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산 진달래/미사 신금재 


 배꼽처럼 산이 볼록 올라왔다고 사람들은 그 산을 배꼽산이라 불렀다.


배꼽산 골짜기로 내려가는  평평한 산허리에는 여러 개의 기름탱크들이 놓여있고

숫자와 영어 알파벳이 이상한 나라의 부호처럼 기름탱크 전면에 표시되어있었다.

우리 초등학교 또래 아이들 키에 대여섯 배도 넘는 높고 날카로운 철조망을 두른 울타리에는

초소마다 얼룩무늬 군복의 미군들이 총을 들고 삼엄한 불침번을 서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탱크들 안에는 엄청난 기름이 들어있고 북한이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나면 저장하였던 그 기름을 전투 비행기에 넣어준다고 하였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하늘 높이 날아가는 비행기 안으로 기름을 넣어줄수 있을까,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제트기 날아간 하얀 구름 자국이 하늘 기차길처럼 보이던 그 시절

어려서부터 내 눈에 각인된 배꼽산은 동서냉전의 이념처럼 단단하게 굳어보였지만 그래도 인자한 아버지 얼굴로 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 기름탱크라는 것은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물건이고 언제나 저 산허리 평평한 곳에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내처 무시하며 진달래 피는 봄을 몇 번 더 맞이하고 뻐꾸기 진종일 울어대는 여름날이 몇 번 더 가버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해 겨울 새벽 그  기름탱크는 우리집 현관문을 갑자기 두드리며 찾아왔다.

잠결에 몸이 서늘해지며  한기를 느꼈을 때 아랫집 영자네 엄마가 문 밖에 서서 우리 엄마와 무엇인가를 귓속말로 속삭이고있었다.

무슨 소리인 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엄마가 겨울 방수 잠바를 찾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 고무장화등을 서둘러 찾기 시작하였는데 심상치않은 겨울 새벽 분위기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나는 짐짓 애써 모른 척 이불을 끌어다가 머리 위까지 덮었다.

저런 장비들은 엄마가 조개고개를 넘어 송도 앞바다에 바지락 잡으러갈 때 쓰는 건데... 이 새벽에 왜 저런 걸 찾을까...이상하다.

그러나 새벽잠에 졸려 쏟아지는 잠의 무게는 그 궁금증을 내려누르고도 남았다.


곁에 서있던 아버지의 근심어린 표정으로 보아 두 여인들은 무언가 당당하지않은 일을 모의하러나간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는데

엄마의 구부러진 등 뒤에 대고 조심하라우, 아버지의 황해도 사투리 섞인 억양이 차가운 별빛에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밤 새 꿈 속에서 희미한 모습의 엄마는 등뒤로 밀려들어오는 밀물을 자꾸 돌아보면서 서둘러 앞으로 걸어가고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선잠이 들었던  나는 겨울 햇살이 창호지 안쪽을 뚫고 방 아래까지 찾아온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두런두런 말소리에 눈을 비비며 잠이 깨었다.

 

동상이구먼... 저런 쯔쯔쯔...

더운 물에 담그면 안된다는데두... 손이 시려워도 찬 물에 담그어 얼음을 빼 내라우...

엄마는 세수대야에 손을 담그고 있었고 아버지는 연신 대야의 물을 찬 물로 갈아대고 있었다.


배꼽산 기름탱크에서 간 밤에 기름 유출사고가 나서 흘러내린 기름이 송도 앞바다 갯벌로 고인 것이었다.

미군부대에 다니던 영자 아버지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듣고 영자네 엄마는 우리 엄마와 함께 그 새벽 송도 앞바다로 나가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겨울 바다 물을 가르고 동동 떠오른 기름을 걷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었다.

엄마가 떠왔다는 기름이 문 밖에 있는 통 속에 담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선홍색이 감도는 맑은 피색이었다.

휘발유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눈에는  너무 맑아서 슬퍼보이는 맑디 맑은 기름이 지난 해 겨울  밤새 엄마가 막내동생을 낳느라고 진통하며 흘렸던 붉은 피로 보였다.

막내 동생을 보던 날 아침, 나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우리 동네 하나 밖에 없던 장씨네 구멍가게로 달려가 엄마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사오는 심부름을 하였다.

그 때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 서둘러야하고 걸어가면 안되고 뛰어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차 중국 화교네 농장 옆길 지름길로 마구마구 달려갔다.

 

구정이 다가오는 음력 정월,

화교네 농장 들판에는 얼음인 지 눈인 지 구분이 안되는 하얀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동상걸린 우리 엄마 손등 같네... 하는 생각이 내 하얀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밤을 세워 들려오던 엄마의 신음 소리, 저러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는 거 아닐까,

숨을 죽이며 엄마 신음 소리에 밤새 귀를 기울였다.

내가 빨리 달려가서 장씨 아저씨네서 파는 그 어떤 물건을 사오면 엄마의 고통은 사라진다, 마치 이상한 말로 주문을 걸어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처럼...

 

그 해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엄마는  손에 걸린 동상으로 고생을 하셨다.


 마당이 아주 넓었던 돌축대 위의 우리 집 마당에는 여전히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이웃집, 노름판이 겨우내 벌어지던 재수네  놀러가서 이, 서캐등을 옮아오면 아버지는 양지쪽 마당에서 내 머리카락을 뒤져가며 서캐를 잡아주셨다.

엄마의 동상걸린 손이 점점 나아져가면서 그렇게 봄도 다시 왔다.

그해 봄에 나는 무슨 알러지에 걸렸는지 잔기침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기 때부터 배앓이등, 잔병치레를 많이 하던 나를 엄마는 미군부대 앞에 있는 소아과에 데려가셨는 데 가기만 가면 배아프던 것이 낫는다고 병원 이름 00 의원 대신 골통대, 라고 불렀다.

그런데 잔기침은 골통대를 가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 이발소, 사랑방에 자주 오시는 최샨이라 부르던 고향 친구 분-나중에 피난을 함께 온 사촌오빠와 그분의 딸이 맺어져 사돈이 되었다- 잔기침에는 뭐니뭐니 하여도 그저 진달래 술이 좋지.

이 한 마디에 나는 담배 두 곽 손에 들려져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배꼽산 철조망 안으로 넘겨졌다.

철조망을 넘느라 몸이 거꾸로 된 탓도 있지만 기름탱크 주변으로  학교 운동장만큼 펼쳐진 분홍빛 진달래가 눈 앞에 흐드러져  보이는데  그만 현기증이 일어나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 하였다.

동네에서 바라볼 때는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보여서 마치 커다란 꽃송이를 던져놓은 것처럼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건 한송이 한송이 마다 나풀나풀  나비처럼 흔들리며  피어난 

모두가 하나의 얼굴을 가진 꽃송이들이었다.


자 이제 나의 임무는 진달래 꽃송이를 따는 일,  게릴라 임무를 띠고 적진에 던져진 척후병처럼 내 심장소리가 쾅, 쾅, 들리는 듯 하였다.

산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눈에 띄는대로 뱀도 잡아먹고 쥐도 잡아먹는 그들 군인처럼 나는 손에 잡히는대로 꽃잎을 따서 바구니에 마구,마구 집어넣었다.

산 언덕 아래서 아까 담배 두 곽을 받아 잠바주머니에 급히 집어넣었던 군인아저씨가 낮게 소리치며 불렀다.

아직 멀었나... 빨리 내려오지않고 뭐해...

자그마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옆에서 스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내려가.... 느...

나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 앞에 보이는 붉은 뱀이   머리를 흔들고 지나가며 순식간에   꼬리를 보이고 달아났다.

 

와--아--악

진달래  꽃 바구니 집어던지고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아래로 아래로 향하여 달려 내려왔다.


큰 일 날 뻔 하였구나...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구만...

철조망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가 다리를 문질러주면서 날 안아주었다.

안되겠네요, 군인이 다가오더니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하면서 재빠른 동작으로  산으로 올라가 진달래 꽃잎을 한 바구니 따다 주었다.


그러나 진달래 사건은 다음 사건을 알려주는 전초전에 불과하였다.

진달래 꽃잎을 엿과 함께 섞어 항아리에 넣은 다음 땅 속에 묻었다가 거기서 우러나온 물을 마시면 잔기침이 멎는다하여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는 나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였는데...

땅 속에서 지열로  발효되어진 그 진달래술을 마시자마자 그만 기절을 해버린 것이었다.

온 식구들이 마당으로 뛰쳐나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며 나를 깨웠지만 진달레 술이 너무 독했던 지 나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기절을 할 때 잔기침도 너무 놀랬는지, 아니면 정말 그 진달래술 약효인 지  더 이상 기침을 안하게 되었다.


그 후로 배꼽산에서 미군들이 철수해나가고 이제는 정부차원 주요정책의 하나인 산림녹화 계획으로 그 일대는 그린벨트 지역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미소냉전이 무언지 잘 몰랐고 그린벨트는 더더욱 몰라서 그저 사시사철 배꼽산이 변해가는 모습을 즐기면서 산나물도 뜯으러가고  바위 아래서 벌거벗고 남자아이들과  멱도 감고 가재를 잡으면서 가을 도토리를 따고 겨울 칡을 캐면서 한 해 한해를 그렇게 보내었다.


기름탱크가 있었던 넓고 평평한 그 자리에는 이제 인천직할시에서 개발한 여러가지 운동,체육시설이 들어서있고 우리가 그 옛날 멱감고 가재잡던 골짜기에는 약수터가 들어서있다.

서울로 가던 사신들이 드나드는 길목이었다고 붙여진 공식이름 연경산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입에서 맴도는 영원한 이름, 배꼽산으로 부른다.

 이 쪽 봉우리에서 저 쪽 으로 걸어가던 길목, 능선자락에는 막걸리 파는 아주머니들이 진을 치고있다.


상전벽해라고 하였던가...

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는 대신 바다 위로 세계 최대라는 영종대교가 휘돌아가고있다.

공항에서 동생집까지 가는 동안 바다 위의 공중길을 놀라움과 신기로운 표정으로   바라다보면서 와. 와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는 입을 다물지못한다.

배꼽산 아래 우리가 살던 오동배기 동네-오동나무가 많았던 그 동네에 지금은 운전을 배우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운전학원이 서있고 그 옆으로 병무청 빌딩이 군인처럼 차렷, 자세로 서있다.

우리가 중국 노래를 배우며 놀던 화교 춘서방네 농장이 있던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있다.


그런데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난 작은 샛길로 나의 눈길이 머문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GNP가 얼마라고 해도 수치에 어두운 나는 저게 무슨 소린가ㅡ 하듯이  그 사이로 보이는 낮아질대로 낮게 보이는 판자촌의 어두운 

그림자


배꼽산의 기름탱크들이 사라져가듯이 저 판자집들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함께 진달래꽃처럼 활짝 웃는  날은 언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