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전편 한 여자 (29)
-95.-
" 거기도 비가 와요?"
파울이 무뚝뚝하게 날씨를 묻는다.
여자는 대답대신 창밖을 본다.
어머, 비가 오네.. 아까 까지도 맑았었는데...
그런데 날씨를 묻겠다고 전화를 했노? 차암...
" 예.. 비가 방금부터 오기 시작했어요."
" 아! 그렇군요. 비엔나도 비가 꽤 오고 있는데, 잘츠부르그는 종종 비가 오니까 옷 든든히 입고 몸조심해요. 내일 거기로 내가 갈 거에요. 클라우스 만나러..."
다시 평소의 음성으로 친절히 말한다.
"그러세요? 서로 약속하셨었군요. 조금 전 그분과 따님을 만났어요. 이제 저녁식사하러 갈 거에요. "
" 예.. 그럼 맛있게 잡수시고 즐거운 저녁 맞어요. 내일 봅시다."
" 예. 안녕히..."
수화기를 내리며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를 떠나서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었는데.. 또 만나게 되다니.
식당으로 들어서니 클라우스 옆에 은지가,은지 건너편에 오르넬라가 앉아있다.
클라우스 건너편 비어있는 자리에 주인이 여자를 안내하며 의자를 뒤로 밀어주는데,
은지가 일어서며 여자에게 온다.
" 타햐! 여태까지 잘 놀더니 엄마가 오니 엄마에게 바로 가네? 그럼 내가 자리를 줄께"
오르넬라가 은지에게 자신의 자리를 주며 클라우스 옆으로 가 앉는다.
이 오르넬라는 속 마음을 항상 말로 나타내는가 보다.
" 고마워요. 은지를 대신 보아 주시고... "여자가 답례를 하자.
" 허허! 애들은 그렇게 엄마가 최고지요. 그런데 파울과 통화는 잘 했어요?"
클라우스가 궁금한듯 묻는다.
" 예... 내일 클라우스 선생님을 만나뵈러 온다고 했어요"
" 그래요?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참 그 사람은 정보통이 밝아요.잘 되었네요. 우리 모두 내일 잘츠부르그에서 편하게 즐깁시다. 파울은 곳곳을 잘 아니까 멋있게 안내할 거에요. 여기 산장도 파울 아버님 로렌스옹 덕분으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 파! 이제 그만 얘기하시고 식사 주문 하시지요. 저는 배가 무척 고파요"
오르넬라가 재촉한다.
옆에 서 있던 주인이 재빠르게 메뉴판을 나누어 주며,
" 로렌스 교수님께서 며칠 전부터 연락을 주셨었어요. 제이드님과 클라우스 지휘자님께서 오시면 연락하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오시는 즉시 연락드렸었지요. 제가 바로 정보통노릇을 했네요. 하하하!"
여자는 두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로렌스옹 가족과 클라우스 가족이 종종찾는 산장임을 알게되었다.
괜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후회가 들기도 하며.
오르넬라가 추천하는 음식에 동의하고 음료수를 마시는데
클라우스가 일어서더니 구석에 있는 피아노쪽으로 가면서,
" 제이드! 나하고 연탄으로 이중주 해볼래요? 여기 악보들이 있거던요"
아니! 이 분이 왜 이러시나?
여자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자,
" 그래요. 제이드랑 치면 좋겠네요. 저대신...그럼 오늘 나는 감상만하고.. 호홋!"
오르넬라가 클라우스 말을 거든다.
참! 이 사람들은 사람을 당혹하게 하면서도 웃네?
" 자! 자! 이리 와요. 제이드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곡을 골라봐요. 여기 오면 항상 오르넬라하고 쳤었는데, 오늘은 제이드와 꼭 치고 싶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그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 여자는 일어서 피아노쪽으로 간다.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중에서 멘델스죤의 피아노 독주곡 '무언가' 를 집어든다.
"내가 그럴줄 알았다니까요. 제이드 취향이..자! 그럼 내가 왼쪽부분을 칠테니 제이드가 오른쪽을 . 오 케이?"
" 그래요. 그럼 선생님께서 먼저 시작하세요. 제가 멜로디 칠께요"
클라우스가 능숙하게 치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가 치는 빠른 반주부분에 멜로디를 얹어 노래하듯 유연히 친다.
이 분은 지휘자인데 어찌 이리도 잘 치실까? 정말 특별한 피아노 실력이시네..
치는 동안 내내 여자는 클라우스에게 놀란다.
한곡이 마치자 클라우스가 멈추며,
" 제이드! 당신은 역시 파울이 반할만큼 선율을 잘 잡네요. 정말로 경탄!"
이 분이 왜이러시나...
여자는 부끄러워 어쩔줄을 모른다.
" 파! 오늘 신나셨네요. 이러다가 저녁내내 피아노를 떠나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제이드 연습없이 어떻게 그리 숨을 고르게 쳐요? 평소에 종종 치던 곡이에요?"
아니,,, 정말 왜들 이러시나요...
산장주인도 박수까지 치며,
" 오늘 밤은 우리 피아노가 제대로 된 연주자를 만나 기쁘겠어요.
이제 식사 준비가 되었으니 자리에 오시고요. 식사 후에 계속 치시지요."
아이구머니나! 쉬러 왔는데...
-96.-
새 아침이 밝아 온다
여자는 바로 이런 순간에 '새'라는 수식어가 적격임을 깨닫는다.
한국을 떠나와서 어느덧 한달이 지나갔는데 이처럼 개운하게 깨어나는 아침이 처음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여명이 은은히 실내를 밝히고 있다.
옆에서 곤히 잠자는 딸아이를 보니 더욱 사랑이 솟아난다.
가만히 볼을 쓰다듬는다.
이 아이는 요즈음의 변화에 어떤 마음일까?
에미가 어린애 데리고 다니며 무리시키는 것일텐데...
그래도 얘야! 나중에 커서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래.
이불을 살그머니 걷고 창가로 가서 엷은 속커텐을 밀어내는데
아래쪽 들판에서 두손을 하늘로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걷는 누군가가 보인다.
누굴까? 이른 새벽에... 어머나 ? 클라우스 선생님!
여자는 그의 움직임의 리듬감에 미소를 짓는다.
참으로 부지런한 분이시네... 일찌기 조깅하시면서 온몸에 율동을 넣으시고 ..그러시니 항상 유쾌한 모습으로 그만한 위치에 오르신 거겠지.
어제 저녁이 다시 떠오른다.
식사후에 계속 연탄곡을 쳐달라는 오르넬라와 산장주인의 요청에 여자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 허!허! 제이드가 오늘 도착하고 쉬어야하니 다음에 기회를 또 잡지요.. 꼬마도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고 .."
클라우드의 제안에 모두 동의하고 여자는 은지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은지가 잠이 깨어 여자에게 다가오며 인사한다.
"응! 너도 잘 잤지?"
"그런데 엄마 왜 여기 있어 ?"
"커튼 걷으려고.."
"엄마 우리 발코니에 나가 봐.. 어! 저기 클라우스 아저씨가 계시네!"
은지가 창너머로 클라우스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저녁 잠시이지만 그와의 시간이 즐거웠었나보다.
"은지야. 아직 새벽이라 날씨가 쌀쌀하니 겉옷 입고 나가자 "
여자는 딸애와 같이 옷장으로 돌아와 웃옷을 걸친후 발코니로 나간다 .
그사이 오르넬라도 나와서 클라우스와 합류하여 경쾌히 걷는다.
" 엄마! 우리도 나가서 산책해요 . 여기가 모두 이뻐!"
"너무 이른데 그냥 여기 발코니에서 보자"
"에이! 나는 나가서 아저씨랑 놀고 싶은데..."
야는 참 신기해. 어찌 말도 안 통하는데 이리도 사람을 따를까?
여자가 생각하는데,
" 굳 모닝! 은지! 제이드!"
오르넬라가 청량한 목소리로 부른다.
" 아줌마! 안녕!"
은지도 대답하며 반가워 한다.
" 일어났으면 이리 내려와요. 산책하다가 해뜨는 것 같이 보자구! 어서! 기다릴께요"
좌우지간 저 여자는 뭐든지 자기 맘대로야.
그런데도 밉지않고 귀엽네 ㅎ
"먼저 가고 있어요.우리는 옷 갈아 입어야 하거든요"
"그래요? 그럼 요기 요 오솔길 쭉 따라오면 되니까 .. 그럼 우리는 천천히 갈게요"
"알았어요. 좀 있다 보자고요"
오르넬라와 약속하고 여자는 딸애와 얼른 세수한 다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
와! 정말 공기가 신선하다 .. 바로 이런 것을 산림욕?
딸애는 어느새 깡총거리며 여자보다 앞선다.
조금 지나니 클라우스 부녀가 보인다
"아저씨 이이----!"
은지가 뛰어가며 부르니 뒤돌아 보며 기다린다
"허!허! 넘어지겠어 천천히!"
은지가 바로 앞에 가니 번쩍 안아 휙 돌린다
" 아----- 좋아라"
오르넬라가 다가오더니
" 좋지요? 여기! "
"예! 참 공기가 좋네요"
" 울 아빠가 여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여기에 오면 피곤이 가신다고 하시네..제이드도 여기서 우리랑 같이 푹 쉬어. 저 어린애를 데리고 어디를 다닐려고 그래요?"
아그 --- 또 자기 주장 나오네그려--
"생각해 보고요 .. "
오르넬라처럼 직선적이지 못하는 자신이 오늘따라 신경쓰인다.
"와! 엄마 해가 떠! 오!!"
은지의 탄성에 그쪽을 보니 붉은 해가 바로 산등성위를 오르고 있다.
언제인가 동해 바다에서 보았던 일출과는 또다른 모습이다.
어찌 말로 표현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