가막혀 말이 안나왔지만
짧은 일정에 뭘 어찌해야 할찌 몰라서....
지난 봄에 가서 보니
털에 윤기가 하나도 없이 기운이 다 빠진듯 해서 딱하기도 하고
사료를 물에 불려서 먹이고 있어서 안타까웠는데
병원에 한번 따라가 보니
세상에나 엄청나게 비싼약을 먹이고 있더라고요
15살인데
오래 살면 정말 큰일이다 라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지내다 왔는데
마치 나를 만나려고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것 처럼
내가 집에 돌아온 일주일후 하늘 나라로 갔어요
딸 아이에게
장례비용을 보내주며 -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서
아주 좋은곳에 잘 뿌려 주어라 했는데
여름에
잠깐 틈내서 다니러 온다하며
태어난 나라에 묻어주고 싶어....세상에
큰방 유리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뒷마당 소나무 밑에 묻어주고 가서
명절이며 생일날에 꽃이랑 맛있는것을 챙겨주고 있어요
딸아이가 그렇게 하길 바래서 집으로 가져온것 같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