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전편 한 여자 (31)
-100.-
파울의 민트색 차가 언덕을 천천히 내려가자
은지가 신이 나서 ' 야호! 아저씨 더 빨리 달려요!' 라며 소리친다
백미러로 파울이 뒷좌석을 보다가 여자의 눈과 마주치자 ' 뭐라고 하는 거지? ' 눈으로 묻는다.
" 오랜만에 자동차를 타니 기분이 좋은 가 봐요.. 빨리 달리라고 그러네요 "
" 어! 그래요? 그럼 달리지요 뭐! 허허허"
갑자기 속도를 내기시작한다.
앞 좌석 파울 옆에 앉았던 클라우스가 놀래며,
" 아! 내리막길을 달리면 위험하지.. 자네는 아직도 소년같구만 허허허"
유쾌하게 말린다.
" 파! 괜찮아요. 파울이 원래 운전을 잘 하잖아요. " 뒷자리에 여자와 은지와 같이 앉았던 오르넬라는
앞자리의 클라우스의 목을 흔들면서 애교스럽게 말한다.
참 !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를 꽤 따르네 그려.
한국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여자를 많이 의지하던 아버지...보고 싶다.
어느 덧 시골길로 들어선다.
모두들 어디로 가냐고 묻지 않고 파울이 운전하는 데로 따른다.
호수를 따라 가는데 여자가 어제 애들과 갔던 길과는 사뭇다르게 고요하다.
" 제이드! 당신에게 '구스타프 말러'가 머물렀던 오두막을 보여주려고요.
아터제라는 호숫가에 있어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도 여름마다 찾았던 호수이지요.
그냥 호숫가를 걸어도 그들의 느낌이 들 것이에요."
여자는 파울이 말하는 '말러' '클림트'가 생소하다.
여자의 반응이 미미하자 클라우스가 거든다.
" 허허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 보군. 제이드! 그럼 오늘 우리들이 푹 느끼게 해줄게요.
내가 슈베르트와 더불어 좋아하는 작곡가가 바로 '말러'랍니다.
이탈리아 사람으로서는 드문 일이라고 주위에서 갸웃거리지만요. 허허허"
" 좌우지간 파파는 어찌 '말러'를 그리 좋아하세요? 나는 음색이 어두어서 좀..."
여자는 갑자기 자신이 음악에 문외한 같은 기분이 든다.
" 파울! 그 호숫가에 '프리드리히 굴다'가 사는데.. 오늘 만났으면 좋겠는데.."
오르넬라가 지명한 '굴다'의 이름에 여자는 반갑다.
아! 그 분이 참 오스트리아 사람이었지. 어머! 여기에 산다고?
" 정말 그래요? 저, 그분이 치신 테이프들을 가지고 있어요. 모짜르트 곡들이 대부분이지만요."
여자가 반가워 하자 파울과 클라우스도 기뻐한다.
" 그럼 , 파울! 어서 가봅시다. 굴다가 자주 들르는 그 카페에 가면 만날수도..."
여자의 가슴이 두근 거린다.
이렇게 먼 나라의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현존하는 곳이 바로 여기라니...
" 엄마!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엄마가 기분 좋은 것 같애. "
" 응. 유명한 분들이 이 호숫가에서 살았고 지금도 사신데네.. 그렇게 여기가 아름다운 가 보다"
" 엄마! 나는 그냥 호수만 봐도 좋은데?"
그래! 네말이 맞다. 내가 어쩌다 이리도 속물에 가까워졌노..
차가 목가적인 카페 레스토랑 게스트 하우스 앞에 선다.
파울이 앞서 가는데 안에서 민속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나오며
" 와! 오늘 어쩐일이래요. 로렌스교수, 클라우스 마에스트로. 그리고 오르넬라 공주님까지 대동하시고?"
약간은 수선스럽게 영접하던 남자가 주인인가 보다.
그러더니 여자와 은지를 보고는 눈이 둥그레진다.
"허허허 ! 이 사람이 허풍은 여전하군. 오늘은 한국에서 오신 귀빈을 대접하느라 왔구만"
파울대신 클라우스가 대답을 하며 여자와 은지를 그에게 소개한다.
" 영광입니다. 한국분이 오시다니.. 자 어서 들어 오세요."
여자는 안으로 들어가며 곳곳을 찬찬히 본다.벽에 유명인사들 사진들이 걸려있다.
안경을 쓴 사람 액자를 가까히 가 보니 " GUSTAV MAHLER`라는 이름이 아래 붙어 있다.
아까 파울과 클라우스가 언급했던 그 음악가인 것이다.
.
클라우스가 주인에게
" 우리 밖에 없으니 말러의 곡을 좀 틀어주면 안 되겠오?
우리 제이드가 듣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허허허"
주문한다.
" 작곡 오두막에 가면 들을 수있지만.. 지금 원하시다면 틀어드리지요..
심포니 5번 아다지에토 .. 괜찮겠어요?" 라며 여자에게 묻는다.
" 좋으실데로... 저는 잘 모르겠어요." 수줍게 대답한다.
음악이 나온다..그런데.. 아는 음악인 것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의 죽음'을 영화한 것의 주제음악이다.
" 어머! 베니스의 죽음에 나온 음악?" 여자가 물으니,
"역시 영화의 영향은 대단합니다" 주인이 유쾌하게 말한다.
실내에는 다른 손님들이 없다.
일행 모두는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처럼 조용히 경청한다.
은지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손을 모아 여자 곁에 앉는다.
여자는 눈을 감고 음악속으로 몰입한다.
- 101.-
´아다지에토' 곡이 끝났으나 여자는 바로 눈을 뜰 수가 없다.
가슴이 너무 벅차다.
마음을 정리하고 눈을 뜨니 모두들 여자를 바라본다.
" 제이드! 그리 감동했어요? 역시 우리는 뭔가 통하는 가보네" 오르넬라가 농담섞어 말을연다.
" 제가 이제 세로운 음악세계에 입문한 것 같아요..고마워요 모두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파울은 아무소리도 안하고 그윽히 여자를 바라 본다.
" 허허허! 제이드 , 뭘 그리 정식으로 인사까지,,, 자 이제 호숫가 말러의 작곡 오두막으로 갑시다. 거기 가면 제이드가 얼마나 감동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클라우스가 자리를 일어서며 당장이라도 나갈 태도이다. 그러자 파울이 입을 열며,
" 클라우스!, 당신과 오르넬라는 이미 여러번 다녀갔었으니까 오늘은 내가 제이드하고만 그 곳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자그마한 공간에 여럿이 들어서면 말러 선생 심기가 편치 않을 듯 싶으니..." 아주 조용조용 말을 한다.
" 파! 그렇게 해요. 우리는 여기서 꼬맹이 데리고 쉬지요. 아니면 제이드가 다녀온 다음 우리끼리 가던지요.." 오르넬라가 클라우스에게 제의를 한다.
" 그럼 그러지.. 하긴 오두막 공간이 좁으니.. 그래! 파울. 어서 제이드 데리고 가요. 꼬맹이는 여기 놔두고"
여자는 그네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기를 이렇게 배려해주는 마음에 고맙다.
" 제이드, 은지를 데리고 갈까요? 아니면 여기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좋을 듯한데요." 파울이 조심스레 묻는다.
" 그래요. 여기에서 놀라고 하지요... 아직 음악을 이해하기에는 어리니까요." 여자가 파울에게 말하고
" 은지야. 엄마가 저쪽 오두막 다녀올 동안 오르넬라 아줌마와 잘 놀고 있어. 다녀와서 점심 같이 먹자"
" 응 ! 아이 좋아라. 엄마, 여기 오스트리아는 식당마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서 참 좋아.그럼 나갈께요"
말하자 마자 바로 나간다.
모두들 음악을 듣는 동안 어지간히 지루했었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인이 커다란 열쇠를 가져와 여자에게 건네준다.
"이 열쇠로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신은 곧바로 말러선생을 만날 거에요. 뜻깊은 만남이 되기를 바래요"
처음에 영접할 때의 수선스러움은 사라지고 말러의 집사처럼 진지하다.
" 예, 다녀 올게요." 여자가 주인에게 인사하자 파울이 앞장선다.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한 5.6분 정도 호숫가 쪽으로 걸어 오니 바로 호숫가에 자그마한 오두막이 보인다.
오늘따라 하늘이 푸르고 맑아 더 높게 보이는데 호수는 얼마나 청정한지..
앞서 가던 파울이 되돌아 서며,
" 제이드, 당신이 그 열쇠로 문을 열어요. 나는 그냥 조용히 있을게요"
여자가 그의 말대로 나무문 구멍에 열쇠를 넣어 돌린다.
" 덜커덕" 빗장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시 놀라 파울을 바라본다.
파울이 문을 열어주며 여자가 안으로 들어가게 도와 준다.
안으로 들어가니 벽면에 말러의 사진과 기록물들이 걸려있고
오래된 피아노가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조용하게 음악이 흐른다.
아마도 자동적으로 안에 사람이 들어오면 들리는 장치를 한 것 같다.
자그마한 창가로 가니 바깥호수의 풍경이 한폭의 그림같다.
여자는 한참을 창가에 서있다.
햐...이 곳에서 지내며 작곡된 곡!
너무나 그의 선율과 화성적 어울림이라니..
아직도 입구 문쪽에 서있는 파울은 여자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며 그 또한 감동받는 것이다.
( 어떻게 이 여자는 나를 이토록 흡인할 수 있는가..)
창가의 여자에게로 다가간다.
여자는 시선을 바깥으로 둔채 그가 옆에 있슴을 모른다.
파울이 그녀의 등뒤에 서서 자신의 팔을 둘러 그녀를 서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