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여기는 주제가 있는 놀이터 제 3관의 2실,
감명 깊었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방입니다.
앞에 열었던 방이 뒤로 넘어가게 되어 이렇게 다시 열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를 소개해 주어도 좋고
옛날 옛적에 교복 입고 몰래 갔다가 단속(?)에 걸려서 치도곤을 당했던 추억의 영화도 좋고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하며 보았던 바로 그 영화를 회상해 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재미 있는 영화의 줄거리를 조곤조곤 들려주어도 좋지요.
이 방에서는 가급적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매개로 하여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많은 것들을 풀어내 공유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우리의 훌륭한 지적, 감성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모든 불들께 이 방을 공개하오니
굳이 봄날 회원 운운하지 마시고
누구든지 마음에 감동이 있으시거든 편안하게 들러 이야기 하시기 바랍니다.
( 이 방에서 이야기한 영화 목록)
1, 아빠의 화장실
순영언니!
반가워요. 요즈음은 그 지긋지긋하든 다리 통증이 살아져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어요.
어제 부지런히 물리치료 받으러 급히 가는데 문화회관에서
신순희와 스쳤어요. 가까이 다가오니 순희 얼굴이 보이더라구요.
미국여행 이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 가.....................
시력이 나빠서 먼저 알아 본 적이 없어요.
스쳐 지나가기도 해서 오해도 많이 받았죠.
안경 역사 50년이 되었군요
제 친구도 영화광이 몇명 있어 봄날의 이 목록에 자주 들어와 보라고
추천했어요. 정말 좋은 마당이에요 .
* ?가정부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당차고 꿈 많은 작가 지망생
<스키터> 역의 < 엠마스톤>....할리우드 최고의 라이징 스타?
*7명의 백인 아이를 길러낸 가슴 속 상처를 지닌 사려 깊은 가정부
"넌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엄마에게 상처 받는 아이에게
항상 따라 하게 한말 , 베테랑 가정부이다.
<에이블린> 역의 <바이올라 데이비스>.....아카데미 유력후보?
* 당한 만큼 갚아주는 화끈한 가정부
<미니>역 <옥타비아 스펜서>
*지고는 못사는 완벽주의자 백인 안주인
<힐리> 역 <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거장감독 론 하워드의 딸
할리우드 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앙상블!?
꼭 보고싶은 권장 할 만한 영화이다.<11월 3일> 대개봉
제목 핼프
정신없이 달리다가 잡고 있던 끈을 툭 놓은 것 같다.
정말 힘들었나? 일이 있기는 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기억이 없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생각을 모아 일을 해 나가면 일의 분배가 잘 돼 모두에게 힘이 되고
일의 결과도 좋지만 막힌 공간에서는 그런 일이 쉽지 않다.
다는 아니더라도 성숙하지 못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큰 목소리를 내는 공간은 그렇다.
너무 한 사람에게 일이 과중하게 부담되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어쨋든 힘든 일 하나가 끝났다는 생각뿐이다.
나 하나 힘들어서 모두 즐거우면 됐지 하기엔 상황이 좀 우스웠지만 어쨋든 숙제를 해치웠고
그래서 좀 멍하다.
일이 끝난 후 줄곧 영화를 본다.
극장 앞 쪽 구석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앞으로 앉았다 옆으로 앉았다 하면서 연이어 본다.
어제는 <치코와 리타>, <디어 한나>를 보았다.
그 다음에 하는 <자전거 탄 소년>, <아버지를 위한 노래> 모두 보고 싶었는데 저녁 약속이 있어서 할 수 없었다.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기획이기 때문에 되풀이하지 않아서 그때 못보면 다시 볼 수가 없다.
극장에 앉아서 화면에 펼쳐지는 상황에 푹 빠져들어가면 정말 멀리 여행 온 느낌이 들고, 완전한 감정이입 속에서
안온한 휴식을 느낀다.
영화이기 때문에 뉴스와 달리 정말로 불안하지는 않고^^, 감정 여행? 뭐랄까 어린 시절 아이들과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재미있게 놀 듯, 그 여러가지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감정의 물결을 타고 노는 일이 내게는 참으로 재미있고도 편안한 휴식이 된다.
<치코와 리타>는 쿠바의 에니매이션이다.
쿠바의 재즈를 소재로 한 아주 잘 만든 작품이고 시종 음악이 흘러 정말 멋지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날 것이라서 싱싱하기가 짝이 없고, 내가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을
잘 이해하게 된 것도 썩 마음에 든다.
비교적 최근에 본 몇 편의 에니매이션이 다 좋았다.
<일루셔니스트>, <소중한 날의 꿈>, 별 다섯 개 주고 싶다.
<디어 한나>는 정말 잘 만든 작품인데 참으로 마음이 아픈 내용이다.
연기자들은 연기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인생을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래빗홀>, <캐빈에 대하여>를 보려고 한다.
<캐빈에 대하여>에 나오는 여배우는 저번 <아이 앰 러브>에 나와서 기막힌 표정 연기를 보여줬던 사람이다.
기대된다.
영화를 보면 영화를 좋아하는, 좋아하던 친구들이 늘 생각난다.
이야기하는 느낌도 들고 그립기도 하고 그렇다.
영화와 더불어 함께 하는 그리움의 여행 그게 나의 영화 사랑의 한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옥규야!!!!
옥규는 애니메이션 까지 다 섭렵하니?
난 애니메이션은 별 재미를 못 느끼겠드라.
여하튼 옥규는 영화에서는 나보다 두 수 위인거 같다.
난 아직 세편 내리는 못 봤거든.
언제고 한번 해 봐야지.
ㅎㅎ 언니 영화 보기에 위 아래가 어디있어요?
재미있게 볼 뿐이죠.
어제에 이어 오늘 두 편을 보았어요.
좀 멀미가 나네요.
두 영화가 다 너무나 우울한 영화라서 머리가 무거워요.
<레빗 홀>이라는 영화는 색깔을 아주 화사하고 곱게 처리했음에도 시종 풀 수 없는 슬픔을 소재로 한 힘든 영화였어요.
니콜 키드먼은 예쁘다고 하기엔 너무나 연기를 잘하더군요.
완전 무르익었어요.
큰 기대를 갖고 본 <캐빈에 대하여>는 아마도 원작이 있을 것 같은데(없기를 더 바라지만,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아! 찾아 보니 원작이 있네요. 실화는 아니고 소설로요^^;; We Need To Talk About Kevin)
무슨 연유인지 아기 때부터 아주 새디스트적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보이는 아들과 벌이는 거의 사투인데요, 정도는 다르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 중에서 자식들에게서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한 정도는 다르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가학적인 상처를 주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이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고 참 있어서는 안 될 정도의 무서운 내용이지만요.
영화를 보는 내내 어찌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무거웠는지 체한 것처럼 미슥미슥했어요.
두 영화 다 모두 배우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해 최선을 다해 연기하더군요.
틸다 스윈튼은 아이 엠 러브라는 영화에서는 그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이더니, 이 영화에서는 독특한 고통의 모습을 아주 쓸쓸하게 보이더군요. 그녀의 두통이 전염되는 것 같더라니까요.
마르고 툭 튀어나온 발가락도 연기가 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던데요.
어제 본 <디어 한나>와 오늘 본 <레빗 홀>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요,
한나는 착하고 순하고 모든 것을 참고 기도로 많은 것을 극복하려 하는 좋은 여자예요.
그녀가 일하는 가게의 벽에는 예수님 그림이 있지요.
예수님의 모습과 그녀의 웃음 띤 착한 모습은 아주 잘 어울려요.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유능하고 안정적인 남편이 실은 발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변태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일종의 사이코예요.
정신이 든 남편이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과를 하면 멍이 든 얼굴로 늘 남편에게 난 괜찮아, 용서할게, 나도 사랑해 하지요. 남편은 여기에 쓸 수 없는 그런 잔혹한 짓을 해서 임신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놓았는데도 한나는 그를 용서하지요. 아니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을 위해서도 기도를 해요.
어느 날 너무나 심하게 맞아 온 얼굴이 멍이 들은 날, 가방에 숨겨 온 술병을 들어 벌컥 벌컥 마시더니 갑자기 '뭘 봐!' 하면서 술병을 집어던지죠. 장면이 바뀌며 벽에서 떨어지는 예수님 그림.
마치 -얘기할 사람이 당신 밖에 없었는데 뭐냐구?- 그런 마음이었을까요? 푹 웃음이 나오면서도 정말 마음 아팠어요.
레빗 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는데요,
어이없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같은 이유로 모인 일종의 클리닉 모임에 나갑니다.
그러나 부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합리화하려는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화가 납니다.
-우리 아이는 천사가 됐을 거예요, 천사가 필요해서 우리 아이를 데려갔을 거예요, 저는 확신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위로가 됩니다-
하고 말하는 있는 부부한테 갑자기
-천사가 필요하면 신이 직접 만들지 왜 여기서 데려가요? 신이잖아요 뭐든지 만든다며요?-
하고 말하지요.
엄마가 그 모임에 성의있게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자
-뭐든지 주님으로만 끌고가는 이야기를 도무지 듣지 못하겠어. 기껏 떠받들었는데 뒤통수 치잖아. 아! 엄마는 많이 당해서 잘 알겠다 아버지한테-
엄마는 입을 벌리고 말을 잃지요.
불경스러운 이야기지요?
그런데 그런 장면에서 그들의 고통이 더욱 아프고 진실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고 인정할 것을 인정해야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럴 때 어줍잖은 이야기로 섣부른 위로를 하기보다는 그저 아끼는 마음으로 가만히 지켜 봐 주는 것.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만 하겠어요?
그래.
네 말이 맞네.
본인만 하겠냐구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상처가 되지.
그냥 곁에 있어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게 좋은데
그렇게 하기가 참 어려워. 그치?
아침부터 참 좋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고마워!
난 요즘< 핼프>와 <인타임>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핼프는 인종차별이 한참인 시절
그 것을 벋어니려고 몸부림 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고
인타임은 우리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처음엔 핼프가 참 우습게 생각되었어
흑인은 모두 현자요 착한 사람이고
백인은 꼴통에 어리석기 그지없다.
어쩜 저런 흑백논리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생각이 들며
아직도 우리모두의 숙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
그런데 며칠 생각을 해보니
정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 취급 못 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도
착할 수 있고 지혜로울 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극명한 대비로
아주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타임은 미래사회의 암울(현 사회의 매카니즘 고발) 속에서도
사랑과 소통 함께 함이 얼마나 큰 힘인가를 전해준다.
요즘 내내 두 영화를 생각하며
지금은 영화평을 해주시기 힘드신 어떤 분이 자꾸 떠올랐다.
그 분이라면 두 영화를 얼마나 멋있게 말씀해 주셨을까?
다시 아침이 시작 되었다.
우리 힘있을 때 즐길 수 있을 때
더욱 더 마음을 나누자 !
전에 특수교육에 관한 공부를 할 때 수업 주제에 따라 관련 비디오를 보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애착>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전쟁 중 부모를 잃은 아기들이 수용되어 있는 보육원.
아기들은 아기답게 울고 난리다. 총명한 눈, 욕구를 분명히 보이는 아기들, 보기에 아주 정상적이다.
그 중에 유난히 눈이 크고 총명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다.
넓은 방에 나무 칸으로 막은 침대에 혼자씩 누워있는 아기들.
그 넓은 방의 여러 아기를 맡은 보모는 한 명.
보모는 젖 먹일 시간이 되면 우유병을 한꺼번에 들고 와 아기들 입에 물려주고 나간다.
우유병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어쨌든 우유는 준 것이다.
똥을 싸도 어디가 아파도 아기들은 그저 혼자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1년, 2년.....
아이들은 웃음과 울음을 잃고 점차 조용해진다.
3년 후 쯤 카메라는 다시 아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다 멍한 눈을 갖고 있었다.
뇌가 정지된 아이들의 모습.
후천적 지적, 정서 장애가 된 아이들이 모두 말을 잃고 멍하게 잘 걷지도 못한 채 침대에 앉거나 누워있다.
자기의 모두를 맡길 수 있고 소통하는 사람이 있을 때 아기는 성장한다고 한다.
사람이 항상 곁에 없더라도 그런 믿음이 있으면 성장한다. 잠시 안 보이더라도 약속이 반복돼 믿음을 주면.
더구나 아기들은 원초 경험이기 때문에 그 시기의 <애착> 관계는 인생 전반을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굉장히 오래 전에 본 거였는데 아직도 그 여자 아이의 완전 바보가 된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제 <자전거 탄 소년>이란 영화를 보면서 그 비디오를 생각했다.
너무 어려서 부모가 되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아빠에게 완전 버림 받은 아이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거의 난동을 벌이는 초반부와, 우연히 위탁모를 하게 된 미용사와의 담담하고 뭉클한 관계가 펼쳐지는 후반부로 이루어진 영화인데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모든 행동은 이유가 있으며 조절이 안 되는 유아 청소년기 아이들의 분노는 살기 위한 에너지라는 것(모든 문제아들에 대한 이해가 뭉클뭉클...), 역시 인류 역사를 보듬어나가는 것은 모성일 것이라는 것(성인이 되기 시작할 무렵 부모와 떨어지는 일이 당연하게 되어있는 서구에서도 안 그런 척 무심한 듯 하면서 이런 주제를 되풀이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다르덴 감독의 작품 중 처음 본 것은 <더 차일드>라는 영화였는데
어! 굉장하다, 재밌다고 느꼈다. 그 감독 작품에 꽂혀서 몇 편을 받아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더 차일드>에 나왔던(늘 나오는) 그 배우가 아빠로 나오고 그것은 두 작품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다.
올해 본 영화 중 첫 번째로 꼽고 싶은 영화다.
작품성에서 단연 최고다.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하지만 두 번 상영으로 영화는 끝났다.
그래서 권하지는 못한다. 나중에라도 받을 수 있으면 보시기를 권한다.
나 혼자 행복하기가 거시기하니까.......
?옥규야~
영화를 보고 행복해 하며 아주 아주 잘 지내고 있구나 ㅎㅎ
네가 권한 영화 다 보고 싶은데 하나로 채널 뒤적거려도 없고 ~ 암튼 기억했다 기회있음 볼께.
전에 살던 주택에 비디오 가게가 있었는데 어지간한건 다 있었거든.
내가 자주 가니까 가끔 덤으로 하나 얹어주기도 하고~
여긴 비디오 가게가 없어.
?
새로 나온 영화만 하는 상영관만 있고.
"자전거 탄 소년"은 신작이야?
이왕이면 친절하게 어디서 봤다는것 좀 적어줘.
확실히 인간에게 소통이란 굉장히 중요한 문제야.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 84"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거기 이런 얘기가 나와.
스탈린 시대의 비밀 경찰 심문관이 아무도 없는 빈방에 의자 하나만 놓은거야.
그 의자에서 모든 비밀을 다 들을수 있다는 것~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그 의자에 모든 얘기를 쏟아낸다는 거지.
우리가 이렇게 홈피에서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것 참 행복한거지?
잘 지내고 좋은 영화 많이 올려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좀 오래 전에 들었다. 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만 잊었다.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
몸이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할 일이 계속 있어서 저녁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고,
토, 일에도 산에 가거나 힘이 없거나 해서 영화를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우연히(실은 필연)^^ 자주 가는 극장을 검색하다가 이 영화 하는 것을 보고 그냥 벌떡 일어나 갔다. 오랜만의 조조영화.
이 여자가 눈먼 신부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어려움을 편지에 적어보내며 모두 신부의 기도를 바라고 있다.
신부는 편지 읽는 것을 듣기만 해도 누가 썼는지 알고, 힘이 될 만한 알맞은 성경 구절을 찾아가며 답장을 불러준다.
그녀는 쓴다. 어이없어 하며 무감하게.
무력감으로 자신을 놓아버린 신부가 파자마 바람에 신부복을 입고 결혼 성사를 해야 한다고 성당에 가서 혼란해 하는 모습.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억눌린 분노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 여자는 낯설게 신부를 바라보다 가버린다. 하지만 난 이 시점에서 이 여자의 마음 한 부분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혼란을 줬을 거라는 생각.
내가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아주 조금은 했을 것이고, 자기보다 더 추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느낀다.
물론 그런 마음은 아직 겉으로 나오지 못하지만.
단단한 것이 풀어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많다.
그래서 이 여자는 아주 화가 난다. 움직였다는 증거.
신부님~ 편지요~~ 하면서 늘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감옥에서 종신형을 받았다가 사면되어 나온 이 여인을 두려워한다.
신부의 침대 밑에는 그가 받았던 편지들이 쌓여 있다.
신부의 가장 나종이며 가장 귀한 것.
<야곱 신부의 편지>를 보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일들, 이건 결국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의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점검, 이 모든 탐색의 결과가 결국은 나와 세상, 또는 인간 관계를 만드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약분되어서 간결해지고 순수해질 때 나타나는 사람의 모습.
이 신부는 눈도 멀고, 몸도 늙었고, 주위에 사람도 없고, 지붕은 새고, 돈은 물론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다.
물론 품위있게 검은빵을 자르고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시는 모습이 고요하고 점잖기는 하다.
하지만 일상의 세계에서 그의 주위는 죽도록 쓸쓸하다.
하지만 자기에게 기도를 요청하며 보내는 편지 읽는 것을 들으며, 답장을 보내며 그는 사랑과 연민, 공감으로 넘치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표정을 띤다.
그곳에 더 죽을만큼 쓸쓸한 여인이 오게 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했고, 자기를 막아 주었고, 자기가 사랑했던 언니.
그 언니의 결혼, 불행한 만남, 남편의 이어지는 잔인한 폭력.
우연히 그것을 보게 된 이 여인은(소녀는) 분노로 인해 형부를 죽이게 되고, 그런 상황까지는 바라지 않았던 언니의 경악과 절망 속에 무기수로 복역하게 된다.
언니를 불행에서 구해내고자 했던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언니를 불행하게 했다는 자책감에
언니와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어둠과 침묵 속에 그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묵묵히
고치 속 벌레처럼 수형생활을 한다.
감옥에서의 휴가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밀폐되었던 그녀에게 사면 명령이 내린다.
누군가 끊임없이 사면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럴 생각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수형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풀려났을 때 느끼는 그 막막함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그런 상황의 자유는 죽음과도 비슷한 자유인 것 같다.
이런 상태의그녀가 읽는 편지
논문이 잘 써지지 않아요. 기도해 주세요.......
이런 소소한 일상의 편지들은 이 여자에게 어이없게 느껴지고 우스울 뿐이다.
더 어이없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편지에 대한 신부의 태도이다.
거의 대부분의 편지의 주인공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편지에 대하여 더할 수 없는 애정을 갖고 마치 자기 앞에 있는 어린아이를 보듬 듯 진심을 다해 듣고, 혹은 눈물을 흘리고 얼굴이 빨개지고,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 무얼까 생각하며 성경 구절을 찾는 신부를 보며 이 여자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안정적이지도 않고 평화스럽지도 않다. 아무 것도 이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직은.
이 여자는 귀찮기도 해서 몇 몇 편지들을 우물에 버리기도 한다.
편지는 점점 줄어들고 곧 하나도 오지 않는 날이 온다.
오랫동안 편지가 오지 않자 신부는 깊은 실망을 하고 그 탓에 정신을 놓게 되고,
성당에 잠옷 바람으로 달려가며 성사를 해야 한다고 우왕좌왕한다.
무의미한 젊음의 시간을 보내고, 원치도 않았던 사면으로 인한 이런 불편한 상황도 도무지 감당하기 싫어 죽겠는데 이런 황당하고 지긋지긋한 일이 벌어지자 이 여자는 무언지 모르게 화가 나서 사제관을 떠나기로 하고 택시를 부른다.
그런데 운전수가 어디로 갈까요? 하자 이 여자는 아무 대답을 못한다.
다시 사제관에 있게 된 이 여자는 자신을 무서워하며 피하는 우체부를 욱박지르며 편지를 갖고 오라고 한다.
편지가 없는데 어떻게 갖고 오냐는 우체부에게 무조건 매일 편지 왔다고 소리지르라고 시킨다.
약간의 약점도 있는 이 우체부는 시키는 대로 한다.
우체부는 신부님~ 편지 왔습니다 소리지르고 반가움에 뛰어나오는(실은 기어나오는 듯한) 신부님을 보며 이 여인은 우체부가 건네 준 잡지의 한 부분을 찢으며 편지 봉투 찢는 소리를 낸다.
여자는 신부를 앉히고 늘 그랬던 것처럼 편지를 읽는다.
만들어진 편지. 행복한 신부의 표정. 성의 있는 답장
더 이상 꾸며서 읽을 수 있는 편지가 없자, 실망하는 신부에게 하나 더 있다고 하면서 다음 편지를 읽는다.
아니, 편지를 읽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인은 세상 처음으로 자기의 깊숙한 곳에 너무나 오랫동안 단단히 웅크리고 있던 고통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고 흐느끼지도 않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 속에서 이야기를 마친다.
편지 읽는 것을 듣고 있던 신부님은 말한다.
레일라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신부님은 이 여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이 여자는 자기의 사면을 끊임없이 요청했던 사람이 신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부가 그렇게 게 한 계기는 바로 지금까지 신부님에게 동생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요청했던 그 여인 언니의 편지였던 것이다.
신부님은 모아 놓은 언니의 편지 한 묶음을 갖고 온다.
여인은 그 순간 아마 마음에서 둑이 터지듯 자기를 옥죄던 고통으로부터 놓여났을 것이다.
자신의 해방은 물론, 초라한 신부의 자유로움과 온정, 그리고 그 무위로 보이던 편지의 중요한
의미에 대해 벼락치듯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선 두 사람의 모습으로 나왔지만 어쩐지 나는 그 신부와 그 여인이 하나의 모습으로 보였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되는.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의 아픈 경험, 어리석은 판단이 일생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능력도 없는 시절, 거부할 수 없는 극한 고통의 상황에서 부족한 존재로서 어떻게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것은 몹시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끝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여자의 경우 너무나 극한적인 상황으로 묘사됐지만 사람은 다 나름의 고통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나를 진정으로 보이고 진정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구원의 하나일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신부님과 레일라는 정말로 깨닫기 힘들고 그렇지만 깨달아야만 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와 소중함을 잘 보여줬다.
좋은 아침이었다.
종교인이 아니지만 마치 종교인의 깊은 묵상에 잠겼다가 나온 느낌.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얼굴을 너무 다듬어 연륜이 무언지, 세월이 무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하는 우리나라 여배우들의 그 부푼 뺨들을 보다가 이런 연기자들을 만나면 뭐 그저 기쁠 수밖에....
놀라운 연기력이다.
영화 내내 신부의 낡은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음악들이 또 이 영화와 어울리게 초라하며 아름답다.
안국동 정독 도서관 앞 선재시네마 아트에서 25(월), 26(화) 11시 30분 상영한다.
제가 쓰는 영화 이야기는 영화를 보라고 안내하는 글이라기보다는 거의가 그냥 통째로 영화를 소개하는 글이 대부분이라서, 실제로 이 영화를 봐야겠다 맘 먹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야말로 쿨하고 세련되게 살짝 맛만 보여주고 영화를 보게끔 해야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이거 진짜 재밌네, 이거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런.
물론 그것도 힘이 좋을 때만이지만요^^;;;;
실제로 영화관을 오랫동안 찾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바렌보임의 부모님은 그의 어린 시절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했대요.
매일 띵똥 하고 초인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들어와 인사하고, 레슨하고 그런 모습을 봐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피아노를 치는 줄로만 알았대요.
처음 학교에 가서 피아노를 안 치는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엄청나게 놀랐다네요.^^
저도 사람들이 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지는 물론 않겠죠. 서로의 취향은 다르니까요.
저는 다른 일보다는 비교적 부지런하게 영화를 보는 편이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쓰나 봐요.
있잖아 언니~~ 있잖아 춘선아 하면서요.......... ㅎ
어제는 집에서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장이머우 감독 잘 아시죠?
제가 처음 본 그의 영화는 <붉은 수수밭>이었어요.
그 때 참 충격이 컸어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일어서지 못하고 뭔가 깊고 끈끈하고 대단한 어떤 분위기에 싸여 한참을 멍하고 있었지요.
소위 중국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선입견을 확실히 바꿔놓은 영화였어요.
그 전에도 중국 영화를 보아 왔고(주로 칼쌈^^) 특히 스무살 초입에는 이소룡 영화에 빠져 그 무술의 세계에 감동하긴 했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 작품 자체가 달랐어요.
중국의 핵심이 담겨 있다는 느낌?
특별히 드러나지 않으면서 사람 속에 녹아있는 일상, 전통, 사상, 습성, 가치관, 예술......
그런 것들이 표현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내면의 긍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 다음엔? ㅎㅎ 물론 찾을 수 있는 그의 영화는 모두 찾아 보았지요.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 인생,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산사나무 아래에서..........
물론 그 뒤에 나온 연인, 영웅, 황후화 등의 영화도 보았지요.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공연^^
나중에 여러 명의 감독들과 함께 옴니버스식으로 만든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란 영화도 보았구요.
전 그의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 <인생>,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산사나무 아래에서> 등의 영화를 몹시 좋아해요.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의 영화가 많은 변화를 갖게 되지요.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의 취향일 뿐이죠 뭐.
며칠 전 <집으로 가는 길>이란 영화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너무나 예쁜 장쯔이가 풋풋한 소녀 역으로 나오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더군요.
<영화를 보면서 화면이 너무 예쁘고, 내용도 너무나 좋고, 장쯔이가 너무나 너무나 예뻐서 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어요.>
<집으로 가는 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하여 어머니만 남아있는 시골로 돌아가요.
아버지는 벽촌 중 벽촌인 그곳에서 일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신 분이지요.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며 일생을 함께하신 분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아버지가 그런 벽촌에서 일을 하게 된 제일 중요한 이유가 바로 어머니와의 사랑 때문이었거든요.
초상을 치르러 온 이 사람에게 친척 대표인 사람이 말합니다.
문제가 있어서 아직 아버지는 병원 영안실에 있어. 너희 엄마가 장례를 여기서 치르고 싶어 해.
엄마는 아버지가 일생 걸어온 길을 걷게 해 주고 싶어 해.
그래서 병원에서부터 여기까지 아버지를 걸어서 오게 하고 싶어 해.
그런데 지금 이 동네는 젊은이들이 없어서 그 먼 길을 걸어 모시기가 어렵구나.
엄마는 아버지가 평생을 일하시던 학교에 가서 앉아 계십니다. 거기에만 계십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안겨 흐느끼며 말합니다.
아버지를 다신 볼 수 없어.
엄마는 말합니다.
아버지가 이 길을 걷게 해 주어야 해. 여기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해야 해.
엄마의 고집스런 말에 아들은 설득을 포기하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부터 길이 하나밖에 없는 이 먼 시골까지 시신을 모시고 걷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그 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요.
이 궁벽한 산골 동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은 아주 놀라운 사건이었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였고 눈이 먼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살림을 도맡아 합니다.
그 동네에는 작은 서당 같은 학교가 있는데 오랫동안 선생이 없었습니다.
그런 동네에 갑자기 어떤 젊은 남자 선생이 온 것입니다.
그녀는 선생을 보며 웃고, 기뻐하고, 아주 좋아하게 됩니다.
가릴 것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는, 그것은 자연이었습니다.
학교로 사용되는 집은 너무 무너진 상태라 다시 수리하기로 합니다.
어머니는 그 건물이 다 지어지면 천정을 가로지르는 굵은 나무에 씌울 붉은 천을 짜기 시작합니다.
그 붉은 천은 그 동네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짜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고, 그녀에게는 사랑을 가져다 줄 그 천을 이 여자는 행복하고 즐겁게 짭니다. 웃으며.
시간이 나기만 하면, 아니 온 종일 그녀는 이 남자를 쫓습니다.
숨어서, 반쯤 드러내며 이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찾으며 쫓아가며 피하며 숨으며.....
고통이 아니라 생기입니다.
늘 가슴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녀의 입가엔 항상 웃음입니다.
의심이 없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그냥 사랑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
그녀는 언덕 위에 서서 아이들의 하교길, 집이 먼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선생의 모습을 쫓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전달이 안 되겠습니까?
결국 선생은 자기를 쫓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게 되고, 여자와 똑같이 환하게 웃습니다.
여자의 생각이 맞았습니다.
마을에서 돌아가며 선생에게 밥을 해 줍니다. 이 여자의 차례도 오게 됩니다.
이 여자는 선생에게 집에서 제일 좋은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담아 줍니다.
항상 그 그릇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전해 줍니다.
그 도자기 그릇은 둘을 잇는 아주 중요한 물건입니다.
나가는 그녀에게 눈이 먼 엄마가 말합니다.
옷은 왜 갈아 입니?
분홍 옷을 입은 그녀.
결국 아버지는 그동안 자기가 가르쳤던 경향각지에서 온 수많은 제자들의 손에 들려 그 길고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모인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이 먼 곳에서부터 온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은 장례 행렬 앞쪽에서 별로 추위도 모르겠다는 듯이 씩씩하게 편안하게 걷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쫓으며 걷는 엄마의 마음에는 이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랑으로 아름다워지는.
그 마음속에는 몸을 돌려,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이 멀고도 추운 길을 어려워하지 않으며 걷게 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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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규야, 아침에 차근히 간만에 네 글을 읽는다.
너의 따뜻하고 순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장예모 감독은 전에 네가 소개한 인생이란 영화를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어쩜 이렇게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
인간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 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아침에 '철학,영화를 케스팅하다.' 라는 책을 읽었어.
조금씩 틈 내어 읽어 아직 멀었지만
영화 속에서 그렇게 많은걸 얘기하고 있는지
놀라움 의 연속이다.
그냥 스치듯, 아니면 '아, 좋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왜인지는 감지 하지 못한체...
그런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게 이렇게 글을 쓰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또 하루가 시작 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고마워!
옥규야~
이름을 부르고 나니 호박이 달콤하게 씹히던 맛있던 그 팥 찰떡이 생각난다.
이젠 나이 들어가니 남보다 자기를 더 챙겨야 해.
내가 아프면 본의 아니게 민폐가 되고 회복도 더디고 하니까.
뭔소리냐구? 너 남 배려를 너무 많이 해.
가끔 어떤 영화를 볼까? 그럴때면 이 방에 들어온다.
이사와서 KT 로 옮겼는데 (여긴 SK가 안들어와) 영화채널에 들어가면 유명 감독의 영화가 쫙 있어.
그런데 중국영화는 "오우삼" 과 "왕조위" 만 있고 장예모 감독 영화는 없는거 있지~
돌았나봐~ 그렇게 휼륭한 감독 영화를 안올려 놓다니~
비싸서 수입을 못했나~
암튼 나중에 들어오겠지.
네가 추천한 영화 나중에 꼭 볼께.
영화가 없는 삶~ 얼마나 삭막하니~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영화가 있기에 태어나길 잘한거야 ㅎㅎ
건강하고 좋은 영화 많이 소개해 줘.
옥규 !
영화광인 나에게 활력소가 되는 추천 영화 들
친한 동기에게도 이난에 들어와 보라고 홍보하고 있슴
우린 통영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봄날에 들어와 감동하며 눈팅만 하다가
오늘은 흔적을 남기네요.
너무도 사랑의 마음이 전해와서....
계속 좋은 영화 알려 주세요......
* 위 영화들 다시 상영 기회 포착 할 수 없을가요?
일년 중 넋을 놓고 티브이 앞에 앉아 있는 기간이 있다.
매해 8월 말 쯤인데....
이비에스에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이라는 것을 할 때이다.
일주일 동안 하루종일 다큐멘터리 작품을 보여주는 행사이다.
주제는 여러가지이고, 그 주제에 따라 여러 나라 감독들이 자기들의 작품을 이비에스에 출품한다.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고 이비에스에 감상문도 쓰고 좋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한 투표에도 참가한다.
전에는 일주일 동안 하루종일 방영을 했다.
늘 그렇기는 하지만 개학이랑 겹치면 너무나 안타까워서 많이 속상했다.
올해도 기간은 마찬가지였으나 다행스럽게도(불행스러운건가.....;;) 저녁 8시 50분에 시작해서
새벽 1시 30분까지 했다.
몇 편을 제외하고 거의 다 보았다.
방학 때 잘 쉬었을 텐데 저 사람이 왜 저렇게 골골대나 아마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새벽 한 시 반까지 다큐 보고 또 그 감동과 충격에 또........
그러니 그 다음 날.............
그렇지마는 너무나 너무나 재밌어서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나중에 이대 안에 있는 모모라는 극장에서 다시 상영하긴 한다마는..... 그건 그거고.
모두 23편을 봤다.
방영 후 며칠간 이비에스 홈피에서 다시 보기를 해 줬다.
너무 좋았던 건 다시 보고, 아이들 보여 주고 싶은 건 수업 시간 두 시간 모아서 보여 주고, 음악 선생
보여 주면 좋겠다 싶은 건 음악 교실 가서 틀어 주고, 미술 선생 보여 주고 싶은 건 거기 가서 틀어 주고, 또 너무 피곤해서 못 본 걸 보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힘을 쪼개고.......
모두 좋았다.
한 편 한 편 모두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매우 놀랍기도 했다.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항상 그렇다.
사실 그대로의 일이기 때문에 뭐랄까, 픽션으로서의 영화를 보는 것과는 조금 자세가 다르다.
올해는 교육, 음악, 미술, 운동, 특별한 문화, 시사, 사건.....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서 보여 주었다.
모두 모두 다 좋았지만 그 중에 몇 편만 소개하고 싶다.
<기적을 그리다>라는 이란 작품이다.
6살에 아버지 동료와 결혼을 약속하고 9살에 결혼한 여인, 첫날밤 다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면 코를 잘라버린다는 말에 기절했던 여자, 초등 2학년 때 장학사가 올 때 히잡을 벗으면 코를 자르고 발뒤꿈치를 잘라 버린다는 남편의 말에 그만 학교를 그만두어버린 여인, 그래서 끝내 글자를 알지 못하고 가정에 갇혀버린 여인.
나이 오십이 넘었을 때, 이 여인의 손자가 어느 날 '할머니 이거 그림 그리는 거 숙젠데 해 줘요' 하는 말에 망설이다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그려 주게 된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본 아들과 딸이 엄마의 그림 솜씨를 보고 놀라워하며 아버지 몰래 도화지와 연필, 붓, 그림물감을 사다 준다.
그때부터 이 여인은 남편이 일하러 나간 낮에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자기도 알 수 없는 가슴 속에 있는 꿈, 색깔, 이야기가 마구 마구 그림으로 나오게 된다.
사진에서 보듯이 모든 그림은 이야기가 있고, 거의 대부분 자신의 꿈이다.
꿈에 흰 새를 보고, 꿈에 푸른 공작을 보고.......
여인은 가슴에서 솟구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고, 급기야는 하얀 벽이나 하얀 집안의 가구에도 그림을 그리게 된다.
권위에 가득찬 늙어버린 남편은 화를 내고 명령하지만 이제는 늙은데다 심한 관절염으로 걸음도 잘 걷지도 못하는 이 여인은 같이 화를 내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그림이 너무나 훌륭해서 우리만 보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여 몰래 이러저러한 절차를 알아 봤는데, 그 그림을 알게 된 프랑스의 어느 화랑 주인이 이 여인의 전시회를 해 주기로 하고 프랑스로 초대하게 된다.
문제는, 남편의 허락없이는 이란 여자는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편의 허락을 받기 위해 자식도 나서고 모두 나서지만 남편은 너무나 치욕스럽고 불안해서 절대로 하락을 안 한다.
부인은 세월의 힘으로 이제는 말대답을 꼬박꼬박 할 정도로 성질을 부리면서도 결국은 남편이 무서워서 파리에 가게 해 달라는 말을 못한다.
전시회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남편은 허락을 안 하고........
이틀 전에 결국 남편은 큰 한숨과 함께 허락을 하며 말한다.
다른 남자들 쳐다보지 말고, 정숙한 이란 여성의 모습을 보이라!
그리고 노래를 한다.
나의 작은 장미여~ 날 버리고 어디로 가는가~~~~
이 여자의 전시회는 대성공이었다.
전시회에 온 이 여자의 그림을 보며 질문하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여인의 멋지고도 따뜻한 모습. 이미 예술가였다.
이 여인이 루브르였을까? 거기에 가서 그림을 보다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더 못 보는 장면이 나온다.
범인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
그 여인은 거기에 다다른 것 같았다.
멋진 다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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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세상>
이번에 이 다큐 페스티벌을 보다 보니 눈에 띄게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건 이 다큐 작가들이 한 해나 두 해 정도 찍은 것이 아니라 30년, 40년 이상 심지어는 50년 이상 계속 찍어온 영상들을 구성하여 작품화 한 것이 많다는 점이다. 참으로 놀랍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큐도 30년 이상에 걸친 한 체코 가족의 대서사시인데, 어떻게 그렇게 가족의 기록을 성실하고 군더더기 없이 모아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가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성실함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싱그럽고 아름다운 신혼시절의 부부, 아기 낳는 모습, 그 아이가 걷고 자라고, 독립을 하고, 축제를 즐기고, 쓸쓸하지만 각자의 길을 가는 자식들과 헤어지고, 자기의 바람과는 너무나 다른 길에서 사는 자식들이지만 그대로 따뜻이 바라보는 노부부.
<좋은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이 다른 설명 없이 이 영상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혹시 아트시네마 모모(이화여대 안에 있는)에서 하게 되면 한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 외에 불법체류자로 미국에서 집도 없이 온 가족이 이리저리 노숙을 하는 집의 십대 아이가 그림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존감을 획득하는 내용을 담은 <이노센테>라는 작품도 참 좋았고,
청각장애 학생들이 건청인들만 모여서 하는 시 낭송 대회에 나가 수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프 잼>이라는 다큐(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니까 통쾌해요 하더군요),
정신지체나 정서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직업훈련원 및 작업장에서 한 음악가가 밴드를 조직하여 결국 큰 무대에서 연주를 하게 하는 <내 생애 단 한번>,
너클볼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가진 야구 투수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야구의 세계에서 마이너리그.
직구로 가다가 뚝 떨어지는 그 너클볼은 모 아니면 도이고, 손톱으로 공을 쥐기 때문에 잘만 되면 선수생명이 오래 갈 수 있지만, 보편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선수는 아주 소수일 수 밖에 없다. 그 세계를 살아가는 선수의 이야기. 재밌다.
평생을 소와 살며 깊이 깊이 소를 사랑하는 <브릿과 잉거>라는 작품, 원래 제목은 Women with Cows.
이 다큐도 넋을 놓고 보았다.
하나하나 모두 독특하고 의미있고 좋아서 끝나고 나면 한숨이 나오곤 했는데, 개인적으로 참 재밌었던 것은 <언젠간 행복할 거야>라는 작품이었다.
거기 나오는 소년과 할머니가 너무 재밌어서......
이 다큐는 약간 극영화 같기도 한 그런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부모가 없이(아버지는 감옥에 있나? 죽었나? 엄마는 심한 알콜홀릭과 자폐로 아들을 만나지 않는다. 좀 아슴아슴...) 할머니와 크는 아무렇지 않은(? 너무나 평범해 보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청소년이 주인공이다.
할머니에게 이 아이는 인생의 전부인데, 그렇다고 징징대지 않는다.
이 아이가 늦거나 잘못하거나 하면 눈치보지 않고 야단치고 심지어는 때리기도 하면서 당당하게 기른다. 여러가지 재밌는 장면이 많다.
이번 시험은 어땠니?
모두 잘 했어요. (평균 90은 될 거예요....)
근데 그럼 이건 뭐냐?(성적표! 두들겨 팬다, 얌전히 맞는다)
그 와중에도 감독의 꿈을 갖고 있는 이 아이는 자기 주위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묻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다큐를 찍는데, 그러느라 학교 일에 몰두할 수 없고 그래서 할머니한테 계속 야단을 맞는다.
돈이 없어 싸구려 휴대폰 카메라로 타큐를 찍기 시작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이 아이는 할머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게 되고(원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부모의 정을 그리는 안타까움은 늘 가슴을 찌르기 때문에 가끔은 심슬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런 할머니가 야단치거나 때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할머니에게 앵글을 돌려 자꾸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할머니는 정말 재밌고도 솔직하게 뭐든지 대답해준다.
엄마에게 거부당한 아이가 맨 나중 장면에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왜 태어난 것 같아요?
할머니의 결론 짓는 대답.
'너 만나러'
정말 사람이 무엇일까,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다큐였다.
이 아이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만약에 돈이 많이 생기면 뭐 하고 싶어요' 하고 물으니
'온천에 가서 긴 의자에 누워서 포도주도 마시고.......'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가 있나 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는데.
이 아이가 나온 작품은 대상으로 뽑히지 않았다.
물론 방영한 작품은 모두 일단 뽑힌 것들이지만.
그러면 어떠랴.
폴란드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잠을 설쳐가며, 감동으로 웃음지으며 작품을 봐 준 사람이 있는데^^
대상은 <불리>라는 작품이고 난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극장에서 볼 예정이다.
내년이 기대된다.^^
임옥규선배님 안녕하세요?
14 , 이인흽니다.
<야곱신부의 편지>와 <자전거 탄 소년>을 저도 봤습니다.
<자전거 탄 소년>은 그 소년이 영화 초반부터 좌충우돌하고 산만해 보여서
걱정을 많이 하면서 보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목을 놓아 많이 울었던 영홥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떨어졌고,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아이가 그 광경에 놀라 아버지를 데려왔을 때에
나무에서 떨어졌던 그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일어나서 걸어가는 라스트 씬에서
그만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풀리면서 와락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되더군요^^
결국 용서와 화해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가족,나에게 소중한 것,어머니는 아니어도 아이를 돕는 미장원의 미용사...
그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영화였지요^^
<야곱신부의 편지>는
심드렁하고 다소 심통맞기까지 한 레일라의 태도에 안타까움을 갖고 보다가
영화가 고조되는 순간이 지나고 결국 레일라 자신의 이야기를 신부님에게 하게 되고
이어서 신부님이 갖다 준 한 뭉치의 편지를 보았고 그 중의 한 편지를 읽어 내려갈 때부터
폭풍같은 눈물이 흘러서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도 엉엉...ㅎㅎ
결국 화장실 가서까지 울음이 멈추어지질 않았습니다.
신부님의 남루함과 간절한 기도,
그리고 억눌려서 소녀시절을 보냈고
결국 형부를 죽인 죄로 종신형을 살았던 레일라의 강퍅한 마음을 울리게 했던
언니의 편지가 정말 큰 감동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처럼 좋은 영화는 저에게는 한 권의 책만큼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서 저를 따스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깊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 정기용선생을 이야기했던 <말하는 건축가>는 보셨는지요?
다큐영화였지만 무척 감동스럽게 본 영화였거든요^^
<케빈에 대하여>는 결론이 너무도 끔찍하여서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어요...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아주아주 리얼했지요^^
<아 엠 러브 >에서는 그렇게 우아했건만....
케빈의 아버지로 나온 배우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에서도 나오더군요^^
조디 포스터의 남편 마이클로 분해서요...ㅎ
인희씨 반가워요~~~
인희씨 글 잘 보고 있어요.
인희씨가 보는 글, 영화에 대한 글 여기다 써요.
같이 읽고 같이 생각하고.
요즘엔 극장엘 잘 안 가고 주로 집에서 보는데
물론 시간이 없어서 그렇긴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바렌보임이 나오는 영화가 나올 예정인가 봐요.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 12기 청운동 산책할 때 힘들게 걷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ㅎㅎ
그때 에구..... 저 착한 사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잘 지내고 글로 만나요~~~~
<The cave of the yellow dog>
저번에 이비에스에서 한 다큐 페스티벌이 끝난 후에도 계속 여운이 남아서 몇 몇 다큐를 찾아보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굴 속에서 나온 누렁개>라고 번역을 했던데.....
처음엔 정말 다큐인 줄 알았다.
미암바수렌 다바아의 작품인데, 그는 주로 몽골을 소재로 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징기츠칸의 두 마리 말>, <낙타의 눈물>, <동굴 속에서 나온 누렁개> 등의 작품을 만든 사람이다.
거의 드라마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큐성이 강한데, 도대체 어떻게 연출을 했기에 이런 장면을 만들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혹시 찾을 수 있으면 한 번 보세요~~
우리가 잃은 그 무엇이 있어서일까? 무얼까? 암튼 어디서 본 것 같은 그 느낌, 이거 뭔지.......
잊어버리기 전에 소개합니다.
다큐 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몇 개월 전에 다니엘 바렌보임에 관한 책을 읽었다.(을유문화사)
음악에 관한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쓴 책이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개인적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려는 의도는 물론 그럴 용기도 없다.
나는 다만 음악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쓰고, 이런 몰입을 검증하기 위한 호기심으로 간직하고자 애썼다-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 책을 읽고 난 일단 그의 생각과 역정을 잘 알 수 있었고, 그의 삶, 음악과 연관된 그의 행동과 삶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의 어느 한 부분, 사랑했던 천재 연주자 부인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한 평가로 그가 특히 여자들한테 이해를 받고 있지 못하는 면이 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을 능가하는 음악의 운명이 그를 더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한편 들기도 했다.
1998년 바이마르의 문화부 장관 베른트 카우프만과 바렌보임은 만나게 된다.
그는 중동(아랍인과 이스라엘)과 독일의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여름 워크숍을 바이마르에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바이마르는 독일 역사에서 가장 좋았던 점과 가장 추악한 점을 모두 상징하는 곳이었다.
괴테와 실러의 고향이며 바흐와 리스트의 문화적 중심지로 그지없는 역사와 음악의 고장이었지만,
동시에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부헨발트 집단 수용소가 존재 했고, 독일 역사상 최악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이 두 가지 모습이 같은 장소에서 교차하고 있었고 그것이 바렌보임의 흥미를 끌었다.
이스라엘의 중동 침략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항상 주장하는 이스라엘 사람 바렌보임은 어떻게든 집단적 잘못에 대해 언급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보상하거나 개선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의 공존의 문제로 생각이 이어졌다.
이스라엘이나 아랍권에서는 불가능한 이런 일은 중립적인 지역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지난 300 년간 위대한 음악들이 나온 독일에서 중동과 이스라엘의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 워크숍을 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 견해나 종교 때문에 누구라도 차별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의 목표는 지극히 비정치적이었고, 음악이 사람들을 묶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무관심하거나 증오하는 이스라엘과 아랍인들이 같은 보면대를 쓰고, 똑같은 강약과 똑같은 시작, 똑같은 비브라토를 통해 같은 음표를 연주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 평화에 다다르는 길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워크숍은 ‘다른 편’에서 온 누군가와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랍에서 온 이 젊은이들이 서로 교류를 나눈다면 미래를 위한 희망적 징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 모두 바라듯 상황이 좋아지고 이 지역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이전에 이러한 기회가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끔찍한 전쟁이 지금처럼 계속 일어난다고 해도 그들은 최소한 자신의 삶이 풍성해지는 경험만이라도 얻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완벽하게 열린 마음으로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이런 생각에 큰 힘을 주었던 것은 그의 존경하는 벗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였다.
1993년 런던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드와 짧은 시간에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
요즘 매우 감동적으로 읽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의 친구이기도 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모든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로 그와 이 프로젝트 내내 함께 하다가 중도에 백혈병으로 죽고 만다.
워크숍 초기에 연습 시간 외의 시간에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 악단의 이스라엘과 아랍 젊은이들에게 말하자면 인문학 강의를 했는데, 너무나 쉽고도 간명한 설명으로 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런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얘기한다.
그가 죽고 난 후 바렌보임은 깊은 혼란과 어려움에 빠진다. 그는 사이드가 없이 혼자 하는 일은
<두렵다>고 했다. 또 실제로 어려움에 빠진다.
그래도 그는 해 나간다. 절망을 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훌륭히 수행되고, 너무나 유능한 지휘자 바렌보임의 열정으로 능력과 패기를 지닌 양쪽의 젊은이들은 빛나는 화음을 만들게 된다.
중국 출신의 첼로 연주자 요요마의 헌신적인 협조가 또한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갈등과 화해를 거듭하며 서로 우정과 이해를 나누게 되는 이들은 여러 차례의 공연을 거쳐 결국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도인 라말라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라말라에서의 연주는 현재 상황에서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민의 대부분이 중동사람이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강제로 점령당했고, 그래서 가장 극렬한 저항 운동이 일어나는 곳, 중동 사람들조차 갈 수 없는 곳, 예루살렘에서 15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그 남쪽에는 베들레헴이 있는 곳, 바로 그 곳에서 양쪽의 젊은이들이 모여 연주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감동으로 울컥하며 공을 지휘자에게 돌리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말한다.
You do that!
그들은 그 말을 <네가 한 거야>뿐이 아니고 <네가 해야 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영화에서 말한다.
왜 진즉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이런 생각을 좀 더 빨리 할 수 있어서 나에게 주어진 이런 능력을 진즉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단 어느 단계를 넘은 사람들은 남의 시선이나 무가치한 세상의 잣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다.
문도 열려있고,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고, 출입문이 중간에 닫히는 중.고등학생들만 있는 중동의 고등학교 초라한 강당에서의 연주 후 그는 이 아이들 앞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너무나 기뻐하며 묻는다.
연주 좋았니?
어느 여자 아이가 말한다.
당신이 처음이었어요.
탱크와 총을 갖고 오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은, 우리에게 음악을 갖고 온 이스라엘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이 모든 것을 담은 것이 이 영화다.
무척 재밌다. 음악도 너무 좋고 감동 그 자체다.
울컥울컥 시종 가슴이 메었다.
전에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엘 시스테마라는 다큐 영화가 나왔을 때도 그랬고, 이 영화를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한다.
좀 과장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모두 특별히 뽑힌 사람들 아닌가?
그들이 소위 그 민중의 대표라 할 수 있는가?
전부를 보여 준 거라고 할 수는 없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엘제아르 부피에는 말한다.
제가 심은 나무는 바다의 물 한 방울입니다.
그 한 방울이 결국 숲을 살리고 숲을 만들었다.
난 생각한다.
빈정거리다 생을 다 보낼 것인가?
에드워드 사이드
첼로 요요마
어디서나 항상 토론
땀을 뚝뚝 흘리며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연습할 때 그는 말한다
뭐든지 해 줄게, 맛있는 거 사달래면 사 주고 노래하라면 할게, 댄스를 하라고 해도 할게.
제발 활을 길게 당기라구!!!!
그러면 아이들은 활을 길게 당긴다.
대단한 지휘자의 힘!
전 안국역 근처에 있는 시네코드 선재에서 봤는데요, 더 이어서 하니 혹시 여건이 되시면 보세요.
옥규야, 아침부터 감동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유명하신 분으로
DVD로만 그의 연주를 감상하곤 했었는데
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도 많고
또 그 대단한 사람들의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도 많아서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요즘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다.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내 자신부터 얼마나 편협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편협함이 나로 끝날 수 있는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나
그로인해 상처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무지도 죄다' 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걸 그래도 좀은 벗어날 수 있는 방법?----끝없는 토론!
그런데 우린 토론에 익숙칠 못하다.
하여 언성이 높아지고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시키려고 씩씩거리기 일수다.
한발씩 물러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귀기울이는 습관이 절실하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아침!
모든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
You do that!
그들은 그 말을 <네가 한 거야>뿐이 아니고 <네가 해야 해>
오늘 아침엔 '두려움아 저리가'를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준비했다. 사랑해^^
옥규때문에 볼 영화, 읽을 책 ~ 많아진다.
좋은 책을 옆에 두면 가슴이 두근거리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책 잘 안 읽게 되더라.
1시간 이상 읽음 눈이 피로하고~
그냥 밭에 나가서 채소랑 중얼거리고 물주고 잡초 뽑아주는 일이 더 좋아지네.
<아무르>, <엔딩 노트>, <심플 라이프>를 보고
영화 <아무르>, <엔딩노트>, <심플 라이프>를 연이어 보았다.
사실은 본 지가 좀 됐다.
세 영화의 소재가 모두 <죽음>
영화에 대한 생각이 줄곧 떠나지 않는다.
사실 요즘엔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즐거운 화제는 아니지만, 피할 수 없는 것.
더 나아가서 피해서는 안 되는 것.
더 나아가서 깊이 깊이 생각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실천해야 하는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아무르>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던 부인이 멍한 상태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남편은 당황해하며 부인을 부르지만 부인의 정신은 너무 멀리 가 있다. 허둥대던 남편이 다시 식탁으로 오자 부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밥을 먹고 있다. 이로부터 이들 부부의 알츠하이머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부인은 훌륭한 피아니스트 출신이고 훌륭한 제자들도 키웠다. 한때는.
본인은 물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고,
그래서 더욱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가장 혼란한 사람은 물론 그녀 자신일 것이다.
생리현상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부부는 더욱 절망으로 빠지게 된다.
마치 자신의 몸속에 갇힌 것처럼 무엇도,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부인의 고통도 뭐라 말 할 수 없이
심하겠지만, 부인을 보살펴야 하는 배우자의 고통은 정말 실제로 너무 힘겹게 다가온다.
걱정밖에 할 일이 없는 딸의 방문
슬픔과 무력감에 어쩔 줄 모르며 울지만 그녀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외에.
딸의 심정까지 아우르기에는 아버지의 일이 너무 벅차다.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지고, 본인이 알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배우자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반대로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배우자에게 바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장 루이 트랭티냥
<남과 여>를 비롯한 많은 프랑스 영화에서 너무나 매력적이고 냉담한 듯 간결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명배우.
20대 때 내 마음의 배우 중 하나.
엠마누엘 리바. 몇몇 영화에서 봤던 배우인데 정말 80이 넘은 두 배우의 연기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심플 라이프>
(내용은 네이버에서 좀 옮깁니다)
4대에 걸쳐 로저(유덕화)네 집안일을 하며 살아온 아타오(엽덕한).
꽤나 성공한 영화제작자인 로저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모두 이민을 가고, 중국전역으로 출장이 잦은 로저만을 돌보고 있던 아타오는 갑작스레 중풍으로 쓰러지고 만다.
자기 몸조차 추스르기 힘들어지자 로저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요양병원 행을 자처한다.
그곳에서 여러 사연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이 새로운 ‘가족’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타오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으며 그녀를 돌보는 로저는 자신에게 타오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점점 타오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로저는 사랑하는 타오와의 마지막을 함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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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식구들이 있었지만, 둘의 관계는 독특했고 서로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물론 주종 관계였지만 이미 둘의 관계는 그것을 넘어서 이어졌던 것이다.
그녀나 로저나 자신의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다.
유덕화가 연기한 로저의 역할은 그의 성격을 사실적으로 잘 드러냈다.
담담하고 격정적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방해받지 않으며 소박하고 독립적인 독신 남자 역할을 더 할 수 없이 잘 연기했다.
그녀가 아플 때 로저는 말한다.
내가 아플 때 나를 돌봤으니 이제는 내가 돌봐야지.
서로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귀한 관계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고, 그저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타오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함께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죽음 앞에서 안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투덜거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 게다가 끝까지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영화는 서로 깊이 헌신하고 이해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마지막을 담담히 맞을 수 있는가 하는, 세상의 잣대로는 초라했으나, 현명하기 그지없었던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픽션이다.
담담한 화면 속에서 진행되는 내용을 함께 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이다.
<엔딩 노트>
이 영화는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차 실수해서 갖게 된^^ 막내딸이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찍은 다큐멘터리다.
그 막내딸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모습을 쭉~ 찍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한 직장에서 지독하게 열심히 일해 온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다.
가정에는 신경을 쓸 수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우연히 하게 된 건강검진에서 말기 암인 것을 알게 되자, 무척 놀라고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곧 정신을 차리고 자기의 할 일을 <업무적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기의 장례식 준비를 꼼꼼하게 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이상한 일이지만 아버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실현해 간다.
우울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아버지가 마치 이 일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해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무겁지 않고, 오히려 그 과정을 따라가는 내내 어떤 활력을 느끼기도 한다.
<손녀들과 시간 갖기>도 프로젝트의 하나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계획에 배려있게 협력하며 아버지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돕는다.
문제는 부인이다.
부인과 남편은 그 동안 각자의 생활이 너무나 달랐고, 그래서 함께 하게 된 퇴직 후의 생활에서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환자인 아버지의 고민과 갈등도 문제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갈등은 더욱 복합적일 수밖에 없었다.
부인은 화가 잔뜩 나 있다.
회사 다닐 때는 일 일 일 한다고 시간을 갖지 못하더니, 이제 퇴직하고 같이 지내며 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뭐냐고 화를 낸다.
청소를 하다가 집어던지고.....
남편에 대해서, 또 대상을 알 수 없는 뭔가에 화가 나서, 남편을 사랑하는지 어쩐지 자기의 감정을 알 수도 없다.
집을 방문하는 자식들을 맞고 병원에 가고 하는 동안 이상할 정도로 부인에게 슬픔이나 안타까움의 표정은 없다. 좀 넋이 나가있는 모습.
투병의 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징징대지 않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도 프로젝트의 하나.
현실에 대한 직시.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었던 지향이었다.
모든 상황 변화를 함께 했던 5살 손녀에게 가족들이 묻는다.
죽는 것이 뭔지 아니?
알아, 알아, 사람은 책과 같아. 책은 오래 되면 점점 낡아지고 바삭하고 부서지게 되잖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가족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사랑을 전하는 것도 엔딩 노트 프로젝트의 하나다.
상태가 나빠져 더 이상 기운이 빠지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것 같은 시간이 되었을 때
가족들에게 하나 하나 밝은 목소리로, 정말 이성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함과 사랑을 전한다.
이렇게 모여 있어 행복하다. 이렇게 모여 웃고 있으니 여기가 천국 같구나~
아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전에 하지 못했던,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말을 한다.
당신을 사랑해.
갑자기 아내가 무너지며 말한다.
당신과 같이 가고 싶어. 당신을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어.
당신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어. 나 잘 몰랐어.
시아버지와의 이별을 위해 갓 낳은 아이를 데리고 부석부석한 모습으로 미국에서 온 며느리.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손녀와 할아버지는 그렇게 병실에서 만남과 이별을 하게 된다.
참! 버킷리스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생전 처음 야당에 투표하기!ㅎㅎ
딸은 말한다.
아빠 그렇게 말하지만 또 자민당 찍을 거면서 ㅎㅎㅎㅎ
아니야 아니야 이번에는 야당 찍을 거야 ㅎㅎㅎㅎ
최선을 다해 투병하면서도 충격과 슬픔과 허망한 기대에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장례식을 준비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일, 쉬운 일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완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다시 읽고 있다.
모리 교수 또한 뜻밖의 루게릭 병에 걸리게 되고,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끝이 가까웠다는 게
분명했을 때, 어떤 태도를 갖기로 한다.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쓸 것인가?
그는 시름시름 앓고 싶지 않았다. 또 죽어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의 죽음을 삶의 중심이 될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고 싶어했다.
'누구나 죽으니까 기왕이면 나의 죽음을 어떤 의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학생들과 자신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여정을 열고, 관계를 맺으며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능력, 듣는 것, 충심으로 상대의 말을 듣는 일을 하며 생의 다리를 건너간다.
어렸을 때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며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가 없었다.
지금은 아주 깊이 빠져서 읽고 있다.
나와 아주 좋은 친구였던 우리 시어머니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하신 말씀이
'죽는 일이 힘들다고 하더니 정말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였다.
가까운 이와의 이별도 한 손으로 꼽기에 부족한 경험을 한 이즈음
나의 그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투병을 하고, 본성을 지키려 애를 쓰고, 주위 사람을 힘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었는가 하는 것을 절실히 절실히 느낀다.
이상하게 연이어 본 영화가 이런 주제를 갖고 있어 좀 가라앉아서 생각해 봤지만
사실 뭐 사람의 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살아왔던 일 생각하면 힘들지 않았던 일이 어디 있었는가?
그런 마음으로
뭐 그런 마음으로.....
이 방은 화림 온니랑 옥규가 자주 애용하고
나는 그저 업혀가듯 눈팅만 하는 방.
옥규야 ~
요즘은 새벽에 극장 안 가냐?
예술영화라는 것을 나는 네 시각으로 본 것만 얻어보는 편이여.
영화를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네 능력이 범상한 게 아녀.
머릿속에서 다 날려보내기 전에 여기다 써 놓으셔.
공유하면서 네 느낌도 오래 잡아두시라고.
화림언니도 마찬가지세용 ~
- 옥규 참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끊임없이 책 보고 영화 보고 생각하고 배려하고 가르치고 기획하고 여행하고...
이 방의 지난 글들을 주욱 ~ 읽으면서 든 생각.
옥규 ~
여기에 써 놓은 영화 이야기 정리하고 퇴고해 놓으셔.
우리 10주년 기념 책자에 중요한 부분이 될 터이니.
<인생 후르츠> 감독 후시하라 겐시 -다큐
인생은 주어지는 것일까 만들어 가는 것일까? 인연은?
물론 양면이 다 있겠지만 아무래도 만들어가는 면이 더 크지 않을까.
이 소박하고 겸손하고 성실한 자유인들을 보면서 아마 이 영화를 보는 누구나가 그렇겠듯이 참 마음이 뿌듯하달까 찌릿하달까 시종 묘했다.
식구랑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말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암튼 남은 사람은 씩씩하게 살아야겠지?
했더니 말없이 웃는다.
씩씩하게 지내는? 이런 얘기 웃으면서 해서 좋다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을 한다.
좋은 부부란 어떤 것일까? 혹은 좋은 인간 관계는?
이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즉 기쁜 삶이 되도록 티나지 않게 그야말로 꾸준히 천천히 도움을 주는 관계가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모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매우 자유롭다.
더할 수 없이 좋은 친구다. 서로에게 성실하지만 자유롭다는 점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안 본 이를 위해 내용은 생략.
얼마 전에 작고한 명배우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도 깊은 울림을 준다.
가까운 영화관에 가서 보시기를 권한다.
남편이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린 그림(고구마와 진빵 같은, 일종의 사인)처럼 나도 그림 사인을 만들어 볼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빵집에 가서 식빵을 사서 바삭하게 구워 과일 잼을 발라 먹고 싶어질 거다.
오늘 저녁 오랫동안 서서 잼을 만들었다.
아로니아, 청귤, 유자를 섞어서.
???정화야!!!!
저 위에 있는 영화는 주로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데서 하드라.
주안에 있는 영화 공간에서 상영하였는데 지금은 끝났는지 모르겠어.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그곳에서 매달 두번째 주 수요일에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드라.
그래서 이번달에 시간내서 한번 가볼려고 하는데 어쩔지 모르겠다.
좋은 프로그램이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영화를 보는
동호회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
일단은 내가 한번 가보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