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봄날은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중년 고개를 넘긴 선후배가 함께 모여
마음 모아 사랑을 나누면서 알차게 이모작하는 곳입니다.다양함과 자유로움을 다 수용하는 것이 우리 봄날의 참모습입니다
뜰안채는 중년에 찾아 온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입니다.
아래에 있는 1장 ~8장의 내용을 이어서 엮어가는 소설이지요.
누구든지 마음이 내키시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곳은 소설의 내용들만 모아 놓는 곳이랍니다.
소설에 대한 주변적인 이야기를 쓰는 방은 따로 있습니다.
소설을 이어서 쓰시려면 댓글란에다
자기가 글을 쓰겠노라는 의사 표시를 하셔야 합니다.
바톤을 받는 것이지요.
바톤을 받지 않고 글을 쓰시면 자칫 중복이 돨까봐 그러지요.
기껏 힘들여 쓴 글이 덧니가 되면 속상하니까요.
가급적 이름답고 진솔한 중년의 삶을 그리는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모여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더 할 수 없이 귀한 기회가 되지 않겠어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추억을 만드는 기쁨에 동참해 보세요
2006.05.01 15:35:41 (*.102.25.121)
+ 편지 +
산 하신토(SAN JASINTO) 산이라는델 갔다.
아래는 아주 멀어서 갯벌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아득한 곳까지 사막인데
산 꼭대기에 난 산책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잔설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차가웠다.
그 물을 먹어보니 달았다.
큰 소나무 한그루가 누워 있었는데, 나무와 흙의 경계가 없었다.
(나무의 아랫쪽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나무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내지 않은 JIN의 편지>中
2006.05.02 11:34:17 (*.221.72.83)
우리는 태양이나 별들을 품에 안을 수 없고, 무한이라는 시간을 체험할 수 없다.
그것은 가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무한을 체험할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눈부신 사랑은 무성한 가시덤불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인간을 저 높이 승리의 길로 이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치욕과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삶을 마감할 것이다.
사랑은 거의 모든 일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식어가는 차를 건성으로 훌쩍 마시며 강희는 앞에 놓인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궁중요리와 서민요리를 혼합한 소박하면서도 기품있는 가정식 요리 강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육류보다는 콩이나 야채를 많이 이용한 요리로 해 볼까.....
이번에 강습생이 도대체 몇 명이야? 이렇게 너무 많으면 안되는데...... '
뭔가 시작해보고 싶은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강희도 몰랐다.
뭔가를 해 보고 싶었던 사람은 아마 강희뿐이 아니었던가 보다.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은 계속 퍼졌고, 어느새 강희는 집에서 깔끔하고도 우아한 요리를 가르치는 강사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식어버린 차를 마저 마시며 강희는 눈을 들어 창 밖을 본다.
넓은 하늘이 베란다 밖으로 펼쳐져 있다.
이럴 때는 아파트 높은 층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늘과 직접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가끔씩 사랑은 멀어짐으로써 오히려 그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상대방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것으로 두 사람의 행복은 충분하다.
사랑은 아주 작은 요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강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일을 해 나가면서 강희는 자기의 내부에 이런 가르치는 능력, 끊임없이 나오는 아이디어, 휘말리지 않으며 맺고 끊는 자기의 태도에 대해서 많이 놀라고 있었다.
'그동안...... 바빠서였을까? 나 어디 있었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편안히 즐기며 강희는 조용히 웃음짓는다.
<- - 부분은 밀란 쿤데라의 '지혜'라는 책에서 인용>
그것은 가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무한을 체험할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눈부신 사랑은 무성한 가시덤불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인간을 저 높이 승리의 길로 이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치욕과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삶을 마감할 것이다.
사랑은 거의 모든 일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식어가는 차를 건성으로 훌쩍 마시며 강희는 앞에 놓인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궁중요리와 서민요리를 혼합한 소박하면서도 기품있는 가정식 요리 강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육류보다는 콩이나 야채를 많이 이용한 요리로 해 볼까.....
이번에 강습생이 도대체 몇 명이야? 이렇게 너무 많으면 안되는데...... '
뭔가 시작해보고 싶은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강희도 몰랐다.
뭔가를 해 보고 싶었던 사람은 아마 강희뿐이 아니었던가 보다.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은 계속 퍼졌고, 어느새 강희는 집에서 깔끔하고도 우아한 요리를 가르치는 강사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식어버린 차를 마저 마시며 강희는 눈을 들어 창 밖을 본다.
넓은 하늘이 베란다 밖으로 펼쳐져 있다.
이럴 때는 아파트 높은 층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늘과 직접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가끔씩 사랑은 멀어짐으로써 오히려 그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상대방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것으로 두 사람의 행복은 충분하다.
사랑은 아주 작은 요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강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일을 해 나가면서 강희는 자기의 내부에 이런 가르치는 능력, 끊임없이 나오는 아이디어, 휘말리지 않으며 맺고 끊는 자기의 태도에 대해서 많이 놀라고 있었다.
'그동안...... 바빠서였을까? 나 어디 있었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편안히 즐기며 강희는 조용히 웃음짓는다.
<- - 부분은 밀란 쿤데라의 '지혜'라는 책에서 인용>
2006.05.06 17:42:11 (*.238.113.69)
전자식 버튼을 누르고 준희가 들어왔다.
"우리 아가씨~ 오늘은 일찍 들어오시네"
"하튼 우리 엄마 몰라보게 달라지셨다니까~
엄마, 오늘도 강습 했어요?"
준희가 밝게 미소지으며 가방을 쇼파에 던지고는 엄마를 뒤에서 껴안는다.
"아니~ 내일이야.
참 그러지 않아도 너랑 의논하려구 했어.
집에서는 아무래도 음식 냄새 노상 배어있고 수강생도 너무 늘고 해서 조그맣게 학원을 차릴까 생각중이야.
보조 교사 한명 정도 쓰고 말야~
어떻게 생각하니?"
'어머~ 그래요. 엄마 찬성이야.
난 원래 여자들이 고급 인력 집에서 썩히는거 반대했던거 알잖아요?
그리고 요즘 평균 수명이 얼마나 길어졌는데~
여자는 80 이 넘는 다는데 그 긴 세월 뭐할껀데?
잘 생각하셨어요.
아빠가 반대하심 내가 도와드릴께요.
우리 엄마, 요즘 일이 생겨서 그런가?
점점 더 예뻐진다니까~"
준희는 엄마의 볼에 입을 쪽 맞춘다.
"어머~ 징그러워 얘.
미국 연수 일년 다녀오더니 미국 사람 흉내니?"
곱게 눈을 흘기면서도 강희는 준희를 사랑스런 눈길로 쳐다본다.
준희가 제방으로 들어간뒤 서재로 들어가 요리책을 뒤적거리던 강희는 생각에 잠겼다.
늦은 밤 강변에서 현우와 헤어진 것이 얼마나 됬을까?
거의 일년여 된것 같았다.
현우도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끔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만나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자기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 보내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강희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배려가 느껴졌다.
그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강희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 아가씨~ 오늘은 일찍 들어오시네"
"하튼 우리 엄마 몰라보게 달라지셨다니까~
엄마, 오늘도 강습 했어요?"
준희가 밝게 미소지으며 가방을 쇼파에 던지고는 엄마를 뒤에서 껴안는다.
"아니~ 내일이야.
참 그러지 않아도 너랑 의논하려구 했어.
집에서는 아무래도 음식 냄새 노상 배어있고 수강생도 너무 늘고 해서 조그맣게 학원을 차릴까 생각중이야.
보조 교사 한명 정도 쓰고 말야~
어떻게 생각하니?"
'어머~ 그래요. 엄마 찬성이야.
난 원래 여자들이 고급 인력 집에서 썩히는거 반대했던거 알잖아요?
그리고 요즘 평균 수명이 얼마나 길어졌는데~
여자는 80 이 넘는 다는데 그 긴 세월 뭐할껀데?
잘 생각하셨어요.
아빠가 반대하심 내가 도와드릴께요.
우리 엄마, 요즘 일이 생겨서 그런가?
점점 더 예뻐진다니까~"
준희는 엄마의 볼에 입을 쪽 맞춘다.
"어머~ 징그러워 얘.
미국 연수 일년 다녀오더니 미국 사람 흉내니?"
곱게 눈을 흘기면서도 강희는 준희를 사랑스런 눈길로 쳐다본다.
준희가 제방으로 들어간뒤 서재로 들어가 요리책을 뒤적거리던 강희는 생각에 잠겼다.
늦은 밤 강변에서 현우와 헤어진 것이 얼마나 됬을까?
거의 일년여 된것 같았다.
현우도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끔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만나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자기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 보내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강희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배려가 느껴졌다.
그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강희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2006.05.09 22:23:34 (*.238.113.69)
"강희씨? 나에요. 윤여경"
"어머~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
내가 뭔가 해 낼줄 알았어요.
부탁이 있어서 걸었어요.
이번 학기 강의 좀 부탁할까 하고 말야~
만나서 얘기하게 시간좀 줄래요?"
"네~ 그러지 않아도 집에서 하니까 좀 불편해서 학원을 낼까 어쩔까 생각이 많은데~
알겠어요. 내일은 강습이 있고 모레 찾아 뵐게요"
"그래요. 모레 오후 시간이면 괜찮아요.
그때 봅시다."
전화를 마친 강희는 서재로 들어가서 메일을 열었다.
"현우씨~
잘 지내시죠?
지난번 메일 답장도 못 보내고 이제야 연락드려요.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네요.
오늘 궁중요리 원장 윤여경 교수가 강의를 맡아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어요.
집에서 하는것이 복잡해서 학원을 낼까 어쩌나 했는데 암튼 그 분과 의논을 해봐야겠어요.
그분께 지도도 받았었고 아주 품이 넓은 분이라 얘기가 잘 될것 같아요.
쓸쓸해서 술마시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말 걱정되요.
우리 만난지 일년이 넘었다고 투정하지만 난 언제나 마음 속에서 당신을 만나고 있답니다.
안녕히~
강희로부터. "
옆방의 준희를 의식하고 간단히 메일을 띄워보낸 강희는 심란해진 맘을 정리하지 못한채 안방으로 와 침대로 쓰러져 버렸다.
일년여를 그렇게 보냈다.
가슴 가득 뭔가 꽉 찬것 같다가고 텅 빈 것 처럼 허전하기도 했다.
메일을 받을때 띄울때 설레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죄를 진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같고 환상인것 같기도 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는 강희의 눈에 서서히 물기가 고였다.
"어머~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
내가 뭔가 해 낼줄 알았어요.
부탁이 있어서 걸었어요.
이번 학기 강의 좀 부탁할까 하고 말야~
만나서 얘기하게 시간좀 줄래요?"
"네~ 그러지 않아도 집에서 하니까 좀 불편해서 학원을 낼까 어쩔까 생각이 많은데~
알겠어요. 내일은 강습이 있고 모레 찾아 뵐게요"
"그래요. 모레 오후 시간이면 괜찮아요.
그때 봅시다."
전화를 마친 강희는 서재로 들어가서 메일을 열었다.
"현우씨~
잘 지내시죠?
지난번 메일 답장도 못 보내고 이제야 연락드려요.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네요.
오늘 궁중요리 원장 윤여경 교수가 강의를 맡아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어요.
집에서 하는것이 복잡해서 학원을 낼까 어쩌나 했는데 암튼 그 분과 의논을 해봐야겠어요.
그분께 지도도 받았었고 아주 품이 넓은 분이라 얘기가 잘 될것 같아요.
쓸쓸해서 술마시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말 걱정되요.
우리 만난지 일년이 넘었다고 투정하지만 난 언제나 마음 속에서 당신을 만나고 있답니다.
안녕히~
강희로부터. "
옆방의 준희를 의식하고 간단히 메일을 띄워보낸 강희는 심란해진 맘을 정리하지 못한채 안방으로 와 침대로 쓰러져 버렸다.
일년여를 그렇게 보냈다.
가슴 가득 뭔가 꽉 찬것 같다가고 텅 빈 것 처럼 허전하기도 했다.
메일을 받을때 띄울때 설레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죄를 진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같고 환상인것 같기도 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는 강희의 눈에 서서히 물기가 고였다.
2006.05.09 23:36:48 (*.234.131.250)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던가.
그녀는 윤여경 교수가 전해 온 기쁜 소식을 병인도 준희도 아닌 현우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 짧은 순간에 이제는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써도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
환상같은 그 사람 생각이 제일 먼저 나다니...
그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좋아하고 축하해 줄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것도 착각일지 모르지만.
강희는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시장에 가서 내일 강의할 재료들을 사다 손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던가.
그녀는 윤여경 교수가 전해 온 기쁜 소식을 병인도 준희도 아닌 현우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 짧은 순간에 이제는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써도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
환상같은 그 사람 생각이 제일 먼저 나다니...
그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좋아하고 축하해 줄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것도 착각일지 모르지만.
강희는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시장에 가서 내일 강의할 재료들을 사다 손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6.05.10 22:33:24 (*.234.131.250)
- 이 여자는 참으로 강하고 독해.
밤 늦게 메일을 열어 강희에게서 온 편지를 읽으며 현우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너무도 단단한 껍데기 속에 숨어서 사는 소라 같았다.
간혹 여린 속살을 살짝 보일듯말듯 하다가 이내 제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가 숨는 소라....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한 뼘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멀어져 간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너무나도 절실히 그녀가 보고싶지만 지금은 전화하기도 너무 늦었다.
목소리라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쓸쓸해서 술 마시는 자기가 걱정이 된다는 그녀의 말에 오히려 술 생각이 났다.
마음이 컬컬한 것은 술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당장 목이라도 축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현우는 위스키를 한 잔 가득 부어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선 한모금 벌컥 들이 마시고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밤 늦게 메일을 열어 강희에게서 온 편지를 읽으며 현우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너무도 단단한 껍데기 속에 숨어서 사는 소라 같았다.
간혹 여린 속살을 살짝 보일듯말듯 하다가 이내 제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가 숨는 소라....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한 뼘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멀어져 간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너무나도 절실히 그녀가 보고싶지만 지금은 전화하기도 너무 늦었다.
목소리라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쓸쓸해서 술 마시는 자기가 걱정이 된다는 그녀의 말에 오히려 술 생각이 났다.
마음이 컬컬한 것은 술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당장 목이라도 축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현우는 위스키를 한 잔 가득 부어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선 한모금 벌컥 들이 마시고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2006.05.11 00:00:41 (*.238.113.69)
"강희씨~
나 잘지내지 못해요.
만나자고 보채지도 못하고 견디었지만 이젠 한계가 온거 같군요.
오늘밤은 유독 당신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습니다.
일년에 한 두번 만나는 것도 죄가 될까요?
도데체 내가 뭘 어떻게 할수 있단 말입니까?
난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군요.
당신은 아주 강하게 자기의 삶을 잘 꾸려가는군요.
대견하면서도 내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없어져 가는것 같아 속이 허해지네요.
그렇게도 멀미가 나던 술을 또 가까이 하게 되는군요.
당신이 없는 빈 공간을 무엇으로 메꿔야할지~
어느 시 귀절이 생각나요.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만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 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당신을 그리워하는 못난 사내가."
나 잘지내지 못해요.
만나자고 보채지도 못하고 견디었지만 이젠 한계가 온거 같군요.
오늘밤은 유독 당신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습니다.
일년에 한 두번 만나는 것도 죄가 될까요?
도데체 내가 뭘 어떻게 할수 있단 말입니까?
난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군요.
당신은 아주 강하게 자기의 삶을 잘 꾸려가는군요.
대견하면서도 내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없어져 가는것 같아 속이 허해지네요.
그렇게도 멀미가 나던 술을 또 가까이 하게 되는군요.
당신이 없는 빈 공간을 무엇으로 메꿔야할지~
어느 시 귀절이 생각나요.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만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 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당신을 그리워하는 못난 사내가."
2006.05.26 21:21:17 (*.234.131.250)
어깨를 낮추고 그 안락한 의자에 깊숙히 앉아 있는 병인의 모습에서 누가 보아도
중년의 외로움이 흠씬 배어 나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혜림은 그 까페의 입구에 들어 서서 병인을 찾아 두리번 거리며
실내를 돌아다 보다가 몇 개 테이블 저 편에 깊숙히 앉아
머리 윗 부분만 보이는 사람이 병인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젊었던 날들 동안,
그들의 만남 속에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쓸쓸함과 외로움이
30여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여전히 그림자처럼 같이 하고 있음이
병인의 뒷 목덜미를 보는 순간 또 다시 느껴져 새삼 가슴이 저려왔다.
"언제 왔어?"
혜림은 병인의 맞은 편에 앉으면서 배시시 웃는다.
눈을 감고 있던 병인의 사람의 기척에 눈을 뜨며 혜림과의 눈맞춤을 하고는
"조금 아까" 하며 답한다.
- 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만남이 우울할까?"
병인의 가슴 속에 기쁨과 슬픔이 한줄기 되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때는 희망이 없어서 였나?
지금도 희망이 없어서 인가?
도대체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그래, 사랑의 결말이 나지 않아서인가?
그러면 만약 그 옛날 내가 저 여자와 결혼해서 지금 살고 있다면
그 옛날 사랑했던 그 마음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계속 있었을까?
시작도 끝도 없을 허망한 생각만이 그 잠깐 사이에 빛의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병인의 마음 속을 훑고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혜림의 전화를 받고 만날 약속을 한 순간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허둥대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병인이었다.
병인은 혜림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옆에 있는 누런 사각 봉투를 건네 주었다.
"내가 엮어낸 시집이야.
혹시 네가 쓸 일이 또 있으면 골라서 쓰라고 가져왔지."
"고마워 ....
나 줄려고 일부러 책을 엮은건 아니겠지?'
"그야 모르지."
"정말? 이거 감격이네...
오늘은 책값으로 내가 뭐든지 다 사 줄게.
밥을 먹을까 아니면 그냥 술이나 한잔 할까?"
"나는 별로 밥 생각은 없는데...."
"그래? 그럼 술을 먼저 마시고 나중에 배고파지면 밥 먹을까?"
중년의 외로움이 흠씬 배어 나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혜림은 그 까페의 입구에 들어 서서 병인을 찾아 두리번 거리며
실내를 돌아다 보다가 몇 개 테이블 저 편에 깊숙히 앉아
머리 윗 부분만 보이는 사람이 병인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젊었던 날들 동안,
그들의 만남 속에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쓸쓸함과 외로움이
30여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여전히 그림자처럼 같이 하고 있음이
병인의 뒷 목덜미를 보는 순간 또 다시 느껴져 새삼 가슴이 저려왔다.
"언제 왔어?"
혜림은 병인의 맞은 편에 앉으면서 배시시 웃는다.
눈을 감고 있던 병인의 사람의 기척에 눈을 뜨며 혜림과의 눈맞춤을 하고는
"조금 아까" 하며 답한다.
- 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만남이 우울할까?"
병인의 가슴 속에 기쁨과 슬픔이 한줄기 되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때는 희망이 없어서 였나?
지금도 희망이 없어서 인가?
도대체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그래, 사랑의 결말이 나지 않아서인가?
그러면 만약 그 옛날 내가 저 여자와 결혼해서 지금 살고 있다면
그 옛날 사랑했던 그 마음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계속 있었을까?
시작도 끝도 없을 허망한 생각만이 그 잠깐 사이에 빛의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병인의 마음 속을 훑고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혜림의 전화를 받고 만날 약속을 한 순간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허둥대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병인이었다.
병인은 혜림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옆에 있는 누런 사각 봉투를 건네 주었다.
"내가 엮어낸 시집이야.
혹시 네가 쓸 일이 또 있으면 골라서 쓰라고 가져왔지."
"고마워 ....
나 줄려고 일부러 책을 엮은건 아니겠지?'
"그야 모르지."
"정말? 이거 감격이네...
오늘은 책값으로 내가 뭐든지 다 사 줄게.
밥을 먹을까 아니면 그냥 술이나 한잔 할까?"
"나는 별로 밥 생각은 없는데...."
"그래? 그럼 술을 먼저 마시고 나중에 배고파지면 밥 먹을까?"
2006.05.26 23:25:28 (*.234.131.250)
그들은 2003년산 mondavi chardonnay 를 주문 하였다.
혜림은 califonia 북쪽의 napa valley 에서 생산되는 그 와인을 좋아했다.
san francisco 를 빠져 나와 서쪽으로 가다가 29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올라 가면 그 유명한 napa valley winery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혜림은 오래 전에 진수와 함께 지인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 곳에
갔던 기억이 선명히 떠 올랐다.
그때 처음으로 맛 보았던 mondavi chardonnay 의 맛이,
참나무 통 속에서 숙성되어진 그 풍성한 과일맛이 더해진 미묘한고도 부드러운 맛이
늘 혜림의 미각을 즐겁게 하였다.
수박, 포도, 참외, 오렌지, 키위 등이 곱게 깍여 흰 접시 위에 아름답게 담겨져
얼음에 채워진 시원한 와인과 함께 그들의 테이블 위에 배달되었다.
시원하게 잘 생긴 웨이터가 그 두 사람에게 한 잔씩을 따라 주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며 눈을 찡끗하며 귀엽게 웃는다.
참으로 젊음이 좋구나......
웨이터가 가고 나자 병인이 술잔을 들고 그녀 옆으로 옮겨 앉았다.
병인은 그녀의 잔에 살짝 부딪치며 눈으로 마시기를 권했다.
혜림도 병인의 잔에 살짝 부딪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병인은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살짝 구부린채로 혜림의 뺨에 살짝 대어 보았다.
혜림의 뺨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의 온 몸으로 그 열기가 전해졌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정말이지,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병인이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고 했다.
혜림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빼냈다.
그가 무안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혜림은 애써 명랑한 표정과 말투로 머쓱해진 병인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하며 물었다.
"그냥 맨날 똑같지 뭐"
병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하였다.
술을 마시는 동안 그는 거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술잔만 비웠다.
혜림은 그렇게 병인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와인을 거의 다 마셨을 무렵 혜림은 병인에게 나가서 걷자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온 몸으로 취기가 느껴졌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이 손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 왔다.
까페 아래 쪽으로 펼쳐진 강변의 산책로를 나란히 걸어 갔다.
한 낮의 모든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도 남을 만한 시원한 바람이 그 둘의 가슴을,
그 답답하게 막혀 있던 가슴을 열어 주었다.
취기 덕분이었을까?
그 산책로를 걸어 가는 동안에는 이성의 고리를 채우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가게 두었다.
병인의 팔이 슬그머니 혜림의 어깨에 올려진 순간에도
병인의 손이 언뜻 혜림의 뺨에 닿은 순간에도
말없는 미소를 서로 주고 받은 순간에도
눈길이 부딪쳐 지나 간 순간에도
혜림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가로등의 반사 빛이 물 표면에서 일렁이는 것이 아름다웠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적당한 어두움은 더욱 고혹적이었다.
마침 강을 따라 이어진 길도 텅 비어 있었다.
갑자기 병인이 걸음을 멈추고 혜림을 와락 껴안았다. .
혜림도 거부하지 않고 두 팔을 병인의 등 뒤로 돌려 그의 등을 안았다.
그의 등이 예전과는 달리 허약하게 느껴졌다.
오래 묵은 그리움과 그의 아픔이 그대로 혜림에게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혜림은 그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 주었다.
연민이 바람처럼 그녀의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혜림은 califonia 북쪽의 napa valley 에서 생산되는 그 와인을 좋아했다.
san francisco 를 빠져 나와 서쪽으로 가다가 29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올라 가면 그 유명한 napa valley winery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혜림은 오래 전에 진수와 함께 지인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 곳에
갔던 기억이 선명히 떠 올랐다.
그때 처음으로 맛 보았던 mondavi chardonnay 의 맛이,
참나무 통 속에서 숙성되어진 그 풍성한 과일맛이 더해진 미묘한고도 부드러운 맛이
늘 혜림의 미각을 즐겁게 하였다.
수박, 포도, 참외, 오렌지, 키위 등이 곱게 깍여 흰 접시 위에 아름답게 담겨져
얼음에 채워진 시원한 와인과 함께 그들의 테이블 위에 배달되었다.
시원하게 잘 생긴 웨이터가 그 두 사람에게 한 잔씩을 따라 주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며 눈을 찡끗하며 귀엽게 웃는다.
참으로 젊음이 좋구나......
웨이터가 가고 나자 병인이 술잔을 들고 그녀 옆으로 옮겨 앉았다.
병인은 그녀의 잔에 살짝 부딪치며 눈으로 마시기를 권했다.
혜림도 병인의 잔에 살짝 부딪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병인은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살짝 구부린채로 혜림의 뺨에 살짝 대어 보았다.
혜림의 뺨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의 온 몸으로 그 열기가 전해졌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정말이지,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병인이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고 했다.
혜림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빼냈다.
그가 무안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혜림은 애써 명랑한 표정과 말투로 머쓱해진 병인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하며 물었다.
"그냥 맨날 똑같지 뭐"
병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하였다.
술을 마시는 동안 그는 거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술잔만 비웠다.
혜림은 그렇게 병인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와인을 거의 다 마셨을 무렵 혜림은 병인에게 나가서 걷자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온 몸으로 취기가 느껴졌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이 손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 왔다.
까페 아래 쪽으로 펼쳐진 강변의 산책로를 나란히 걸어 갔다.
한 낮의 모든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도 남을 만한 시원한 바람이 그 둘의 가슴을,
그 답답하게 막혀 있던 가슴을 열어 주었다.
취기 덕분이었을까?
그 산책로를 걸어 가는 동안에는 이성의 고리를 채우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가게 두었다.
병인의 팔이 슬그머니 혜림의 어깨에 올려진 순간에도
병인의 손이 언뜻 혜림의 뺨에 닿은 순간에도
말없는 미소를 서로 주고 받은 순간에도
눈길이 부딪쳐 지나 간 순간에도
혜림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가로등의 반사 빛이 물 표면에서 일렁이는 것이 아름다웠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적당한 어두움은 더욱 고혹적이었다.
마침 강을 따라 이어진 길도 텅 비어 있었다.
갑자기 병인이 걸음을 멈추고 혜림을 와락 껴안았다. .
혜림도 거부하지 않고 두 팔을 병인의 등 뒤로 돌려 그의 등을 안았다.
그의 등이 예전과는 달리 허약하게 느껴졌다.
오래 묵은 그리움과 그의 아픔이 그대로 혜림에게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혜림은 그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 주었다.
연민이 바람처럼 그녀의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2006.05.28 23:17:03 (*.234.131.250)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복선으로 깔려 있을까.
미움과 사랑이 한 가슴 속에 공존하는 것처럼, 사랑줄도 여러가닥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내 삶에 사랑은 오직 하나, 만인 앞에 허락 받은 그 사람 뿐이어야 한다고
스스로 선을 긋고 몸을 움츠리는 것 자체가 그럴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말이 너무도 많이 다를 때는 어떤 것이 참일까.
참 과 거짓.
참인 듯하나 거짓인 것도 있지만, 거짓처럼 보이는 참도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란 말인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입술도 허망하지만, 마음에 있는 말을 삼키는 입술도 허탈한 법이다.
병인은 혜림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너무도 착실하게 규범을 잘 지키며 궤도를 따라 순응하며 살아 온 흔적만이 역력한
그녀의 조신한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슬퍼 보였다.
애초부터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새삼 친구가 되어야만 한다는건 분명 억지다.
친구가 되어야만 된다고 못을 박은 관계는 분명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지.
병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강물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강물 위에는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미움과 사랑이 한 가슴 속에 공존하는 것처럼, 사랑줄도 여러가닥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내 삶에 사랑은 오직 하나, 만인 앞에 허락 받은 그 사람 뿐이어야 한다고
스스로 선을 긋고 몸을 움츠리는 것 자체가 그럴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말이 너무도 많이 다를 때는 어떤 것이 참일까.
참 과 거짓.
참인 듯하나 거짓인 것도 있지만, 거짓처럼 보이는 참도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란 말인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입술도 허망하지만, 마음에 있는 말을 삼키는 입술도 허탈한 법이다.
병인은 혜림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너무도 착실하게 규범을 잘 지키며 궤도를 따라 순응하며 살아 온 흔적만이 역력한
그녀의 조신한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슬퍼 보였다.
애초부터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새삼 친구가 되어야만 한다는건 분명 억지다.
친구가 되어야만 된다고 못을 박은 관계는 분명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지.
병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강물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강물 위에는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2006.05.29 08:42:10 (*.235.106.24)
병인이 준 시집을 가슴에 안고 헤어질 인사 준비가 다 된듯 한 혜림의 모습에
병인의 마음은 몹시 착찹했다.
친구로서의 만남이 과연 병인에게 가능할까?
다 잊고 가정에 충실하며 성실한 아내 강희와 애들과 그렇게 오손도손 살려 했었다.
가능한 일이었었다.
그러나 그 생활이 행복하면 행복 할수록 뭉클뭉클 소리없이 쌓이는 혜림을 향한 그리움으로
병인의 생활은 표류하는 낚시배처럼 잔 물결에도 크게 흔들려
지금 혜림이 실질적인 마음의 정리를 원하는 이 순간 병인은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을 느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병인의 표정이 일순간 무너졌다.
이미 충분히 어두워 표정을 들키지 않았으리라.
가슴이 끓어 오르며 양쪽 눈으로 뜨거운 눈물이 복받치게 쏟아 부을 것 같아
혜림의 눈길을 피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큰 호흡이 필요했다.
바보같이 눈물이 흐른다.
"후 ~ 우."
그런 병인을 쳐다보다 병인이 다시 고개를 내려 혜림을 바라보는 순간 혜림은 짐짓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며 병인에게 여유를 주었다.
그의 잠깐의 눈물을 못 본 것 처럼.
그의 눈물이 들키면 그도 혜림도 또 다른 감정으로 다시 휩쓸릴지도 모른다 생각에
혜림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운전 할 수 있겠어? 웬만하면 오늘은 그냥 택시를 타고 들어가. 난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이제 가봐야 하는데... 괜찮지?"
"....................... "
"우리 다음에 태형이랑 순호 같이 만날까? 못 본지 오래 됐는데... 걔들 보고 싶어.
계집애, 통 연락이 없어. 깨가 쏟아지게 재미있나봐? 호호."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혜림의 조금은 수다스러움에 병인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지뭐."
"그래, 그러면 걔들한테 내가 다음에 만날 날 약속하고 연락할께. 그만 가자, 시간이 됐어."
시간이 됐다? 헤어질?
병인은 허탈한 감정을 숨기고 혜림을 바라봤다.
빙긋 웃고 있는 혜림을 보며 또 다시 가슴 한켠이 알싸하게 아파왔다.
혜림이 악수를 하고자 내미는 손을 천천히 잡았다.
차가운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는 느낌으로 병인은 그의 청춘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그녀를 향해 꿈꾸어 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안녕~.'
손을 들어 인사하며 어둑어둑해 지는 강둑을 따라 총총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보지 않으려 병인도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끝이 난 것 같았다.
아니, 끝이 난 것이다.
병인은 자신이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병인은 자신이 갈 곳이 아무데도 없은 것 같은
끝없는 외로움에 촛점없는 시선으로 불빛 찬란한 창밖을 응시하였다.
병인의 마음은 몹시 착찹했다.
친구로서의 만남이 과연 병인에게 가능할까?
다 잊고 가정에 충실하며 성실한 아내 강희와 애들과 그렇게 오손도손 살려 했었다.
가능한 일이었었다.
그러나 그 생활이 행복하면 행복 할수록 뭉클뭉클 소리없이 쌓이는 혜림을 향한 그리움으로
병인의 생활은 표류하는 낚시배처럼 잔 물결에도 크게 흔들려
지금 혜림이 실질적인 마음의 정리를 원하는 이 순간 병인은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을 느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병인의 표정이 일순간 무너졌다.
이미 충분히 어두워 표정을 들키지 않았으리라.
가슴이 끓어 오르며 양쪽 눈으로 뜨거운 눈물이 복받치게 쏟아 부을 것 같아
혜림의 눈길을 피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큰 호흡이 필요했다.
바보같이 눈물이 흐른다.
"후 ~ 우."
그런 병인을 쳐다보다 병인이 다시 고개를 내려 혜림을 바라보는 순간 혜림은 짐짓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며 병인에게 여유를 주었다.
그의 잠깐의 눈물을 못 본 것 처럼.
그의 눈물이 들키면 그도 혜림도 또 다른 감정으로 다시 휩쓸릴지도 모른다 생각에
혜림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운전 할 수 있겠어? 웬만하면 오늘은 그냥 택시를 타고 들어가. 난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이제 가봐야 하는데... 괜찮지?"
"....................... "
"우리 다음에 태형이랑 순호 같이 만날까? 못 본지 오래 됐는데... 걔들 보고 싶어.
계집애, 통 연락이 없어. 깨가 쏟아지게 재미있나봐? 호호."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혜림의 조금은 수다스러움에 병인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지뭐."
"그래, 그러면 걔들한테 내가 다음에 만날 날 약속하고 연락할께. 그만 가자, 시간이 됐어."
시간이 됐다? 헤어질?
병인은 허탈한 감정을 숨기고 혜림을 바라봤다.
빙긋 웃고 있는 혜림을 보며 또 다시 가슴 한켠이 알싸하게 아파왔다.
혜림이 악수를 하고자 내미는 손을 천천히 잡았다.
차가운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는 느낌으로 병인은 그의 청춘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그녀를 향해 꿈꾸어 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안녕~.'
손을 들어 인사하며 어둑어둑해 지는 강둑을 따라 총총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보지 않으려 병인도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끝이 난 것 같았다.
아니, 끝이 난 것이다.
병인은 자신이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병인은 자신이 갈 곳이 아무데도 없은 것 같은
끝없는 외로움에 촛점없는 시선으로 불빛 찬란한 창밖을 응시하였다.
2006.07.05 17:08:39 (*.235.106.24)
병인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서서 바삐 걷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미 오래 전에 헤어졌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다니 이게 무슨 조화속인가.
문득 혜림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스름 속에 길만 텅 비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병인의 모습을 더듬느라 목을 길게 늘이고 오던 길을 되짚어 황망히 몇 발짝 내딛다가
이내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온 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 나가는 듯 다리가 후둘거렸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가슴 한쪽을 예리한 면도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자기가 먼저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가 떠나고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가슴 한 구석이 아렸다.
오늘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안에 있는 두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담담한 척 사무적으로 그를 대하고
마치 큰누이처럼 그를 타일러서 보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마음 한 쪽에서는 여전히 그를 놓지 못하고 애가 탔다.
이성적으로는 그를 떠나 보내야 했지만 본능적인 욕망은 그를 놓을 수가 없어서 목이 말랐다.
아직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첫사랑의 감정이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나이 오십이 된 중년 여자가 체신머리도 없이 이게 무슨 꼴인가.
혜림은 눈물을 아무렇게나 훔치고는 피식 웃었다.
모든게 다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추기라 그럴거야.
혜림은 자동차로 가려다 말고 카페 주차장 뒤에 가로등이 켜 있는 조그만 정원으로 들어갔다.
정원에는 한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벤치가 빙 둘러 놓여 있었다.
눈이 부시지 않은 노란색 가로등이 벤치 옆에 묻히다시피 낮은 자세로 서 있어서 편안했다.
혜림은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용암처럼 끓어올라 잠 못들게하던 열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30년 세월의 강을 건너 온 노장답지 않게 뜰안채에서 병인과 다시 만나던 순간의 떨림과
그리고 죽을만큼 짜릿하던 뜰안채 마당에서의 기습적이면서도 강렬했던 그 키스가 문제였다.
그 순간의 충격으로 복원되었는지 둘이서만 아는 은밀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숨이 막힐듯한 그 키스의 감촉과 타버릴것 같던 그의 눈빛은 밤낮없이 그녀의 신경줄을 감아 당겼다.
첫 키스의 날카로운 추억이라는 싯귀가 새삼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렇게 짧게 스쳐 지나간 순간의 전율은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지우개로 지운듯이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던 감각들이 체세포 속에서 깨어났다.
사람이 머리로 기억하는 것보다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더 집요하고 선명했다.
스무살 계집애가 느꼈던 설렘과 들뜸과 짜릿함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녀 안에 그대로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엉켜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혼돈 상태를 헤맬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게 다 그녀의 불찰이었다.
지금쯤이면 다시 만나도 되겠다 싶어서 병인이를 뜰안채로 부른 것이 잘못이었다.
둘 다 이미 다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어른이 되었으니 만나도 무덤덤할 줄 알았다.
그동안 서로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으니 아무런 부담없이 친구가 될 줄 알았다.
각자 지켜야 할 소중한 가정이 있고 자식까지 있는 사람들이 이제와서 감정이 얽힐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자기 속에 있는 피가 아직 식지 않아서 불만 댕기면 여전히 끓어오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첫사랑을 잊어버리기엔 아직 충분히 늙지 못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아직도 감정에 휘감겨 넘어지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옛사랑 쯤이야 이미 초월했을거라 착각하고 시건방을 떤 것이었다.
그를 만난 후,
그녀의 마음은 후진기어를 넣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자꾸 엉뚱한 곳으로 치닫곤 했다.
분명 쉰살인데 스무살 적 마음이 이리저리 마구 널을 뛰는 바람에 갈팡질팡 어쩔줄을 모르고 쩔쩔맸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 끝에 다른 사람을 매어 놓고 착한 아내 노릇을 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옛사랑을 보고 싶어 하는 그녀를 조강지처인 그녀가 마구 닥달했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네 마음의 주인은 오직 남편 하나 뿐인데 무슨 당치않은 생각을 하느냐고.
30년 만에 그를 만난 사실은 물론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마저도 다 지워야 착한 아내라고....
지난 1년 동안 너무도 치열하게 자기 속에서 자기와 싸우느라 죽을만큼 힘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다시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았다.
그렇게 보낸 1년이었다.
병인이도 마찬가지 였을까?
혜림은 물끄러미 느티나무를 바라보았다.
이미 오래 전에 헤어졌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다니 이게 무슨 조화속인가.
문득 혜림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스름 속에 길만 텅 비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병인의 모습을 더듬느라 목을 길게 늘이고 오던 길을 되짚어 황망히 몇 발짝 내딛다가
이내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온 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 나가는 듯 다리가 후둘거렸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가슴 한쪽을 예리한 면도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자기가 먼저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가 떠나고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가슴 한 구석이 아렸다.
오늘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안에 있는 두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담담한 척 사무적으로 그를 대하고
마치 큰누이처럼 그를 타일러서 보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마음 한 쪽에서는 여전히 그를 놓지 못하고 애가 탔다.
이성적으로는 그를 떠나 보내야 했지만 본능적인 욕망은 그를 놓을 수가 없어서 목이 말랐다.
아직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첫사랑의 감정이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나이 오십이 된 중년 여자가 체신머리도 없이 이게 무슨 꼴인가.
혜림은 눈물을 아무렇게나 훔치고는 피식 웃었다.
모든게 다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추기라 그럴거야.
혜림은 자동차로 가려다 말고 카페 주차장 뒤에 가로등이 켜 있는 조그만 정원으로 들어갔다.
정원에는 한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벤치가 빙 둘러 놓여 있었다.
눈이 부시지 않은 노란색 가로등이 벤치 옆에 묻히다시피 낮은 자세로 서 있어서 편안했다.
혜림은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용암처럼 끓어올라 잠 못들게하던 열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30년 세월의 강을 건너 온 노장답지 않게 뜰안채에서 병인과 다시 만나던 순간의 떨림과
그리고 죽을만큼 짜릿하던 뜰안채 마당에서의 기습적이면서도 강렬했던 그 키스가 문제였다.
그 순간의 충격으로 복원되었는지 둘이서만 아는 은밀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숨이 막힐듯한 그 키스의 감촉과 타버릴것 같던 그의 눈빛은 밤낮없이 그녀의 신경줄을 감아 당겼다.
첫 키스의 날카로운 추억이라는 싯귀가 새삼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렇게 짧게 스쳐 지나간 순간의 전율은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지우개로 지운듯이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던 감각들이 체세포 속에서 깨어났다.
사람이 머리로 기억하는 것보다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더 집요하고 선명했다.
스무살 계집애가 느꼈던 설렘과 들뜸과 짜릿함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녀 안에 그대로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엉켜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혼돈 상태를 헤맬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게 다 그녀의 불찰이었다.
지금쯤이면 다시 만나도 되겠다 싶어서 병인이를 뜰안채로 부른 것이 잘못이었다.
둘 다 이미 다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어른이 되었으니 만나도 무덤덤할 줄 알았다.
그동안 서로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으니 아무런 부담없이 친구가 될 줄 알았다.
각자 지켜야 할 소중한 가정이 있고 자식까지 있는 사람들이 이제와서 감정이 얽힐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자기 속에 있는 피가 아직 식지 않아서 불만 댕기면 여전히 끓어오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첫사랑을 잊어버리기엔 아직 충분히 늙지 못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아직도 감정에 휘감겨 넘어지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옛사랑 쯤이야 이미 초월했을거라 착각하고 시건방을 떤 것이었다.
그를 만난 후,
그녀의 마음은 후진기어를 넣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자꾸 엉뚱한 곳으로 치닫곤 했다.
분명 쉰살인데 스무살 적 마음이 이리저리 마구 널을 뛰는 바람에 갈팡질팡 어쩔줄을 모르고 쩔쩔맸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 끝에 다른 사람을 매어 놓고 착한 아내 노릇을 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옛사랑을 보고 싶어 하는 그녀를 조강지처인 그녀가 마구 닥달했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네 마음의 주인은 오직 남편 하나 뿐인데 무슨 당치않은 생각을 하느냐고.
30년 만에 그를 만난 사실은 물론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마저도 다 지워야 착한 아내라고....
지난 1년 동안 너무도 치열하게 자기 속에서 자기와 싸우느라 죽을만큼 힘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다시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았다.
그렇게 보낸 1년이었다.
병인이도 마찬가지 였을까?
혜림은 물끄러미 느티나무를 바라보았다.
2006.07.06 19:08:36 (*.235.106.24)
그동안 그리도 휘몰아치던 마음 속 광풍이 슬그머니 잦아드는 것 같았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들뜨고 휘청거렸던 자신이 어이가 없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던 바람이 빠져 나가는지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팽이처럼 미친듯이 제자리에서 맴을 돌다가 시간이 되어 결국 멈추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세금을 냈던거야.
중년의 길목을 통과하기 위해서 꼭 내야 할 통행세.
아직은 내가 쓸만하다는 걸 입증해주는 인증세.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더 늙어서도 기억하기 위해 지불한 종합세.
혜림은 나무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죽은듯이 까칠한 나무 껍질 속에서 수액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바람에 사부작거리는 나뭇잎들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어 준 그 사람이야말로 이 느티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무사히 헤어난 것이 너무도 다행이었다.
남편에게 너무 많이 미안해 하지 않을 수 있게 마무리 짓기를 정말 잘했다.
이제부터 또 3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병인이나 나나 나이 오십이 되던 해에 겪었던 감정의 홍역을 다시 치를 수 있을까?
만약 그 때에도 마음 속에 미친 회오리가 불어 닥친다면 그 때는 무조건 그를 따라 가야지.
그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닐테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일상을 나누고 자식을 함께 만든 남편에게로 가야지.
거기에 내 삶의 뿌리가 박혀 있고 내가 거둘 인생의 열매도 거기에 있으니까 당연히 그리로 가야지.
카페 문을 닫았는지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달랑 혜림이 차만 남았다.
밤기운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벤치에 두었던 가방을 챙겨 드는데 아까 병인이 건넨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아직 속에 든 것을 꺼내 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열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림은 끝내 시집이 든 봉투를 열어 보지 않은 채로 벤치 위에 가지런히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들뜨고 휘청거렸던 자신이 어이가 없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던 바람이 빠져 나가는지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팽이처럼 미친듯이 제자리에서 맴을 돌다가 시간이 되어 결국 멈추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세금을 냈던거야.
중년의 길목을 통과하기 위해서 꼭 내야 할 통행세.
아직은 내가 쓸만하다는 걸 입증해주는 인증세.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더 늙어서도 기억하기 위해 지불한 종합세.
혜림은 나무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죽은듯이 까칠한 나무 껍질 속에서 수액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바람에 사부작거리는 나뭇잎들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어 준 그 사람이야말로 이 느티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무사히 헤어난 것이 너무도 다행이었다.
남편에게 너무 많이 미안해 하지 않을 수 있게 마무리 짓기를 정말 잘했다.
이제부터 또 3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병인이나 나나 나이 오십이 되던 해에 겪었던 감정의 홍역을 다시 치를 수 있을까?
만약 그 때에도 마음 속에 미친 회오리가 불어 닥친다면 그 때는 무조건 그를 따라 가야지.
그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닐테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일상을 나누고 자식을 함께 만든 남편에게로 가야지.
거기에 내 삶의 뿌리가 박혀 있고 내가 거둘 인생의 열매도 거기에 있으니까 당연히 그리로 가야지.
카페 문을 닫았는지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달랑 혜림이 차만 남았다.
밤기운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벤치에 두었던 가방을 챙겨 드는데 아까 병인이 건넨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아직 속에 든 것을 꺼내 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열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림은 끝내 시집이 든 봉투를 열어 보지 않은 채로 벤치 위에 가지런히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2006.07.08 16:41:11 (*.235.106.24)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달라졌다.
그동안 병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울고 웃던 강희가 갑자기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렇게 달라져 가는 강희의 변화에 속으로 얼마나 가랴 생각했었는데
일이 커지면서 그녀도 무척 바쁜 듯 보였다.
일찍 귀가하는 날, 미처 끝나지 못한 요리강습으로 집안에서는 음식냄새와 수강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현관 앞에서 우물거리다가 도로 나갔던 적이 몇번 있었다.
게다가 언제나 먼저 그의 잠자리를 챙겨 놓고 조용히 병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같이 잠들곤 했었는데, 이제는 저녁식사 후 거실에서 TV를 보는 병인을 남겨두고
서재로 들어가 밤을 새며 자료정리를 하는 일이 다반사, 그녀의 체취를 느낀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였다.
최근에 그녀에게는 일이 전부인 듯 보였다.
그나마 준희가 있어서 병인의 썰렁한 분위기를 해소시켜주곤 했다.
* 제 9장 : 나무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