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2 기 연옥 선배님 딸의 결혼 감사 번개에 갔다.

딸의 결혼을 축하 해준 몸날 식구들에게 감사의 자리를 만드신

연옥 신배님의 마음이 고스란이 녹아 든 정성스런 오찬에

아침 밥도 못 얻어 먹은 내 배는 만복감에 행복해했다.

2 차로 유순애 선배님이 영화티켓팅을 해주셔서

우리를 위한 영화인 양 여고시절의 추억을 다룬 써니란 영화로

우리 모두의 상상의 나래는 금방 전동 언덕의 교정으로 펼치며 날아갔다.

 

교회란 울타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던 내게

요즘 너무 큰 변화들이 생겼다.

30여 년 만에 잊혀졌던 내 이름도 되 찾고

애기들도 한 번 콧구멍에 바람 들어가면

집 안에 안 있으려 하는데

지난 4월 첨으로 콧구멍에 새로운  바람을 들이킨 이후

자꾸만 그 상쾌한 바람결을 느끼고 싶어진다.

 

딸을 잘 키워 혼사를 치룬 선배님을 보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최근 목하 열애중인 막냉이 딸래미 생각이 났다.

나도 머지 않아 이런 시간을 갖게 되겠지.

모든 사람에게 축복받는 아름다운 결혼을 했음 좋겠다.

그리고는 나즉이

"딸아! 참 고맙다"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늦깍이 신학도가 되어 7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한 아빠.

그 아빠를 대신해서 갑자기 직장인이 된 엄마.

두 딸은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TV 로터리체널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덕에 작은 애는 심한 난시가 되어 여섯 살 부터 안경을 써야만 했다.

그 때가 큰 아이 여섯 살 작은 애 네 살 때다.

내가 혼수로 사왔던 티비가 리모콘도 안되는 로터리 체널이었다.

 

유아용 비디오 맨 처음에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유해 비디오라는 광고성 화면이 나온다.

조금이라도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는 엄마라면 애들이 무방비로 각종 유해 영상에 노출되는 것을

신경쓰고 영제교육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는데

난 그럴 만한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티비를 못 보게 할 수도 없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기도뿐 이었다.

"주님! 저는 이 애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네요.

알아도 되는 건 알게 해주시고 알아서 안 될 거면 잊게 해주세요.

이 아이들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교육적 철학이 있다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방목을 하게 되었고 남들은 하기 좋은 말로

독립심이 강한 아이들로 키웠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그렇게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모든 걸 스스로 하며 자라서 그런지

제도권 교육을 힘들어 해서 때론 다루기 힘든 문제 학생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경제적 여유도 별로 없긴 했지만 구속 받는 걸 싫어하니

학원도 적응을 못해서 고3 졸업 때까지 불과 총 1년도 안 다녔던 거 같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도 학습실에 앉아 한 밤중까지 야자 하는 게 싫다며

선생님을 기어코 설득해서 5시면 집에 와서 괴상한 자기만의 자세로 앉아

그렇게 수험생 노릇을 했다.

 

어느정도 두뇌 회전은 되는지 기타 과목은 꽤 좋은 성적을 받는데

영어 수학은 사교육을 안 받으니 중2 때까지 반토막 밖엔 동그라미가 없었다.

선생님 왈 너는 변두리 과목만 잘 한다고 하더란다.

고집이 세서 내 충고는 아랑 곳도 안 하던 애가

어느 날부터 공부를 시작하더니 단 번에 전교 석차 백등을 끌어올렸다.

 

수학 정석을 펴 놓고 밤 새 혼자 씨름을 해서 몇 문제 풀고

영어 듣기는 인터넷으로 유아 수준의 영어 동화를 듣고

그렇게 공부하더니 수학은 수능 1등급

영어는 내신은 1,2등 까지 했지만

히어링이나 회화는 역부족이었는지

자기가 원하던 대학 영어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수시 원서를 내긴 했지만 썩 내키지 않던 학교에

차라리 떨어지길 바라며 성의없이 면접을 봤는데

그만 붙어버려 지금 졸업반이 되었다.

 

장난감 자동차도 만저본 일이 없던 여자아이에게

자동차공학과란 낮선 학과에는

남학생 2백명에 여자 10명이었단다.

 

그렇게 시작한 학교생활

(코라)라는 자동차 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통해

더 즐거운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방학도 반납하고 온통 학교 수업과 동아리 활동으로

밤낮없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수고의 열매를

그것도 아주 탐스러운 열매를 며칠 전에 수확했다.

 

F-SAE 란 미국 자동차공학회에서 주최하는

세계 대학생 자작 자동차 대회에서

코스트라는 경비보고서 제작과 발표에서 1등을 했단다.

전 번에는 영어 잘하는 학생을 데려가서 대신 프리젠테이션를 했는데

이번에는 딸이 직접 했단다.

 

2009년도에 대회를 위해 휴학을 하고 첨으로 출전해서

국내 역대 성적 최초 3위를 했다.

여러 항목의 평가를 하는데 그 전까지  종합 성적

아시아 2위 세계 13위가 최고 기록이었는데

그 해에 우리 딸의 선전에 힘 입어 종합성적

세계 10위라는 쾌거를 이루었었다.

그리고 지난 해 한국자동차공학회 주최F-SEA 대회

UCC 공모전에서도 대상을 탔다.

방금 한국자동차공학회 홈피에 들어가니

이번 8월에 있을 국내대회 공고를 하며

딸이 출품했던 동영상이 메인화면에 여전히 떠있는 걸 봤다.

(이 글 읽는 선배님들 꼭 한번 들어가 보세요. 화면 속의 유일한 여학생이 제 딸이랍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하고

수업을 열흘 이상 빼먹어야 하니

대부분 군 입대를 앞두거나 전역을 한

복학생 위주로 팀을 짜는데

졸업반인 딸이 출전을 하게 되었다.

8명의 맴버중 홍일점으로

 

한 기수 후배가 갈 차례인데 좀더 좋은 성적을 원하는 학교측의 욕심과

유일한 팀 내의 크리스챤으로 한 번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 딸의 열망이 합세를 해서

두 번째로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 학교를 소개할 때 자랑하는 간판 동아리라 학교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모임이다.

 

전화요금 비싸다고 전화도 못하게 하고

달랑 문자 두번 주고는 넘 바빠서 메일 줄 시간도 없다더니

지난 주일 딸의 그녀석이 와서 그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들놈만 말짱꽝이 아니구나

잠 잘 시간도 없다고 엄살 피더니 지 남친한테 그 소식을 듣게 하냐?

좀 섭하지만 기분 좋으니 그래 봐주마!

 

학사일정으로 종합성적 나오기도 전에

잠시의 휴식도 여행도 못하고 교수님 대학원생 포함 15명의 일행중

재학생 세명과 교수님 한 분만 화요일에 미리 돌아왔다.

집에도 못 들르고 학교로 바로 갈거 같아

아빠랑 기습적으로 공항에 가서 축하해주려고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대교를 건넜다.

 

가는 도중 착륙했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지금 공항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그 까칠한 성질머리 또 발작이다.

"왜 말도 안하고 오는데~

학교에서 마중나올건데~ 만날 시간도 없는데~

주말에 가서 보면 되지~"하며 앙탈이다.

 

니가 이 에미 에비의 맘을 아니.

그래도 장하다고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싶어 그러는데...고얀 거

 

벌써 가버렸으면 어쩌나 하고

어느 출구로 나오는지도 모르고 동동거리며

달려가서 직감적으로 한 출구앞에 서니

꼭 동남아 오지에서 오는 사람 같은 쬐그만 녀석이 민낯의 부시시한 몰골로 걸어나온다.

하마터면 내 딸을 못 알아볼 뻔했다.

 

미술을 하고 싶어했던 꽤나 화려한 패션을 추구하는 녀석이

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저런 몰골을 하는구나.

 

그렇게 퉁명을 떨더니만 그래도 좋긴 하나보다.

공항 바닥에 케리어를 눕혀놓고 지퍼를 열고는

빨래감 속에 묻혀있던 트로피를 꺼내 보여준다.

학교에 영구 보관을 할거라며 도로 집어넣는다.

교수님이 "은혜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한다.

 

잘 했다고 두 교수님이 엄마 아빠 신발을 한켤레씩 사줬다며

나이키 운동화 두 켤레를 주었다.

다행이 학교에서 마중나오는 차가 좀 늦어서

함께 온 학생들에게 생과일쥬스 한 잔씩 사주고는

그 작은 입으로 조잘거리는 승질쟁이 딸년의 이야기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마중나온 차에 짐을 실어주고는

우리는 딸래미 가방에서 나온 빨래감과

나이키 운동화 두 켤레를 들고

일몰의 서해바다를 건너는 버스에 몸을 싣고

두 손 깍지끼고 핻복한 데이트를 즐겼다

 

딸아!!!

너무도 해준 것이 없는데...

정말 정말 고맙다.

 

그리고 하나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나 보다 더 잘 키워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리 부부는 말 안해도

서로의 체온을 통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