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하나님의 지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려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곳에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흑인 노예소년에서 농과대학 교수가 된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
명예와 부가 기다리는 주립대학 대신 열악한 환경의 흑인 교육기관을
선택한 그의 말입니다.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무지와 가난을 벗어날 힘이 없는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까 늘 고민했던 그
그는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 이라는 연구소를 만들고
성경책외에는 어떤 책도 구비해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창조자가 되신 하나님이 자신이 가진 과학적 영감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밤낮으로 연구한 결과
물감,구두약, 화장품,식용유,의약품,밀가루,비누 등
땅콩을 이용해 105가지의 식품과 200가지의 실용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인조 대리석과 합판
크레파스의 원료 등을 발명했습니다.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역경속에서 만들어 낸 믿음의 발명품으로
전 세계가 지금까지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가진 재능과 검소한 생활로 이웃을 위해 살았습니다.
? 하나님께서 커튼을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무능할 따름입니다.“
하나님,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의지함으로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낼 수 있게 하여주소서.
*****
(동영상에 적혀진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
음악이 부담되시는 분은 정지하시고 옮긴 글만 읽으시면 됩니다.
생업에 속해 살아온 영육을 오로지 주님께 놓아봅니다.
귀한 글과 동영상을 보면서 오늘의 말씀으로 받아봅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는 비교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 하나님께서 커튼을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무능할 따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의 이 말씀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슴에 담고 이번 주도 살겠습니다.
샬롬
"하나님께서 커튼을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무능할 따름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친구가 가꾼 정원에서 찍은 선배님의 멋진 폼새!
어느새 제게도 좋은 기억이 되네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가슴을 열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참으로 위로를 받았어요, 우리의 의지로 살려고 아둥바둥치며 미련하게 구는 우리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안스럽게 보실까요,, 저의 정원에는 가을이 깊이 물들어 가고 있어요. 겨울이 성큼 닥아옵니다 건강하고 또 봐요 . 샬롬!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역사하심을 나도 남도 때때마다 경험할 수 있게 하여주소서.
(내 말로 조금 바꾸어 보았습니다.)
옥인선배님, 항상 음악과 글을 올려주셔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으며
선배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후배입니다.
사진으로만 뵈었지만 여행을 가게 된다면 알아뵐 수 있을 듯 합니다.
상황이 되면 강명희작가랑 한번 가서 뵙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글을 이렇게 접하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정아!
마태복음 연속설교를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대.
한번 검색해보고 들어보렴.
기회가 되면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는 미국의 농학자이다.
경력[편집]
흑인노예의 아들[편집]
조지 워싱턴 카버는 1864년 태어난 흑인 노예의 아들이며, 형제관계는 형이 한 분 있었는데 청년시절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노예상인들에게 잡혀가자 주인인 모세스와 수잔 부부가 돌보았는데, 인종차별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청년시절[편집]
그래서 떠돌아다니면서 학교를 다녔으며, 요리사, 세탁등의 여러 일들을 하여 먹고 살았다. 조지는 우연히 자신처럼 그림을 좋아하는 밀홀랜드 부인와 친해져서 일주일에 두세번씩 밀홀랜드 씨 집을 찾아가고는 했다. 조지의 학문능력을 아까워한 밀홀랜드 부부의 권유로 1893년 심프슨 대학교(Simpson college)에서 미술과 음악을 공부했다. 조지는 대학교 진학을 하려다가 인종차별로 입학을 거부당했었는데, 밀홀랜드 부부가 권한 학교는 인종차별이 없는 곳이었다. 실제 심프슨 학장은 카버의 성적을 보고 입학을 허락했다. 세탁소를 꾸리며 대학교 공부를 했으며, 미술를 가르친 에타 버드(Etta Budd)교수의 권유로 아이오와 농과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밥집에서 밥을 먹지 못할만큼 차별을 당했는데, 버드 교수의 친구가 학교를 찾아와서 따진 덕분에 차별이 개선되었다. 대학교 졸업후에는 모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농업지도[편집]
흑인운동가인 부커 T. 워싱턴의 요구로 조지는 터스키기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07년부터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농민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마차, 나중에는 자동차에 손수 가꾼 양배추를 싣고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을 존경하는 농부댁에서 먹고 자기도 했다. 목화농업이 바구미때문에 몰락하자 고구마과 땅콩을 재배하도록 했다. 땅콩이 많이 재배되었지만 처리할 방법이 문제가 되자 땅콩버터, 인조고기, 빵, 땅콩우유, 음료등을 발명했다. 무역에서는 농민들의 이익을 생각해서 땅콩수입에 관세를 매기는 보호무역을 미국 의회에서 주장했다. 1943년 별세.
재주꾼 조지[편집]
1941년 타임지에서 조지 워싱턴 카버를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했다. 실제 조지 워싱턴 카버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림, 요리, 세탁, 연설,식물학,수의학 모두 해박했다.
출처[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