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1. 장회장님 이야기>

이 분은 그 당시 60 대 후반 쯤이신 것 같았은데 기골이 장대하고 아주 남자답게 잘생기신 게

영화에 나오는 야쿠자 두목 (실례)같은 인상이셔요.

 

일본이름과 본명 기억하지만 그냥 장회장님으로 할께요.

 

직함이 회장인 걸 보면 전  단장이셨나봅니다.

연세도 그당시 현 단장님보다 위셨어요.

 

근데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회장이셨는지 감사셨는지 아리까리 해요.

또 한 분의 감사가 계셨걸랑요.

 

그 날도 일부러 자기 이야기 하신 건 아니고

 

40대의 어떤 교포분이(이 분은  2세셨던 것 같아요) 사업 실패하고

가정불화로 이혼까지  했다는데 어린 애가  셋이더라구요.

부인이 집을 나가 버렸대요.(난 왜 뜽금없이 그 부인 이름이 생각날까요?)

상식적인 일은 아니지만 암튼 그런 상황이라고!

 

급한대로 김치를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시작은 했는데

아이들 맡길 곳이 없다고 차에다 애 셋을 다 태우고 다니시더라구요.

 

그 날도 일이 있었는지 그냥 들렀는지는 모르겠는데

애 셋 다 데리고 사무실에 오셨더군요.

마침 와 계시던 장 회장님께서 애들에게 용돈 쥐어 주시고는

그 애들 아버지에게 지나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시더라구요.

 

 스스로 젊은 시절 건달노릇 할 때의 이야기라고 단서를 붙이셨어요.

그러니까 일제시대였겠지요

 

질서없이 살 때다 보니 오다 가다 만난 일본 여인과 동거하다가 아기를 낳았는데

밤에 집에 가 보니 그 친정 어머니라는 사람이 와서 딸을 돌보는데

아기는 한 쪽 구석에 그냥 내팽개치다시피 했더랍니다.

울컥해서 한 소리를 했더니 글쎄 자기 딸만 데리고 아기는 버려둔 채로 가버리더라네요.

 

지금 처럼 아기분유가 있을 때도 아니고

누구 하나 주위에서 도와주고  가르쳐라도 줄 어른도 안계시니 얼마나 난감했겠어요?

 아기가 배고파 하는 게 안타까워서 암튼 우여곡절 끝에 우유를 훔쳐오셨대요.

슈퍼가 있던 시대도 아니고 우유를 구하기 어려울 때였으니까요.

 

문제는 수유용 병도 없고 무슨 재주로 전쟁중인 나라에서

건달노릇하는 식민지 청년이 핏덩이 아기를 돌볼 수가 있었겠어요.

 

혼자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가재 수건 한쪽을 우유에 담그고 또 한 쪽을 아기 입에 물렸더니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아기가 그걸 다 빨아 먹는데 그야말로 눈물이 나서 못보겠더라고 그러시대요.

 

문제는 그게 어른들 먹는 우유였다네요!!!!!!!!!!!!!!!!!!!!

아기가 그걸 먹으면 안되는 것조차 몰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니 기저귄들 제대로 갈아주었겠으며 목욕이야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을 꺼 아니에요?

 

 아기가 그걸 먹고 일주일을 앓다가 ......................................................................................................

 

아기가 죽었단 말 듣고서야 애엄마라는 여자가 왔더래요.

그래서 쳐다도 안봤다고!

 

그 날 저녁에 그 이야기 들은 우리 남편이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지금도 막 눈물이 나네요.

 

또 있는데................. 으째야쓰까이!!!!!!!!!!!

 

그 다음 번 여자와의 사이에도 딸을 낳았는데 또 여자가 가버렸대요.

이 번에는 아기가 세살 쯤은 됬었나봐요.

 

유아원도 없고 하니까 무조건 아이를 데리고 다니셨다고...........................

그 분 말씀이 술집에도 데려 가고 캬바레도 데려 가고~~~~~~~~~~~~~~~~~~

말씀도중에

"정말 할 짓이 아닌기라!"

 6살이 됬을 때 애 엄마가 찾으러 왔더래요.

시상에 지 딴에는 그동안 사는 게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고달펐던지 그냥 두 말않고 엄마따라 가버리더라네요.

 

엄청 서운하셨던 모양이에요.

후에  그 딸이 결혼한다고 연락 왔는데 그냥 돈만 부쳐주고 말았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남자는 절대루 아 몬키운다."

 

그런 우여곡절 겪으신 후에 정신 차리셔서 돈도 많이 벌고

그야말로 헌신적인 부인 만나서 그 당시는 잘 살고 계신다고 그러시대요.

일단 민단 임원이 되신 분들은 다  그 세계에서는 성공하신 분들이에요.

 

그 장 회장님도 한국에 두고 온 부인과 자식들 몇 십년만에 만나서  뒷바라지 다 해주고 다니셨어요.

한국의 부인께서 일본 구경하시고 싶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 소원은 안들어주실 꺼라고!

 

"뻔할 뻔 짠데 두 여자 만나게 해서 우짜겠노!"

 

그저 내가 가끔 가고 겨울에도 찬물 안쓰는 집도 지어주고

애들 시집 장가 다 보내줄테니 그걸로 만족하라고 하셨답니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일본에 새부인이 계시단 말씀은 안하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아주 현명하시더라구요.

 

이제 돌아가셨을텐데 우린 뭐 미련없이 그 동네를 떠나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게 마음에 걸리네요.